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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실미도에서 살아남은 기간병의 충격적인 실화

by gospel79 2021.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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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을 겪고 난 후, 국내와 해외를 다니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는 양동수 장로.  아현성결교회 카페에서 만난 양동수 장로는 작은 체구에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과는 달리 그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간증하는 데에는 거침이 없었다. 실미도 사건이 발생한지 올해로 50년이 됐지만, 여전히 생생한 그날의 기억. 양동수 장로의 삶과 사역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들어보고자 한다.  

양동수 장로(아현성결교회)는 실미도의 생존자로, 처절한 죽음 앞에서 자신을 살려주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

ㅣ 삶의 시선

실미도 사건의 생존자
네 번의 죽을 위기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간증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

 

Q1. 내 삶을 하나의 장르로 표현한다면?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수백, 수천 번 생각해도 현재 내가 살아있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Q2. 드라마와 같은 삶이라고 했는데,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갈라서면서 어머니 손에 붙들려 내쫓기듯 집에서 나왔다. 전도부인이자, 전도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돌아다니다 중 2때, 지금 출석하고 있는 아현성결교회에 정착하며 이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공부를 곧잘 했지만, 가난이라는 굴레에 갇혀 어쩔 수 없이 공업고등전문학교를 진학하게 됐다. 참 많은 방황을 했다. 싸움은 기본이었다. 말썽을 피우며 하도 사고를 치다보니 학교 선생님께서 ‘한 번 더 사고를 치면 퇴학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퇴학만큼은 막아야겠다’라는 생각에 휴학을 결정하고 군 입대를 하게 됐다. 

 

Q3. 어머니를 따라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하신건가요?  

사역지를 옮겨다니던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레 교회에 출석했다. 학창시절 말썽을 많이 피우고 방황을 했지만,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진 않았던 것 같다. 교회 일이라면 뭐든지 열심히 했고, 봉사하는 일엔 앞장섰다. 

 

Q4. 군 생활은 어떠했나요? 

공군으로 입대해 신병교육대를 거쳐 오류동 정보부대에서 유격과 기타 정보주특기 병과교육을 마쳤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부대 이동을 하게 됐고, 어딘지도 모른 채 가게 된 곳이 실미도에 있는 684부대였다. 68년 4월 창립되어 684부대라 불렸는데, 북한의 김일성 주석궁을 폭파하고 김일성을 암살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이다. 특공북한침투부대에 기간병으로 전입된 것이다. 당시 일병이었던 나는 부대에 배치되자마자 병장을 거쳐 하사 계급장을 달았고, 양하사로 불리었다. 혹독한 훈련과 외부와의 단절된 생활은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 그러던 중 북파명령이 취소되었고 실미도 생활에 모두가 지쳐갈 때쯤, 24명의 훈련병이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진 왼쪽) 사람의 실제 해골과 몸 뼈로 만든 ‘우리의 신조’ 표지판 앞에 선 양동수 하사. (사진 오른쪽) 684특공대 실제 전경 모습

Q5. 50년 전의 일임에도 당시 상황이 뚜렷하게 생각나시나요?   

물론이다. 지금도 선명하다. 71년 8월 23일, 당시 휴게실 당번병을 하고 있던 나는 인천에서 물품을 보급받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6시쯤이었다. 휴게실 쪽으로 내려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순간, 총소리가 들리면서 휴게실 안으로 유리파편이 쏟아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북한군이 쳐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내부반에 놓고 온 총기와 실탄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휴게실 문을 박차고 나와 달려가는데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50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에 훈련병이 나를 향해 총구를 조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까지만 해도 훈련병의 소행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왜 나를 겨누고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순간 총알이 날아왔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십여 분간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주변으로 피가 흥건했다. 총소리와 비명소리.. 쓰러져 죽어가는 동료들의 모습까지.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Q6. 위기의 순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나요?  

죽음이 턱 밑까지 와 있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실미도에는 나무가 없었다. 북한군이 숨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나무란 나무는 다 베었다. 숨을 곳이 없었다. 그나마 바다로 가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바다로 향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의식은 점점 몽롱해졌다.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바닷가 근처 바위에 기대어 쉬고 있는데 저 멀리 내 핏자국을 따라 훈련병 한 명이 총을 겨누며 오고 있었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다니엘이 생각났다. 사자굴과 풀무불에 던져진 다니엘을 살려주신 하나님이 생각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 훈련병의 눈을 멀게 해주세요! 다니엘의 기적을 믿습니다. 그의 눈을 가려주시면 제가 살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를 하는데, 근처에서 들리던 발자국 소리가 멈췄다. 눈을 떠보니 바로 앞에 훈련병이 있었다. 그런데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더니 다른 곳으로 멀어져갔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구나! 훈련병이 나를 보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구나!’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후 두 명의 훈련병이 또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총구를 겨누며 다가왔고, 주변에 있던 돌을 쌓아 간신히 머리를 가린 채 엎드려 또 다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번엔 두 놈입니다. 훈련병 눈에 나를 안보이게 해시면 하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코앞까지 다가온 훈련병들은 결국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왔던 길을 따라 멀리 사라져갔다. 하나님은 내 목숨을 또 다시 구해주셨다. 이후 정신을 잃었고 한 10시간 정도 흘렀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헬리콥터와 구조배가 와 있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바다로 뛰어 들어 구조된 후, 공군항공의료원으로 후송되었다. 당시에는 군의관이 상태를 보고 시체실로 갈지, 응급실로 갈지 정했었다. 정신을 잃진 않았지만 미동도 않는 나를 보고 군의관이 “시체실로!”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있는 힘껏 몸을 움직이며 살아있다고 소리를 질렀고 그렇게 응급실로 가 치료를 받게 됐다. 며칠 후, 깨어난 나는 몸 상태에 대해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훈련병이 쏜 총알은 정확히 뒷목 중앙을 관통했다. 보통은 총알이 휘지 않고 직선으로 관통한느데 내 경우는 신경과 혈관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을 채 왼쪽으로 휘어 나갔던 것이다. 나에게 설명을 해주던 병원장은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라고 말을 했다.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Q7. 절대 절명의 순간, 어머니의 기도가 장로님을 살리셨다고요?

병원에 입원하고 이틀 후, 어머니가 병원에 면회를 오셨다. 군 입대 후 한 번을 뵙지 못했던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꿈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틀 전 새벽 꿈을 꿨는데, 내가 군복을 입고 바닥에 누워 피를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고. 꿈 속 내 모습에 어머니는 잠에서 깨 곧장 교회로 달려가 나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핏자국을 따라 쫓아온 훈련병들을 마주했던 그 순간에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한 것. 어머니의 기도가 나를 살린 것이다. 무릎에 굳은살이 있을 만큼 늘 무릎으로 기도하셨던 어머니.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구나!’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덤으로 사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훈련병이 쏜 총알은 양동수 장로 뒷목 중앙을 뚫고 들어가 왼쪽 목으로 휘어져 나갔다. 아직도 양 장로의 목에는 총상이 선명하다.

ㅣ 사역의 시선

미술 교사로 후학 양성하며 전도에 힘써 
2천회가 넘는 간증집회 다니며 복음 증거자로! 
간증하는 삶이 곧 나의 사명   

 

Q1. 군 제대 후 어떤 일을 했나요? 

미술(디자인) 전공을 하고, 교직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교수로 12년,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16년. 학생들을 지도하며 세계 디자인 경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고, 디자인 관련 책을 번역하고 6권의 교과서를 만드는 일에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후학을 가르치면서내가 꼭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전도하는 일이었다. 자율 학습이나 수업을 보강해야 할 때 일부러 자원해서 들어가 아이들에게 내가 겪은 일, 내가 만난 하나님을 말해주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가르친 제자들 중에 목회자, 사모들이 있다. 특히 사모가 많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꽤 오래 있었다보니 그런 것 같다. 

 

Q2. 실미도 사건 이후, 교회 전도 봉사에 열심이셨다고 들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 목숨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시작한 봉사였다. 72년 당시 국내선교라는 말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때 ‘전도 봉사’라는 이름으로 하기 국내 선교, 전도 봉사를 주도했다. 해마다 농촌, 어촌으로 가서 도배도 하고 마을길도 고쳐주고 농사일도 도우며 복음 증거하는 일을 전개했다. 제대 후에는 더욱 활발히 아현성결교회 청년회를 이끌며 전도봉사를 나갔고 그때부터 시작된 전도 봉사가 지금까지 활발히 이어져오고 있다.     

Q3. 현재는 어떤 사역과 일을 하고 계신가요? 

군 제대할 때 실미도사건과 부대에서의 일을 일체 발설하지 않는다, 함구한다는 각서를 썼다. 그러던 중 2003년 영화 <실미도>가 개봉을 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간증집회를 다니며 실미도에서 겪은 일과 죽음 가운데 나를 살리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2천회가 넘는 간증 집회를 다니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가 하나님을 증거했다. 코로나로 최근 2년 동안은 거의 못했다. 요즘 들어 조금씩 간증 집회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시간과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이 사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Q4. 한두 번도 아니고 천 회 이상의 간증집회를 하셨는데, 그만 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똑같은 내용인 것 같지만, 매번 다른 간증을 하게 된다. 나 역시 간증을 준비하며 이런 이야기를 해야지 생각하고 준비하고 가지만, 매번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지고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진다. 물론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직장과 가정과 이 자리에도 함께 하신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천 회가 넘는 집회를 다니면서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복음의 증거자로 사용하시는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그때마다 다르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Q5. 사역 가운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집회를 다녀보면 많은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다. 집회 이후로 교회가 부흥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기도 하고, 주일 예배 외에 잘 나오지 않던 성도들이 새벽예배를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기쁘다. 그리고 집회에 참석한 사람 중에 가르치던 제자를 만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또 한 교회에서 5번 집회를 한 적도 있다. 들었던 내용이라 지겨울 수도 있고 진부할 수도 있을텐데 감사하다. (웃음) 

국내는 물론 해외를 다니며 2천 회가 넘는 간증집회를 진행해 온 양동수 장로. 사진 맨 오른쪽은 양동수가 장로의 ‘실미도 생존 실화’를 담은 책이다.

ㅣ 생각의 시선

해이해진 영적 상태 살펴야 
신앙과 인생의 멘토 ‘어머니’ 

새벽을 깨우는 무릎 기도가 자녀를 살려 

Q1.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사실 지금 아내가 아프다. 많이 호전됐고 이전보다 더 건강한 삶으로 회복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수많은 간증집회를 다니면서 어찌 보면 방전되고 지쳐있던 나를,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가 게을러지고 해이해진 나의 영적 갈급함과 신앙을 돌아보고 있다.    

 

Q2.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어머니이다. 내 인생의 멘토이자 신앙의 멘토. 부모로서의 멘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겐 안 그렇지만 나 스스로, 특히나 신앙적인 부분에선 외골수적인 면이 있다. 어머니의 영향이다. 살아계실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새벽기도를 중단하신 적이 없으셨다. 어머니의 그 눈물의 기도, 특히 무릎기도가 위기의 순간, 나를 살려줬기 때문에 집회를 가서 간증할 때 항상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부모가 되라고 권면한다. 

 

Q3.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이 있다면? 

마가복음 9장 23절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Q4. 장로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늘 함께하시고 언제나 나를 승리케 하시는 분이다. 환란과 아픔 속에서도 나를 만져주시고 치료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 닛시, 여호와 라파! 

 

ㅣ 세상의 시선 

예배를 사모하며 교회 중심의 생활해야
신앙의 정도(正道)를 지키는 크리스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 살아가길 

기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양동수 장로

Q1.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해야 된다. 할 수만 있다면 주일, 수요, 금요예배는 교회 와서 드려야 한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양하며 예배를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게 마음에 걸린다면, 오지 않는 것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가족,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교회에 나와 예배해야 한다. 신앙의 기본, 믿음생활의 기본을 지킬 때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Q2.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나누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비록 내가 기도의 확신이 없어도,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을 부정해도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눈동자와 같이 보고 계신다. 누군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양동수 장로를 죽음에서 구해주신 하나님을 전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악한 길이 아닌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복음의 증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낸 '종교적 허상'이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하고 살아계십니다.

지금 즉시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영접 기도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 하나님 떠나,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주인으로,제 맘속에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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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gospel79.tistory.com/31 [systrader79의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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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todayn.net/83386

 

[피플] 실미도 사건의 생존 기간병! “하나님을 간증하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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