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식당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선생님, 그 물에는 치명적인 독약이 섞여 있으니 절대로 마시지 마십시오.'라고 얘기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순히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 사람 말이 맞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으니,'이 사람은 미친 사람일거야' 라고 생각하여 벌컥벌컥 마시겠습니까?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여러분은 함부로 그 물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에 하나라도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었는데 물을 마셨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거나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은 이유 때문에 죽음이라는 너무나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영원한 기쁨이냐 너무도 끔찍한 영원한 고통이냐가 달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독약이 든 물을 마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결과가 달린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얼핏 아무리 황당하게 여겨지고 믿기지 않아도  정말 사실인지  심각하게 한 번 쯤은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그럴리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도박 아닙니까?

 혹시라도 지금까지 이 문제를 흘려들으셨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단 한 번만이라도 이 사이트를 통해서 이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따져보시기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 '불편한 진실'이 단순히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혹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못믿으셨다면, 이 사이트에서는 지금부터 억지를 부리지 않고 하나하나 순서대로 합리적인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그러니, 일단은 이 '불편한 진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마시길 간곡하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정말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번 기회가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정말 진지하게 바로 지금 단 한번만, 단 한번만, 끝까지 이 사이트의 내용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그 '불편한 진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이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태어난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그 이후에는 아무런 세상도 없고, '나'라는 존재도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 뿐인 인생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삶을 추구하며 한바탕 즐겁게 살다가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산 사람들은 영원히 천국에서 무한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부인하거나 자신의 욕망에만 사로 잡혀서 인생을 산 사람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종교적인 환타지나 환상의 산물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존재하는 이 세상과 똑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여러분, 모든 근거를 이제 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믿기 힘들다는 사실도 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공감하고 있으니, 믿기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라고 지금 절대 그냥 지나지치 마세요!!!!)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했을 때에는 이 지상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면서 살도록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함으로써, 이 원죄가 인간에게 유전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사람은 '죄의 결과'인 사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속성상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위해 준비된 고통의 장소인 '지옥'의 영원한 형벌 또한 사람이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류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3일만에 부활함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로써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산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며 산 사람은 죽음 이후에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지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뜨거운 유황불로 사람을 태우면서 영원토록 고문하는 무시무시한 장소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무한대이며, 너무나 절망적인 사실은 그 고통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설령,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아무리 주변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성자같은 삶을 산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결코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시간이 없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1분 1초 후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지체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여 믿고, 그 분이 원하는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바로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이며,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거듭 강조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진짜로' 있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꾸며낸 종교적인 허상이나 환타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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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신 여러분 중 상당수는 아마 이런 반응을 보이실 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 소리였군...'


'하나님, 예수님 운운하기 전에, 우선 신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검증하고 증거를 얘기해줘야 할 것 아닌가?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신이 있다고 뻥을 치는 거냐?...'


'예수, 부활, 천지 창조, 처녀가 임신해서 예수를 낳은 것,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물위를 걷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인 것,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해서 승천한 것...진화론과 배치되는 비과학적인 창조론...등등..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내용으로 점철된 종교적인 신화를 무슨 근거로 믿으라는 것이냐?


'성경도 사람이 만들어낸 수많은 종교 경전의 하나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냥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기 위해 조작하고 짜깁기 한 역사적 픽션 아니냐? '종교'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광신도들이나 믿는 것 아닌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도 않은 신의 존재를 대체 무슨 근거로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 세상의 불합리와 고통, 악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이 넘치는 존재라면 어떻게 인간을 그토록 무자비한 지옥에서 영원히 고문을 할 수가 있는가? 지옥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므로, 그런 신은 존재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위와 같은 의문이나 회의 없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그 분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셨다면, 더 이상 이 사이트의 자질구레한 변증이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믿고는 싶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위와 같은 의문과 모순 때문에 믿기를 주저하셨거나,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안티'라면, 절대로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왜 성경과 복음, 하나님이 진리인지를 '아주 꼼꼼하고 확실하게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겨지지도 않는 신화를 '맹목적'으로 믿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으로 '과연 저 복음이라는 것이 사실인가'에 대해서 치밀하게 의심하고 따져보기를 원합니다. 


 저는지금까지 여러분이 들어오셨던 것처럼, 

'그냥 성경이 진짜니까,하나님이 있으니까, 그냥 이해가 안가도 믿어'

라는 식으로 근거없이 여러분을 결코 설득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사이트를 통해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는 이런 '복음'에 관련된 잘못된 편견, 오해, 의문에 대해서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하고 계셨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왜 이 복음이 '사실'인지를 확실히 깨달아서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그러니, '에이...그소리...뻔한 레퍼토리...이제는 안들어라고 생각하시고 넘어가시지 마시지 않기를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혹시, 여러분이 골치 아픈 종교 얘기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려고 하신다면, 그새 잊으셨습니까?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치명적인 독이 든 물을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단순히 믿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검증해보지도 않고 독이 든 물을 겁도 없이 벌컥벌컥 마시려 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단순히 배탈나고 설사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물 한잔으로 여러분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아신다면, 여러분이 바보가 아닌 이상, 완전히 믿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진지하게 한 번쯤은 따져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가스렌지 불에 1초 동안만 살짝만 데어도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그보다 수백배는 더 뜨거운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문제를 '단순히 그냥 아닐 거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까? 

 이 사실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설령 현재 믿기지 않거나 나중에 믿지 않더라도 최소한 진짜인지라도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따져봐야 하지 않습니까? 

 억지로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납득이 안되는 믿음의 장애물을 조목조목 설명해드리겠다는데도 애써 무시한다면, 여러분은 일생일대 최악의 도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이트의 내용이 길다고 그냥 나가시려고 한다면, http://gospel79.tistory.com/14 에 사이트의 내용이 요약되어 있으니 이거라도 보시고 확인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나중은 없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여러분이 이 모든 사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 생각하시고 믿기지 않는다는 것 제가 여러분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디, 절대로 이번 기회를 흘려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이번 단 한 번만 진지하게 마음을 열고 따져보시길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다음 글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읽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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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소위 '회의론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시어 십자가의 대속 사역과 부활을 통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복음'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믿고는 싶지만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황당한 이야기 투성이어서 쉽사리 이해되거나 '믿겨지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혹시나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런 '복음'을 들어보셨거나, 전도를 '당하셨을 때'  앞의 글에서 제시한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여러가지 사항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아마도 이런 대답을 들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무조건 믿어야 한다. 믿음에는 이유가 없다' 

 어찌보면 막무가내식의 맥빠지는 대답이라는 것, 저도 솔직히 인정합니다. 물론 이런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처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믿음의 근거'를 따져보고 믿으려는 시도가 불경스럽거나 무의미한 것 또한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의심과 치밀한 검증을 통해 얻어진 믿음은 단순한 순간적인 감정에 의해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이성적이고 견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저는 여러분이 왜 '복음을 믿지 못하는가'에 대해 여러분과 똑같은 회의론자의 시각에서 하나하나 따져보고 과연 정말로 이 '복음'이라는 것이 단순한 종교적 판타지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시퍼렇게 살아있는 '불편한 진실'인지에 대해서 지금부터 치밀하게 검증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요약해보면 크게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아마 여러분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1. 신은 존재하는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이 가능한가?

- 성경, 예수님, 하나님이고 뭐고를 떠나서 일단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고, 확증할 수도 없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가?

- 신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방법으로 검증하고 증명할 수 있는가?

- 신이 있다고 치자..그 신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인지, 아니면 타 종교에서 얘기하는 잡다한 신인지, 내 머리로 만들어 낸 신인지 어떻게 검증이 가능한가?


2.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과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갈랐고, 마리아라는 처녀는 혼자 임신해서 예수님을 낳았으며, 예수님은 맹물로 포도주를 만들었고, 수많은 불치병자를 즉시 치유하셨으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고 한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이후 다시 부활한 것도 모자라 하늘로 승천했다고까지 한다.

-  이 외에도 성경은 수많은 기적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각종 초자연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는데, 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런 '환타지 소설'에 나올 법한 일들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가?


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4.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 현대 과학에서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원시 대기를 재료로 전기적인 자극이 가해져 우연히 생명체의 구성성분인 아미노산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조합되어 원시적인 생명체가 출현하고, 이들이 끝없는 진화를 통해 각종 생물이 나타났고 사람도 이러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현대 과학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


5.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에서 고문할 수 있는가?  

-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하면, 결국 하나님이 '죄'와 '악'의 창시자가 아닌가? 차라리 애초부터 '죄'와 '악'을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도 지옥에 갈 이유가 없지 않는가? 

- 하나님이 공의롭고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는 신이라면, 대체 이 세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과 부조리가 존재하는가? 왜 세상에는 끔찍한 범죄와 전재, 자연재해와 재난, 불법이 끊이지 않는가? 왜 정직하고 선하게 살지만 비참하게 사는 사람이 존재하고, 온갖 악과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안락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이 모든 회의와 의문에 명백한 답을 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모두 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그대로 믿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물 때문에 믿지 못한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반드시 이 장애물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그러면 다음 글부터는 과연 이러한 의문과 회의가 정말로 타당한 것인지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여러분 중 골치아플 것 같다고 여기서 끝내려는 분 계십니까? 그새 잊으셨나요? 만일 이 복음이 진실인데, 여러분이 검증해보고 믿지 않는다면, 영원한 불속에서 죽지도 않고 고문을 당한다고 했습니다.저는 억지로, 막무가내로 이해가 안가도 무조건 믿으라고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인지 오히려, 진지하고 '의심' 해보자고 했습니다. 이런데도 그냥 넘어가려고 하신다면, 너무나 큰 도박아닙니까? 이번이 여러분 평생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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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제가 블로그에서 주장하는 핵심, 즉, '하나님은 존재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간다'라는 주장을 여러분께서 받아들이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바로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의 여부가 될 것입니다. 

  이 방대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저는 5가지 쳬계적인 순서를 통해 '왜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논증하고자 합니다. 굳이 이 주제를 '단계'를 나누어 접근하고자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 오해와 궤변으로 점철되기 쉬운 논쟁이라  명확한 단계와 논리적인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 글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소모적인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감정적인 말싸움만 양산하는 무의미한 글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그 5단계를 말씀드리면,


1. 궤변론자들의 주장의 논리 검증 및 문제점 제시

2. 신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올바른 논증 방법 제시

3. 신 존재의 증거 논증 (연역적 논리에 의한 우주론적 논증)

4. 신 존재의 증거 논증 (가설 검증에 의한 귀납적 논증) 

5. 실제로 존재하는 신의 직접적인 supportive evidences


입니다.. 


1. 궤변론자들의 주장의 논리 검증 및 문제점 제시


 여러분은 무신론 vs 유신론의 논증에서 아무리 많은 객관적인 증거들을 서로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이 결코 끝나지 않는 공방전으로 끝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그건, 상대방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고, 날조된 잘못된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상대방의 주장이나 근거가 잘못되었다면 그 주장의 타당성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엄밀히 깊이 파고들어가보면 이런 논쟁이 끝없이 지속되는 더 핵심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어떤 지엽적인 사건에 대한 증거의 진위 여부를 떠나, 궤변론자 (무신론자건 유신론자건 둘 다 해당합니다) 들의 주장의 기본 논리나 패러다임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많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이것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증거 자체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한 논증과 논리 자체에 오류가 있다면, 아무리 증거가 사실적이어도 그 논증의 결론은 오류 투성이가 되겠지요? 바로 이것 때문에, 유신론과 무신론에서 끝없는 논쟁만 양산될 뿐 합리적인 결론이나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적으로 유신론, 무신론에 대한 지엽적인 주제부터 바로 다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핏 보기에 소모적이고 사변적일 수 있는 이런 재미없는 주제부터 다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궤변론자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잘못된 논리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궤변 1: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현상과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 

 인정: 인간의 이성으로 무수한 자연과 사회 현상은 실제로 합리적으로 잘 설명되고 있다. 

 오류: '현재까지 밝혀진'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사실도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추가적인 이성과 과학적인 원리가 미래에 밝혀지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도 있을 가능성은                     인정하나, 그렇다는 '논리적인 보장'은 없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결론:  인간의 이성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현재'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고 한계가 있다는 것          이 논리적인 진실이다. 

          따라서, ' 현재 인간의 이성' 으로 모든 현상과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 -->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             지 않는 현상은 거짓이다 는 식의 주장은 분명한 오류이다. 


궤변 2: 과학적 사실 = 논리적 진실, 합리적 진실 -->  따라서, 비과학적 사실 = 비논리적, 비합리           적 오류, 따라서, 비과학적 현상이나 과학으로 설명불가능한 사실 --> 오류, 거짓, 불가                    

 인정: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은 논리적, 합리적 진실이 맞음

 오류: 과학적 진실은 '논리적 진실, 합리적 진실'의 부분 집합임. 

         과학적 진실은 '자연계, 물질계'에만 해당하는 진실이고, 이마저도 불완전함 (왜냐하면 자연계의 모          든 원리와 과학적 법칙을 100% 다 알지는 못하기 때문) 

         논리적, 합리적 진실 =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진실 + 현재는 알지 못하지만, 미래에 밝혀질 과학          적 진실 +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 (비물질계: 영혼, 심리 등등) 에 관한                                       진실 +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진실 (기적, 미스테리) + 기타 설명 안 되는 진실

         유물론자들의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진실 외의 모든 나머지 영역들도 결국은 '과학적

        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 

        물론, 향후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가능성' 자체는 충분히 인정하나, 그렇다는 '논리적 보장'은 없음.

        가장 심각한 오류 속성이 분명히 다른 현상이나 개체를 동일한 원리로 설명하는 것

        유물론자들은 속성이 완전히 서로 다른 현상이나 개체를 오직 '과학'으로만 설명하려고 시         도, 과학 이외의 설명 수단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오류를 범함

        (예: 인간의 기분, 감정과 같은 요소는 온도, 질량, 형체, 분자 구조와 같은 '현재까지 밝혀진' 물리화          학적 속성이 전혀 없는 비물질적 현상임. 이런 비물질적 현상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면, 인간의 기           분이나 감정 그 자체에 대한 비물질적 속성에 대한 지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유물론자들은 기분과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  전달 물질이나 뇌파 같은 물질적 속성으로 이것을 설명하려함.  

        물론, 기분이나 감정 같은  요소는 분명 이런 물질적인 요소와 연관이 되어 있고, 상호작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 자체가 물질은 아님. 왜냐하면, 속성 자체가 완벽히 상호 배타적으로 다르기 때         문. 따라서, 감정이나 기분과 같은 요소는 물질계와 연관은 있지만, 적어도 현재의 지식으로는 물질             은 아닌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임)

           문학 작품을 수학 공식으로 해석하거나 수학 문제를 문학적 수사학으로 풀려는 시도가 바         보같은 것처럼, 일말의 공통적인 속성이 없는 서로 완벽하게 배타적인 속성을 완벽히 배           타적인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명백히 비상식적, 비합리적, 비논리적 오류임.  

결론:  어떤 현상이 분명한 합리적,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나타났다는 것이 입증된 상황일 때, 

        비록 그 현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의 '과학적' 혹은 '기타 지식적 진실'로 설명되지 않         는다고 그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임.

         단지 우리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을 뿐, 현상 자체를 경험적으로 인지하는데 오류가 없었다면, 원인            을 알 수 없어 꺼림칙하긴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현상 자체는 인정해야 함)

        (ex. 말기 불치병 환자가 기적적으로 하루만에 완쾌되었는데, 혈액 검사나, 방사선, 의학적 모든 검사          와 진찰 상에서 아무런 오류가 없었음이 밝혀진 경우, 이것이 의학적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하

         기 때문에 '저 환자가 완쾌된 것은 거짓이다' 라고 현상을 부정하는 것은 오류임.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저 환자가 완쾌된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라는 결론 내리는 것이 합리적임

          그 원인이 '우리가 아직 알 수 없는 과학적 원리'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는 합리적이             나, 그 원인은 오로지 반드시 '과학적인 원인'에 의한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제하는 것은 명백한 편견임.) 

      


궤변 3: 경험적, 과학적 방법에 의해 '직접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대상은 거짓이거나, 믿을 수 없           다.

 인정: 경험적, 과학적 방법에 의해 증명되지 못하는 것 중 거짓인 것들이 상당수 많이 있다.

 오류: 경험적, 과학적 방법에 의해 증명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거짓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함. 

         인간의 경험적, 인식적, 과학적 방법론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지'검증'을 하지 못할 뿐, 진위를 결          론 지을 수는 없음. 따라서, 이런 경험적 방법에 의해 검증이 불가능한 부분은, '진위를 판단할 수 없          다' 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논리적, 합리적이고, 함부로 참이다, 혹은 거짓이다 라고 결론 짓는 것은

         오류임.

         따라서, 과학적, 직접적 방법에 의해 진위 여부의 검증이 불가능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진위를 검         증하기 위해서는 비록 불완전하긴 하지만, 간접적인 다양한 증거를 수집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유일한 합리적 해결책


      (ex. 임진 왜란이 일어났다는 건 뻥이야..진짜라면 증거를 대봐...내 눈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상황을

      '직접' 보여주든가, 타임머신을 개발해서 500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어서 실제로 그게 일어났다는

       걸 '경험'하게 해봐..아니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걸 과학적 공식으로 증명해봐..

       못하지? 거 봐..증거 없으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건 거짓이야.)


        타임머신을 개발해서, 임진왜란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과학적','경험적','직접적'으로 '확증'하는

      것은  불가능.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이용해서 증명하라고 하는 것은 분명한 오류임

       이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를 직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직접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음. 그것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이성, 방법론적인 제한 때문임. 

       따라서, 이런 것을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적인 검증 능력의 한

     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비록 불완전하긴 하지만, 검증이 가능한 방법을 통한 간접적인 증거      를 수집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진위 여부를 판정하는 수 밖에 없음. 

       '직접적','경험적','과학적' 증거가 아니므로, 개별적인 증거의 해석에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오류도

       많으므로, 최대한 많은 증거들을 수집해서, 이런 종합적인 증거들이 참, 혹은 거짓일 확률을 

       분석해서, 높은 확률이 지지하는 쪽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음. 이것이 현재 자연과학, 사회과학

       쪽에서 기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통계적인 검증법임.   


 굉장히 복잡하고 길고 쓴 것 같지만, 사실은 간단합니다. 많은 궤변론자들의 잘못된 논리와 패러다임의 오류를 두 단어로 압축한다면, '편협함과 근거없는 자기 확신 + 비현실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변에서 친구가 어떤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이런 저런 이유와 근거 분석을 토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100% 저 팀이 이기거나 우승한다' 는 류의 얘기를 하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지요? 

 물론, 그냥 재미있으라고 하는 의도적인 허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냥 웃고 넘어가지만, 간혹 정말로 진지하게 자신의 주장과 근거들이 정말로 확실하기 때문에, 절대로 틀릴 수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을 보시면 어떻습니까?

  아무리 자기가 알고 있는 주장과 분석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돌발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 자기 이성과 지식이 100% 완벽하다고 주장하는거야? 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논리적으로 따져볼까요? 


 과학적 현상이건, 역사적 현상이건, 사회 문화적 현상이건, 그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저는 100%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이 항상 참인 해석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해석하고 알고 있는 것이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얘기한다면, 참일 가능성도 있지만, 거짓일 가능성도 인정을 하면 이는 그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100% 완전 무결한 주장이 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어떤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해석 가능성은 참, 또는 거짓 두가지 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인정하면 논리적으로 결코 오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진위 여부를 판단을 시작할 때, 오류나 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검증의 가장 처음 단계에서, 내가 참이라고 가정해서 시작하는 전제 자체도 참일 수 있고 거짓일 수 있다는 사실부터 '전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궤변론자들은, 자신이 검증하고자 하는 처음 가정의 전제 자체는 '항상 참'이고, '거짓일 가능성은 없다'라고 전제를 하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이런 잘못된 전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지요. 

 궤변론자들의 문제점은, 자신의 관점이나 인간의 이성이나 과학이 틀릴 오류 가능성 자체를 인정을 전혀 하지 않는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분명한 '논리적' 오류이지요. 

 실제로 색안경을 벗고 중립적으로 관찰하면,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 불가능한 현상, 과학으로 설명 불가능한 무수한 현상, 직접적인 방법으로 검증할 수 없는 무수한 현상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악착같이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비록 그 사람이 무신론자이거나 유물론자일 지언정 적어도 냉철한 지성인이라면,


 검증의 시작단계에서는 비록 '과학적인 설명의 가능성'과 '초과학(비과학이 아님)적인 설명, 무신론적 설명의 가능성과 유신론적 설명의 가능성, 유물론적 설명의 가능성과 유물론의 오류의 가능성을 일단 모두 전제를 한 뒤 검증을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부정할 수 있습니까? 


 유신론적, 초과학적 설명이 모두 옳다는 걸 인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가설을 세울 때는 최소한 상반된 해석의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하고, 객관적인 검증 과정을 통해서 어떤 해석이 더 합리적인지 확인한 뒤, 유신론적이건, 무신론적 가설을 채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리적인 검증 절차이지요. 부정할 수 있습니까?


 무신론자가 유신론적인 가설을 감정적으로 마음에 안들어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기 때문에 검증의 가장 첫 단계에서부터 유신론적 설명의 가능성은 차단하고 들어가는 것은 결코 논리적으로 합리화 될 수가 없지요.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나는 이 관점이 참이라고     생각한다' 는 패러다임에는  오류가 있지요. 

 그런 소리는 지금 할 소리가 아니고, '나중에 모든 현상이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설명될 때'나 하면 되지요.

 엄밀히 말해, 아무리 그런 관점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이성','현재의 지식','현재의 과학적 진실','현재의 경험적 방법론'에 의해 설명이 불가능한 요소들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비록 나중에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 모든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할 지언정' '현재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 해결될 수 없는 많은 주제들이 있으므로,

비물질적, 초자연적,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라고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지성인의 자세이지요. 그런데도 이를 악착같이 부정합니다. 그러니 이들은 일종의 '광신도'와 다름이 없지요. 


  그렇다면, 다음으로 이런 관점에서 무신론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궤변들의 형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논리적 오류를 확인해보겠습니다. 


1. 신이 있다는 과학적인 직접적인 증거를 대봐라..있냐?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도 없는데 어떻게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냐? 신이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을 물리 방정식으로 증명하거나, 물리 법칙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봐...증명 못하니 신은 존재하지 않아!

궤변 3의 오류입니다. 물론 신이 존재한다는 간접적인 과학적 증거는 널려 있고,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후의 포스팅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신이 온 우주를 창조하는 과정을 직접적인 물리 방정식이나 여러분의 눈에 보이거나,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체험시킬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경험, 과학적, 인식론적인 검증 방법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신이 없어서 증명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를 '직접적인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증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의 진위성을 '타임머신'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거짓이라거나, 역사적인 방법을 통해서 검증하려는 시도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류와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검증이 불가능하다면 검증이 가능한 다른 방법을 통해서 검증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불가능한 방법을 억지로 강요하면서 증명하지 못한다고 거짓이라고 우기는 것은 초등학생 수준의 생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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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이 존재한다면, 당장 나한테 돈 100만원만 떨이지게 해봐...어 기도했는데 안되네? 신은 없네.

- 이건 사실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궤변이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논리의 오류는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제를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논증은, '신이 존재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고, 이 전제가 참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은 참이 아니지요? 신이 당신을 창조했다면, 당신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고 당신의 욕구와 의무에 반드시 응해주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전도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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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이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해라..간접적인 추정 증거들 말고...직접적인 증거 말이야!

  뭔가 신이 계시해서 나는 신이고 실제로 존재하니 제발 믿어주세요...이런 경험적인 증거라든지, 

 신이 우주를 창조해서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오류가 없는 수학식으로 증명한다든지,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게 했다는 과학적 증거를 보이든지 말이야..이런 식의 증거로..

 내가 원하는 식의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증거로 증명해봐...그러지 못하면 신은 없다.


-  따지고 보면 다 비슷한 류의 궤변입니다. 인간의 이성의 한계, 과학적 방법론의 한계, 인식론의 한계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궤변에서는 이것을 암묵적으로 부정해버립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증명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증거가 없어서 말이지요. 증거가 없어서 증명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참, 거짓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결론내리는 것이 합리적인데,  궤변론자들은, 검증할 방법이나 증거가 없으면, '거짓'이라고 아무런 근거없이 판정을 해버립니다. 


 비슷한 류의 궤변을 소개해 볼까요? 

김연아 선수가 모래로 가득찬 사우디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한 아랍 사람을 만나서 담소를 나누었다고 칩시다. 김연아 선수가 자신이 피겨 스케이팅의 레전드 '김연아'라고 했는데, 아랍 사람이 사막에서 피겨 기술을 선보여서 증명해보라고 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사막 한가운데 모래 벌판에서 어떻게 스케이팅 기술을 보여주겠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랍인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당신이 피겨 선수임을 증명하지 못했고 따라서 당신이 김연아라는 증거가 없으므로 당신은 김연아가 아니오... 라고 했다고 칩시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주장하는 직접적인 방법론 그것 가지고 증명이 안되거나, 혹은 현실적으로 증명할 가능성이 없으면 그게 거짓입니까? 

 인간의 인식론과 과학적 방법론에 한계가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분명히 인정한다면, 어떤 사실의 진위 여부를 판정할 때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검증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억지입니다. 그런 방법에 의한 증거 수집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다른 형태의 증거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합리적이지요.

 이 상황에서는 진위 여부 판정을 유보하거나, 

 정 진실을 가리고 싶으면, 현실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간접적인 방법과 증거들, 이를 테면 신분증의 확인, 주변 사람들의 증언','김연아 선수의 경기 동영상' 등을 참고해서 판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마어마하게 무식한 논리들인데, 사실은 이런 논리들을 아무런 생각없이 자신들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막상 검증해보면 너무나 억지스러운 논리인데도, 궤변론자들은 자신의 논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거나, 혹은 궤변임을 마음 속으로는 사실 인지하면서도 겉으로는 악착같이 궤변을 주장하는데요,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본성에 기인하는데, 그것은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아니면 알지 못하는 현상이나 상황에 대해 무의식적인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대표적인 케이스가 소위 말하는 '귀신''에 대한 공포감이지요. 귀신을 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또한 사람들은 귀신이나 사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상 이런 자신이 알지 못하고 부정하는 현실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엄청난 혼란과 불안,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예 말고도, 알지 못하는 자연 현상이나 미스테리한 현상, 초자연적인 기적 등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사람들은 '분명히 인간의 이성과 지식, 경험적 인식의 한계를 실제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부정하면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그리고 자신의 기존의 사고체계를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불안감 때문에, 이를 부정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사실이나 현상을 최대한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과 이성으로 억지로 설명하고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들이 깨닫지 못하는 논리적 오류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무신론자건 유신론자건, 자신의 입장이 옳다(신은 없다 vs 신은 있다)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이 참일 '가능성'(무신론자는 신이 있을 가능성, 유신론자는 신이 없을 가능성)은 일단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 상황에서 논리적 증거, 과학적 증거, 철학적 증거, 실증적 증거들을 수집해서, 검증을 해봅니다.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증명해내라는 억지스런 방법 말고, 비록 불완전하긴 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과학적 방법론으로 가능한 수준에서 이런 증거들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각적인 증거와 과정을 종합해서 비록 '불완전'하고, '내 정신이 뻥 뚫릴 정도로 완벽하고 속시원하게 해답을 주지는 못할 지언정' 무신론적, 유신론적 가정 중 어떤 가정이 더 합리적이고 모순이 적은지를 따져봄으로써 무엇이 참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방법론입니다. 

 

 그런데, 신의 존재의 가능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흔히 무신론자들이 부지불식간에 범하는 오류는,

애초에 신의 존재의 가능성을 가정조차 하지 않거나, '신의 존재 가능성'을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해당하는 신의 속성은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학교에 한 학생이 전학을 왔다고 가정합시다. 

 그 학생의 외모는 정말 볼품 없었고, 말도 더듬는데다가, 행색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거지 새끼의 몰골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학생이 '우리 아버지가 굴지의 대기업 사장이고, 자신은 100억이 넘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의 한달 용돈은 100만원이 넘고, 매일 아침마다 기사가 차로 등교를 도와준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발언을 했다고 칩시다. 

 자..이 상황에서, 과연 이 학생이 과연 재벌집 자제인지 아니면 가난에 찌들어서 정신 나간 불쌍한 거지인지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행색이 거지인데 어떻게 부잣집 아들이야? 100% 뻥이야' 라고 단정짓는 것은 명백한 궤변임을 설명드린 바 있지요? 

 이 학생이 과연 부잣집 아들인지 거지새끼인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처음 단계에서는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아도 일단은 '거짓말쟁이일 가능성 뿐만 아니라, '정말로 부잣집 아들일 가능성' 까지 모두 가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 직접 검증을 들어가보면 되지요

 그 아이의 집에 직접 따라가서, 정말로 저택에 살고 있는지, 부동산 문서를 확인해서 정말 시가가 100억이 되는지, 아버지의 신분을 조회해서 정말로 대기업 사장이 맞는지' 등의 방법으로 검증을 하면 됩니다. 

 만일, 이 검증 과정을 통해서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비록 이 아이의 말을 믿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이 아이는 재벌집 자제라는 냉정한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요. 

 

 재벌집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남루한 행색을 하고 다녔는지 어떤 사연이나 이유가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기는 쉽지 않지만, 미처 알지 못하는 정신 박약이 있다거나, 가정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 아이의 정신이 나갔다던지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이 아이의 초라한 행색을 이해할 수 있지요? 

 그리고,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가 재벌 회장이고, 자신의 집이 100억대이며, 기사가 딸렸다는 '황당한' 주장이 믿기지는 않더라도, 검증 시작단계에서는 그 학생의 주장이 맞다는 '가정'은 인정한 상태에서 검증을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요? 

 믿기지 않는다고, 가정부터 틀렸을 것이라고 부정하면 '검증'자체가 성립이 안되기 때문이죠.

 검증이라는 과정은, 일단은 맞건 틀리건 상반된 가설이 '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반드시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반박하고 거짓이라고 입증하는 과정은 검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가설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무신론자들이 범하는 유신 논증에서의 오류는 무엇일까요?

  차후의 검증 과정을 거쳐 신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확인해서 결과적으로 '유신론'을 작살낼지언정, 논증의 시작 단계에서는 일단은 유신론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고, '유신론'에서 주장하는 '신의 속성'을 일단은 맞다고 가정하고 인정한 상태에서 검증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검증 과정에서 실제로 관찰되는 여러가지 과학적, 철학적, 논리적 증거들이 유신론의 가정과 모순이 된다고 입증이 되면, 그 때 '유신론은 미친 또라이들이나 믿는 종교다'라고 주장해도 뭐라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믿고 싶지 않다고 해서 가설부터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억지 중의 억지이지요.

 신이 있냐 없냐를 검증하기 위해서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적 가설을 일단 수용한다면, 유신론에서의 신의 속성까지 일단은 받아들인 상태로 시작해야 합니다. 

 

 유신론에서의 신의 속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음의 신의 속성은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의 속성과 그를 통해 추론한 내용입니다.

  

  '초월적 존재이고, 온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존재이다'

 ' 전지 전능하고, 물질적, 비물질적 세계 모든 것을 관장한다'

 ' 전지 전능하고 물질적 속성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물리적, 과학적 방법으로 확증이나 실체를 완벽   하게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영적인 존재이고 비물질적 존재이다'

 ' 존재하기 시작한 적이 없었고, 자신이 곧 원인이자 결과이다'


 이런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존재론적으로 신은 전지 전능한 초월적 영원한 존재이고, 인간은 유한하며 제한된 이성과 능력을 가진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존재론적으로 이런 엄청난 갭이 있기 때문에, 제한된 인간의 이성과 인식론적인 방법만으로 우리의 머리가 뻥 뚫리고 시원해질 정도의 '확증'을 하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명백한 논리적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이제 갓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서 구구단을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생이 자신의 이성과 논리로 미적분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미적분은 거짓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궤변입니까?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 사용자는 자신의 이성과 지식 수준으로는 컴퓨터 회로를 설계한 설계자의 의도와 뜻을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는데,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전지전능한 신과 피조물간의 존재론적인 갭을 인정한다면, 인간의 이성과 논리의 방법 자체로 '완벽하게' 신의 존재를 '확증'할 방법이 없다고 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이런 초등학생의 궤변보다 훨씬 더 큰 궤변이 아닙니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지각과 이성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열등한 이성의 수준으로 차원이 높은 수준의 존재를 100% 확증하라? 오히려 이것이 더 모순이지요?

 무식으로 유식을 설명하고, 피조물이 신을 확증하고, 물질적, 유한한 존재가 비물질적 초월적 존재를 확증하라..비물질적, 영적인 존재를 물질적, 과학적 방법론으로 확증하라?

 존재론적인 갭에 따른 인간의 이성과 인식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한다면, 비록 우리는 인간의 제한된 이성과 과학으로 신의 존재와 실체의 전부를 100%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더 궤변이지요. 

 

 그렇다면 차선책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경험적, 인식론적, 과학적 지식의 한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신의 존재의 가능성을 검증해 보는 수 밖에 없지요. '100% 완벽한 신의 전체 실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다각적인 증거와 검증을 통해서 무엇이 더 참에 가까운지는 충분히 검증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의 예에서는, 초등학생의 이성과 논리로 적분 공식의 100%를 완벽히 이해시킬 수는 없어도, 적분이라는 개념은 '도형의 넓이를 구해서 합치는 과정과 비슷하다'라는 개념으로 부분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무신론자들의 궤변의 논리적인 오류는, '유신론적 신의 가정'에서 나타나는 신의 속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상태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니네 아버지가 진짜 재벌이라고? 그래, 진짜 니네 집이 100억인지 '일단은' 한 번 믿어볼테니 검증해보자..부동산 가서 등기부 등본 떼보자..만약에 등기부 등본상 사실이 아니면 넌 거짓말쟁이야'

 라는 논리는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니네 아버지가 진짜 재벌이라고? 너의 꼬라지를 보니 절대로 너희 집이 100억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그러니 니 말은 거짓이야'

 이건 뭡니까? 순환 논증의 오류이지요? 

 

 신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일단 신이 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고, 유신론에서 주장한는 신의 속성을 일단은 인정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인식론적인 한계와 이성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100%' 확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부지불식간에 '유신론적 신의 속성'을 부정하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궤변론자들의 '유신 논증'에 대한 검증 논리는 '논리 자체에 오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신의 증거에 대한 논증은 차치하고 처음 시작부터 오류 투성이라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자신들의 논리에 이런 말도 안되는 오류가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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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방법

 

그렇다면,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의 여부를 합리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실 너무나 간단합니다. 신과 인간의 존재론적 차이와 그에 따른 인간의 경험적, 과학적, 인식론적 검증 방법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한 상태에서, 인간의 이성과 방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검증을 하는 것이지요. '신의 완벽한 실체에 대한 100% 속시원한 연역적, 논리적 확증'은 불가능한 것이 논리적으로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인식론적, 경험적,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어떤 사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방법은, 일반적인 사회 과학이나 자연 과학에서 시행하는 방법론과 차이가 없습니다. 

 , 항상 궤변론자들은 이런 오류들은 생각조차 안하고, 일반 자연 과학적 사실이나 사회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검증조차 안해보고 똑똑한 사람이 얘기하니까 맞나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유독 '유신 논증'에 관해서는 '너무나 황당해서 논리적 오류가 발생할 정도'의 까탈스러운 기준을 요구합니다..비합리적이지요.

 

 어떤 사건이나 사실,  대상에 대한 '진위'를 판정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론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해 볼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이미 잘 알고 계시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연역적 추론, 가설 설정에 의한 귀납적 추론,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에 따른 추가적인 확증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방법은, 연역적 추론입니다. 

 연역적 추론은, '증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자명하게 '참'이라고 인정되는 전제, 즉, '공리'에서 출발을 해서, 논리적인 도출과정(일반적으로 삼단 논법)을 통해 추가적인 진리를 얻어내는 방법이지요?

 예를 들어본다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 라는 공리가 있다고 칩시다.(물론 이것이 공리라고 하기에는 매우 불완전하지요. 열심히 일해도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연역적 추론을 설명하기 위한 예이니 일단은 참이라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다고 칩시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공리가 참이고 내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다면, 내가 보상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도출해 낼 수 있지요. 

 전제가 참인 공리이고, 논리 도출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내가 보상을 받게 된다'는 도출된 논리 또한 참이고 진실임을 알 수 있지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 또한 연역적 추론 과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 전제가 되는 공리는 '모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다'라는 공리입니다. 뜬 구름 잡는 이 공리가 대체 신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와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다음 포스팅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가설 설정에 따른 귀납적 논증입니다. 

귀납법이란, 여러가지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여 그것의 공통적인 속성을 발견해서 추론하는 방법이지요? 

그런데 어떤 사실의 진위를 검증하거나 확인하기 위한 방법론으로는 가설 설정에 따른 확률적 귀납 논증이 표준적인 방법으로 널리 이용됩니다. 

 

 거두절미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피고인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판사가 정말로 이 피고인이 살인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인지 판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혹시, 증거 수집이라는 생각부터 드셨다면, 다시 한 번 위로 올라가서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증거 수집에 앞서, 가설 설정부터 해야합니다. 

 이 피고인이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 혹은 살인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 두가지 가능성을 일단 모두 염두에 두고 가설을 설정해야 하지요. 

 그 다음에 비로소 증거 수집에 들어갑니다. 

 혈흔, 지문, 목격자의 진술, 알리바이 유무, 정황증거, 증인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의 증거를 수집하지요.

 이 증거들을 종합해서 나온 결론이 '피고가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강하게 지지하는가, '피고가 무죄일 가능성'을 강하게 지지하는가를 판단하게 됩니다.

 물론 상반되는 증거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지요. 상반되는 증거가 공존할 경우,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증거일수록, 증거하는 증거의 개수가 많을쪽의 증거를 우선적으로 채택하게 되고, 

 이 때의 진위의 확실성의 정도는 '수학적, 경험적 확률'로 표현됩니다. 

 

 즉, 실제로 피고인이 살인을 했는지 안했는지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제 3자의 입장에서 계속 관찰해서 '직접적'인 방법으로 '확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간접적인 증거들을 수집해서, 이런 증거들이 합리적으로 추정하는 바의 확실성을 '확률적 진실성'으로 검증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9명의 믿을만하고 진실한 증인들이 무죄라고 주장하고, 1사람의 구라쟁이 증인은 살인자라고 주장한다면, 비록 피고인이 100% 무죄라고 '논리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어도, 피고인이 무죄라고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대단히 높은 확률의 신뢰성'을 가진 '합리적인 믿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 시끄럽고 다 필요없고, 100%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확증'을 보여라..확률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고 말이야'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궤변론자입니다. 

 

 소위 말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연구 방법론에서 어떤 대상이나 사건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은 결국은 이러한 귀납적인 다양한 증거 수집을 통한 가설 검증 방법입니다. 이런 가설 검증에서의 어떤 것이 참이다, 혹은 거짓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결정적인 요인은, 

 '논리적인 확증'이 아니라 '수학적 혹은 경험적인 확률'이라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말도 안되는 100% 확실한 경험적 확증, 논리적 확증만을 요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어하는 대상에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고, 믿기 싫은 사실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억지 검증법을 강요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의 존재를 가설에 따른 귀납적 추론으로 검증하는 방법은, 

 우선, 신이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양방향의 가설을 세우고,

 우리가 현실 속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방법론'들을 동원해서 증거를 수집하여 검증하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과학적 증거들도 있을 것이고, 초자연적인 현상도 있을 것이고,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역사적인 자료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개인적인 경험들도 있을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 검증해본다면, 신은 없고, 온 우주와 만물, 모든 생명체는 우연히 생성되어 알 수 없는 '자연의 랜덤한 프로세스'에 의해서 형성이 되고 진화되어 왔다라고 가정을 할 수도 있고,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신'적인 존재에 의해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설계되고 창조되었다고 양방향으로 가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실제로 우리가 경험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인 방법론에 따라 '진실'로 인정되는 '사실'을 수집해서 그렇게 발견되는 과학적 사실의 단편들이, 무신론적 가설과 유신론적 가설 중 어느 가설을 더 합리적으로 지지하고 모순이 적은지를 검증함으로써 어떤 가설이 참인지 검증하는 것이지요.

 다른 증거들에 의한 검증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모든 증거들을 수집해서 종합해 봄으로써 많은 증거, 그리고 보다 확실한 증거가 유신론과 무신론의 가설 중 어떤 것을 더 확실하게 지지하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이지요. 


 마지막 검증 방법은,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에 의한 추가적인 확증 과정입니다. 일반적으로,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추론 두가지 방법 모두에 의해 지지가 되는 가설은 '참'이라고 강력하게 확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굳이 지저분하게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에 의한 추가적인 확증'이라는 지저분한 요소를 추가한 이유는, 앞서 설명했다시피,'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을 통해 신이라는 존재의 실재 가능성을 양방향으로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사변적이고 공허한 이성의 산물에 불과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신', 그리고 특별히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이라는 유일신이 존재한다면, 그 하나님이라는 전지전능한 신적인 존재가 단순히 인간의 이성과 논리적인 사유 과정에서 '만들어진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의 수준에서 실제적으로, 인지하고 경험하고, 체험하고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신이 있을 것이라는 연역적인 증거도 찾았고, 귀납적인 증거도 찾았다고 칩시다. 어딘가에 '신'이라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뜬구름 잡는 결론까지 얻었다는데까지 성공했다고 칩시다. 아무리 우리가 용을 써서 여기까지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속성과 존재 가능성을, 부분적으로라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그 신의 실체를 피부에 와 닿게 경험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과연 진짜로 그 신이 있다면, 우리 인간에게,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그리고, 내가 인간 너희들에게 실제로 내가 있다는 것을 너희가 체험할 수 있도록 너희의 인생과 삶에서 직접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여러가지 일들을 실제로 너희에게 보여주었고 지금도 항상 보여주고 있다'라는 '실증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겠지요?

 

 이 세가지 검증과정을 거치면, 비록 우리의 이성의 한계로 인해 신이 100% 존재한다 혹은 100%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적인 '확증'은 얻을 수는 없지만, 과연 신이 진짜로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판단하는 합리적이고 강력한 믿음을 얻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 과학, 논리로 신의 존재를 100% 확증하고, 그런 방법으로 확증이 불가능하면 신은 없거나 신의 존재 여부는 검증조차 불가능하다'

 라는 논리에 대한 저의 대답은, 

 질문하기에 앞서 그 질문의 전제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비논리적인 오류와 궤변부터 떼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냉철한 이성을 가진 지성인이라면,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생떼를 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방법론의 한계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인정한 상태에서, 그 방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합리적인 검증 방법을 적용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후의 포스팅에서는, 각각의 증거들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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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신이 존재하는지를 '현실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첫번째 방법은 연역적 추론입니다. 

 

연역적 추론은,  자명하게 '참'이라고 인정되는 전제, 즉, '공리'에서 출발을 해서, 논리적인 도출과정(일반적으로 삼단 논법)을 통해 추가적인 진리를 얻어내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자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 라는 공리가 있다고 가정해볼까요?

(물론 이것이 공리라고 하기에는 매우 불완전하지요. 열심히 일해도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니..연역적 추론을 설명하기 위한 예이니 일단은 참이라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다고 칩시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는 공리가 참이고 내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다면, 내가 보상을 받게 된다는 논리를 도출해 낼 수 있지요. 

 전제가 참인 공리이고, 논리 도출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내가 보상을 받게 된다'는 도출된 논리 또한 참이고 진실임을 알 수 있지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 또한 연역적 추론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전제가 되는 공리는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모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다'

 두 번째는,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는 없다' 라는 것입니다.


대체 이 두가지 공리가 신의 존재 여부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하시죠? 

일단은 왜 이 두가지 전제를 '참'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린 이후 이 두가지 '공리'를 통해서

어떻게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논증할 수 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태어나서 비로소 체계적인 사고와 의문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었던 시절을 생각해봅시다. 무수한 의문이 있었지요? 

 황당하고 유치하고 짝이 없는 질문들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의문들은 사실 깨나 심오하고 철학적인 의문들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아기는 어떻게 생겨? 라는 의문 말입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여러분께 이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기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라고 대답하면 100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 자체는 맞지만, 천진난만한 아이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될 수 없지요. 왜냐하면, 

 정자와 난자를 제공한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대한 의문이 또 남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그에 대한 대답은, 각각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들어진다는 결론이 나고, 

 한 세대 위의 부모님의 근원은 그보다 한세대 위의 부모님이 되고....이런 식의 원인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게 되지요..그렇지요? 


 만일 끝까지 올라가게 되면, 궁극적인 해답은 크게 두 부류로 갈리게 됩니다. 

 창조론적인 관점에서는,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에서 유래가 되었고, 그 아담과 하와라는 '최초의 인류'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전지전능한 신이다..

 즉, '너'라는 존재의 궁극적인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신'이라는 결론을 맺게 되고,

 그렇지 않은 진화론, 무신론적인 관점에서는, 

 '구체적으로 확증을 할 수는 없지만 무수한 진화를 거쳐 발달해 온 하등한 원시 포유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고, 그 하등한 원시 포유류의 궁극적인 기원은, 지극히 원시적인 형태의 단세포 생물이고, 그 단세포 생물의 궁극적인 기원은 단백질과 RNA, DNA 등이었으며, 

 이들의 궁극적인 기원은 그것을 구성하는 탄소나 질소, 산소, 수소 등의 원소의 원자, 양성자, 전자...등의 미립자가 되겠지요. 

 이들의 미립자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무신론적인 관점'에서의 최종 원인은, 

 '그냥 원래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대체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냐라는 의문이 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즉, 제가 지금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서는 인간기원이라는 예를 통해 들었지만)의 ,

 인간이건 무엇이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들....사람, 동물, 식물, 물, 산, 돌, 바람, 지구, 태양, 달, 행성, 우주, 시간, 공간...의 궁극적인 기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실증적인 해답이 무엇이냐라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해답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첫번째는, 더 이상의 궁극적인 원인이 없는, 그 자신이 최초의 원인인 '신'이라는 존재다라는 관점(유신론)과

 두번째는,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한도상에서 끝까지 시간과 원인을 거슬러 올라간 상태에서의 원시적인 요소들은 그냥 '원래부터 존재했다'(무신론)라는 관점입니다. 

 

 첫번째 관점은, 만물은 '시작점'이 존재했다는 관점이고, 두번째 관점은, 만물은 '시작점이 없이 원래부터 존재했다'라는 관점이지요.

 유신론적인 관점에서는 '신'이라는 존재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시공간까지도 창조한 '원래부터 있는 존재"이고, 그 자신이 궁극적인 원인이라는 관점입니다. 

 다만, 신이 창조한 이 온 우주 만물은, 신이 창조하기 시작한 최초의 '시작점'이 있다라는 관점이지요.

 무신론적인 관점에서는, 이 우주 만물의 기본적인 원인 자체가 원래부터 있었다...존재하기 시작한 '최초의 시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한한 시간 이전부터 그냥 원래 있었다라는 관점입니다.  

 즉, 유신론에서의 신이 원래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여기서는 만물의 기본적인 원인이 원래부터 존재했다는 관점으로 차용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두가지 상반되는 관점을 그냥 생각의 차이로 '너의 해석도 옳을 수 있고, 나의 해석도 옳을 수 있다'는 식으로 용인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의 진위 여부는 기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내 생각에 아무리 1+1=3 같아도, 1+1=2입니다. 


 뜬구름 같아보이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상반된 관점 중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대체 어떤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입니다.


  우선 수학적 추론에 의한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앞서 든 예에서, 만물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낸 방법은, 원인을 한단계씩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라고 했지요?. 

 어떤 존재의 근원을 시간을 거슬러 한단계씩 계속 추적해서 올라간다고 했을 때,  우주 만물의 최초의 근원은 그냥 '원래부터 있었다'라는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다른말로 설명하면, 

 기본적인 원인은 '무한대 이전의 시간부터 존재했다'라는 것입니다. 

 우주의 시작점 자체가 없었다면, 우주의 과거 사건의 수는 무한대라는 의미가 됩니다. 앞의 예에서는 나의 위에는 부모가 있고, 부모님의 위에는 또 부모가 있고, 그 부모의 위에는 또 부모가 있고..이런 식으로 무한대의 선행 원인과 사건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이지요.

 

 만일, '무한대'라는 개념이 현실 세계에서 실재하는 개념이라면, 무신론적인 관점이 틀렸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학자들은 '존재하는 사물의 무한수'라는 개념은 자기 모순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가 수학에서 '무한 급수'나 '극한'을 논할 때 다루는 '무한'이라는 개념은 인위적으로 정의한 '가무한'입니다.

 직관적으로도, 현실 세계에서 '무한'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무한대 빼기 무한대는 무엇이 될까요? 0 일까요? 무한대일까요? 자기 모순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수학자 중의 하나인 데이비드 힐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무한대(infinity)는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에 존재하지도 않고, 이성적 사고를 위한 어떤 토대도 제공하지 않는다. 무한대라는 개념이 하는 유일한 역할은, 단지 아이디어, 개념이라는 것 뿐이다."

 과거의 원인이나 사건들은 단순히 아이디어나 개념이 아닌 '실재'이기 때문에 과거 사건의 수는 '한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일련의 과거 사건과 원인들은 '영원'과 '무한'이라는 미궁 속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없고, 반드시 시작한 시점이 있어야 한다는 수학적인 결론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만물의 근원에 대한 관점은 이러한 이러한 수학적, 철학적 논리에 의해 반박이 되고, 논리상 오류가 존재합니다.

 여기까지 이해를 하신 분이라면, 일면 동의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한 편으로는 '말도 안되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수작을 부리고 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만일, 이성적인 증거가 그냥 뜬구름잡는 식의 '수학적인 추론'에 의해서만 기인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치명타는, 인간의 합리적 지성의 총아인 수학에서 결정타만 맞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빅뱅'이론 때문이었는데, 

 이 빅뱅이론에 의해 무신론적인 우주만물의 기원문제는 수학적 오류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현대 물리학에 의해서도 정면으로 반박되게 됩니다. 불과 반 세기 전의 일이지요. 

 빅뱅 이론은 우주 만물이 '무한대 이전의 시간부터 그냥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으로부터 130억년 전이라는 분명한 시점에 시작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 물리적 시간과 공간이 지금으로부터 130억 년 전의 이 시점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는 관점이지요. 

 빅뱅이론은 초기에는 하나의 가설로만 생각되었으나 허블의 은하의 적색 이동,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으로 현대 우주론의 표준적인 모델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gospel79.tistory.com/11 참조)

 빅뱅이론의 핵심은 결국, 우주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 는 무신론적인 기원의 가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무신론자들의 관점에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방법은 우주는 원래부터 있었다라는 '정상 우주론'이었으나, 빅뱅이론의 검증으로 과학계에서 사장되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무신론자들 중 일부는 빅뱅이론을 이용해서 무신론적인 관점으로 만물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방식은 이렇습니다. 

 '130억 년전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 시작되었다'

 여기서,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하는 것은, '무에서 유가 창조된다'는 내용입니다. 

 '절대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 있습니까? 

 '무(nothing)가 '유'의 원인이 될 수 있나요?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만일 여러분께, 텅빈 상자 하나를 보여주고 잠시 상자를 가려두었다가 컴퓨터가 나올 수 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제게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컴퓨터 같은 복잡한 것 말고, 미세한 어떤 것'은 어떨까요? 대상을 바꾼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핵심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가 저절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무'에서 '무'는 만들어질 수 있어도, '무'에서 '유'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것은 논리적 증명은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그 누구도 이것이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무의 상태에서 어떻게 어떤 것이 창조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무'에서 '유'가 창조될 수는 없다는 전제는 '공리'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를 시작케 한 원인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칼람'의 논증입니다. 


1.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 ('무'에서 '유'가 나올 수는 없다)

2. 우주는 원래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최초의 시작점)이 있었다. (빅뱅 이론으로 검증)

3. 따라서, 우주에는 원인이 있다. 


 처음 두개의 전제가 진실임을 받아들인다면, 논리적으로 우주에는 원인이 있다는 결론 또한 논리적으로 진실임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설명드리면, 반드시 나오는 반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 신이라는 존재의 원인은 뭐냐?' 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주의 근본 원인이 된 '첫 원인'은 논리적으로 반드시 자신의 존재를 야기시킨 상위의 원인을 가질 수 없고, 불변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비물질적 존재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원인의 영원한 회귀(어떤 존재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와 같이 끝없는 원인을 찾다가 시작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에 빠지는 딜레마)는 오류이므로, 모든 원인의 '궁극적인 첫 원인'은 예외적으로 인과성에 얽매이지 않는 특별한 존재여야 한다는 논리적인 결론을 얻게 되기 때문이지요.

 또한, 빅뱅이론에서 도출된 바와 같이 그 최초의 궁극적인 원인은 스스로 시간과 공간을 창조한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주와 만물의 기원을 대체 어떤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과거부터 무수한 사람들이 생각을 해왔는데, 

 철학적 사유의 결론은 두가지, 즉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유래되었다와 이유와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원래부터 존재했다로 양분할 수 있었습니다. 


2. 만물의 근원이 '원래부터 존재했다'라는 입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실무한'이라는 개념을 인정해야 하는 논리적인 모순과 오류가 발생합니다.

 또한, 우주의 기원에는 '시작점이 없었다'라는 명제가 참임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현대 물리학에 의해 이것마저 거짓임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3. 즉, 무신론적인 우주만물은 원래부터 존재했을 것이다라는 가정은 다소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논리적 사유에 의해서도 모순과 오류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물리학에서도 정면으로 반박당한 것이지요. 


4. 우리가 두가지 방법, 즉 수학적, 논리적 추론과 현대 물리학적 방법론으로 입증된 진실을 종      합하면,

  우주의 존재에는 시작이 있었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고, 아무런 원인 없이 무에서 무가 유래할 수는 없는 것이므   로, 우주의 시작을 유발한 근본 원인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우주의 시작을 유발한 '최초의 근원'은 '원인의 영원한 회귀라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   해 반드시 인과성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시공간과 물질을 창조한 존재이므로 시공을 초    월한 비물질적인 존재여야한다


  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존재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합니다.


  '초월적 존재이고, 온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존재이다'

 ' 전지 전능하고, 물질적, 비물질적 세계 모든 것을 관장한다'

 ' 전지 전능하고 물질적 속성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물리적, 과학적 방법으로 확증이나 실체를     완벽하게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영적인 존재이고 비물질적 존재이다'

 ' 존재하기 시작한 적이 없었고, 자신이 곧 원인이자 결과이다'

 

  여러분은 혹시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이 그냥 아무런 근거 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셨을지 모르나, 사실은 이와 같이 엄밀한 수학적 사유와, 물리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둔 엄격한 논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성인이라면, 

 이와 같이 정말로 진지하게 따져보면 무신론적인 기원론이 오히려 수학적, 논리적, 물리학적인 오류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하지요. 


 결론적으로, 우리는 수학적 추론과 최신 현대 물리학에 의해 확증된 진실에 입각한 공리에 바탕을 둔 연역적 추론을 통해, '신'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없이는 우주만물의 기원을 논리적으로 모순없이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시사하는 동시에 '신이 없다'는 주장은 정면으로 반박하는 논리적인 근거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귀납적 논증'에 따른 신의 존재의 가능성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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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두 번째 방법은, 가설 설정에 따른 귀납적 논증입니다. 


귀납법이란, 여러가지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여 그것의 공통적인 속성을 발견해서 추론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사실의 진위를 검증하거나 확인하기 위한 방법론으로는 가설 설정에 따른 확률적 귀납 논증이 표준적인 방법으로 널리 이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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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납적 논증의 개념 

 가설 설정에 따른 귀납적 논증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살인 혐의로 기소가 되었습니다. 판사인 여러분은 이 피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그 피고가 진짜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저지르지 않았는지 직접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초능력'을 발휘해서, 피고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당시를 직접적으로 재확인할 능력도 없고, 피고로 빙의해서 직접 그가 그 시간에 뭘했는지 '직접 체험'하는 식의 '확실한 검증'은 불가능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비록 불완전하지만 여러분이 진위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간접적인 증거를 수집해서 이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지, 저지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큰지를 '추정'하는 방법 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런 증거 수집 단계 이전에 반드시 것이 한단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설 설정입니다

 본격적으로 검증이 끝나기 전까지는 여러분은 피고가 살인범인지 무고한 시민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고가 살인범인지 혹은 무고한 시민인지에 대한 방향성 마저 잡지 않고 검증을 하려한다면 검증이 이루어지지지 않습니다.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자연 과학이건, 사회 과학이건, 모든 합리적인 연구 방법론에서 어떤 주제의 진위를 가리는 과정의 가장 첫단계에서는 진위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의로 '그것은 참일 것이다', 혹은 '거짓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잡고 시작하게 됩니다. 

  

살인범의 예로 되돌아가면,

 판사인 여러분은 수사의 가장 첫 단계에서, '이 사람은 살인범이다' 혹은 '살인범이 아니다' 라는 가설을 최우선적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그 이후 순차적으로, 객관적인 증거나 조사를 통해서 이 가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의 여부를 가리게 됩니다. 

 '피고는 살인범이다'라는 가설이 맞다면, 피해자의 살인에 이용된 흉기에서 지문이나 혈흔이 발견된다면, 이것이 피고의 것과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동일한 시간에 피해자와 피고가 같은 장소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성립되지요. 

 이를 바탕으로 실제로 검증에 들어가게 되지요? 실제로 살인에 이용된 흉기에서 지문과 혈흔을 감식했을 때 이것이 피고의 것과 일치하고, 동일한 시간에 피해자와 피고가 동일한 장소에 있었다는 목격자의 증언과 CCTV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자료가 확인된다면 우리는 '피고는 살인범이다'라는 가설이 참임을 입증할 수 있지만, 

 반대로 지문과 혈흔이 다른 사람의 것이고, 동일한 시각에 피고가 다른 곳에 있었음이 확증된다면 '피고는 살인범이다'라는 가설은 기각할 수 있고, 무죄를 선고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증거나 검증의 신뢰성' 인데, 이는 통계적 혹은 수학적인 확률의 개념으로 표현됩니다. 

 앞의 예에서, 지문과 혈흔 감식에서 피고의 것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문과 혈흔이 피고의 것과 일치하므로, 이 사람은 살인범이 100% 확실하다'라고 결론내릴 수 있는 것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증거 또한 '간접적'이고 '불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지문과 혈흔 감식은 정확도가 높은 검사이지만, 확률적으로 검사에 오류가 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오류가 있을 사소한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지문 감식과 혈흔 감식의 정확도가 99%라고 가정한다면, 엄밀하게 말해 우리는 그 사람이 범인이라고 내린 결론의 신뢰도와 정확도 또한 99%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는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모든 증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알리바이건, 목격자의 진술이건, CCTV이건..어떤 증거이건 '불확실성' 내지 '오류'의 가능성은 존재하지요. 알리바이와 목격자의 진술은 증인을 돈으로 매수하면 허위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고, CCTV도 정교하게 조작이 이루어진다면 거짓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지요.


 

'직접적'이고' 확실하고', '100% 완벽한' 그런 증거는 현실 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체험한 증거'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간접적인 증거'로 바뀌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증거를 대봐'라고 해서 어떤 사실의 진위 여부를 검증했을 때, 이러한 증거에 의한 확실성이 '100%'라고 무의식적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합니다.


 '아무리 유전자 검사가 99% 확실해도, 1%는 믿을 수 없으니, 100% 완벽한 증거는 아니네? 그러니까 믿을 수 없네...왜? 100%가 아니니까'

 

이런 논리에 바탕을 둔 궤변론자들이 흔히 물고늘어지는 억지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유전자 검사와, CCTV와, 다수의 목격자의 진술과, 정황증거와 기타 수많은 물증이 모두 피고가 살인범임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이러한 증거의 정확성은 99.9999999% 이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에 에러가 있고, CCTV와 목격자의 진술은 조작되었고, 기타 많은 물증 및 정황증거도 동시에 조작되었을 0.000000000001%의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증거는 100% 완벽하지 못하므로 믿을 수 없다' 라는 억지스런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합리적인 검증 절차에 따른 결론을 내리는 기준은 '100% 완전무결한 논리적인 완벽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연과학에서 이루어지는 방법론에서조차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기준이 '일정 수준 이상의 확률적인 신뢰도'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합니다.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치명적인 오류 중 또 하나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이라는 것의 상대적인 비중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것인데요....

 앞의 예에서 종합적인 증거의 정확성이 99%이고, 불확실성이 1%라면, 정확성은 불확실성보다 무려 99배나 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량적인 차이는 완전히 무시하고 단순히 '불확실성의 존재'라는 단순한 기준하나만으로 99배나 신뢰도가 높은 증거를 믿을 수 없다라고 기각해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에서 이루어지는 검증 절차에서 참 혹은 거짓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100% 완전무결한 논리적 보장'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확률적인 신뢰도'입니다. 

 일반적으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5%, 좀 더 엄격한 기준에서는 1%보다 낮은 경우(이를 통계적인 유의 수준,p-value 라고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추론한 결론이 틀릴 가능성이 5% 나 1% 수준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일 가능성이 95% 혹은 99% 정도로 오류를 범할 가능성보다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은 기각하고, 우리는 참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합리적, 과학적 사유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수의 압도적이고 신뢰도 높은 증거를 제시해도 지극히 낮은 불확실성과 오류에 대한 가능성만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이런 근거로 다수의 압도적이고 신뢰성 있는 증거를 부정하려고 주장하는 행태는,'지독한 무식'의 소치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논리적'인 완벽한 진실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이런 이유 때문에 '공상'에 빠진 궤변론자로 남을 수 밖에 없지요.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믿거나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믿고 있는 그 어떤 사실이나 진실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를 통해, '그게 거짓일 가능성이 단 0.0000000000001% 도 없냐? '라고 몰아부치면 끝이기 때문이지요. 자가 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합리적, 과학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1. 가설을 세운다.

 

 2. 각종 증거나 연구,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한다. 

 

 3. 검증한 결과를 취합하고 검증된 통계적, 확률적 신뢰성을 확인하고, 이 신뢰도가 특정한 수준이상이고,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특정한 수준보다 낮으면,

 오류를 범할 사소한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함을 인정하지만, 그 가능성은 지극히 낮으므로 '현실적'으로는 그 가능성을 '무시'하고 우리가 검증한 가설이 '진실'임을 받아들인다. 


 4.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논리적으로 무결한 100% 확실성'이 아닌, 특정 수준 이상의 경험적, 확률적 신뢰도이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신이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 때문에, 지극히 희박한 오류의 가능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생떼를 쓰는 것은 '무지'의 반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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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충되는 증거들...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여기까지 보셨다면,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진실을 가리는 방법이 기본적으로 어떤 것인지 개념을 잡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증거가 상충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A라는 목격자는 피고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B라는 목격자는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판정을 해야 할까요? 피고가 범인인 동시에 범인이 아닐 수는 없지요? 논리적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가지 증거가 서로 상충되거나 모순이 되는 경우에는 과연 어떤 방법을 통해 진실을 가릴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바로 위에서 설명드린 방법론에 기반을 두어 조금만 확장하면 됩니다. 

   

  상충되는 증거가 공존할 경우,  

  보다 강력하고 확실하고 개수가 많은 쪽의 증거가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개수가 적은 쪽의 증거를 상쇄시키게 되며, 

  이 때의 진위의 확실성의 정도는 '수학적, 경험적 확률'로 표현되며, 가설 검증과 동일한 방식     으로 검증합니다.

  이는 소위 수학에서 '베이즈 정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베이즈 정리에 의하면, 어떤 동일한 사실의 진위 여부를 지지하는 여러 개의 상반된 증거가 있을 때, 신뢰도가 여타 다른 증거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증거가 있거나, 혹은 여러 증거 중 참 혹은 거짓을 증거하는 증거의 개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면, 이러한 종합적인 요소가 다른 증거의 신빙성을 상쇄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법원에 10명의 증인이 소환되었습니다. 9명의 증인은 피고가 무죄임을 증거했고, 1명의 증인은 유죄임을 주장했습니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떻게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무죄임을 증거한 9명의 증인은 대단히 진실하다고 평판이 난 사람들이어서, 이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가능성은 90%이고, 거짓을 말할 가능성은 10% 였다고 합시다. 

 반면 유죄를 주장한 나머지 한 사람은, 거짓말을 달고 다는 사람이라, 진실을 말할 가능성과 거짓을 말할 가능성이 각각 50%라고 가정하겠습니다. 


 9명의 진실된 사람이 '무죄'임을 증거했고, 나머지 1사람은 '유죄'임을 증언한 이 상황에서, 

 실제로 이 피고가 유죄일 확률은 어떻게 될까요? 

그 확률은, 실제로 유죄여서 위와같이 증언했을 확률 / (실제로는 무죄인데 위와 같이 증언할 확률 + 실제로 유죄인데 위와 같이 증언했을 확률) 

이 됩니다.


 실제로는 무죄인데 위와 같이 증언(9명 무죄, 1명 유죄)했을 확률은 9명이 모두 진실로 말하고, 1명은 거짓을 말했을 확률이므로, 0.9^9 X 0.5^1 = 0.193 이고,

 실제로 유죄인데 10명이 위와같이 증언했을 확률은, 그토록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9명이 모두 짜고 쳐서 거짓으로 증거하고,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던 1 사람이 참임을 증거했을 경우겠죠? 0.1^9*0.5 = 0.0000000005 입니다.

 따라서, 실제로, 이 상황 즉, 9명의 진실한 사람이 피고가 무죄임을 증거하고, 오직 한 사람만이 거짓임을 증거할 경우, 

 비록 1사람이 거짓임을 증거했을지라도, 절대 다수의 신빙성 있는 증거들은 그 사람이 유죄임을 강력하게 증거하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피고가 유죄일 가능성은 0.0000000005 / 0.1930000005 = 거의 0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판사라면 9명이 무죄를 이야기 했고 1명이 무죄를 이야기 했으니, 피고가 무죄:유죄일 가능성의 비율은 9:1 = 90% 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거의 100%에 가깝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1명의 거짓말쟁이가 유죄라고 우겨도, 여러분은 마음 편하고 단호하게 저 피고는 무죄요라고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다른 경우를 생각해볼까요?

 이제는 반대로 9명의 증인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해서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50%에 불과했지만, 마지막 증인 1사람은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99.999999999%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때, 9명의 증인이 모두 유죄라고 주장하고, 1명의 진실된 증인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무려 9명이 유죄라고 주장하고 1명만이 무죄임을 주장하지만, 

 9명의 발언은 대부분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단순히 유죄를 증거하는 수만 많다고 이 사람들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한 번 실제로 계산해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9명의 증인이 모두 유죄라고 주장하고, 1명의 진실된 증인은 무죄라고 주장했을 때, 실제로 유죄일 확률은

 실제로 유죄인데 10명의 증인이 위와 같이 주장했을 확률/ (실제로 무죄인데 위와 같이 증언했을 확률 + 실제로는 유죄인데 위와 같이 주장했을 확률) 이 됩니다. 

 실제로 무죄인데 위와 같이 증언하는 경우는 9명은 모두 거짓을 말하고, 1명은 진실을 말하는 경우이므로

 0.5^9 X 0.999999999 (거의 1) = 0.0019

 이고, 실제로 유죄인데 위와 같이 증언하는 경우는 9명이 모두 참을 말하고, 진실하다고 믿었던 1명의 증언자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이므로 0.5^9 X 0.0000000001 = 0.000000000000001

 이 됩니다. 

 따라서, 실제로 9명의 거짓말쟁이들이 아무리 모함을 해도, 이 사람이 유죄일 확률은 0.000000000000001 / 0.001900000000001 = 사실상 0에 가까움이 되지요.


 이런 원리를 확률에 있어서의 '베이즈 정리'라고 합니다. 베이즈 정리를 어떤 사건의 진위여부를 판정하는 통계적 신뢰도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실은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너무나 뻔한 내용입니다. 


 1. 어떤 사실을 지지하는 증거의 개수가 많을수록, 그것이 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1가지 증거만 존재하는 것보다는 10개, 100개 증거가 있을수록 참일 가능성이 높다.)


 2. 신뢰도가 높은 증거는 신뢰도가 낮은 증거의 신뢰도를 상쇄시킬 수 있다. 

   (거짓말쟁이들 100명이 맞다고 주장해도 믿을 만한 진실한 증언 하나가, 100명의 거짓말쟁이      들의 증거를 기각시킬 수도 있다.)


 3. 상충되는 증거들이 존재하는 경우, 진위 여부는 지지하는 증거의 상대적인 개수와 신뢰도에    의해 결정된다. 이 때의 수학적 확률이 진실임을 더 강력하게 증거하는 쪽을 진실, 혹은 거짓      으로 결정할 수 있다. 단순히 상대방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가 존재한다는 사    실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다. 


 제가 왜 이런 뻔한 결론을 '베이즈 정리'라는 수학적인 개념에 더해서 시시콜콜한 계산식까지 보여주는지 그 이유를 아시나요? 

 그 이유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반박한답시고 주장을 하는 것들의 상당수가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의 궤변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이런 식입니다. 


 '당신이 성경이 진실이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10가지 증거를 제시했고 나 또한 수긍한바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무신론자들은 성경이 거짓이고, 하나님도 없다는 것을 지지하는 10가지 증거를 제시하더라. 

 그런데 , 당신 주장이 정말 참이라면, 성경이 거짓이고 하나님도 없다는 증거는 없어야 되는 것 아닌가? 

 참과 거짓은 공존할 수 없는데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이 거짓이라는 증거도 있으므로 모순이다. 

따라서, 성경과 하나님이 진실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오류이다'


 이 궤변의 모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만일 그런 논리라면, 똑같은 방식으로 반박도 가능하지요.

 

'무신론자들은 성경과 하나님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10가지 제시했는데, 나는 성경과 하나님이 진실이라는 10가지 증거를 알고 있다. 

 거짓과 참은 공존할 수 없는데 만일 성경과 하나님이 정말로 거짓이라면 참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참과 거짓은 공존할 수 없는데 유신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실이라는 증거도 있으므로 모순이다. 

따라서, 성경과 하나님이 거짓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똑같은 논리인데, 똑같은 궤변입니다. 

 이 논리의 오류가 무엇일까요?

 동일한 대상에 대해 참과 거짓은 상호 완전히 배타적이므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존재가 참인 동시에 거짓일 수는 없지요. 어떤 피고가 유죄인 동시에 무죄일 수 없듯이 말이죠.

 하나님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피고가 유죄면 유죄고, 무죄면 무죄인 것이지요. 

 

 따라서, 앞서 제시한 예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 10개와 부정하는 증거 10개가 있는 경우, 

 지지하는 증거 10개가 모두 틀리거나, 부정하는 증거 10개 모두가 틀리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지지하는 증거가 10개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그에 반대되는 부정하는 증거의 존재 자체는 지지하는 증거를  부정할 논리적인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10가지 증거가 '사실은 거짓이었음'을 증거하는 근거를 대야만 가능하지요. 

 

 베이즈 정리에 입각한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볼까요?

 성경이 진실임을 증거하는 10가지 증거가 있고, 성경이 거짓임을 지지하는 증거 또한 10가지가 존재한다면,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성경이 진실임을 지지하는 증거들의 신뢰도와, 성경이 거짓임을 지지하는 증거들의 신뢰도를 서로 비교해서 어느쪽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은지를 계산해 보아야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성경이 진실임을 지지하는 여러 증거 중 한가지는 '예수님의 실존'이라는 증거입니다.

 만일 예수님이라는 인물이 '허구적'인물이라면 성경 또한 허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다음으로, 성경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 중 하나는 '노아의 홍수'설화와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와의 유사성입니다. 그들은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홍수 간의 유사성을 근거로 노아 홍수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베낀 짝퉁이므로 허구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예수님의 실존이라는 증거와 길가메시 서사시와의 유사성이라는 증거가 각각 어느 정도의 신뢰성으로 성경의 사실성 혹은 허구성을 증거한다고 추정해 볼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분은 '수학적' 혹은 '과학적' 실험으로 검증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임의로 가정한 '경험적 확률'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 블로그의 성경의 역사성이라는 주제에서 상세하고 방대하게 다루겠지만, 예수님이라는 인물의 실존은 비단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고대 문서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로마박해하에서도 기독교인들이 순교한 무수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요. 인류의 역사를 구분짓는 BC와 AD의 기준 또한 예수님의 출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는 내용은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굳이 세세하게 다루지 않아도, 너무나 뻔한 상식적인 증거들만을 바탕으로 했을 때, 예수님이 실존 인물이 아니었는데 성경을 비롯한 다수의 고대문서에서 서로 정교하게 짜고 쳐서 가공의 인물로 만들어내고, 그런 가상의 허구의 인물을 목숨까지 바쳐 추종해서 로마 박해하에서도 집단적으로 순교하고, 그런 가상의 허구인물을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를 구분짓는 연도의 기준으로 삼았을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실존은 '성경의 진실성'을 대단히 높은 신뢰성으로 지지하는 '한가지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예수님의 실존이라는 단한가지 증거로 성경의 모든 내용이 참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점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경우는 어떨까요? 성경의 허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노아의 홍수의 내용상 유사성, 그리고 길가메시 서사시의 기록 연대가 성경보다 앞선다는 'fact' 분명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이 길가메시 서사시를 베낀 짝퉁 설화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근거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방식의 해석도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기록 연대가 앞선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것이 표절을 의미하는 확증은 되지 못하며, 성경과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적 유사성이라는 것도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고대에 양쪽에서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과 같은 전지구적인 홍수 사건이 있었음을 반증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요.  지리적으로 떨어진 지역에서 시간적으로 다른 세대에 고대에 동일하게 발생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록이라는 관점에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증거는 성경의 허구성을 지지하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는 성경의 진실성을 지지하는 증거로도 동일하게 해석할 수 있지요. 그것은 주장하는 사람의 시각과 어느 정도의 편견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증거는, 성경의 허구성을 증거하는 강력한 증거는 되지 못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결론적으로 러프하게 따져보면, 이 증거의 신뢰도는 50%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앞서 설명드린 예수님의 실존성이라는 역사적 증거와 길가메시 서사시를 통한 성경의 허구성이라는 증거를 놓고 비교한다면, 

 예수님의 실존성이라는 역사적 근거가 거짓일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하고, 

 길가메시 서사시가 성경의 허구성을 지지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하나, 

 예수님의 실존성이라는 역사적 근거가 거짓일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나, 길가메시 서사시를 통한 성경의 허구성의 증거가 이를 압도할 정도의 강력한 증거는 결코 되지 못하기 때문에,

 99.99999%의 신뢰성과 50%의 신뢰성이라는 증거를 놓고 비교해 보았을 때 우리는 합리적이고,과학적이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의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신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성경과 하나님이 참이냐 거짓이냐? 

 에 대한 무수한 논란은 무수한 증거들에 의해 끝없이 발생하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은 개별적인 증거의 진위 논쟁에만 골몰할 뿐, 보다 근본적인 이런 최종적인 진위 판단의 근거가 되는 사고 방식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100가지 증거를 제시하면, '귀를 막고 있다가',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단 한가지 증거가 나오면, 그 1가지 증거로 상대방의 100가지 탄탄한 증거를 한 번에 뭉갤 수 있다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 성경과 하나님, 예수님, 기독교에 관한 무수한 지지 증거도 있지만, 무수한 반박 증거 또한 있다는 것 저 또한 잘 알고 있고,

 그 중의 일부는 저또한 과연 신과, 하나님, 예수님, 기독교가 사실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할 정도로 타당성 있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자신있게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며, 성경의 모든 내용은 진실임을 여러분께 강력하게 증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 성경의 진실성, 역사성,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논리적, 과학적, 역사적, 경험적, 체험적 증거 중 '압도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것들이 즐비하며, 

 모든 증거들을 취합한 신뢰성은 하나님의 존재, 성경의 진실성, 역사성,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강력하게 부정하는 논리적, 과학적, 역사적, 경험적, 체험적 증거의 신뢰성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이를 기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살인사건에 대한 판결을 맡았을 때,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고, 피고의 살인 사건과 별 상관이 없는 매수된 무수한 어중이 떠중이 증인들이 아무리 위증을 해서 혼란을 준다고 할지라도, 

 조작이 불가능한 CCTV에서 생생하게 피고의 살인 현장이 그대로 찍혀있고, 현장에서 피고의 DNA와 일치하는 검체와 지문이 확인이 된다면,  

 어중이 떠중이 잡스런 위증이나 자질구레한 혼란스러운 증거들은 이러한 압도적으로 강력한 증거들에 의해 완전히 상쇄되어 버리지요. 자질구레한 혼란스러운 반증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는 비록 검증과정에서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데에는 별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결국해야 하는것은 모든 증거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증거를 취합한 결과가 내리는 결론이 무엇이냐이기 때문이지요. 


 대체 당신이 그토록 압도적으로 강력하다고 주장하는 '신의 존재'와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가 대체 뭐냐고 물으신다면, 세부적인 내용들은 이 블로그의 포스팅에 하나씩 다루어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미 바로 위 포스팅에서도 하나 다룬 바 있지요? 신의 존재에 관한 연역적 증거이지요. 

 무신론적인 관점에서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에서의 '실무한'이라는 개념을 인정해야 하는 오류, 원인의 영원한 회귀를 인정해야 하는 오류,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인 빅뱅 이론을 부정해야 하는 과학적 오류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오류도 아니고 3가지 오류입니다. 그것도 어떤 말빨로 때울 수 있는 수준의 오류가 아니라, 수학적, 철학적,논리적,과학적 오류이지요. 

 이것 하나만 봐도 무신론적인 관점 자체가 시작부터 손을 쓸 수 조차 없는 수준의 오류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오류라는 것은 '길가메시 서사시'류의 생각하기에 따라 적당히 합리화 할 수 있는 수준의 증거 수백개, 수천개를 갖다붙여도 상쇄가 불가능한 수준의 오류를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 블로그를 읽으시는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왜 하나님이 실재하시며, 성경과 기독교가 진실인지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드리겠지만, 

 제가 여러분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설령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성경이 허구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주장이나 근거가 있더라도, 

단순히 그런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압도적으로 강력한 무수한 증거들을 부정하는 논리적 오류를 결코 범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제게 불리해서가 결코 아니라, 이런 논증 자체가 논리적인 오류를 안고 있는 궤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모든 사실에 대한 진실을 알 수는 없습니다. 

 모든 증거에 대한 진실 또한 규명할 수는 없습니다. 오류의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수학적 진실인 베이즈 정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성적인 진실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오류의 가능성이 있고 해석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애매한 증거를 잡고 늘어지면서 진실을 흐리지 말고, 

 보다 뚜렷하고, 확실하고, 강력한 증거들을 취합해서 최종적으로 그것이 내리는 결론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이자, 그것이 이성적이고 수학적인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론이라는 것이지요. 

 나머지 어리버리한 잡증거들은 강력한 진실의 증거에 상쇄될 뿐입니다. 그런 자잘한 의문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실제로는 거짓인데 단지 아직은 왜 그것이 거짓인지 몰라 사실이라고 임시로 착각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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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의 존재의 귀납적 증거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서 '신의 존재'를 시사하는 귀납적인 증거가 있는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신의 존재를 시사하는 귀납적인 증거로 '우주의 미세 조정'과 '인간의 도덕률'을 들 수 있습니다. 

 우선 '우주의 미세 조정'이라는 증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주의 미세 조정은 우주는 '미세하게 조절된 정교한 규칙성'에 의해 유지되고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시간이 시작되어 우주가 시작된 그 시점부터 우주의 모든 물질들은 정밀하게 조정된 법칙과 수치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물질을 서로 잡아당기는 중력이 없다면 행성도, 항성도 없고, 어떤 형태의 복잡한 유기체든 생성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강한 핵력이 없다면 원자핵에 양성자와 중성자를 잡아둘 힘이 사라지므로 원자 자체가 생성될 수도 없고, 화학물질이라는 것 또한 존재할 수가 없지요. 

 전자기력이 사라지면 화학물질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어져 빛이 사라집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우주의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한 기본 법칙들 중 단 하나만 제거해도 생명체는 우주에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생명체라는 것은 무수한 물리적 상수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한 조정'에 의해서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강력한 증거는 중력인데,

 중력은 140억 광년에 달하는 전 우주에 걸쳐 분포하고 있지만, 이 중력의 세팅을 단 1인치만 움직이게 되면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재앙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중력이라는 요소 또한 생명체의 탄생과 유지를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30여 가지 요구 조건 중의 단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인 우주 상수 또한 미세 조정의 강력한 증거입니다. 만일 공간이 너무 빨리 팽창하면 우주가 너무 급격하게 부피가 증가하여 생명체가 생성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항성이나, 행성, 은하 등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지요. 물리학자들은 우주 상수가 1/10^53 의 정확도로 조정이 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정확성을 비유로 하자면, 우주를 수백 마일 여행하다가 다트 하나를 지구에 던졌을 때, 직경 1/10^24 cm (0.000000000000000000000001 cm)의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는 수준입니다. 그 넓이는 원자 하나의 면적보다도 좁습니다. 

 30여가지 요구 조건 중 단 2가지, 중력과 우주 상수 2가지가 랜덤한 확률에 의해 모두 적절하게 조정되어 있을 확률은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 에 불과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없다는 가정'하에 우주의 규칙성들은 초자연적은 정교한 지성적 존재가 아닌 랜덤한 프로세스에 의해 형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원인은 알 수는 없지만, 그 규칙성의 원인은 '신'은 아닐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논증을 시작한 것이지요. 

 뭐 가설이야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설을 실제의 우주 상황에 적용해보니, '랜덤한 확률'에 의해 현재의 우주와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그야말로 0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져 버린 것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귀납적인 논증법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까다로운 자연과학적 방법론에서도 오류의 가능성이 1% 미만이면 과학적인 사실로 인정을 하고, 오류 가능성이 단 1%만 초과해도 기각을 해버리는데, 

 랜덤한 프로세스에 의해 우주가 지배를 받고 있다라는 가정의 오류 가능성은 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 이상일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버린 것이지요..진실일 가능성이 아니라, 오류 가능성이 5%, 10% 수준이 아니고, 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 이상이라는 얘기입니다. 

 

 무신론자와 자연주의자들은 생명체의 존재와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규칙성과 정교한 상호 작용이 서로 무관하게 작용해서, 각각의 법칙이 정교하게 조정되고 상호 작용할 필요가 없기를 바랬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종교처럼 신봉하는 '과학적 진실'에 의해 처참하게 발등이 찍혀버리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내는데 그게 바로 다중 우주론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수많은 우주의 하나에 불과하며 각각의 우주는 서로 다른 물리법칙과 불변량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지요. 

 즉, 지극히 희박한 확률을 합리화하기 불가능해지자, 무한히 많은 종류의 우주가 있으면, 무한히 많은 형태의 우주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중의 하나는 이런 종류의 우주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 라는 논리이지요. 

 만일 우주가 단 하나라면, 무신론자들의 주장은 완벽한 오류이지만, 우주가 무한개라면 우리가 존재하는 형태의 우주도 얼마든지 수학적으로 존재할 수 있지요. 그래서 그들이 다중 우주론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중 우주론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두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오류는, 우주에는 '무한개의 우주가 존재한다'라는 독립적인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끼워맞추기식으로 '가설'을 제시했지만, 그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검증이 불가능하고 증거가 없는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입니다. 단순히 '제시'했다는 사실하나만으로 '사실'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요. 

 두 번째 오류는, 설령 그런 방식으로 우주가 존재한다고 쳐도 문제는 하나 더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한한 형태, 무한한 조합의 규칙성을 만들어내는 '우주 생성기'의 정체는 대체 무엇입니까? 

 누가 만든걸까요? 


이러한 관점에서 무신론적인 관점이나 다중 우주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을 보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도 합니다. 

'니가 지금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필연성'에 근거한 주장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우리는 미세 조정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놀라워 할 필요가 없다. 만약에 지금과 같은 특정한 우주가 지어지지 않았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이 시점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확률적인 불확실성을 운운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희박함에도 이미 그런 현상을 겪고 있으니까...마치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지극히 희박해도, 만일 내가 지금 로또에 당첨되어 있으면 지극히 희박한 로또 당첨도 현실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아니냐?' 라는 논리이지요. 


그런데 이런 논리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이 마약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어 100명의 포수 앞에서 총살형을 당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가정합니다. 100명의 포수가 총을 쐈는데 총알이 다 비껴나가서 여러분이 죽지 않고 살아나갔다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이 상황에서, '포수 100명이 정조준해서 총을 쏴도 과녁을 비껴나가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내가 총알을 한발도 안 맞고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거니까.'

 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이것이 합리적인 생각입니까? 

 어떤 원인에 의해, 100명의 포수가 모두 의도적으로 여러분을 맞추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이런 류의 논리적 오류는, 확률적으로 희박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발생 자체만으로 희박한 확률의 가능성을 결과론적으로 임의로 묵과해버리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앞서 설명드린 가설 검정의 기본 원리 자체를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이 없다고 가정하면, 우주의 미세 조정은 물리적 필연성이나 우연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고, 신이 있다고 가정하면, 우주는 신의 정교한 디자인에 의해 설계되었다. 


 2.  우주의 정교한 상수에 관한 수학적, 물리학적 증거는 우연에 의해 창조되었을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함을 반증한다. 따라서, 우주의 미세 조정은 우주는 물리적 필연성이나 우연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고 정교한 설계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3.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신의 존재를 시사하는 귀납적인 증거 중 또 한가지는 '도덕률'을 들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에는 국가와 시대 문화를 불문하고 보편적인 도덕률이 존재하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부적인 가치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인 커다란 가치들,

 이를테면, 사랑, 자비, 용서, 헌신, 정직과 같은 가치는 '선'이라고 여겨지고, 살인, 폭력, 질투, 시기 등과 같은 가치는 '악'이라고 여겨진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보편적인 도덕률이나 선악에 대한 개념은 사회적 관습이나 교육에서 전적으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요. 왜냐면, 모든 사람이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살인을 미덕으로 교육받아도, 실제로 살인을 할 때 느껴지는 부정할 수 없는 죄책감과 양심의 존재는 '보편적인 선악'이나 '도덕률'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유물론적인 진화나 교육의 산물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무신론, 유물론적인 관점에서는 지성적이거나 선한 혹은 악한 신의 속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 세상의 가치는 랜덤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선이나 악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으며, 선이나 악의 개념 모두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 환경의 산물로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도덕을 '인간 사회의 교육적 산물'이라고 규정합니다. 

 객관적 가치는 정말로 존재하고 우리 스스로가 깊이 성찰해 보면 그것이 단순한 진화나 교육의 산물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논증을 펼칠 수 있습니다. 


 1.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객관적 도덕 가치는 존재할 수 없다. 


 2. 객관적 도덕 가치는 실제로 존재한다. 

 

3.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지금까지 신의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귀납적인 방법론과 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2가지 예(우주의 미세 조정, 도덕률)을 살펴보았습니다. 


앞의 포스팅에서 다룬 신의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연역적 증거를 함께 고려하면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영역에서의 사유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 물리학적인 증거와 윤리학적인 증거들을 통해서도 역으로 신의 존재 가능성을 합리적인 신뢰도로 추정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확인했다면, 적어도 '신'이라는 존재의 가능성을 지지하는 것은, 

단순히 못배우고, 무식하고, 과학을 모르는 광신적인 종교인들이 억지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유해보면, 

단순히 자신이 똑똑하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면서 막연하게 '무신론'과 '유물론'이 지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의 총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궤변은 조금은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두 글을 통해서, 적어도 완벽하게 신의 존재를 확신하지는 못하더라도, 

'막연한 무신론'이나 '유물론'이 얼마나 억지스럽고 터무니없는지를 깨달으셔서, 

적어도 '신'이 어쩌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정도의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셨다면, 

다음 단계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증거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과연 그 신이라는 존재는 막연히 뜬구름 잡는 수학과 물리학, 윤리학적 사유의 결과로만 검증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인간의 삶에서 직접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우리가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체험적인 증거는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 증거는 과연 없을까요? 

 

다음 포스팅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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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지금까지는 다소 추상적이고 딱딱한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신의 증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의 포스팅에서 살펴본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더라도, 만일 그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지 신이라는 존재를 '사변적'이고 '학문적' 방식으로만 확인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우리 인간이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드러낸다면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앞서 골치아프게 따져봤던 고리타분한 철학적 사유 과정이 결코 '공허한 지적인 사고의 산물'이 아닌 '현실'로 체험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앞서 살펴보았던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신의 존재의 확실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추가적인 증거가 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지요. 어떤 원리를 복잡한 물리학적, 수학 공식으로 사고로 아무리 확증하고 이해한다 하더라도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관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정말로 확실한 진리로 '체감'하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그렇게 이론이 실제로 검증이 되면, 우리는 비로소 그 원리를 속시원하게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지요. 


  '신'은 존재한다라는 결론까지 얻는다고 하더라도,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는데, 그것은 어떤 신이 참 신이냐는 것이지요.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신은,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왜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참 신이고, 다른 신은 가짜 신이냐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할 것입니다. 

 일단은 우선 우리가 어떤방법을 통해 어떤 신이 참 신인지를 알 수가 있는지의 문제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그 신이 인간이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가 어떤 신이 참신인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신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검증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일단은 검증의 기준이 되는 신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존재를 인간에게 내보여야 하고, 그에 합당한 신적인 능력을 인간이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들을 한 번 나열해 볼까요? 기독교의 하나님, 이슬람교의 알라, 고대 근동의 바포멧, 그모스, 몰렉,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각 나라에 분포하는 무수한 토템신앙의 신들, 이름도 모르는 잡귀신들...

 하지만, 단순히 '신'이라는 이름만 붙어있다고, 지금 우리가 검증하고자 하는 '온 우주'를 창조한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신'의 자격 요건에 아무나 부합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왜냐면, 절대 다수의 신들은, 그냥 인간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상의 산물'인 '허구적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풍요나 다산을 원해서, 어떤 A라는 신을 어떤 사람이 머리속으로 만들어내서 사람들에게 이런 신이 있으니 빌어보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검증하고자하는 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그런 것은 '신'이 아닙니다. 그냥 창작물이지요. 

 이런 기준을 들이대면, 절대 다수의 '신'들은 자격 미달입니다. 

 적어도 최소한 진짜 '신'이 맞는지 아닌지 검증할 수 있는 자격이라도 갖추려면, 그 '신'적인 존재가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보여주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예선입니다. 

 무수한 '신'들 중, 인류의 역사상 이런 검증가능한 증거가 가장 체계적면서도 방대한 양으로 축적되어 있는 '신'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입니다.

 

우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이라는 신은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천지와 우주 만물을 창조했으며, 자신이 시작과 끝이다'

 ' 우주에 신은 자신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신이다'

 ' 전지 전능하며, 영원 불변하다.'

 ' 인격적인 존재이며, 공의로움과 동시에 사랑이 넘치는 존재이다'

 '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

 ' 인간의 기도에 응답을 한다.'

 '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의 신성을 실제로 인간세계에 직접 드러내었다 - 예수님'

 '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우주 만물의 법칙을 주관하며, 초자연적인 능력과 기적을 행한다'

 ' 지성적, 비물질적, 영적, 초월적 존재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드러낸 자신의 존재와 신적인 능력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우리가 가장 '유명한 신'인 성경의 하나님에 대한 신빙성부터 객관적인 증거들을 통해 직접 검증해보고, 그것의 진위 여부를 판단해 본뒤, 

 동일한 검증과 증거를 다른 '신'들과 경전에도 적용해 봄으로써 어떤 신이 참 신인지를 검증해 볼 수가 있겠지요? 


 성경의 하나님이 진짜 존재하는 참 신인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앞서 살펴본 검증 방법을 적용하면 되지요.

 

우선 '성경의 하나님이 참 신이다'라는 가설을 세웁니다. 

 만일 이 가설이 참이라면, 

 ' 천지와 우주 만물을 창조했으며, 자신이 시작과 끝이다'

 ' 우주에 신은 자신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신이다'

 ' 전지 전능하며, 영원 불변하다.'

 ' 인격적인 존재이며, 공의로움과 동시에 사랑이 넘치는 존재이다'

 '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

 ' 인간의 기도에 응답을 한다.'

 '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의 신성을 실제로 인간세계에 직접 드러내었다 - 예수님'

 '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우주 만물의 법칙을 주관하며, 초자연적인 능력과 기적을 행한다'

 ' 지성적, 비물질적, 영적, 초월적 존재이다'

 

라는 내용도 참임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증거를 수집해거 사실을 검증한 결과, 수집된 증거와 사실들이 위의 내용을 반박하거나 모순이 존재한다면, 

 '성경의 하나님은 참 신이다'라는 가설을 반박하고 성경이고 하나님은 다 구라다라고 합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은 성경의 하나님은 참 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뒤, 다른 신들에도 동일한 조건을 적용해 본 뒤 진위여부를 추가로 가려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기서 다른 신들은 이 검증의 잣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데 그 신은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여러가지 증거들에 의해 성경의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다른 잡신들도 '신'일 수 있으니, '다신론'이나 에라 모르겠다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럼 하나씩 검증해볼까요? 


 앞서 살펴본 우주론적 신의 논증의 근거를 살펴보면, 우주만물을 창조한 절대적인 '존재'가 있어야 함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존재는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여야 함도 알 수 있고, 우주의 정교한 미세 조정과 도덕률의 존재를 고려하면, 지성적이면서도 인격적이고, 선악의 개념이 분명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성경의 하나님의 속성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사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 중 아직 논의에서 해결되지 못한 내용들은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의 기도에 응답하기도 하며, 인간의 삶에서 초자연적인 기적과 능력을 보여주고, 자신의 존재를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에게 직접 드러내었다'라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초자연적인 기적'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고 그런 증거가 있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한 초자연적인 능력과 기적,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능력이 기록된 성경이라는 책은 정말로 믿을만 한 책이고, 그런 근거가 있는가?'

 ' 예수님이라는 존재의 실존성과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 지금도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실제로 나타난다는 증거가 있는가?'


 라는 의문을 던지고 이를 객관적인 방법으로 검증해 봄으로써, 성경의 하나님이 허구인지 진실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겠죠?


 이에 대한 세부적인 검증은 아래의 포스팅에서 하나씩 순차적으로 이어나가겠습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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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1.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과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다. 모세는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갈랐고, 마리아라는 처녀는 혼자 임신해서 예수님을 낳았으며, 예수님은 맹물로 포도주를 만들었고, 수많은 불치병자를 즉시 치유하셨으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고 한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이후 다시 부활한 것도 모자라 하늘로 승천했다고까지 한다.

-  이 외에도 성경은 수많은 기적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각종 초자연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는데, 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런 '환타지 소설'에 나올 법한 일들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가?


 여러분은 상식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심지어는 이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믿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라고 믿는 분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만일 제가 여러분께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나뭇가지에서 사과가 떨어졌는데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믿어주세요!'

  아마 여러분 중 대부분은 믿지 않을 것이고, 아마 제게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만유 인력의 법칙이라는 '자연 법칙'이 존재하므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것은 분명한 '과학적 법칙'이므로, 사과가 하늘 위로 올라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의 주장은 거짓이고, 있을 수도 없다. 당신이 헛것을 보았거나, 정신병에 걸려 횡설수설하거나, 아니면 모종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과학적'이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는 것이죠. 이 논리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학적=논리적=합리적=현실적=가능, 비과학적=비논리적=비합리적=비현실적=불가능이라는 사고방식이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과연 '비과학적' 혹은 '비상식적'인 현상이나 기적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정말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바로 위에서 여러분이 제시한 믿음의 근거가 과연 옳은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위와 같은 생각 (비과학적,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은 크나큰 '논리적' 오류(순환 논증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과학적인 법칙은 수많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규칙성'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일단 이 공통적인 규칙성을 찾아내면, 역으로 이 규칙성을 기존에 관찰하지 않은 다른 자연 현상에 적용해봅니다. 만일, 거기서도 역시 이 규칙성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면 '자연 법칙'으로 확립되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자연 법칙으로 확립된 것들은 모두 귀납적 테스트 뿐만 아니라, 연역적 테스트까지 패스한, 2중 시험을 모두 통과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과학적 법칙이 이런 꼼꼼한 2중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절대적 진리'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과학적인 법칙은 소위 케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 라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연 법칙대로 현상이 발생하는 데에는 다른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 요인이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는 가정도 암묵적으로 깔고 있습니다. 모든 자연 과학의 법칙은 이 2가지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습니다.

 

 앞의 예에 적용을 해볼까요? 사과가 하늘 위로 올라갔다는 제 말을 못 믿겠다는 여러분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사과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므로 당신의 주장은 거짓이다'

하지만 사실 이를 좀 더 구체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만일, 지구의 질량이나, 그 외 기타 모든 만유 인력의 법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자연적인 조건이 동일하고 불변하며, 이 법칙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과학적 법칙에 따라 사과는 항상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므로 당신의 주장은 거짓이다.'

 즉, 여러분이 제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만유 인력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주장하면 안됩니다. 왜 모든 자연적인 조건이 동일하고 불변하며,초자연적인 요인이 간섭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  전제 조건을 증명해야 합니다. 왜냐면, 자연 법칙은 이 두가지 전제 조건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원래 자연이라는 게 변하지 않는게 당연한 거 아니냐? 원래 규칙성이 존재하기 때문 아니냐? 신은 원래 증명할 수 없기 때문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자연의 조건과 법칙은 불변하냐라고 물었더니, 원래 자연이 불변하니까 라는 논리이죠. 왜 니가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나는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자연 현상이 우리가 발견한 규칙성으로 설명된다고 해도, 까탈스럽께 따지고 보면, 이 규칙성이 다른 자연 현상에 '반드시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논리적인 보장'은 없습니다. 단지 수많은 자연 현상의 관찰을 통해 그런 규칙성이 다른 자연계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 같은 심리적인 믿음과 경험적인 높은 확률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과학'은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실'이라고...하지만,  결국, 과학이나 자연 법칙도 결국은 이 '케테리스 파리부스'가 맞고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 전제 조건들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경험적 추정할 수는 있어도, 이것이 절대 진리인지에 대한 '논리적인 확증'은 불가능합니다. 

 결국은 이 과학도 두 가지 가정이 맞다는 믿음에 근거한 합리적인 규칙성입니다. 이 두가지 전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과학 법칙도 '절대 진리'가 아닌 것이지요. 다만, 절대 다수의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입니다.  

 ( 하지만,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 얘기하는 것은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기적적인 현상들이 다 참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절대 다수의 현상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므로,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일들이 발생했다고 하면, 일단은 뭔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느냐라고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접근방법입니다. 다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결코 없다'라고,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는 시도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이죠.) 

 

 이런 관점에서, 자연 과학의 법칙을 여러분이 생각하는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현재의 자연 조건이 불변할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모두 가정한 상황에서,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절대 진리'로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신이 있는지 없는지, 자연조건이 불변할지 변할지는 아무도 논리적으로 확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연 법칙은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 여부나 '케테리스 파리부스'가 틀릴 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케테리스 파리부스가 참이고 신적인 존재의 개입은 없다는 가정만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 법칙은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결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인 법칙은 모두가 아닌, 자연적인 조건이 불변하고 신의 개입이 없는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절대 다수의 자연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는 수단이지,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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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여러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들...모세가 지팡이 하나로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홍해를 가르고, 마리아는 Y염색체의 도움이 없이도 아들을 출산하고, 예수님은 의학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난치병 환자를 즉석에서 완치시켰으며, 의학적으로 완전한 사망 이후에 부활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비과학적인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케테리스 파리부스'가 참이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가 참이라고 가정하면, 이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이 두가지 가정이 참이라면, 성경의 사실은 모두 날조된 판타지 소설이자 허구에 불과한 것이 분명하겠죠.

 하지만, '케테리스 파리부스'가 거짓이거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자연 법칙을 만든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초자연적인 기적'이 기적일까요? 사실 기적도 아니죠? 우주를 창조한 신이 존재한다면 바닷물 좀 가르고 죽은 사람 살리는 게 대수이겠습니까?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가요? 얼마든지 가능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어떻습니까 여러분...여러분이 절대진리로 신봉하는 자연 과학의 법칙도 결국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기적이나 신의 존재가 자연 과학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부인하는 것은 '신이 없는 이유는 신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학적으로 모순이 되기 때문에 기적을 부인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러분이 기적이 불가능하고 신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진짜로 저런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기적이 나타났을 경우, 그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단순히 헛것을 보았거나 과학적인 오류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다양한 방법으로 '현상 자체'를 검증해서 진위를 판단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앞의 예를 든다면, 

 여러분이 '사과가 땅에서 하늘 위로 올라갔다'라는 제 주장이 거짓임을 밝히기 위해서는, '원래 모든 사과는 만유 인력의 법칙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대신, 직접적으로 제 관찰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즉, 제가 그 당시 시력에 이상이 없었고, 헛것을 보거나 환상을 볼 정신적인 이상이 없었으며, 이런 비상식적인 발언을 할 만한 정황적인 증거가 없었고, 혹시 주변에서 제가 본 것처럼 똑같이 사과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본사람이 있거나, 사과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촬영한 조작의 증거가 없는 동영상이 있는지와 같은 증거를 수집함으로써 제 말이 참인지를 판단해야 하죠. 만일 이 검증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면, '기적'이나 '신적인 존재의 개입 가능성을 '분명히 인정'해야 하고, 그렇다면 과학적인 법칙의 전제 조건이 틀렸음(기적이나 신의 존재는 있다)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적이나 신적인 존재가 있을 수 없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어떤 현상이 합리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그 전제가 틀렸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죠...반대로, 이런 검증과정을 통해 제가 환각상태에 빠졌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발견된다면,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신적인 존재가 없이 얼마든지 자연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의 주장은 묵살되고 기적이나 신의 존재 가능성은 떨어진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기적, 신적인 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거짓임을 밝히기 위해 '한 번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이 자연 법칙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근거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현상 자체가 거짓'임을 역사적인 기록이나 정황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밝혀야 합니다.여기서 모든 사실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었음이 증명된다면,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고, 반면  역사적인 날조나 허구였음이 드러난다면, 기적도 없고, 신은 없으며 자연적인 법칙의 승리를 반증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성경의 기적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유일한 대안은 성경의 기적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인지 아닌지 그 사실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검증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만일 이 믿을 수 없는 기적과 신의 존재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와 역사적인 확증 자료가 발견된다면, 기적과 신은 존재한다는 대전제를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기적과 신은 허구가 되고 자연과학적인 법칙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온갖 기적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쓰여진 책인 성경의 진위를 치밀하게 검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과연 어떤 책이고, 어떻게 쓰여졌는지'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없는지'

 '기타 성경의 신화적인 사건을 증거하는 다른 고대 문서나 고고학적인 증거는 없는지'

 '성경이 사실이라면, 거기에 기록된 예언이나 사건들이 실제로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

 '성경의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실제이고, 사실이라면, 오늘도 그와 같은 기적적인 일들이 동일하게 나타나는지'

  이 모든 요소를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이것이 진실인지를 사실 자체를 직접적으로 가려야 합니다. 이게 진정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여러분..과학은 '믿음'이 아니라 '객관적인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설령 현재의 수준으로 이해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밝혀지지 않은 '과학'이 증명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렇다는 보장은  결코 없습니다. 

 결국은 과학도 케테리스 파리부스나 초자연적인 신의 개입의 가능성에 대한 부정이라는 전제 조건에 대한 '근거없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과학도 결국은 '믿음'입니다. 절반은 믿음이요 절반은 합리적인 논리로 구성된 사상 체계 입니다. '신은 없다'를 자체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서도 '신은 없다'라는 전제를 참으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불완전한 사상 체계입니다. 


 결론적으로,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이기 때문에 '기적'은 불가능하고, '신'의 존재는 모순이다라고 결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적적인 현상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신적인 존재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면, 신적인 존재나 그에 의한 개입 또한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음 글부터는 그렇다면 과연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핵심 근거인 성경이라는 것이 어떤 책이고, 과연 여기서 주장하는 황당한 신화적인 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이었는지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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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난무합니다. 여러분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대체 이것을 무슨 근거로 믿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 항상 이런 답변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실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장 역시 순환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답변을 하려면 '왜 성경이 신화가 아닌 역사적인 사건이고, 진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왜 성경만 믿어야 하고, 다른 '단군 신화'와 같은 유사한(곰이 마늘과 쑥을 먹어서 사람이 됐다는) 수많은 고대설화는 믿지 말야야 하는지에 대해 올바로 반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과연 그러한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지 확인할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일단 '성경이 대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하는 객관적인 몇가지 사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은  B.C. 1500년부터 A.D.100년까지 약 1600년동안 수많은 저자들(약 40명)에 의해 기록된 책으로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둘째, 성경은 특정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와 영감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주께서 가라사대”, “주의 말씀이 임하여 가라사대” 라는 표현이 구약 성경에 적어도 3000번 정도 언급되었으며, 많은 경우 직접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출24:12, 신 10:1-2). 

(물론, 그냥 사람이 그렇게 쓰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고 우기는 것 아니냐라는 의문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분명하게 다시 언급할 예정이므로, 일단은 이 논란과는 무관하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이 기록되었다'라고 서술되었다는 객관적인 사실만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셋째, 성경은 꾸며낸 창작물이나 소설이 아닌, 역사의 기록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에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신에 의한 역사들이 난무하기 때문에 믿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기록 자체를 '소설'이나 '신화'의 장르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식'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대부분은 이스라엘과 유대민족의 왕과 역사를 지극히 상세하게 다루는 전형적인 역사서의 서술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고고학적,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입증된 실존 인물과 유물, 기타 고대 사료를 통해 성경에 나온 사건들이 당시의 시대적인 역사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임이 이미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역사적 증거가 있는지는 다음 글에서 꼼꼼히 살펴 볼 것입니다.) 

 성경과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성경을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인정해야 할 객관적인 'fact'는 인정해야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라는 종교적인 선입견과 편견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성경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해서 과연 성경은 믿을만 한 책인지에 대해 조사해보겠습니다. 기준은 다음의 4가지입니다.


1. 성경 자체의 고고학적 신뢰성과 역사성

- 성경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기록된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단순히 오래 전에 사람의 생각으로 꾸며 낸 고대 종교 경전인가?

- 어떤 근거로 성경이라는 고대 문서를 신뢰할 수 있는가?

- 성경 자체의 기록은 객관적인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신뢰할 수 있는가?


2. 기타 문헌에 의한 증거

-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증거하는, 다른 사료가 존재하는가?

- 기타 사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성경의 내용과 부합하는가?

- 성경은 인위적으로 조작되거나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기록할 가능성은 없는가?


3. 고고학적 증거

- 성경에 나오는 사건, 지명, 유적에 관련된 실제적인 고고학적 증거가 있는가?

-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은 성경의 내용을 지지하는가?


4. 성경 내용 자체의 신뢰성

- 성경의 내용에 자체적인 모순이나 오류는 없는가?

-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는가?

- 현재 남아 있는 예언과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그럼 순서대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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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1. 성경 자체의 고고학적 신뢰성과 역사성

- 성경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기록된 '역사적 사실'인가 아니면 단순히 오래 전에 사람의 생각으로 꾸며 낸 고대 종교 경전인가?

- 어떤 근거로 성경이라는 고대 문서를 신뢰할 수 있는가?

- 성경 자체의 기록은 객관적인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신뢰할 수 있는가?


 2000여년 전에 쓰인 고대 문서의 사실성과 진위 여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좀 더 일반적으로 질문한다면, 고대 문서나 어떤 역사적인 기록에 대한 대한 역사성과 진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한일 합방을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1910년에 한일 합방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수많은 역사적인 기록물과 증거가 남아 있고, 둘째, 비록 많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도 일제 강점기를 몸소 겪어내고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역사의 산 증인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기록과 증언만 확인되었다면 우리는 과연 이것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기록이 거짓일 수도 있고,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증인도 거짓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역사적인 기록이나 증언의 사실성 및 진실성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과 기준을 적용합니다. 알고 보면 대단히 상식적인 것들입니다. 


 첫째는, 기록 시기입니다.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 시점과 그 사건이 기록된 시점 사이의 시간 간격이 짧으면 짧을 수록 신뢰도가 높습니다. 기록시점이 사건과 가까울수록 실제 사건에 대한 기억에 의한 왜곡될 가능성이 낮고, 설령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조작을 했더라도 그 사건을 실제로 겪은 목격자들에 의한 비판을 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둘째는, 기록물이나 사본의 양입니다.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은 역사적으로 항상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짓 주장을 하는 사료의 양은 사실적으로 기술된 사료의 양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에 수많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므로 오래 살아남기도 힘들 뿐더러, 소수의 주장이기 때문에  생명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거나 이슈가 될만한 굵직굵직한 이벤트를 기록한 문서일수록 기록물의 양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기술하는 기록의 종류가 많을수록 자료의 신뢰도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뢰도가 훨씬 더 높아지는 경우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세력에서도 동일하게 인정을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6.25는 남한에서는 남침이라고 주장하고, 북한에서는 북침이라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지만, 양측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1950년에 일어났다는 점 자체는 동일하게 인정을 한다는 것은 6.25라는 사건 자체는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임을 강하게 반증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건의 발생시기와 기록연대의 간격, 기록물 및 사본의 양, 동일한 사건을 보고하는 기록의 존재 등의 요소가 고대 문서나 역사적인 사건의 진실성을 가리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은 이 모든 테스트를 통과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경은 이 모든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했음이 '문서학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말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성경을 2000여년 전에 기록된 고대 문서로 간주하고, 역사적인 사료의 객관성과 진실성을 규명하는 방법인 '고서 검증법'을 이용해서 검증해보겠습니다.

 고서 검증법이란 원본이 없는 경우 현재 갖고 있는 사본들끼리 서로 비교하여 보아 원본(기록된 사건이 발생한 시점과 가장 근접한 시기)과의 정확성 정도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이 방법에 의하면 사본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본이 원본으로부터 만들어진 시간적인 차이가 적으면 적을수록, 또 사본과 사본 사이에 오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사본은 원본과 가까운 사본으로 인정합니다.

 이는 고고학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방법으로 원본이 없는 대부분의 모든 고대 문서나 사본에 대하여 응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구약은 물론 신약 성경도 최초의 원본이 만들어진 시간이 지금부터 무려 4,000년 또는 2,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원본은 하나도 없으므로 성경의 신뢰도를 알아보는 객관적인 방법으로는 고고학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고서 검증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고서 검증법을 통해 '객관적'으로 확인한 성경의 정확성과 신뢰도는 결론적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위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으며, 현존하는 그 어떤 고대 문서보다도 정확도와 신뢰도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신약 성경의 일부 또는 전부를 포함한 현존하는 사본은 약 5,500여 개, 번역 사본이 약 18,00여 개로 모두 25,000여 개의 사본이 남아 있습니다. 신약 성경과 비교하는 데 가장 좋은 대조 서적으로는 호머(Homer)의 일리어드(Illiad)가 이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신약 성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암기되고 또 비문에 적히기도 하며 후세 사람들에게 베껴져 전해졌듯이 호머의 일리어드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기 때문이고, 성경을 제외한 고대 문서 중 일리어드가 사본의 수와 정확도에 있어서 고고학적으로 가장 신뢰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내용

 신약성경 

일리어드 

 사본의 수 

 24,643 

 643 

 원본기록연대 

 A.D. 40-100 

 B.C. 900 

 최초사본연대 

 A.D. 125 

 B.C. 400 

 원본 - 최초 사본 시간 차이 

 25년 

 500년 

 사본간 오류 

 0.5% 

 5% 



 저자 (책이름) 

 원문연대 

 최초사본 

 간격 

 사본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B.C. 340

 A.D. 1100

 1,450년

 5 
 줄리어스 시저
 (갈리아 전쟁기)
 B.C. 50  A.D.900

 950년

 10 
 헤로도투스(역사)  B.C. 435  A.D. 900

 1.350년

 8 

 호머(일리어드)

 B.C. 900  B.C. 400

 500년

 643 
 투키티데스(역사)  B.C. 400  A.D. 900

 1,300년

 8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B.C. 360

 A.D. 800

 1,150년

 15 

 구약성경

 B.C. 1400 - 400

 B.C 125

 200-400년 

 약 5,000 

 신약성경

 A.D 125

 A.D 125

 50년 

 약 25,000 


 이 두 책을 고서 검증법에 따라 서로 비교하여 표를 만들어 보면 위와 같습니다. 신약 성경의 사본들은 고대의 어떤 사본들보다도 단연 오래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역사가 카툴루스(Catullus)의 책은 3개의 사본만 현존하는데 원본 이후 100년 후에 만들어진 것이며, 헤로도투스(Herodotus)도 8개의 사본만 현존하는데 원본 이후 1,300년이나 지나서 기록되었습니다.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신약 성경은 대조 고서인 일리어드에 비해 사본의 수에서는 40여 배, 시간적인 차이에서 20 배, 그리고 오류의 정도는 10 배 정도 더 신뢰도가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사본간 오류는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 책을 사람인 손으로 일일이 베껴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실수인데, 성경에서 발견된 오류는 절대 다수가 단순한 철자상의 실수나 오기, 관사나 정관사 같이 본질적인 내용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사소한 오류임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일리어드보다 무려 약 8,000여 배 이상이나 신뢰도가 높은 것임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 성경은 인류가 갖고 있는 어떠한 책보다도 원본에 가깝고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브루스(F. F. Bruce)는 "신약 성경의 증거는 고전 작품에 대한 증거보다 훨씬 많으므로 그 신빙성을 의심할 수 없다" 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어떨까요? 구약 성경의 가장 오래된 번역 사본은 오랫동안 A.D. 900년경의 맛소라사본(Masoretic Text)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구약 성경의 정확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B.C. 400년경과 A.D. 900년과는 무려 1,300년이라는 긴 시간적인 차이가 나는 셈이므로, 조작 가능성이나 사본의 정확도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 사본은 구약이 완성된 이후 1,4000년이나 지난 A.D. 1008년의 바빌로니쿠스 서판(Codex Babylonicus Petropalitanus) 뿐이어서, 그 때까지 성경학자들은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이나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유일한 자료로 활용했던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1954년 베두인(Bedouin) 목동이 우연히 B.C. 125년경쯤에 만든 사해 사본(Dead Sea Scroll)을 발견함으로써 원본과의 차이를 275년으로 좁혀 놓았습니다. 40,000여 개의 사본 조각들로부터 500여권의 책이 구성되었는데 이 중 1/3이 구약 성경이었고, 에스더서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약 성경 전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사해 사본과 1,000여 년의 간격을 두고 만들어진 맛소라 사본과 서로 비교해 보았더니, 이 둘이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고서 검증법에서 기준으로 삼는 사본의 수, 사본간 정확성, 원본과 최초 사본간의 저작 시간 간격(최초 사건 발생 시점과 사본 간의 시간 간격)에서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고대 문서 중  정확성이 압도적으로 으뜸임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자'들이 우겨대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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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기독교의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타 종교의 인물에 대한 사료를 한 번 비교해 볼까요? 

우선 주지해야 할 사실은, 고대 역사 기록들은 거의 모두가 구전 전승 기간을 거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인물의 가르침은 일정한 기간 동안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후대 어느 시점에 문서로 기록된다는 점이죠. 

이는 어떤 역사적 인물에 관한 기록이 생존 당시에는 굳이 기록될 필요가 없고  그가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며 고대에는 현재처럼 자료의 기록이 수월하지 않았던 것을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기간이 짧을수록 그 내용이 변질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대의 인물들과 비교해 봅시다




 단군 신화는 BC 2333년에 나라를 세운 단군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AD 1281년에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에 기록되기까지 최소한 2000∼3000년 이상의 구전 전승 기간을 거쳤습니다. 따라서 역사적 신뢰성이 매우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는 어떨까요? BC 6세기에 살았던 부처의 생애는 대부분 AD 1세기에 기록되었습니다. 부처의 가르침과 생애가 제자들에 의해서 구전되다가 문자로 기록된 것은 부처가 죽은 지 최소한 600년 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하마드는 AD 632년까지 생존하였는데, 그의 생애를 기록한 무하마드의 전기는 AD 767년에 쓰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전기가 그의 사후 약 135년이 지나서야 문서로 기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공자의 생애는 어떨까요? 공자의 생애에 관한 유일한 책은 사마천의 ‘공자세가’인데, 공자의 생애는 공자가 죽은 지 약 400년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도올 김용옥 교수는 “사마천의 ‘공자세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실로 간주될 수 없다.” “400년 전에 살았던 한 인간의 삶의 이야기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편년체로 세밀하게 기록한다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사실 그 자체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라며, 공자의 생애 기록은 그 역사적 신뢰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헬라 제국을 이룩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어떨까요? 그의 생애는 그가 죽은 지 약 400년 후에 아리안과 플루타르크에 의해서 쓰였습니다.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에 의해 기록된, 예수님과 동시대의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그의 사후 약 80년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디오 카시우스에 의해 기록된 티베리우스 황제의 역사는 그가 죽은 지 약 190년 후에 쓰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로마 황제와는 도저히 비교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무명 청년, 예수님에 관한 기록은 언제 쓰였을까요? 

 사복음서는 예수님이 죽고 부활한 후 약 30년에서 6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죽음 후 약 18년에서 35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신약 성경 기록은 예수님의 죽음 후 약 18년에서 60년 사이에 문서로 완성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에 관한 역사 기록은 가장 짧은 구전 전승 기간을 거쳤고 이는 그분의 기록이 고대 동·서양의 문헌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역사 기록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살았던 고대 인물 중에서 가장 확실한 역사적 신뢰성을 가졌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고대 인물들과는 달리 예수님에 관한 기록 중 일부는 그의 죽음과 부활을 본 500명 이상의 목격자 대부분이 살아있을 때 기록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장). 따라서, 만일 누군가가 예수님의 역사성을 부인한다면 그는 반드시 다른 고대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신뢰성도 모두 다 부인해야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성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보다도 훨씬 높습니다. 세종대왕의 역사적 실존은 믿으면서, 그보다 훨씬 더 탁월한 신뢰성을 가지고, 단순히 한글의 창제로 반증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시 로마와 유대, 이스라엘, 나아가 중세 유럽 전체과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이나 행적을 믿지 않는 것은 '역사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한 책인데, 누군가가 조작하거나 거짓으로 기록할 의도가 있었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첫째, 우선 사건을 목격한 최초 기록자가 거짓으로 기록을 했다면, 당시에 진실을 알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외면을 당할 것이므로 그 문서가 많이 유포되거나 전승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둘째, 사건 발생 시점의 조작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사건이 발생한 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조작하려 한다면 원본과 사본간의 시간 간격이 크게 나타날 것이고, 셋째, 조작이 일어나게 되므로 사본 간에 핵심적인 내용에 많은 불일치나 조작이 발견될 것입니다. 

 즉, 누군가가 조작하거나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적어도 이 3가지 테스트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테스트를 성경은 아주 완벽하게 통과했고 이는 곧 문서학적인 관점에서는 성경의 조작이나 역사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고, '단순히 성경은 누군가가 조작하거나 꾸며냈을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믿기지 않으니 그런 의문은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는 그러한 추측에는 방금 살펴본 바와 같이'아무런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이런 의문을 가지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처럼 정확하고 확실하게 기록되고 전승되었는지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사실을 아셨다면, 성경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믿을만한 문서'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성경이 믿을만한 객관적인 역사 문서임을 확인했다면, 다음 단계는 성경 이외의 다른 역사 문서나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사실들이 성경의 사실을 확증하는지 반대하는지를 알아보면 될 것입니다. 

 만일, 성경 이외의 기타 사료나 고고학적인 발견에서도 성경을 지지한다면, 성경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믿을만한 문서' 수준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믿을만한 문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단계마저 통과한다면, 성경 자체의 내용상의 역사적인 불일치나 성경에 나온 수많은 예언들이 과연 이루어졌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단계까지 다 통과를 해버린다면, 성경은 '정직한 역사적 진실'임을 여러분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믿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확인했기 때문이죠. 과연 성경이 나머지 테스트마저 다 통과해버릴지 다음 글에서 확인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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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2. 기타 문헌에 의한 증거

-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증거하는, 다른 사료가 존재하는가?

- 기타 사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 성경의 내용과 부합하는가?

- 성경은 인위적으로 조작되거나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기록할 가능성은 없는가?


앞서 성경은 동서양의 그 어떤 고대 문서보다 압도적인 '고고학적', '문서학적' 정확성 및 신뢰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성경이 역사적인 사건을 정직하게 기록한 책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증거하는 다른 사료가 존재하고, 그 사료에 기록된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성경에서 다루는 이스라엘과 유대의 역사는, 천지창조를 제외하고 아브라함의 시대부터 보면 B.C 2100여 년부터 시작되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한 A.D.33을 거슬러 사도들이 활동하고 순교한 1세기를 전후한 시점을 포함한 기간입니다. 2000여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죽음, 부활에 관련된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수많은 예언은 결국 예수님의 출생과 사역, 죽음, 부활을 다루고 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자 성경에서 단연코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는 과연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상의 죽음, 이후의 부활에 대해서 성경 및 다른 역사적 기록에서 어떻게 기술하고 있고, 과연 그 기술이 서로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성경 외의 고대 문서(성경과 무관한 비기독교 문서)에도 많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들만 몇 개 살펴보겠습니다.


A. 요세푸스의(A.D37-100년 이후) 기록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역사가였다가 로마에 항복하여 로마의 문필가가 된 인물입니다. 요세푸스는  A.D. 93년에 그가 쓴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2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 굳이 그를 사람으로 부른다면, 예수라고 하는 현자 한 사람이 살았다. 예수는 놀라운 일을 행하였으며, 그의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 되었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구세주)였다. 빌라도는 우리 유대인 중 고위층 사람들이 예수를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명령했으나, 처음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예수가 죽은지 사흘째 되는 날, 그는 다시 살아나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이미 예언했던 바, 예수에 대한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 중의 하나였다. 오늘날에도 그를 따라 이름을 붙인 족속,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족속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다." (유대 고대사 원문 18:63-64)


62년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이끄는 산헤드린이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돌로 쳐죽이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야고보의 죽음을 부당하게 여겼던 요세푸스는 아나누스가 결국 대제사장직을 박탈당하는 것 까지 기술하고 있다. (유대 고대사 20:200)


B. 유대인 탈무드(bSanh 43a, A.D 2세기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


 유월절 축제 전날 밤 사람들은 예수를 매달았다. 사십 일 전 전령이 이렇게 외쳤다. '그 사람은 마술을 행하고 이스라엘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여 불충한 자들로 만들었으니, 끌려가서 돌팔매질을 당할 것이다. 그를 변호할 자는 나와서 말해보라.' 그러나 아무도 그를 변호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유월절 축제 전날 밤 매달았다.

  랍비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예수에게는 마타이, 나카이, 네제르, 부니, 토다 이렇게 다섯명의 제자가 있었다. 사람들이 마타이를 끌고 갔을 때 예수는 그들(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마타이를 처형해야 하는가? '언제 내(마타이)가 나아가서 하나님을 뵈울 수 있을까? (시편 42:2)라고 기록되지 않았나?" 그들은 예수의 말에 이렇게 응수했다. : "물론이지. 마타이는 처형될 것이야. '저 자가 언제 죽어서 그 이름이 없어질까?' (시편 41:5)라는 말씀도 있으니까." 


C. 마라  바르 사라피온의 편지 (A.D 73년 직후에 쓰인 것으로 추정)

 사라피온은 사모사타 출신의 시리아인 스토아 철학자로, 로마 감옥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많은 권고와 경고들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 언급한 '현명한 왕'은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죽여서 무슨 이익을 보았느냐? 그들이 무슨 일을 했길래 기아와 역병으로 되갚음을 당했느냐? 사모스 섬 사람들이 피타고라스를 불태워 온 나라가 한 순간에 모래로 뒤덮이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무슨 득이 있겠느냐? 유대인들이 현명한 왕을 처형하고 그때부터 그 나라를 빼앗겼으니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신께서는 그 세 현자들을 위하여 똑같이 복수를 행하셨다. 아테네 사람들은 굶주려 죽었고, 사모스 섬은 바닷물로 뒤덮혔으며, 유대인들은 살육당하고 자기네 나라에서 쫓겨나 여기저기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D. 타키투스의 연대기 (A.D 115-117)

 타키투스는 A.D 55/56- A.D. 120년 경의 로마 원로원 귀족 출신의 역사가로 '연대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연대기 13-16장에서 네로의 전기를 기술하면서 64년에 일어난 로마의 대화재와 함께 그리스도(예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명칭(Christiani)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행정관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부패한 미신은 잠깐 동안 억눌려 있었지만 나중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신앙이 처음 발생한 유대 지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혐오스러운 것과 흉악한 것들이 밀려들어와 횡행하고 있는 로마에도 세력을 뻗쳤다. ..(중략)..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체포가 행해졌다. 그 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E. 수에토니우스의 기록 (A.D. 117- A.D. 122)

 A.D. 70-130년 경의 기사 계급 출신으로 트라얀과 하드리안 황제시기에 고위직에 올라 시저부터 도미티안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두 황제의 생애를 기술하였습니다. 클라우디우스에 대한 보도 중 25장 4절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크레스투스(메시아를 의미하는 크리스투스의 오기로 추측됨)에 의해 미혹되어, 끊임없이 소요를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그 황제는 로마에서 추방했다. 네로의 처벌은 새롭고 유해한 사교를 믿는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졌다."


F. 플리니 2세의 기록 (A.D 112)

 플리니 2세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A.D. 112년에 그가 소아시아의 Bithynia의 총독이었을 때 장문의 글을 트라얀 황제에게 올렸습니다. 순교자의 수가 너무 많아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을 모두 죽일지 일부만 죽일지 고민했다는 내용입니다. 플리니가 당시 기독교인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벽에 일정한 날 모이는 습관이 있고, 그리스도에게 신으로서 반복되는 찬양을 불렀고, 엄숙한 선서로서 어떤 악한 행동을 금하기로 서로 간에 약속하며 절대로 사기나 도둑질, 간음, 거짓 증거를 않으며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G. 터툴리안의 기록(A.D 197)

 터툴리안은 A.D. 197년에 본디오 빌라도와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간의 빌라도 보고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일컬어질 즈음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정보를 그 자신이 보고받고 그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해 긍정적인 결정을 하고서 이 문제를 상원회의에 올렸다. 상원은 그 의제를 승인하지 않고 기각했다. 카이사르는 그의 견해를 지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모든 비방자들을 벌할 것이라고 겁주었다."


H. 탈루스의 기록(A.D 52)

 탈루스라는 역사가는 헬라어로 글을 남겼는데, 주후 30년 4월에 발생한 신비한 일식(만약 그것이 일식이었다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망 당시 발생한 3시간 가량의 이상한 어두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I. 필레곤의 기록

 역사가 필레곤은 소아시아의 비두니아 지역 니케아라는 곳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 먼지와 흙과 나무 부스러기들이 공중에 솟아올라 그 검은 구름이 남쪽으로 흘러서 이탈리아, 희랍, 애굽의 하늘을 어둡게 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필레곤은 이 일이 희랍 달력 202번째 올림피아드 4년에 일어났다고 했으므로 A.D 33년, 즉 예수님의 사망 시점과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그 해 어떤 날에 그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망했을 때 하늘이 어두워졌다고 성경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이 외에는 없을까요?

 게리 하버마스(Gary R. Habermas) 박사는 ‘역사적 예수(The Historical Jesus)’라는 책에서 예수의 생애에 관한 고대 자료는 45개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초기 교리적인 자료 19개, 4개의 고고학적 자료들, 17개의 비그리스도인의 자료들, 그리고 5개의 신약성경을 제외한 초기 그리스도인의 자료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버마스는 비기독교인들이 기록한 17개의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후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7개 자료 중 대다수는 예수의 생애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12개 자료가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 12개의 자료들 중에서 6개가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또 하버마스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45개의 고대 자료 중에서 예수의 실제 생애, 인격, 가르침, 죽음, 부활 그리고 제자들의 초기 메시지 등을 철저히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 예수와 관련된 고대 역사의 사건 기록들은 총 129가지나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고대 자료들을 꼼꼼히 분석한 하버마스는 예수님은 단순히 자신에 대한 역사적 자료들을 많이 가졌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분량의 질적인 자료들을 가진 역사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 분에 대한 자료는 고대에서 가장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이며, 가장 입증된 삶을 보여주는 자료 중의 하나다”라고 결론 맺었습니다. 

 또한 보스턴대학의 하워드 클라크 키(Howard Clark Kee)는 신약성경 외의 자료들을 연구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예수에 관한 전통들이 이 정도로 다양하게 전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인류사에 그토록 심오한 영향을 계속 끼쳐온 이 인물의 생애, 가르침과 죽음에 대한 내용들이 명료하면서도 놀랄 만큼 일관되게 정돈되어 있다는 증거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처럼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서만 언급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인 이해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반기독교적인 성향을 지닌 역사가들조차도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그들의 기록을 통해 확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 역사의 인물이었냐 아니냐는 '종교적 믿음'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이는 '고고학적 사실'에 관련된 문제이며, 논란의 여지조차 없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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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한다고 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이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은 사실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거나, 십자가에 달려 사망하기는 했지만 결코 부활은 하지 않았다거나, 이 모든 사건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등의 '음모론'들을 내세웁니다.

 물론,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음모론들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믿겨지지 않아서 뭔가 의문을 제기한다면, 최소한 왜 그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는 마치,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무런 근거도 없는 수많은 억측과 악성 루머 등이 마치 사실인 양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유포되는 것과 전혀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대략 이런 식입니다.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은 거짓일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은 제자들이 조작한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도 사실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며 바꿔치기를 한 것이다.'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서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믿지 못하니까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죠. 


 설령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의 강력한 역사적 신뢰성을 억지로 부정한다고 해도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으로 밝혀진 역사적 정황 증거를 고려해 보면 터무니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살펴볼까요?

 예수님의 일생을 다룬 사복음서에는 기독교에 불리한 내용도 여러 개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친형제인 야고보는 예수님의 행적을 뻔히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신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자신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저술한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지독하게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예수님이 죽은 이후에 어떻게 변했을까요? 만일,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하지 않았다면 상식적으로 이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수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을 자신이 똑똑히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과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라면, 예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 돌려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예언이 거짓이었음을 안 순간, '믿기 힘든 기적을 행하긴 했지만, 자기 말대로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한 희대의 사기꾼'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며,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 조직은 와해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이후의 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볼까요? 성경에서 살펴본다고 하면 행여  '인위적으로 기독교쪽에 유리한 문서'에서 찾아본다고 할까봐(물론 이런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다른 사료를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에는 예수님의 12 제자의 순교일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베드로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 박해를 견디다 못해 돌아오던 중 주님을 만나게 된다. 주님을 본 베드로는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네가 도망쳐 나온 네 대신 로마로 가노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간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주님과 같은 모습을 할 수 없다. 거꾸로 못 박혀져서 순교했다. 


2. 안드레

  헬라에 가서 전도하다가 아가야 성에서 십자가에 줄로 매달려 순교했다. 안드레의 달린 십자가는 X형이었다. 


3. 야고보

  예루살렘에서 헤롯의 박해에 칼로 목이 베여져 순교했다. 


4. 요한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부탁하신대로 어머니(마리아)를 끝까지 모시고 있으며 유대 국내에서 전도하다가 예루살렘이 주후 70년 로마에게 멸망 된 후 에베소에서 전도했다. 그곳에서 온갖 박해와 고문 끝에 끓는 기름 가마에 집어넣었으나 기적적으로 튀어 나온다. 그를 박해하던 무리가 놀래서 그를 밧모섬으로 귀양 보낸다. 그곳에서 홀로 일생을 보내며 거기서 묵시를 받아 쓴 성경 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며 자기 수명대로 살다 자연사로 죽었다.


5. 빌립

 소아시아 부르기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찢겨져 순교했다. 


6. 바돌로매

 알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잡혔다. 그는 수 없는 매질을 당한 다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져 순교했다. 


7. 도마

 인도에 가서 전도하던 중 현장에서 군인들이 던진 창에 맞아서 순교했다. 


8. 마태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잡힌다.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 계속 전도를 했다. 결국 그들의 칼날에 목이 베여져 순교했다. 


9. 알패오의 아들 야곱

 군중들은 시체나 다름없는 그를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밀어 떨어뜨려져서 순교했다. 


10. 시몬

 애굽으로 전도를 갔다 중 유대로 돌아와 그곳에서 전도하던 중 군인들이 쏜 화살에 의해 순교했다. 


11. 야곱의 동생 유다

  파사에서 전도하던 중 활에 맞아서 순교했다. 


12. 맛디아

  이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관중들이 수없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가면서 복음을 외쳤다.


예수님의 12제자의 죽음은 성경이 아닌, 다른 문서에 이와 같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수많은 기적을 직접 목도했음에도 믿지 않았던 믿음없는 제자를 포함한 12제자들이 모두 이처럼 한결같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려 순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망과 부활 직후 로마 치하에서는 A.D. 64년 이후 A.D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네로, 도미티안, 트라얀, 하드리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셉티무스 세베루스, 막시미누스, 데키우서, 발레리안, 디오클레티안 갈레리우스 등의 로마 황제에 의해 조직적이고 잔혹한 기독교 핍박(화형, 십자가형, 사자의 먹이로 던져짐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오히려 더 퍼져나갔으며, 끔찍한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수많은 순교자가 끊이지 않았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와 기독교 공인은 너무나 중고등학생도 알고 있는 기본적인 세계사적 상식이므로 제가 굳이 근거를 들 필요성은 없겠죠? 이 모든 사실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이런 집단적인 순교가 가능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순교'를 불사하는 '광신도'들은 어느 종교에나 있는 것 아니냐? 어떻게 순교자가 많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이 진실임을 입증할 수 있느냐라고 말이죠.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에 불길처럼 번져간 기독교와 순교자들의 경우는 타 종교의 '순교'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당시 초대 교회 기독교 순교의 경우에는 검증되지 않은 '종교적 교리'에 세뇌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목격되고 확증된 부활이라는 사실'에 기초를 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중에는 교리에 따라 자신의 목숨을 바치거나 전재산을 바치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믿는 교리는, '자신이 분명히 직접 경험하거나 목도한 믿음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종교의 경전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내지는 자신이 그렇게 막연하게 믿고 있는 '체험하지 않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초기 기독교 순교에 관련된 역사적 문서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어찌보면 억지로 세뇌 당해서 믿고 있다가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고 와해되어버리기에 충분한 조건을 '직접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죽음 이후 수백년이나 수천년 이후에 태어나서 단순히 '예수 사건'을 종교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과 분명히 동시대에 살았으며, 그의 행적과 죽음을 직접 체험하고 목도한 세대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이라는 당시의 사건이 분명한 '경험적 사실'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죠.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는 사람은 존재하지만, 자신이 '직접 체험한' 어떤 사실이 뻔히 거짓이거나 사기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데도 그 믿음을 고수하거나, 심지어는 극한의 고통까지 불사하며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일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여러분 같으면 거짓이라는 것을 직접 몸소 체험하기까지 한 사실에 목숨을 걸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활한 이후 12명 자신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당시 수많은 사람들(500여명)에게 나타났다(고린도 전서 15장)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가장 믿을만한 문서인 사복음서와 신약 성경에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성경을 뺀 분명한 다른 로마 시대의 기독교 박해사와 이후의 드러난 역사적 기록과 그에 대한 정황을 살펴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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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자체의 신뢰성을 떠나, 성경의 사복음서(마태,마가,누가, 요한복음) 외에도 예수님의 행적과 그의 가르침을 상당히 다르게 기록한 고대 복음서들이 발견되었으므로 성경의 내용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문서는 널리 알려진 바 있는 도마복음을 포함해, 베드로복음, 비밀마가복음, 유다복음, 마리아 복음 등인데 이 중 상당수는 2007년에 나그함마디 성서라는 선집으로 재출간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문서들을 소위 '영지주의 문서'라고 부르는데, '영지주의'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을 쌓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으로 성경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만일 영지주의 문서가 '문서학적'으로 성경보다 신뢰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성경을 버리고 영지주의 문서를 채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러한 주장도 근거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기록 연대가 사복음서보다 후대이므로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 문서의 기록 시기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사건이 일어난 A.D.33년 이후 200여년 이상이 지난 A.D. 2세기 - 4세기 경에 기록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사복음서의 기록 연대인 A.D. 60 - 90 년대보다 최소 100여년에서 300여년 이나 후대에 기록된 것입니다. 즉,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예수님과 동시대 내지는 한 두세대 이후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구전되던 내용이 기록된 것인데다가, 이 모든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해 매우 일관된 흐름과 통일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예수라는 인물의 행적을 시퍼렇게 목도하고 기억하는 세대들이 살아있는 상황이었다면 거짓으로 꾸며내거나 조작하거나, 그것도 한 두개도 아닌 4가지 문서에서 조직적인 조작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기에 거짓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수정이 가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렇지 않고 소수의 의도적인 무리들이 악착같이 조작하려했다고 해도, 진실과 거짓이 뒤죽박죽으로 섞이게 되어 사복음서간의 내용에는 상당한 불일치와 모순점들이 발견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복음서는 문서간에 완전한 내용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영지주의 문서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목도한 세대가 다 죽고 난 이후 최소 2세대 이상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기억이나 전승에 의한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고, 조작하기도 쉬운 상황이기 때문에 사복음서보다 역사적 신뢰성이 '객관적인 기준에서' 분명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영지주의 문서의 내용은 사복음서 내용과 배치되는 것을 떠나서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되고 납득이 안되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사복음서를 믿지 말고 영지주의 문서를 믿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사복음서의 내용에 믿기 힘든 기적들이 많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이러한 속성은 영지주의 문서에서 훨씬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무미건조하게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복음서보다 영지주의 문서에서 예수님을 훨씬 더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문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도마복음에서는 성경과 달리 이 세상은 회복되고 구속받을 곳이 아니라 절망적이고 계속 타락하다 파괴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보아라, 내가 그녀를 인도하여 남자가 되게 하리니, 그녀도 너희 남자들을 닮은 생령이 되리라. 자신을 남자로 만드는 모든 여자는 천국에 들어가리라'라는 황당한 내용도 실려 있습니다.

 베드로복음에서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군중에게 넘겨주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갑자기 대제사장이 묘지에서 밤을 지새는 황당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다음 예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가고 머리가 길게 뻗어 구름까지 닿는 두 천사가 무덤 안으로 들어가 세 번째 사람을 도와서 밖으로 나오는데, 그 사람의 머리도 구름 위로 솟아올랐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들을 따라 무덤에서 나오는 것이 십자가인데, 이후 하늘에서 '잠자는 자에게 말씀을 전했느냐'라는 음성이 들려오는데,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가 '예'라고 대답한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용도 있습니다. 


 세번째 이유는, 이러한 영지주의 문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도마나, 베드로, 마리아, 유다와 같은 예수님의 제자나 직접 연관된 인물이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항상 명품이나 진품에는 짝퉁이 붙고, 모조품에 대한 처벌이나 제제가 엄격할 때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다가 제제가 풀리고 저작권 시효가 만료되면 서서히 출현하듯이, 영지주의 이단 문서도 대부분 예수님의 사후 200여년 이상이 지나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실제로 이들 저자가 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나 어머니였던 사람들의 이름을 문서 제목으로 사용했습니다.  


 네번째 이유는, 심지어 어떤 영지주의 문서는 '완전히 위조되거나 날조'된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동성애를 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한 때 큰 이슈가 되었던 '비밀 마가복음'은 모턴 스미스라는 사람이 1958년 유대 광야에 위치한 마르 사바 수도원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 1991년도에 스티브 칼슨에 의한 필적 감정에 의해  모턴 스미스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완전히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의도가 전혀 없으며 하나님의 영의 화신이라고 산헤드린 공회에 해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지저스 페이퍼'라는 고대 문서의 발견과정은 너무나 허술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발견자라고 주장하는 마이클 베이전트는 1961년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예루살렘의 어느 집 아래를 파다가 아람어로 적힌 두 문서를 발견했고, 그것을 두 유명 고고학자에게 보여주어 그 기록 연대와 진정성을 확인받았다고 합니다. 두 고고학자는 두 문서의 기록시기를 대략 예수님의 사망시점으로 추정했다고 합니다. 

베이전트는 그 사람의 금고에 들어가 그 파피루스 문서를 보았는데, 금고가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낮아서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고 하며, 자신은 물론 그 수집가도 아람어는 읽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는 유명한 고고학자 이가엘 야딘과 나흐만 아비가드(이 둘은 고인입니다)가 파피루스 문서를 확인해주었으니 안심하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증거를 통해 이 문서의 내용을 믿을 수 있습니까?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작가, 신원조차 확인이 안되는 고대 유물 거래상, 저자가 읽을줄도 모르고 원본이 확인되지도 않으며 검증조차 불가능한 문서, 그리고 죽어버린 고고학자들..대체 이것을 무슨 근거로 믿을 수 있을까요?

 

 매체에서 뭔가 새로운 내용의 고대 문서가 발견되었다고 성경의 진실성이 부정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에는 반드시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지금도 인터넷에서 어떤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이 밝혀져도 수많은 억측과 루머가 난무하는 것을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해서 확인했을 때 터무니 없는 수많은 아류와 짝퉁이 끊임없이 난무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성경이 오히려 더 확실한 역사적 진실임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명품이고 진품일수록 짝퉁이 많기 때문이죠.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허접한 상품에는 짝퉁조차 붙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경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무수한 주장과 억측, 성경과 다른 새로운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따끈따끈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허구이거나 억지 주장임이 밝혀져서 끊임없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2000여년이 넘도록 이토록 집요한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계 1위의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며, '진실'임을 강력하게 반증하는 것입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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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3. 고고학적 증거

- 성경에 나오는 사건, 지명, 유적에 관련된 실제적인 고고학적 증거가 있는가?

-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은 성경의 내용을 지지하는가?


 지금까지 성경은 한 인물에 대해 묘사한 고대 역사문서 중 그 어떤 문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성과 신뢰도가 으뜸인 문서이며, 성경의 핵심인 '예수님'과 관련된 기록도 결코 허구의 산물이 아닌, 객관적인 역사적인 사건임을 다른 고대 문서와 역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성경의 신뢰도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이 고고학적인 발견이냐 유물로 확인되는가의 여부입니다. 물론 고고학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이 성경의 역사적인 정확성을 입증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합니다. 만일 고고학적으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이 성경에서 밝혀진 내용과 일치된다면 성경의 진실성은 더욱 확고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낱 신화나 전설로만 생각했지만, 고고학적인 발견이 누적되고 지속되면서 판타지 소설 같은 성경의 수많은 인물과 도시, 유물, 사건들이 문자 그대로 사실임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고 지금까지 알려진 고고학적 발견만도 이미 넘쳐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대표적인 사례들만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갈대아 우르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갈대아인이 살던 '우르' 라는 지역이 있었다."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기원전 1400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기록된 창세기 11장 31절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한낱 전설과 같이 우습게 알고 수천년을 지나왔으며 최근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800년대 후반, 현재 이라크 지역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고고학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갈대아 우르지방이 실제로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위 지도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고 있고, 티그리스 강이 그 위로 흐르고 있는 그 사이에 비옥한 땅이 유지되고, 지중해 까지 연결 됩니다.  메소(사이) 포타미아(강)는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시날 평지가 있는데 그 곳의 끝 부분이  우르지역입니다. 두 번째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수많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180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결과 놀라운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아주 정밀한 수로를 만들어서 그 지역의 농사를 위해 물관리를 철저히 했음이 발견되었고, 많은 점토판에 그려진 완벽한 지도들도 확인되었습니다. 

 


2. 수메르 문명

 세계사적으로 공인된 인류 최초의 문명이 수메르 문명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수메르 문명은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발달한 것인데, 수메르 문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수메르 문자의 발견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쐐기문자(설형문자)입니다.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점토판에서 발견된 놀라운 사실중의 하나는 대영박물관의 조지 스미스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여 밝힌 '길가메시 에픽'에 관한 기록입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인데, 그 내용이 성경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 사건 기록이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인류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음을 반증합니다.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메르라는 말의 어원은 '세메르'에서 왔는데, '셈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아들중에서 장자권을 가진 자 '셈의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3. 하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란에서 살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하란에 머물러 있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해서(우르를 떠날때는 60세 가량) 그 하란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75세 때에 가나안으로 출발합니다.  그래서 갈대아 우르도 중요하지만 이 하란이라는 지역도 대단히 중요한 지역 중의 하나인데 최근 하란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이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은 지금의 시리아땅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란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과거에 매우 발달된 문명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수메르보다 몇 백년 앞선 문명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나온 기록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그 문명을 세웠던 나라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에블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에블라 문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믿던 신의 이름도 발견되었는데, 그 이름은 '야'였습니다. 아마도 '야훼'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바벨탑과 지구라트

 창세기 11장 1-9절에는 '온땅에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니...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니...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성이란 도시를 말합니다.  그냥 성이 아니라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바로 고대 최초의 통일제국을 만든 사람 '니므롯' 입니다. 니므롯이 통일제국을 만든 뒤 여러 가지 이질적인 종족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쉽게 다스리기 위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와 같이 도시부터 만든 이후에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이제 바벨탑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을 살펴 보겠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신전을 지구라트라고 합니다. 그 신전중에 제일 큰 것으로 보이는 탑이 근래에 와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에 의하면 이 지구라트가 그 당시에도 이미 오래된 역사를 가진 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최고 왕이 느부갓네살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한 것이 기원전 586년입니다. 그 당시에도 이미 지구라트는 오래된 탑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의 기록뿐 아니라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같은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BC500년 경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바빌로니아의 거대한 건축물에 대해서 기록해 놓았는데, 이 건축물은 서로 맞물리는 여덟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한 나선형의 길이 나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거대한 신전, 바빌로니아의 신의 집을 지어 놓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210m 이상의 높이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5. 헷(히타이트) 족속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가 죽자 헤브론 지역의 막벨라에 있는 헷족속 에브론이 소유하고 있던 굴을 사서, 자기 아내를 묻  후에는 자기도 묻히고 아들 이삭과 후손들이 쓸 무덤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밭을 아브라함에게 팔았던 사람들이 바로 헷족속이라고 성경에 여러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으로 이 히타이트 족속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지금부터 100여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 수천년동안 사람들은 히타이트 족속이라는 것은 하나의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였고, 그 때문에 성경이 허무맹랑한 책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히타이트 족속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타나고, 그들의 찬란했던 문명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헷족속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됨에 따라서 히타이트 문명권이 규명되었는데, 위의 터키 지도 상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히타이트의 중심부 입니다. 히타이트의 수도는 '핫투사'인데 터키의 현재 수도인 앙카라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핫투사를 수도로 해서 터키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비옥한 초생달) 전체를 지배하고 강력한 철기 문명을 바탕으로 해서 심지어는 이집트까지도 점령하여 대제국을 형성했음이 밝혀졌습니다. 

 

 

6. 에돔 족속

 창세기 36장 8, 11절, 기타 여러 곳에 보면 에돔족속이 있었고, 에돔 족속의 최초의 조상은 이삭의 아들인 에서이며, 에서는 에돔이라고도 불리었고, 세일 산이라는 곳에 거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서나 에돔이라는 말은 모두 붉다는 의이입니다. 그런데 이 에돔족속이라는 것도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었고 다른 기타 어떤 역사적인 기록도 존재하지 않아, 수천년간 성경이 허위라고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중동의 고고학적 발견이 붐을 일으킴에 따라서 세일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탐사하다가, 에돔족속이라는 집단이 그곳에서 수천 년간 거주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요르단의 페트라 입니다. 페트라는 보시는 바와 같이  바위산을 파 들어가 만든 건축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7. 여리고 성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땅에 있는 성중에 최초로 공격한 성이 여리고 성입니다. 

 


    


 여호수아 6장 15-17절을 보시면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죠? 성 주변을 돌기만 했는데 무너졌다니요..하지만, 과연 이것이 거짓이었을까요?

  여러 고고학자들과 대영 박물관 탐사팀 등이 19세기부터 여리고성의 고고학적 발견을 시도한  결과 여리고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방법으로 정복되었다는 증거들을 찾아냈습니다. 대영박물관의 탐사팀에 의해 여리고성은 여호수아시대에 강도 6.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지질구조가 발굴되었습니다.


8. 다윗과 골리앗

 사무엘상 17장 48-51절의 기록에 의하면 엘라계곡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 민족의 전쟁이 벌어졌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 중에 골리앗이라 불리는 거인때문에 이스라엘 용사중 많은 사람들이 벌써 엎어져 죽은 상황에, 다윗이라는 소년이 자기 형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어서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러 갔다가 그 거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저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멸하는 꼴을 보고 어린 다윗이 의분을 느껴 나가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때에 다윗이...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 어린 소년이 물매를 들고 나가서 한 방에 정통으로 맞추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혼비백산 도망하고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93년 5월에 고고학자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고고학적 발견을 하다가 이마에 돌이 박혀있는 거인의 해골을 발견했는데, 이마 좌우거리를 측정하여 거인의 키를 계산해 본 결과 그 키가 2미터 90센티나 되는 거대한 체격의 거인이었음이 밝혀졌고, 연대측정 결과 약 BC 1000년경의 다윗시대에 죽은 것으로 측정되었습니다. 발견장소가 팔레스타인 지역이고 체격이 거대하였고 이마에 돌이 박혀 있고 연대가 다윗 시대임을 종합해 볼 때, 이 해골의 주인은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골리앗의 유골임이 확실하다고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9. 앗시리아의 침공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는 주변 약소국가들을 침략하고 세력을 키우다가 기원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앗시리아의 침공시에 남 유다는 힘이 약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약 136년을 더 견뎌내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 많은 고고학자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비난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당대 앗시리아가 얼마가 강력한 나라인데, 힘도 없는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이기겠냐며 믿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데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발굴된 실린더처럼 생긴 앗시리아의 비석에서 성경의 기록과 똑같은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앗시리아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러 갔다가 실패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입니다. 아래그림이 산헤립의 원통형 비문입니다. 


    


 또한, 성경 열왕기하 20장 20절에 보면 산헤립의 침공 때 히스기야왕이 땅을 파고 수로를 만들어서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 또한 고고학적으로 그대로 발굴되어 오늘날에는 이곳이 예루살렘의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의 기록을 입증하는 고고학적인 발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모든 내용이 고고학적으로 다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고학적인 확증은 그에 해당하는 역사적 유물이 발견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고고학적인 발견 중 성경의 기록과 위배되는 것은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터무니 없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주장들도 결국은 고고학적인 발견에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기타 종교와 달리 유독 성경만이 '역사적','고고학적'인 검증과 공격을 집요하게 받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성경이 시대적,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특정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지어낸 소설이나 신화가 아닌, 구체적인 인물, 지명, 국가, 시대를 아주 자세하게 언급한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기타 종교 서적이나 신화들에 대한 반박이 별로 없고, 유독 성경만 이러한 집요한 포화를 집중적으로 받기 때문에 성경 자체에 문제가 많다고 혹시 생각하셨다면 그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다른 종교 경전이나 신화는 기록 자체부터 성경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 신뢰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앞서 살펴본바 있죠?), 구체적인 역사나 지명, 인물 자체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검증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검증할 기본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지, 그 자체의 역사성이나 진실성에 문제가 없어서가 결코 아닙니다. 진품 명품일 수록 짝퉁이 활개를 치고, 진품 명품일수록 소비자들의 요구치가 높고 비판이 많은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 모든 사실은 성경이 역사적 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고고학에 의하면 구약전승의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와 19세기의 중요한 역사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과다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 의심들은 지금도 종종 제기되고 있는데, 그러한 의심들이 점차 근거가 없는 것들임이 밝혀지고 있다. 고고학적 발견들이 거듭되면 될수록 성경의 내용을 더욱 뒷받침하고 있어서 역사적 사실로서의 성경은 점점 더 확실해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고고학의 권위자 울브라이트 박사)


  "성경의 기록을 부인한 고고학적 발견은 전혀 없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물들이 성경의 역사적 진술들을 개괄적으로, 혹은 세세하게 확증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팔레스타인 고고학 전문가 넬슨 글루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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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4. 성경 내용 자체의 신뢰성

- 성경의 내용에 자체적인 모순이나 오류는 없는가?

-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는가?

- 현재 남아 있는 예언과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성경이 과연 역사적으로 믿을만한 문서인지, '신학적 기준'이 아닌, '문서학적','역사적','고고학적,'정황적' 증거를 통해 객관적으로 믿을만한 근거가 분명한 책임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는 이렇게 끊임없이 의심을 제기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래, 성경이 그렇게 신뢰할만한 역사적인 문서라고 치자. 그런데 대체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냥 사람이 역사적인 기록을 정확하게 남긴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 성경이 '하나님'이라는 '신'에 의한 계시로 기록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은 무슨 근거가 있느냐?' 라고 말이죠.

 사실, 이에 대한 답변은 앞서 살펴본 증거들 만으로도 충분히 반증이 가능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들과 사건들, 예수님의 실존과 죽음, 부활 등의 초자연적인 일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러한 초자연적인 일들은 '신적인 존재'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래도 의심하시는 분을 위해 추가적인 증거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 증거는 바로, 성경 내용 자체의 '내적 일관성과 예언 성취'입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은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인터넷이나 방송, 책 등과 같은 정보 매체는 커녕 인쇄술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던 수천년 전에 쓰여진 고대 문서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지리적, 시기적으로 완전히 동떨어졌고, 정보의 교류조차 전혀 불가능하던 시기에 40여명의 독립적인 저자들이 저술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 문서 간의 내용에 상호 일관성이나 완전한 통일성, 그리고 역사적인 예언의 성취가 발견된다면 이는 신의 개입이 없이 상식적으로는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자체의 내적 일관성과 신뢰성은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성경에 무수히 많이 나오는 예언이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성취되었고 서로 다른 성경 문서간의 예언에 불일치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27%( 구약 6,641/23,210 구절, 신약 1,711/7,914 구절)는 예언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언가라고 하면, 유명한 노스트라다무스나 진 딕슨, 에드가 케이시 혹은 저렴한 가격에 알찬(?)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동네 점집 무당 아줌마를 생각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여러분이 막연한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성경의 1/3이 아주 구체적인 인류에 대한 역사 예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또한, 날이 좋을 때 북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수 있지만, 그 때 마음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못만날 수도 있다는 식의 어떤 상황에도 끼워맞춰서 먹힐 수 있는 애매모호(?)한 예언이 아닌, 여러 민족과 국가의 역사에 대한 커다란 세계사적 흐름을 심지어 연대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맞춘 예언이 성경에 넘쳐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심지어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2년의 현재의 상황도 소름끼치도록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고,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까지도 예언하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기 힘드시다고요?  지금부터 그 내용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성경의 예언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후대에 조작된 것이 아니냐라는 근거없는 음모론을 제기하실 분이 분명히 계실 것 같아 성경의 기록 연대 추정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못한다고 해서 공식적으로 입증된 성경의 기록 연대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고문서의 경우 원본인 경우 과학적 연대 측정법을 이용하여 측정 연대를 알 수 있으나, 성경과 같은 사본인 경우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 기록연대를 추정합니다. 

 연대 측정의 방법으로 문서의 문체나 언어를 고고학적으로 연구하여 연대가 입증된 유사한 내용이나 문체의 고문서와 비교 조사하거나, 기록된 지명이나, 인명, 고유명사를 단서로 하여 추적하기도 합니다. 또한 문서의 기록자가 신분과 함께 기록연대를 표기해 두는 경우도 있어 참고하는 경우도 있고, 신빙성 있는 다른 사료에서 그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경우 참고하여 연대를 추정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연대 측정은 성경 전 66권에 대하여 정밀하고 세밀하게 입증이 되었고, 성경의 기록 연대는 학자마다 거의 일치하여 추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1+1이 3이라고, 1+1=3 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설령 여러분이 성경의 예언이 믿기지 않아, 성경이 후대에 조작되었다고 주장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성경의 기록 연대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성취된 예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구체적인 성경 구절을 찾아보기 원하시는 분은 http://www.holybible.or.kr/B_GAE/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A.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들  

    * 이스라엘은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이다.(창12:1-3) 

    * 이스라엘의 왕들은 유다족속에게서 나올 것이다.(창49:10) 

    * 이스라엘은 400년간 애굽(이집트)에서 보낼 것이다(창15:13) 

    * 이스라엘은 내란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왕상 11:31) 

    *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70년을 보낼 것이다.(렘25:11,29:10) 

    * 이스라엘은 70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단9:1-2) 

    * 이스라엘은 끝내 세계 만방에 흩어지게 될 것이다 (신28:25,64; 레26:33) 

    * 이스라엘은 이 나라들 가운데서 속담거리가 될 것이다(신 28:37) 

    * 이스라엘은 많은 나라에 빌려 주되 꾸어 오지는 않을 것이다(신28:12) 

    * 이스라엘은 쫓겨 다리고 박해를 받을 것이다.(신28:65-67)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기 나라의 주체성을 유지할 것이다(레26:44, 렘 46:28)  

    * 이스라엘은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서 고립될 것이다(민 23:9) 

    * 이스라엘은 그들의 메시야를 배척할 것이다(사 53) 

    * 그로 인하여 외적들이 그의 땅에 들어와 거할 것이다(레26:32; 눅21:24) 

    * 예루살렘은 파멸될 것이다(눅19:41-44, 21:20)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영원히 견딜 것이다(창17:7; 사66:22) 

    *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다시 팔레스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신30:3; 겔36:24, 37:1-14, 38:1-39:29)   

성경 곳곳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은 이스라엘과 유대의 고대사와, 나라가 망하고 2000여년 동안 전세계를 돌며 유랑생활을 하다가 1948년 극적으로 독립하여 국가를 수립한 현재의 이스라엘의 상황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B. 다른 이방 나라들과 관계된 예언들  

  1) 에돔

 야곱의 형제인 에서가 에돔의 설립자이인데(창36장) 그의 사후에는 야곱에  의하여 세워진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고 (민20장)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기 좋아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그들의 상업이 중단될 것이다. 

      * 그 부족이 소멸될 것이다. 

      * 그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렘 49:17-18; 겔35:3-7;옵1장; 말1:4) 

    이 모든 예언은 에돔의 수도 페트라가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게 요새화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A.D.636년에 페트라는 모하메드에 의하여 함락되었고, B.C.586년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당함으로써 페트라와 에돔은 역사의 페이지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예언이 기록된 창세기, 민수기, 예레미야, 에스겔, 오바댜, 말라기의 기록연대는 각각 B.C 1446-1406년(창세기, 민수기), B.C. 627년(예레미야), B.C. 565년(에스겔), B.C.855-840년(오바댜), B.C.435-425년(말라기)입니다. 

 

  2) 바벨론 

  바벨론은 다니엘(기록연대 B.C. 530년경) 2:31-43과 7:1-8에 언급하고 있는 세계 최초의 4대 강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사야(기록연대 B.C. 740-681년) (13:17-19)와 에레미야(기록연대 B.C 627년)(51:11)와 마찬가지로 다니엘은 강대국 바벨론이 멸망할 것을 예언한 바 있는데, 이것은 B.C. 539년 10월 13일 즉 메대 사람 다리오가 원래 성벽 밑으로 흐르던 유브라데 강 줄기를 역류시킴으로 말미암아 성이 함락됨으로(단5장)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3) 메대-바사 (페르시아)

 B.C.551년에 강변에서 기록한 다니엘 8:1-7, 20-21에서 환상중에서 다니엘은 그 후 약 217년 동안에는 발생하지도  않을 일련의 전쟁에 관한 말씀을 듣게되는데, 여기서 선지자 다니엘은 다리오 3세(여기서 수양으로 묘사)가 (수염소로 상징된) 헬라의 알렉산더 대제에게 멸망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은 B.C.334년에 그레니쿠스 전쟁과 B.C.333년에 잇수스 전쟁 및 B.C. 331년에 고가멜라 전쟁 등 3대 결정적인 전쟁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4) 헬라(그리스) 

  다니엘은 또한 (알렉산더가 죽고) 헬라제국이 네 개의 작고 분리된 나라로 나누일 것과 장군 중의 한 사람이 그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단 7:6,8:8,20-21). 이것은 알렉산더가 33세에 바벨론에서 열병으로 죽은 후 B.C. 301년에 정확하게 발생하였습니다.   

 

  5) 로마

  다니엘은 로마가 넷째 왕국이며 세기가 철과 같다고 예언하였는데(다니엘 2:40-41), 이는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B.C. 300년까지도 로마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세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B.C. 200년까지 로마는 가장 강적으로 보았던 카르타고를 정복하였으며, B.C.63년에는 로마의 장군 폼페이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그 예언 가운데서 “왕국이 나누일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A.D.364년에 성취되었습니다.. 

 

  6) 애굽(이집트)

  예수님이 오시기 600여 년 전에 이미 선지자 에스겔은 애굽이 지극이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한다고 예언했습니다. (겔 29:1-2,15) 애굽은 B.C. 3200년경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B.C. 332년에 애굽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제의 때까지 왕조를 계승하며 통치하였지만 주목할 것은 에스겔이 애굽을 에돔의 경우처럼 사라질 것으로 예언하지 않고(35:3-7) 다만 애굽이 붕괴, 즉 세력을 잃게 되어 다시는 세계강국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이 예언은 현재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7) 로스(러시아)

  에스겔 38-39장에서는 인류의 종말이 가까울 때, 러시아와 아랍의 거대한 연합군이 홀로 있는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2012년 현재 중동과 러시아의 국제 정세가 급박하게 에스겔의 예언과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후에 언급할 것입니다) 

 

 

C.특수 도성들에 관한 예언들 

 1) 두로 

  에스겔 26장에 에스겔이 두로 성에 대하여 언급한 예언은 성경 전체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예언 중 하나입니다. 두로는 두 도성으로 되어 있어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96km 떨어진 해변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지중해에서 조금 떨어진 성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에스겔은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성읍을 함락시킬 것이다. 

   * 두로를 멸망시키는 데 다른 나라들이 합세할 것이다. 

   * 도성은 폐허가 되고 돌바닥처럼 평평하게 잿더미가 될 것이다. 

   * 그곳은 짐승의 소굴이 될 것이다. 

   * 그 돌과 나무는 바다에 던져질 것이다.(스가랴 9:3-4) 

   * 그 도성은 결코 재건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이 예언을 B.C. 590년경에 기록하였는데, 그로부터 4년후인 B.C. 586년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두로 성을 포위하였고, 13년 후 B.C. 573년에 이 해변 도시는 멸망하였습니다. 하지만 섬에 있는 도성은 함락시키지 못했고, 그 후 241년 동안 두로의 섬 도성은 안전하였기 때문에, 그 성읍이 완전히 파멸될 것이라는 에스겔의 예언은 빗나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B.C. 332년에 알렉산더 대제가 이 현장에 등장하여 결국 섬 도시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옛성의 무너진 것들을 이용하여 해변에서 섬까지 잇닿는 다리를 건설하기까지 했고, 이러한 과정 과정에서 알렉산더는 해변을 문자 그대로 말끔히 쓸어 버렸습니다 (수 년 전에 미국의 고고학자 에드워드 로빈슨은 고대 두로의 해안 부근에 연결된 바다 밑에서 40-50여 개의 대리석 기둥들을 발견한 바 있습니다.)

  7개월간의 포위한 후 알렉산더는 섬 도성을 장악하여 파멸시켜 버렸고, 이후 그 해안지역은 마을 어부들이 그물을 널려 말리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로는 하루에 10,000갤런 정도의 신선한 물을 내뿜는 샘으로 알려진 로즈레인(Roselain)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결코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2) 여리고 

  여호수아(기록연대 1450년 경) 6장을 보면 여리고 성의 함락과 그에 따른 도성의 파멸에 관한 기록이 있고, 이 사건 직후 여호수아는 이 무너진 성읍에 관한 세 가지의 예언을 한 바 있습니다.

  * 여리고 성은 한 사람에 의하여 다시 세워질 것이다. 

  * 그 성을 재건하는 사람의 장남이 공사 시작 때에 죽을 것이다. 

  * 공사가 완공하였을 때 그의 막내 아들이 죽을 것이다( 수 6:26). 

  이로부터 약 5세기 후인 B.C. 930년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하였는데, 그가 터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 아비람이 죽었고, 그가 문을 완공하였을 때 막내 아들 스굽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참조. 왕상 16:34). 

 

3) 니느웨(나 1-3장) 

 요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요나라는 히브리 선지자로 하여금 니느웨가 회개하도록 전하게 하심으로써 그 사악한 도성을 파멸에서 구하셨지만, 그 성읍 사람들은 곧 다시 악행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B.C. 650 년경에  나훔이라는 다른 선지자는 니느웨가 끝내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을 할 즈음에 니느웨는 전혀 함락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성벽의 높이가 30m나 되고 그 폭이 넓어서 그 위로 병거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으며 성의 둘레는 96km나 되고 1,200개 이상의 견고한 망대들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훔의 예언이 있은지 불과 40년도 못 되어 니느웨는 멸망하였습니다.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군이 성을 약 2개월간 포위한 후, B.C. 612년 8월에 성벽을  뚫고 쳐들어왔기 때문인데 함락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내 반역자들이 있어 성의 상수도 공급을 밖으로 유출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파멸 현장이 얼마나 극심하였던지, 알렉산더 대제는 한때 강력한 건축물이 서 있던 그곳에 군대를 끌고 행진해 들어갔을 때, 거기에 성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4) 예루살렘 (마 24:1-2; 눅 19:41-44, 21:20-24)

 여기에 인용된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예루살렘이 파멸되고 시민들은 학살당하며, 성전이 완전히 무너져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후 40년도 채 안되어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A.D. 70년 2월, 로마장군 티투스(Titus)는 80,000 병력과 함께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약 5년 전 시작된 반항 세력을 진멸하고자 하였고, 그 해 4월에 티투스는 포위 작전을 강화하였습니다. 성 안에 고립된 사람들의 절망에 빠져 여자들은 자기 아들들을 잡아 먹는 일까지 발생하였고, 남자들은 새 똥을 서로 먼저 먹으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이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결국 그해 9월에 성은 정복되고 학살이 시작되어 약 5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 당했습니다 결국 성전은 초토화되었고 성전터는 파헤쳐졌으며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C. 특정 인물에 관한 예언들 

 1) 요시야 

  열왕기상에 보면 이스라엘의 악한 왕 여로보암과 관련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하여 유다에서부터 벧엘에 이르니 마침 여로보암이 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고” (왕상 13:1-2) 

  이 일은 B.C. 975년에 있었던 일인데, 이후 약 350년이 지난 B.C. 624년에 이스라엘의 새 왕인 요시야가 행한 다음과 같은 조처를 볼 수 있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묘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묘실에서 해골을 취하여다가 단 위에 불살라 그 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왕하 23:15-16). 

 

2) 고레스 

 선지자 이사야는 바사(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사 44:28) 

 이사야는 이를 기록한 시기는 B.C. 712년경입니다. B.C. 606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많은 유대인들을 그의 성읍으로 잡아갔고(참조. 시 137편) 70년간 이들은 외국에서 지내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것이었다(렘 25:12, 29:10). 그러던  중 B.C. 536년에 기적이 일어났다. 선지자 에스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스 1:1-2).  

 이사야는 고레스왕이 유대인들의 귀향을 허락할 것과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할 것을 그 일이 일어나기 176년 전에 이미 예언한 것입니다. 

 

 

3) 알렉산더 대제 

 다니엘이 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다니엘8:3-8에 언급된 수염소가 곧 알렉산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한 최초의 인물로, 그는 B.C.334년 봄에 헬레스폰트를 건넜고, B.C.333년에는 잇수스 전쟁에서 페르시아 군대와 접전하여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에 당도했을 때 문에서 대제사장을 만났는데 그는 알렉산더의 대 페르시아 승전이 이미 220년 전인 553년에 다니엘에 의하여 예언된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깊은 감동을 받은 알렉산더는 대제사장에게 경배를 하고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4)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알렉산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안티오쿠스는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다니엘 8:9-14  에 확실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안티오쿠스는 B.C.167년에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시리아의 장군으로서 유대인을 증오하던 피에 굶주린 사람이었는데, 그는 성전 안의 지성소까지 들어가 제단 위에서 돼지를 잡아 바침으로써 성전을 더럽히기까지 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미 약 386년 전에 이것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5) 예수님

 *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로부터 오실 것이다(민 24:17-19).

 *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될 것이다(창 12:3 ;17:19, 민24:17).

 *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다(미 5:2).

 *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다(사 7:14).

 *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는 상세히 예언되어 있다(단 9:25).

 *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의 선두주자에 의해서 선포될 것이다(사 4:3-4).

 * 메시야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다(사 9:6).

 * 그는 어린 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내실 것이다(호 11:1).

 * 그는 고난을 받고 속죄를 이루실 것이다(사 53장).

 * 그는 나귀의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것이다(슼 9:9).

 *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 쓸개즙과 식초가 주어질 것이다(시 69:21).

 * 그의 뼈는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시 43:20).

 * 사람들은 그의 옷을 나눠 갖기 위하여 제비를 뽑을 것이다(시 22:18).

 * 그는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기록된 어떤 말들을 할 것이다(시 22:1).

 *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질 것이다(시 16:10).

 * 그리스도는 친구에 의해 배반당한 것이다(시 41:9).

 * 그는 은 삼십에 팔릴 것이다(슼 11:12).

 * 그는 거짓 증인에 의해 모함받을 것이다(시 35:11).

 * 그는 침 뱉음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맞을 것이다(사 50:6).

 * 그는 이유없이 미움을 받을 것이다(시 35:19).

 * 그는 멸시와 조롱을 당할 것이다(시 22:7,8)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예수님에 대한 크고 작은 예언은 예수님이 오시기전 최소 400년 이상 이전에 기록된 것인데, 이는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예언들이 성취되었음을 입증하는 구절이 무수히 많습니다. 고고학적으로 검증된 성경의 기록연대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성취된 예언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성경의 예언이 분명히 이루어졌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아니야, 예언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성경이 그것을 보고 조작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신가요?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런 의혹은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언을 기록한 성경의 기록 시기가 실제로 그것이 성취된 사건이 발생한 시점보다 앞서 있음이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분명히 밝혀져 있고, 이를 반박할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분명히 근거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노스트라다부스나 진 딕슨 같은 예언자들의 예언도 틀린 경우도 상당히 많을 뿐 아니라 해석 자체가 애매모호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고, 처신을 잘하면 악재를 피해갈 수 있다는 식의 두리뭉실하고 조건적이며, 뜬구름잡는 식의 무당 예언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예언은 조건적이지 않습니다. 애매호호하지 않습니다. 두리뭉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직설적이고 단호합니다. 1분 1초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람의 머리로  특정한 개인의 사적인 운명도 아닌, 국가와 민족,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정확하게 예언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이는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반증하는 근거입니다. 


 여기까지 객관적인 증거를 살펴보았음에도, 아무 근거도 없이 '고고학적으로 맞다고 하지만, 내가 직접 겪지 못했으니 성경은 후대에 조작된 것이다'는 억지 주장을 버리지 못한 분이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은 정말로 성경을 믿는 것이 불가능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쓰여지던 시대에 살지 못했고, 그렇게 기록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분명한 역사적 근거가 있음에도 무시한다면,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여러분과 지금 제가 살고 있는 현세대에 성취되었고, 성취되고 있으며, 성취될 예언을 알아보면 되겠죠? 만일 이것까지 보여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겠다는 분은, 건전한 회의론자가 아닌 비합리적인 회의주의 신봉자일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수백가지가 아니라 수만가지 증거를 들어도 믿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에 결코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최근 성취되었거나 진행 중인 예언,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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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4. 성경 내용 자체의 신뢰성

- 성경의 내용에 자체적인 모순이나 오류는 없는가?

-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는가?

- 현재 남아 있는 예언과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금부터는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현세대에 성취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예언,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현 세대에 가장 확실하게 성취된 예언은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회복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습니다. 모세라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에 의해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마친 유대인은, B.C. 1020년 여호수아라는 리더를 앞세워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에 입성합니다. 이후 사울왕이 왕국을 이루고 다윗왕이 왕국을 통일했으며, 솔로몬에 이르러 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B.C. 932년경, 솔로몬왕이 사망한 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고,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남유다는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B.C.63 년 경, 로마(폼페이우스)에 의해 점령되었고,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 민족은 뿔뿔이 흩어져 전세계를 유랑하는 수난의 세월을 겪게 됩니다. 

 이후 2000여년 가까이 전세계를 떠돌며 2차 대전의 대학살과 같은 비참한 현실을 겪던 유대인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시온주의(팔레스타인으로의 회귀) 운동이 일어나고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의 건설 보장이 약속되어 UN의 승인하에 1948년 기적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수립하게 됩니다. 이후 영토 분쟁을 빌미로 주변의 7개 아랍국가와 제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지게 되고, 여기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80%를 차지하였고, 팔레스타인인은 30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하여 현재까지 끊임없는 민족적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세계 역사상 나라가 완전히 망하여 민족이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2000여년을 유랑생활을 하던 민족이 다시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건국한 예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스라엘'이 유일합니다.

 상식적으로도 완전히 망한 나라, 완전히 망하여 뿔뿔이 흩어진 민족, 그것도 600만이라는 엄청난 대학살을 겪은 유랑 민족이 어떻게 아무 힘도 없이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건국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단순한 우연이거나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A. 이스라엘의 건국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재건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멸망당하기 전 예수님은 예수님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라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 (누가복음 21:20-24) 


 이 예언은 A.D. 70년에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로마 장군 타이터스는 잔인하게 반란을 진압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처형하였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고,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였으며 성전을 불살랐습니다.  

약 1천여 명의 유대 군인들과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마사다의 광야 요새에서 여러 달 동안 로마 군대에 대항하여 버텼지만 결국 A.D.100년에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나라에 흩어졌고, 이스라엘 본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그대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온 땅에 흩어질 것과, 훗날 고향 땅으로 돌아와 나라를 건국할 것이라는 예언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2500년 전에 기록된 성경 곳곳에 '너무나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예레미아 16:13~15) (기록 연대 B.C 627 - 580)

 

여호와께서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 보내실 그 여러 민족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 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 (신명기 4:27~30) (기록연대 B.C. 1410 - 1395)

 

전에는 내가 그들이 사로잡혀 여러 나라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리라.” (에스겔 39:28) (기록연대 B.C. 593 - 571)



B. 이스라엘의 회복

 불과 반 세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 2500여년전에 기록된 성경에 한 군데도 아닌 여러군데에서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어떻게 회복될지에 대한 예언도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이후, 팔레스타인 땅은 이 예언대로 황폐한 곳이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1870년대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한 후 그 곳에 대해 언급한 바는 '무서운 황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초목을 볼 수 없었으며, 침식, 악화되는 지역, 말라리아의 습지대 뿐이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20세기가 되기 전까지 그 땅에 사는 사람은 소수의 유랑하는 유목민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황폐한 땅이 옥토가 될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황무지가 옥토로 변할 것이라고 2500여년 전 에스겔서를 통해 예언한 바 있고, 너무나 황당하게만 생각되었던 이 예언은 현재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로 성읍들에 거하게 하며 빈 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으로 많게 하되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에스겔 36:8,9,10,11,34,35)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에 채우리로다” (이사야 27:6)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에 대규모의 조림사업이 이루어져 나무가 국토를 덮었습니다. 습지대에서는 물을 빼내었으며 모래 언덕은 초목으로 단단해졌고 토질은 개량되었으며 방대한 관개 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부터 1970년까지 강수량이 550%가 증가했고, 황무지가 드넓은 초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농업은 현대화되었고, 옥수수, 밀, 목화, 땅콩, 사탕 무우, 그리고 견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전체 식량의 70%이상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세계 제2의 포도산물 생산국이고, 이스라엘의 오렌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포도, 바나나, 대추 야자, 레몬,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과일들이 막대한 양의 채소와 아울러 재배되고 수출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불과 반 세기전의 예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루어진 예언입니다. 앞서 살펴본 고대 예언을 아무리 막무가내로 조작이라고 부인하신다고 해도 불과 반세기전에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고, 이에 대한 사료도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 예언까지도 조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경의 내용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무리 억지로 부인을 하려고 악을 써서 노력을 해도 도무지 부인을 할 수 없을 정도록 명확하게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C. 현재의 예언

그래도, 악착같이 부인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2012년 현재 진행 중인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에스겔 38,39장의 곡과 마곡의 전쟁과 관련된 예언입니다. 우선 이 예언을 개략적으로 확인해보고 성경 구절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에스겔, 스가랴, 시편 등에는 '마지막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이 고토로 이동하여 나라를 재건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고(앞서 살펴보았죠?) 이는 1948년 5월 14일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역사상 유례없이 평안하게 거하는 시기가 찾아오게 되는데(현재입니다), 이 때가 되면 이스라엘이 전 세계의 관심과 골칫거리로 전락하게 될 거라는 에언이 스가랴서에 나와 있는데, 이 무렵 이스라엘 주변의 수많은 아랍 나라(이슬람 세력)들이 동맹을 맺어 홀로 고립된 이스라엘을 진멸하기 위해 공격하게 되는데, 이 때 러시아도 이 전쟁에 '맹주' 역할을 자처하며 이스라엘을 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때 이 연합국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를 러시아와 이란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이스라엘이라는 조그만 나라가 혼자서 세계 2위의 군사 강국인 러시아 하나와 전쟁하는 것도 '게임이 안되는' 상황인데, 러시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의 수많은 아랍 동맹국들까지 가세한다면 아무리 이스라엘이 목숨 걸고 싸운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완전히 반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도움으로, 이스라엘 혼자 러시아를 비롯한 모든 연합군을 완전히 진멸하여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고, 이 연합군의 무기를 무려 7년간 불태울 것이라고 상세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에서 패배한 연합군의 시체를 '하몬곡의 골짜기'라는 곳에 매장할 것이고 그 기간이 7개월이 걸릴 것이며, 여기에 쌓인 시체를 수많은 동물들이 와서 뜯어먹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에스겔 38,39장의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3.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4.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5.그들과 함께한 바 방패와 투구를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6.고멜과 그 모든 떼와 극한 북방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내리라.7.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대장이 될찌어다 8.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9.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많은 백성이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으리라


 마곡과 로스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현재의 러시아 지방을 의미하고, 메섹과 두발, 고멜, 도갈마 지역은 일반적으로 현재의 터키 지방입니다. 바사는 페르시아 즉, 현재의 이란이며, 구스는 에티오피아 붓은 리비아를 포함한 알제리, 튀지니, 모로코로 보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러시아가 아랍 연합군의 맹주 역할을 하여 전쟁을 주도하여 평안히 거하는 이스라엘을 칠 것이라는 예언이 나타나 있습니다. 


17.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18.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가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19.내가 투기와 맹렬한 노로 말하였거니와 그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20.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21.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의 칼이 그 형제를 칠 것이며 22.내가 또 온역과 피로 그를 국문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떼와 그 함께한 맣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 23.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39:1.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3.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4.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지라 내가 너를 각종 움키는 새와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리니 5.네가 빈 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엿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6.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7.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8.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볼찌어다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날이 이날이니라 9.이스라엘 성읍들에 거한 자가 나가서 그 병기를 불 피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살과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칠 년 동안 불피우리라 10.이와 같이 그 병기로 불을 피울 것이므로 그들이 들에서 나무를 취하지 아니하며 삼림에서 벌목하지 아니하겠고 전에 자기에게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의 것을 늑탈하리라11.그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편 사람의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것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장사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 12.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13.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장사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그들이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 순행하며 장사할 사람으로 더불어 지면에 남아 있는 시체를 장사하여 그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일곱 달 후에 그들이 살펴보되 15.순행하는 자가 그 땅으로 통행하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16.성의 이름도 하모나라 하리라 그들이 이와같이 그 땅을 정결케 하리라 17.너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오라 내가 너희를 위한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큰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서 고기를 먹으며 피를 마실찌어다 18.너희가 용사의 고기를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찐 짐승 곧 수양이나 어린 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찌라 19.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토록 마시되 20.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불리 먹을찌니라 하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이스라엘은 이 엄청난 연합군을 완벽하게 물리치고 대승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이스라엘의 승리가 가능한 이유는 이러한 말도 안되는 기적적인 승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39:6,7절)


2500여년 전에 기록된 이 예언이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이 예언은 2012년 현재 진행 중인 예언이기 때문에 의심에 찬 여러분이 굳이 구닥다리 고문서를 뒤지지 않아도 됩니다. 최신 인터넷 국제 뉴스나 신문을 뒤져보시면 이 예언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예언이 아직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과 너무나 유사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중동 정세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란의 핵개발에 따른 이스라엘과의 첨예한 대립, 이란과 러시아의 군사적 동맹, 아랍 세력과 이스라엘의 마찰로 인한 이스라엘의 국제적 고립 및 왕따(?)

 이란의 핵개발 문제 때문에 현재 이스라엘의 벤자민 네탄야후 총리는 필요하면 자신의 다음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이란 핵시설을 독자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고, 이란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이보다  전 '테헤란을 공격하는 것은 곧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교전으로 아랍 세력과 이스라엘의 사이는 날로만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에스겔 38:3,4절의 말씀을 보면,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게 너를 대적하여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어 전쟁을 이끌 것이라는 예언이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불가피하게 참전할 수 밖에 없음을 시하사는 내용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주변 접경국인 시리아와 끝없이 마찰을 빚고 있으며, 최근에는 하마스와의 전쟁을 빌미로 가자지구에 맹렬한 공습을 가한 것도 모자라 지상군 투입까지 엄포하고 있어, 주변의 아랍 세력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 상황입니다. 

 물론, 에스겔서의 예언이 성취되려면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빌미가 되건 어떤 계기로 인해 아랍 연합군이 형성되고 러시아가 맹주로 참전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본격적으로 예언이 성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예언이 성취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분명한 것은 2500여년 전에 기록된 한 선지자의 예언이 오늘날의 국제 정세와 놀랍도록 유사하게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고,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경계심을 가지고 향후의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 혹시, '에이 그거 뭐 어쩌다가 들어맞을 수도 있지'라는 끝없는 회의를 제기하시는 분도 분명히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그런일이 어쩌다가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이 지금 2500년 후의 국제 정세를 한 번 예측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설령, 여러분이 이 사건이 우연히 맞아떨어졌다고 끝까지 우긴다고 해도, 만일 도저히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스라엘이 고립무원 상태에서 러시아를 포함한 대연합군에 완승을 거두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때는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경에서 언급된 수많은 예언들을 역사적으로 검증해보았습니다. 과거에 기록되었던 수많은 예언들은 이미  확실하게 성취되었고, '마지막 때'에 일어날 것이라고 언급된 이스라엘의 회복과 전쟁에 대한 예언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진행 중입니다. 수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의 예언이 현재의 인류의 역사를 이토록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은 성경이 결코 사람이 마음대로 꾸며낸 종교 경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반증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앞으로 성취될 성경의 예언(부분적으로는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앞으로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신 분은 반드시 다음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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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 예수님을 믿으라는 사람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은 2000여년 전에 쓰여진 고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꾸며낸 '역사 소설' 내지는 '종교 경전' 아닌가?

- 왜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성경에 기록된 사실과 내용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과연 타당한가? 

- 다른 종교에도 오래 전에 기록된 종교 경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인 일들이 기술되어 있는데 왜 성경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어야 하고, 다른 종교는 단순히 '신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4. 성경 내용 자체의 신뢰성

- 성경의 내용에 자체적인 모순이나 오류는 없는가?

-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는가?

현재 남아 있는 예언과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금까지는 현재까지 성취되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다가올 앞날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언하고 있을까요?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성경에서는 지구상의 안락한 삶이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물론 그 때는 하나님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인류는 종말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고, 그 때에는 유사 이래 최대의 '7년 대환란'을 겪게 될 것이며, 이 기간이 끝나면 예수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다고 못박고 있지만, 말세가 될 때 나타나는 징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며 대략적인 시기는 판별할 수 있으므로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세에 대한 예언의 해석은 다니엘, 에스겔, 마태복음, 고린도전서, 데살로니가전서, 디도서, 이사야, 예레미야, 요한계시록 등 수많은 책에 기록되어 있고, 여기에 기록된 내용은 앞서 살펴본 에스겔 38장의 예언처럼 분명한 것도 있지만, 온갖 비유와 상징적인 표현이 가득한 요한 계시록의 예언도 있어 '종말론'에 대한 해석은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첨예한 논란거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장 심한 논란 거리가 되는 것은, 신실한 성도가 환란기를 전후하여 하늘로 들려 올라 간다는 '휴거'인데, 이 현상이 '7년 대환란' 이전이냐, 환란 중간이냐, 환란 이후냐에 따라 첨예한 대립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상징이 아닌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교회와 성도의 휴거가 7년 대환란 이전이나 환란 중간기 때 있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론입니다. 따라서, 제가 지금 제시하는, 일반적인 종말 예언 해석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략적인 순서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말세가 되면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종말의 징조가 나타난다. (마태복음 24장,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 갈라디아서 등)

 - 전쟁과 지진, 기근, 전염병의 창궐

 - 하늘에 이상하고 무서운 징조의 출현

 - 유대인의 고토 귀환과 이스라엘의 건국

 - 적그리스도의 출현, 배도

 -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 

 - 이단들의 득세, 세상적인 향락과 쾌락주의의 만연

 - 배금주의, 인간성 상실, 선을 행치 않고 불의을 일삼음, 사랑이 식음

 -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함

②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 안에 내주하여 악을 막는 자인 성령이 이 땅에서 거두어짐. (살후 2장) 

③ 러시아과 아랍 동맹국들에 의한 이스라엘의 침략(겔 38장39장) 

    이 무렵을 전후하여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휴거(공중으로 들려올림)될 것으로 '추측'됨(살전4:14-18, 고전15:51- 58, 딛 2:13) 

④  적그리스도가 세계의 패권을 장악 (단7:24,8:25,9:27,11장,12:11 계6장) 

⑤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 평화조약을 맺음 (단9:27, 겔38:8) 

⑥ “세계정부”가 적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그 독재자의 세계지배의 초기 단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계17장)

    매매 수단인 666 표를 손이나 이마에 받게 하게 이를 받지 않는 사람은 죽임. 

⑦ 대환난이 시직될 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하기 시작(계6장 7인의 심판) 

⑧ 7년 대환난 기간의 “중간지점”인 3년반에 일련의 극적 사건들이 발생한다.  

  1) (계12:7-13) 

  2) 계6:17,8:1.9:1,12  

      계8-9장(일곱나팔의 심판) 

  3) 적그리스도가 그 악마적인 성품과 극악한 목표를 드러낸다. 

     (단 9:2,살전2:4,계8-17장) 

     (마24:15-24, 계12:14-16) 

     (계14장, 계7:9-17,13:15,계11:7-12) 

⑨ 7년 대환난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는 또 다른 일련의 무서운 사건들이 있다.  

   1)일곱대접의 심판(계16장) 

   2)아마겟돈 전쟁 

      (계16:14-16,슥12:3,13:8-9,14:1-2) 

      (계13:5-17,14:20,16:14,17:16-17,19:11-15,욜3:10-16) 

      (계19:20) 

      (계20:1-3) 

      (마 25:31-46) 

⑩ 그리스도의 천년통치가 시작 (계20:4-6) 

    (시2:6,사9:6-7,11:6-7,9, 42:3-4, 65:20-25, 렘3:17, 슥14:16, 롬8:21-23) 

⑪ 천년 왕국 후의 사탄의 마지막 반역, 그리고 패배와 처형 (계20:7-9,20:10) 

⑫ 백보좌 심판(계20:11-15) 

⑬ 그 나라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다시 하나님께 돌려짐(사12:12,고전15:24-28) 

⑭ 현재의 하늘과 땅은 불타 없어지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설(벧후 3:10,계 21:1-7,22장)  


 처음 접하시는 분은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라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여러분이 그토록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성경의 수많은 내용들이 역사적 진실임을 확인했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상식적으로 결코 있을 수 없는 이스라엘의 건국과 메마른 황무지가 옥토로 변하는 기적적인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에스겔서에 예언된 3차 중동전쟁의 서막이 무르익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렇게 제시된 내용들이 정말로 허황된 이야기일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위에 언급된 말세의 징조들이 너무나 뚜렷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의 일련의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세가 되면, 한마디로 '죄악'과 '쾌락'이 극도로 치닫고, 또한 각종 자연 재해와 알수 없는 전염병들이 창궐합니다. 이 상황에서 앞에서 살펴 본 곡과 마곡의 전쟁이 발생하고, 이 때를 전후해서 신실한 성도는 하늘로 들려올라가 이후에 있을 대환란의 기간을 피하게 됩니다. 말세가 되면, 적그리스도라는 자가 출현해서 '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는데, 다니엘서의 예언에 따르면, 이 인물은 현재의 유럽 연합에서 출현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대환란기 7년의 전반기 즉, 전 3년 반까지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후 3년 반이 지나면 본색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 때 손이나 이마에 신분인식과 매매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666 표를 받지 않는 사람은 죽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이 표를 받는 사람은 지옥행이라고 경고하고 있으므로 결코 이 표를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후 3년 반에 이르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각종 자연재해와 재난이 닥치게 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환란기간이 끝나면 예수님이 재림을 하는데, 이스라엘의 '므깃도' 지역에서 사탄의 세력들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향한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패하고, 이후 예수님이 이 땅을 다시 천년동안 통치하게 됩니다. 천 년이 지나고 나면 사탄이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지만 결국 패배하고, 이후 모든 인류는 예수님 앞에서 심판을 받으며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으로 갈리게 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종말에 대한 해석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천년 왕국의 천년을 문자 그대로 천년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징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7년 대환란의 끔찍한 재앙들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상징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게돈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성경을 무조건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려고 하면 큰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너무나 다양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것이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완벽하게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앞으로 닥칠 수많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종말에 관한 예언은 그냥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서두에 언급한 '말세의 징조'가 너무나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피부로 느끼고 계시겠지만, 지금 전세계적으로 너무나 끔찍한 죄악과 범죄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불과 십여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엽기적인 토막 살인, 초등학생 성범죄, 빈번한 자살, 음란, 폭력 등의 범죄가 난무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오히려 하도 이런 뉴스에 익숙해져서 웬만한 범죄 기사에는 무감각해져버릴 정도입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를 합법으로 인정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마약과 폭력, 범죄는 끝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범죄는 유사 이래 늘 있어왔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대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죄악의 홍수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에 무감각해져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세가 되면 거짓 선지자와 배도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안상홍, 문선명, 정명석 등의 이단이 40여명이나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가짜 복음이 판을 치고 있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 통합과 WCC 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기독교인들의 수는 날로만 줄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전지구적인 지진과 쓰나미,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도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SARS나 신종 플루와 같은 유전자 변형에 의한 전염병이 새로 발생하고 있으며, 항균제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슈퍼 박테리아도 날로만 증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에서 신분 확인과 개인정보 및 신용 결제가 가능한 미국에서 생체 인식 바이오 칩(베리칩)이 개발되어 실제로 손이나 이마에 삽입이 시작되었고, 멕시코에서는 이미 상당히 보급된 상태입니다이를 요한 계시록에서 언급하는 666 짐승의 표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스마트폰의 사용이 확대되고 개인 정보 유출의 문제를 해결하고 결제 수단의 용이성을 빌미로 결국 아주 이른 시간 내에 이 베리칩의 삽입이 전세계로 퍼지게 될 것입니다. 결국 머지 않아 세계는 정보화의 발달로 완전한 신용화폐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텐데, 이 상황에서 이 칩이 없다면 결국 요한 계시록에 예언된 대로 '매매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어 사회에서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편리함이 주는 유익 때문에 칩을 받겠지만, 결국은 이 칩이 '빅 브라더'에 의한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어 사람들은 기계적인 객체로 전락할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이 모든 예언과 더불어, 성경에서는 말세가 바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시기가 되면 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의 회복은 1948년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고 지금이 바로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세대인 것입니다. 


 말세와 종말에 대한 내용은 너무나 다루기 방대해서, 대략적인 내용만 다루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마지막 때임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조금 더 확실한 징조가 나타나면 믿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 빨리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기 바랍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동영상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poongwoon.tistory.com/102 )


 요한계시록, 마지막 때, 재림, 휴거 - 페리스톤 목사 (시드로스) 

 

 

 

 마지막 때에 대한 이해 - 시드로스의 슈퍼네츄럴 (한글자막) 

 

 

 

 마지막 때에 대해 - 페리 스톤 목사님 인터뷰 

 

 

 

 김용의 선교사 - 말세의 때, 복음을 잃어버린 세대! 

 

(복음이 진실이라면) 가장 불쌍한 두 가지 인생 유형


(1) 내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죽음 이후에 어떤 세계가 있는 지를 몰라 방황하다 죽는 인생

(2) 모태 신앙이지만 복음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채 종교 생활만 하다 죽는 인생(시편49).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는가? - 벤자민 오 목사

 

(1) 전쟁, 기근, 지진 등 많은 재앙이 있을 것이다.

(2) 복음이 모든 민족과 땅끝까지 전파될 것이다.

(3)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예수님은 신랑으로 다시 오신다. 신부는 예수님의 피로 몸을 씻어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옳은 행실로

세마포(의복)를 입어야 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예수님)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36)

 

 

 이스라엘의 회복과 교회, 예수님의 재림 

 

 

 

 천국은 어떤 곳인가 / 휴거의 때 / 예수 재림의 날 

 

성경은 천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설명해도 우리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낙원이며 밤이 없고(계22:5)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미국그렉 로리 목사는 환란 전 휴거 견해를 가졌다. 

 

 

 주인의 귀환 - 다니엘 김 선교사 - LTChurch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 메시지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시대에 잠든 성도를 깨울 수 있는 메시지는 단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재림을 전하지 않는 것은 비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 다니엘 김 선교사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눅 12:42)

 


지금까지 오랜 시간동안 '성경'을 기독교의 경전이 아닌, 중동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온 고대 문서의 관점에서 무미건조한 역사적, 고고학적 잣대를 통해 검증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성경을 막연하게 다른 종교의 경전 내지는 믿기 힘든 신화로 점철된 책 정도로만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보니 어떻습니까?

 성경은 여러분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그저 그런 '신화'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두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저그런 수많은 종교 설화나 고대 기록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역사성과 사실성이 입증된 역사서입니다. 


 어느 설화나 종교 경전에서 지독하게 세세한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까?

 어느 설화나 종교 경전에서 기록된 사건과 시대적인 배경과, 지명, 인명 등이 역사적으로 자신있고 구체적으로 검증되었습니까?

 어느 종교 경전이 성경만큼 문서학적, 고고학적으로 신뢰할 만큼 이른 시기에 기록되고 검증되었습니까?

 어느 종교 경전에서 제시한 기적과 초자연적인 사건들이 '역사속에서 실제로 검증'되었습니까? 

 어느 종교 경전에서 앞으로 일어날 한 민족과 국가 개인의 운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감히 예언을 하고, 성취됨이 역사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확인되었습니까?

 어느 종교 경전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단군 신화가 이 모든 테스트를 통과했나요? 불경은 어떻습니까? 코란은 어떻습니까? 사이비 교주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교리는 어떻습니까? 


 단순히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내용이 있다고 다 똑같습니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검증의 잣대를 갖다대면 성경을 제외한 그 어떤 '종교 경전'이나 '신화'도 이 깐깐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막연하게 다른 신화나 종교 경전과 동급으로 취급했다면, 이런 객관적인 검증의 과정을 몰랐고, 성경이 그 정도로 치밀하고 정확한 역사를 다뤘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종교는 결국은 다 같은 것이라고. 종교의 모든 가르침은 일맥 상통한다고. 그래서 결국은 산에 올라가는 길은 다를 수 있어도 결국 정상에는 똑같이 도달할 수 있다고.

 여러분은 종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종교를  단순히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얻고 힘들 때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사상 체계라고 정의한다면, 위의 말은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도 다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고 악을 멀리하고 마음의 평안을 누릴 것을 가르칩니다. 종교의 정의가 그렇다면, 누구나 자신의 뜻대로 적당히 '사상 체계'를 정비해서 '아름다운 '종교'를 창시할 수 있고 그들은 서로 통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와 예수님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종교나 사상체계가 결코 아닙니다. 기독교와 예수님은 종교나, 인간의 사상의 산물이 아닌 '살아있는 역사'이자 '진실'입니다.  모든 종교가 일맥상통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배타적인 이유는 오직 기독교만이 인간이 마음대로 꾸며내지 않은 '역사적인 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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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3. 우주의 기원에 관한 비과학성

-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현대 과학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성경의 역사성과 진실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그냥 신비한 이야기가 난무하는 수많은 고대 종교 경전 중의 하나'라는 막연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분명히 깨달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아직 여러분이 성경과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아마 '과학'이라는 거대한 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이 단순한 신화가 아닌 역사적 진실을 기록한 책이고, 정말로 신적인 존재가 개입되었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현대 과학과 완전히 모순되는 성경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 또한 결코 어설프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와 있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사실로 입증된 과학과 배치되거나 모순된다면, 이는 성경이 거짓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거나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지식과 성경의 내용과는 완전히 '반대'되거나 상호간에 결코 타협할 수 있는 상당한 모순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보입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현대 과학에서는 우주는 어느 특정한 과거 시점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폭발'에 의해 형성되어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거나(빅뱅 이론), 혹은 우주에는 시작과 끝이 없이 존재해 왔으며, 물질이 연속적으로 형성되어 균일한 밀도를 가지고 있다는 정상 우주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원시 대기에 포함된 몇가지 원소들을 재료로 하여, 전기 자극이 가해져 생명체의 구성성분인 아미노산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조합되어 원시적인 생명체가 출현하였으며, 이들이 끝없는 진화를 통해 각종 생물로 분화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이 모든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이야기 합니다. 

 비단 우주와 생명의 기원 뿐만 아니라, 천문학, 물리학, 지질학, 생물학, 지구과학, 인류학 등 수많은 과학의 영역에서 현대 과학은 성경을 부정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아무리 성경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문서임을 알았다고 해도, 우리는 합리적으로 성경이 진실임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과연 성경의 내용이 현대 과학과 정말로 상충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따져보겠습니다. 이 모든 영역을 다루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가장 핵심적이고 논란이 되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 그리고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우주의 기원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와 지구를 포함한 우주 만물은 대체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여러분과 제가 비록 전문적인 과학적 지식이 없다고 할지라도,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것들이 존재하는 데에는 어떤 '원인'이 있다는 것이죠. 간단하게 생각해볼까요? 여러분이 집에 있는 컴퓨터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군가가 '아 그건, 원래부터 아무 이유없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겠죠? 여러분 방에 컴퓨터가 있는 이유는, 여러분이 컴퓨터를 어딘가에서 사오거나 얻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 컴퓨터가 존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누군가가 컴퓨터의 부품을 조립했기 때문이고, 그 컴퓨터의 부품이 존재한 원인은 그 부속품의 재료가 되는 물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정말로 가장 기본이 되는 그 물질(분자나 원자 수준까지 올라갈 것입니다)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아무 이유없이 원래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비단 컴퓨터 뿐만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 물, 공기, 산, 들, 동물, 사람, 지구, 별, 은하...모든 우주만물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러한 만물과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두 가지 가설을 제안했습니다. 첫 번째 이론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빅뱅 이론과 나머지는 다소 생소한 정상 우주론입니다.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태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은하도 별도 원자도 없었고, 시간과 공간마저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간과 공간이 태어나는 시점을 우리는 대폭발, 혹은 빅뱅(big bang)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그 전에는 무(無)의 세계,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현대 우주론의 출발점은 1917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주창한 정적 우주론에 있었습니다. 정적 우주론이란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 정지 상태에 있다."는 이론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막상 우주에 적용해보니, 정지 상태의 우주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바깥쪽으로 혹은 안쪽으로 폭발하는 상태여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정지 상태의 우주론을 설명하기 위해 '우주 상수'라는 인위적인 상수를 도입하여 방정식을 의도적으로 수정합니다. 

 그런데 1916년에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면밀히 살핀 러시아의 수학자 프리드만(Friedman)과 벨기에의 천문학자 르메트르(Lemaitre)는 이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프리드만은 1922년 "우주는 극도의 고밀도 상태에서 시작돼 점차 팽창하면서 밀도가 낮아졌다"는 논문을, 르메트르는 1927년 "우주가 원시원자들의 폭발로 시작됐다"는 논문을 각각 발표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생각과 달랐던 그들의 논문을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아인슈타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1929년에 발생합니다.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Edwin Powell Hubble)이 은하들이 후퇴하고 있음을 관측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표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1931년 "우주는 무한하고 정적이다"라는 당시의 상식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우주상수를 도입했던 것을 철회하고 우주가 폭발하여 팽창한다는 이론을 받아들였습니다.

  초기 우주의 모습을 처음으로 계산해낸 과학자는 프리드만의 제자인 러시아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George Gamov)였습니다. 그는 1946년 초기 우주는 고온고밀도 상태였으며 급격하게 팽창했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또한 우주 초기에는 온도가 너무 높아 무거운 원자들은 존재할 수 없었고, 이때 생긴 수소(75%)와 헬륨(25%)이 현재 우주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948년 미국의 물리학자 랠프 앨퍼(Ralph Asher Alpher)와 로버트 허먼(Robert Herman)은 초기 우주의 흔적인 복사선(우주배경복사)이 우주 어딘가에 남아 있으며, 그 온도는 영하 268°C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즉, 허블이 발견한 은하들의 적색이동, 가벼운 원소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우주배경복사에 근거를 두고, 우주는 특정한 아주 오랜 과거 시점에 초고온, 고밀도의 한 점에서 폭발하여 시작, 형성되어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대폭발이론, 즉 빅뱅우주론입니다.






 그런데 호일(Fred Hoyle), 본디(Hermann Bondi), 골드(Thomas Gold)등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천문학과 교수들은 빅뱅이론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원시 우주에는 모든 물질(현재 우주의 모든 것)이 한 점에 모이는 초고온 초밀도의 특이점이 생기는데, 이를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므로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1948년 '정상우주론'(steady state cosmology)을 발표하였습니다. 

 정상우주론에서는 우주가 시공간적으로 균일할 뿐만 아니라 등방적이기 때문에, 우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같은 꼴이며, 우주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우주는 모든 방향으로 같은 비율로 늘어나기 때문에 허블 법칙도 만족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처럼, 관측사실과 잘 일치하고, 특이점을 피할 수 있는 정상우주론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빅뱅이론과 선의의 경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수모를 당하던 빅뱅이론을 지지할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1964년 벨연구소에 근무하던 독일 태생의 미국 천체물리학자 아노 펜지아스(Arno Allan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oodrow Wilson)이, 1948년 앨퍼와 허먼이 예언했던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것입니다.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영하 269.5°C(3.5K)로 예언과 1.5°C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이들은 허블의 우주팽창 이후 최고의 관측이라고 불리어지는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공로로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정상 우주론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발견이었습니다. 또한, 정상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우주 공간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이 '무'에서 생겨나 우주 공간을 계속 메울 것이라는 가설(물론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도, 물질은 새로 파괴되지도, 창조되지도 않는다는 열역학 제 1법칙에 위배되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정상 우주론은 현대 천문학에서 사장되어 버리고, 빅 뱅 이론이 우주의 기원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표준 모델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것 같지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해 빅 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과학적인 증거가 밝혀짐에 따라 정상 우주론은 폐기되고 빅 뱅 이론이 우주의 기원의 정설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빅 뱅 이론의 핵심은,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원래'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니라, '시작점'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정상 우주론은 우주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므로 자체의 원인이 없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뜬 구름 잡는 소리가 대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사실과 대체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의문을 제기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에 시작점이 있느냐 아니면, 시작점이 없이 원래부터 존재했느냐의 여부가 바로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라는 사실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 관계없어보이는 이 둘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칼람의 논증'이라는 논리를 알아야 합니다.

 칼람의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전제: 모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다.(앞서 예를 든 컴퓨터의 경우를 생각해보세요) 

   소전제: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다.

   결론: 따라서, 우주에는 원인이 있다. 


 대전제는 모두가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사실이죠? 우주론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대전제가 아닌 소전제였습니다.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느냐(즉, 과거에 우주의 시작점이 있었는가) 아니면, 원래부터 존재했느냐'. 빅뱅 이론이 과학적으로 확립되기 이전 고대 철학에서도 우주는 시작점이 없이 '원래부터 존재' 했다는 설과 '우주의 시작점과 원인이 있다'는 설이 대립을 빚었습니다. 따라서, 대전제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인정하더라도, 소전제에 대해서 의견이 갈렸기 때문에 우주에 원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 천문학과 물리학을 통해(빅 뱅 이론이 정설로 인정됨) '우주에 분명한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됨에 따라,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소전제가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는데,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주의 기원에는 원인이 있다는, '철학적 말장난'이 아닌,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입증된'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사실은 '무신론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 우주에는 시작도 원인도 없을 것이라는 가설을 주장한 사람들은 사실 무신론자들이었고, 이들이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이렇게 주장해야 아무 이유 없이 우주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신이 없다는 논리적인 결론을 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빅 뱅 이론을 반박하고, 무신론적 우주관에 합당한 설명을 하기 위해 그 이후에도 다양한 학설들(진동 우주론, 순환 우주론, 인플레이션 이론) 등이 제기되었으나, 이들 모두 과학적으로 입증된 증거는 없었고,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법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밝혀져, 흥미있는 다양한 학설들 중의 하나 정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빅 뱅 이론과 그에 의해 확증된 칼람 논증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 물질이 창조되기 시작한 어느 시점이 존재함을 의미하고 결국 이 시간과, 공간, 물질이 시작된 원인도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원인은 시간과 공간, 물질을 초월한 존재여야 하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신'자체의 원인은 무엇이냐고 말이죠. 하지만, 이 논리에는 결정적인 논리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하기 시작한'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이죠. '신'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비물질을 초월한 존재이고,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이 없습니다. 원래부터 존재한 '초월적 존재'이며 그 자체가 원인이자 결과인 존재이므로 이 논리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신의 속성은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속성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빅 뱅'은 과학적 사실이고, 창조론은 신화이기 때문에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고 배치된다고 이야기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구체적으로 어떤 물리학적 법칙으로 만드셨다는 이야기는 물론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빅 뱅 이론이 성경과 배치되거나 성경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고, 이는 분명히 우주에는 시작점이 있었고, 그 시작의 원인이 되는 초월적인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나타냄으로써, 빅 뱅 이론과 칼람의 논증에서 도출되는, '우주의 시작'과 '신의 존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과정이 '빅 뱅'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상호 모순이 아니라 상호 간에 지지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에는 무신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과학'을 동원하려 하였지만, 실제로 과학적 사실이 정확하게 밝혀짐에 따라 무신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오히려 '과학을 왜곡'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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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3.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 현대 과학에서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원시 대기를 재료로 전기적인 자극이 가해져 우연히 생명체의 구성성분인 아미노산이 형성되었고, 이들이 조합되어 원시적인 생명체가 출현하고, 이들이 끝없는 진화를 통해 각종 생물이 나타났고 사람도 이러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현대 과학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가?


 생명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진실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생명의 기원 =  진화론 = 과학적 정설 = 과학적 법칙', '성경의 창조론 = 비과학적 = 종교적 믿음 = 허구' 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자, 그렇다면 과연 현재까지 제시된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가설과 진화론은 정말로 과학적 진실이고 창조론은 허구인가에 대해서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A. 생명의 기원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개념은 아마 여러분도 중고등학교 과학시간에 접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원시 지구는 갖가지 화학 물질로 덮여 생명이 생성되는데 도움이 되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번개를 통해 에너지가 공급되자 생명을 만드는데 필요한 갖가지 재료를 포함하고 있는 '원생액' 속의 화학 물질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단순한 생명체가 출현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수십억년의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서서히 진화가 이루어져 고등한 생물로 발전하고, 서로 분화하면서 다양한 생물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시나리오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러시아의 생화학자 알렉산더 오파린이었습니다. 그는 1924년, 원시 지구에 존재하는 단순한 분자들이 진화하여 복잡한 분자와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가설을 발표했고, 이어 1928년 영국의 생물학자 홀데인은 원시 지구의 환경 속에서 활동하던 자외선이 당과 아미노산을 바다에 집중시켜 그 원생액으로부터 생명이 출현했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1955년, 시카고 대학의 스탠리 밀러에 의해 실험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이 실험은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도 널리 알려진 실험입니다.)

 밀러는 실험실 안에 원시 지구 환경을 재생하였고, 생명체의 '원료'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는 메탄, 암모니아, 물, 수소를 섞은 혼합물에 전기 자극을 가했습니다. 그 결과 생명체의 기본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단백질의 구성 요소)가 합성되었고, 이 이론은 빠르게 받아들여져 생명체가 생명이 없는 화학 물질에서 생성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인용되었습니다. 밀러는 이 실험 결과를 곧바로 사이언스(Science) 지에 발표하였는데, 그 충격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플라스크 안의 가스 조성은 초기 원시지구 대기의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고, 무기물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화합물인 아미노산이 추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험으로 생물이 화학물질로부터 무작위적이고 우연한 자연적 과정에 의해 생성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얻었다고 생각해서 온 세상이 흥분했고, 과학자은 밀러의 실험 결과를 '생명의 자연발생설'의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대략적으로 이 내용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생물의 원료가 되는 각종 재료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상태에 모종의 전기적인 자극(번개, 열 등)이 가해지니, 생명체의 기본이 되는 아미노산이 '뻥'하고 생겨났고, 이런 아미노산이 또 여러 자극을 받아서 계속 연결되어 단백질이 생겨나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어서 점점 복잡하게 발달되어 생명체로 진화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면 그럴싸하고, 과학적인 실험으로 입증되었으니, 아무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실험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지구의 초기 환경이 암모니아와 메탄과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고 오히려 실제 원시 지구의 대기의 조성과는 전혀 달랐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었습니다. 밀러가 이러한 조합을 이용한 것은 아미노산을 만들어내기 위해 유리한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성하기 위함이였습니다. 예를 들어, 질소나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로 실험하면 아미노산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죠. 

 1980년 이후로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은 원시 지구에 메탄이나 암모니아나 수소가 '조금도 없었음'을 밝혀냈습니다. 오히려 원시 지구는, 물, 이산화탄소, 질소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화합물을 가지고는 밀러와 동일한 실험 결과를 결코 얻을 수 없었고, 이는 이후의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기를 이용해서 실험을 하면 모종의 유기 분자가 생성되기는 했습니다. 오파린과 밀러의 가설을 추종하는 과학자들은 위와 같은 중대한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생명의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은 생성되지 않더라도 모종의 유기 분자가 생성되기는 하니, 이놈들이 어떻게 지지고 볶아서 생명체가 되었을 것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실제 원시 지구의 대기에 가까운 상태에서 실험을 해서 생성되는 물질은 '포름 알데히드'인데 이는 실험실에서 강력한 소독제로 이용되는 물질입니다. 생명체의 발생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단백질을 파괴하는 물질이었습니다.

 둘째로, 밀러는 합성된 물질을 냉각기로 바로 냉각시켜서 콜드트랩에 농축시켰는데, 원시 지구에 어떻게 그런 고효율의 냉각 장치가 있어서 합성된 물질이 다시 분해되지 않도록 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즉,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거나 근거없는 합리화였던 셈이죠. 

 셋째로, 설령 아미노산이 우연히 생성되었다고 해도 생명체가 형성되기에는 너무나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난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미노산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생명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아미노산이 수백 개 이상 결합해서 단백질이 되어야 비로소 세포의 한 구성성분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는 이 단백질 하나조차 비유하자면, 거대한 건물의 벽돌 한 장에 불과하므로 설령 아미노산이 우연히 생성되었다고 해도,이것들이 단백질로 합쳐지고, 단백질이 조합되어 세포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지나치게 큰 비약이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미노산은 구조적으로 L형과 D형 두 가지가 있는데,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은 모두 L형이지만,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고 밀러의 실험에 의해 추출된 아미노산은 L형과 D형이 각각 1:1이어서, 수백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이 밀러 실험 방식에 의한 L형 아미노산으로만 생성될 확률은 수학적으로 0에 가깝다는 치명적인 문제도 발견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밀러 자신도 자신의 실험이 발표된 지 38년이 지난 1991년에, "과거에 우리가 주장했던 원시 대양에서의 생명발생 학설은 이제와 생각하니 너무나 동화와 같은 이야기였으며, 태초에 생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실토했고, 이어 1993년 Time 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있었던 생명의 기원 학회에서 생물학자들에 의해 밀러의 이론은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현재 밀러의 실험은 정상우주론과 같이 과학적으로는 아무 의미없이 '사장되었고' 단지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실험의 하나로 전락한 상태입니다. 


 밀러의 실험이 폐기된 이후,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었지만 모두 근거가 없거나 황당한 내용을 다룬 것으로 사장되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을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화학적 친화설이 있습니다. 1969년 딘 케년은 아미노산이 올바른 순서로 저절로 연결되게 하는 모종의 내재적인 인력이 반드시 있으며, 바로 이를 통해 단백질 분자가 만들어지고 다시 거기서 살아있는 세포가 생겨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그럴싸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가설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은 정말로 아미노산이 다른 아미노산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는지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250개의 단백질의 서열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했는데, 아미노산의 순서는 화학적 친화와 전혀 무관함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작 이 가설을 제안한 케년 자신도 이 가설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자기 배열 성향 이론이 있습니다. 이는 특정 상황하에서 에너지가 매우 빠른 속도로 시스템을 통과하면 시스템이 불안정 상태가 되면서 좀 더 복잡해진 상태로 재배열을 이룬다는 설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욕조에서 물이 빠지는 것을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물이 무작위로 하수구로 빠지지만, 물이 다 빠질 무렵에는 자체적으로 물이 소용돌이를 형성하며 출구가 훨씬 질서 정연해지는 것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도 얼핏 생각해보면 그럴싸하지만, 물이 빠질때의 규칙성과 생명체가 형성되는 수준의 규칙성 간의 복잡성 간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죠. 유명한 정보 이론가 H.P.요키는 '질서의 개념을 생물학적 조직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정밀 검사를 통과할 수 없는 말장난'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우주에서 날아온 씨 가설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화학적 진화에 대한 감당 못할 장애물 때문에 시름에 빠진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기본 구성 단위가 우주의 다른 곳에서 날아왔다는 기상천외한 이론을 내세우기에 이릅니다. DNA의 이중 나선구조를 발견하여 20세기 생물학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랜시스 크릭이 주장하기도 해 화제를 모았던 이론인데, 이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세포 크기만한 살아있는 분자들이 대기에서 불타지 않은 채 지구에 도달했을 수 있다고 추론했고, 크릭과 레슬리 오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에 존재하는 어느 진보된 문명에서 지구를 황야 지대나 동물원, 우주의 쓰레기장으로 만들 목적으로 지구에 생명 인자를 보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역시 굳이 반박할 필요조차 없는 이론으로, 역시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 이 이론이 나온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추기 식으로 설명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설령 외계에서 그러한 물질이 지구로 날아왔다고 하더라도, 외계의 그 물질의 근원은 어디냐는 물음이 남는다는근본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심해의 열수공에서 뜨거운 열이 화합물에 가해져 유기 분자가 형성되었다는 심해 열수공 이론, 생명이 흙으로부터 나왔다는 스미스의 이론 등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들 모두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단순한 '끼워맞추기식 가설'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9년에 열린, 생명 기원에 대한 국제 회의에서는 좌절과 비관과 절망만이 가득한 암울한 상태로 끝났습니다. 생명이 어떻게 외부의 유도 없이 단순한 화학 물질에서 단백질이 표현되고 다시 기본적인 생명 형태가 되었는지 어느 누구도 합리적인 대안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의 기원에 대한 수많은 그럴싸해보이는 가설들도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발견됨에 따라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난 상황으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 없는 가설'이야 누구나 마음대로 '창작'해서 꾸며낼 수 있지만,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해답은 그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B. 다윈의 진화론, 과연 진실인가?

 진화론이란 생물이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환경에 따른 변화가 축적되고 나아가 새로운 종의 탄생을 야기한다는 이론입니다. 진화론의 핵심은, 적자 생존에 의한 자연 선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순응하거나 환경적인 요인을 극복하는 생물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는 '패자'는 결국 도태되는데, 이렇게 환경에 적응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물에 변화가 나타나고, 이런 '미세한 변화'가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고 후대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물, 즉 새로운 종이 나타난다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다윈이 주장하는 '미세한 변화'는 오늘날 생물학적인 관점에서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설명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대단히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고, 다양한 생물의 기원과 분화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윈이 이 이론을 주장한 19세기에는 진화론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비약적으로 생물학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20세기에 들어서 진화론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에서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돌연변이'가 누적되어 '유전자의 변화'가 일어나고(유전자의 변화는 곧 표현형, 즉 형질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후대로 유전되고 누적되어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유전자의 다양성과 변화 과정은 수백만년간에 걸친 무수한 무작위적인 돌연변이의 누적과 자연 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20세기 중반 왓슨과 크릭에 의해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현대 생물학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유전자와 돌연변이의 메커니즘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밝혀진 사실은 진화론에 치명타를 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진화의 원동력으로  생각했던 '유전자의 변형', 즉, 돌연변이의 발생 빈도자체가 매우 낮은데다 절대 다수의 돌연변이는 생물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돌연변이의 발생 빈도는 종이나 유전자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평균적으로 10만 내지 100만 세대에 한 번 정도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더 재미있는 사실은 생물의 세포 내에는 이렇게 드물게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복구하는 놀랍도록 정교한 메커니즘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유전학자가 유익한 돌연변이와 해로운 돌연변이의 빈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유익한 돌연변이는 186개인 반면, 해로운 돌연변이는 453,732가지로 유익한 돌연변이/해로운 돌연변이의 비가 0.00041임을 컴퓨터 분석을 통해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치명적인 질병의 하나인 암의 원인 근본 원인도 유전자의 돌연변이이고, 거의 4,000여가지의 질병의 원인이 DNA의 돌연변이임이 알려져 있습니다.  한가지 종류의 생물이 다양한 종류의 생물로 분화하려면, 다양한 종류의 돌연변이가 많이 누적되어, 후대에 유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알고 봤더니 돌연변이라는 현상 자체가 매우 낮은 빈도로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설령 돌연변이가 발생하더라도, 절대 다수가 생물의 생존에 악영향을 끼쳐 죽게 만들거나 도태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돌연변이가 많이 누적되어 적자가 생존하여 후대에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가 누적된 종은 오히려 도태되어 제거되고, 돌연변이가 없는 멀쩡한 종이 살아나서 후대에 변형되지 않은 유전자를 전해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지요. 물론,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변형된 유전자도 '유전자'이므로 고스란히 유전되지만, 이렇게 '변형'된 개체는 다른 '종'으로 '진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도태되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유전자의 '변이'가 모두 '돌연변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가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이 눈, 코, 손, 발, 다리, 내장기관을 가지고 있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죠? 그 이유는 여러분의 유전자와 제 유전자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눈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제 눈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비교하면, 똑같은 사람의 눈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자이므로 원래는 같아야 하지만 실제는 미세한 염기서열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개체간의 '정상적인 수준에서 드물지 않고 비교적 흔하게 나타나는 유전자의 차이'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다형성'이라고 합니다.' 다형성'은 비정상적이거나 드문 현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고 흔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돌연변이와 구분이 됩니다. 이러한 '다형성'이라는 기전을 통해 여러분과 제 눈 색깔이 미세하게 다르고, 개체간에 각종 신체적인 특성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다형성도 유전자의 '변화'에 의한 결과이고, 이것도 고스란히 후대에 유전되지만, 이러한 다형성에 의한 변화는 돌연변이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형성은 유전자의 변이는 한 개의 염기 서열 단위로 일어나기 때문에 유전자 전체 수준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이러한 단일염기다형성은 대부분 무증상이거나 미세한 기능상의 이상만 초래할 뿐, 개체의 생존에 직결될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다형성'은 그 자체의 변이 수준이 작기 때문에 그만큼 변화도 작다는 것을 의미하고, 돌연변이는 흔하지 않은 부위에 변화가 일어나거나 유전자 변형의 수준이 크게 발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개체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절대 다수라는 것이죠. 혹자는 이런 단일염기다형성의 개념과 돌연변이의 개념을 혼동하기 때문에, 다형성도 유전되니, 이것이 누적되면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지 않느냐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개념입니다. 이는 자동차의 엔진을 수리할 때, A사의 부품 대신 B사의 부품으로 갈아끼웠다고 엔진이 핸들로 바뀌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은 자동차 엔진이라는 점은 불변하되, 다만 엔진 성능상의 미세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 뿐이지, 부품이 갈렸다고 엔진이 핸들로 바뀌는 것은 아니죠? 반면, 엔진의 주요 부품을 여러개를 바꾸고 그것도 엉뚱한 부품으로 갈아끼운다면 엔진 자체가 작동을 하지 않고 못쓰게 되겠죠? 이것이 바로 돌연변이입니다. 설령, 유전자의 변이가 다형성으로 나타나건 돌연변이로 나타나건 새로운 변화가 누적된다고 해도 지극히 단순한 유전자 배열을 가진 하등 생물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할 확률은 천문학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돌연변이가 누적되어 새로운 유전자로 바뀐다는 것을 가정해도  단백질 서너개 변화 수준의 지극히 미미한 변화가 초래되는 데 걸리는 시간조차 진화론적인 지구의 나이인 50억년을 훨씬 뛰어넘는 기간으로 계산됩니다. 이는 돌연변이 자체의 발생 빈도가 지극히 낮은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20세기에 많은 유전학자들이 돌연변이 발생률을 증가시킴으로써, '진화를 가속화'시키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초파리에 X선이나 화학적 돌연변이원, 전리 방사선들을 가해 새로운 생물이 태어나기를 기대한 것이죠.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수십년간의 이와 유사한 연구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관찰된 모든 돌연변이들은 생물체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고, 설령 생존한 개체에서 나타난 돌연변이 중 향상된 돌연변이는 단 하나도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요약하자면, 돌연변이는 발생 빈도 자체도 낮고, 복구하는 시스템도 존재하며, 설령 이마저 회피해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해도 생명체의 생존에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여 후대에 전해지기 어려움이 밝혀졌습니다. 즉, 생명체는 생존 메커니즘은 '변화'가 아닌 '보존'이며, 돌연변이에 의한 '변화'는 '진화'와 '생존'이 아닌 '도태'와 '소멸'을 야기함이 밝혀진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까지 '창조론'은 비과학이고, 종교적 신념이며, 허구의 산물이고, '진화론'은 과학이며, 합리적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하셨나요? 크나큰 착각입니다. 진화론은 '진화의 법칙'이 아닌, 어디까지나 진화'론'이자 일종의 학설에 불과합니다. 과학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누구나 인정한 '만유 인력의 법칙'과 같은 확립된 자연 과학의 절대 법칙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점은 물론 '창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창조론을 믿건 진화론을 믿건 여러분의 마음이지만, 어느 쪽이 과학적으로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지를 여러분의 믿음의 근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막연하게, 혹은 당연하게 진화론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여기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하고, 20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 과학의 모든 객관적인 증거는 진화론의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지금가지 창조냐 진화냐에 대한 논쟁 중 가장 큰 논란이  생명의 기원 및 진화론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지질학, 인류학, 화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과학의 분야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이 다양한 주제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 모든 논란을 자세히 다루기에는 이 블로그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다른 분야에 대한 논쟁도 과학적 사실과 발견이 나타남에 따라 과거에 진화론적, 무신론적 관점에서 주장했던 주장들이 근거가 없거나 현재는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로 반박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발생학에 있어서 진화론적 분화의 절대적인 근거로 지지를 받았던 헤켈의 배아발생도는 인위적으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를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되었던 유인원의 화석들은 원숭이의 뼈였거나 멀리 떨어진 뼈들을 조합해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http://blog.daum.net/ksbsoon/601) 또한, 무신론자들은 너무나 정교하고 복잡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우주와 지구의 각종 물리 상수를 '우연한 계기로 우연한 규칙성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근거로 설명하기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우주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양한 종류의 우주'가 존재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그 모든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진 우주일 것이라는 끼워 맞추기 식의 '다중 우주론'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과 21세기에 접어들어 밝혀진 최첨단 물리학적, 생물학적 지식은 우주와 생명 기원의 절대적인 필수 요소는 우연한 변화에 의한 끝없는 누적이 아닌 계획적인 지성임을 강력하게 반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 사실은 신의 존재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무신론적 자연주의'관점에서 자신있게 과거에 제시되었던  수많은 가설들은 오히려 그들이 철썩같이 믿었던 '현대 과학'에 의해 발등찍히고 있고, 날로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곰곰이 한 번 생각해봅시다. 

 '금속 덩어리와 각종 물질들을 커다란 방안에 넣고 한 100년 동안 마구 흔들어대면, 비행기가 나올 수 있습니까? 100년은 부족하니 1000년이나 10000년쯤 지나면 비행기가 만들어질까요?'

 '돼지고기 한덩어리를 유리병에 넣고 50억년동안 각종 열과, 전기, 압력 등 온갖 조건을 달리해서 지지고 볶으면 거기서 사람이 생길 수 있을까요? 

 

돼지고기는 생명체가 아니니 억지스런 주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차피 여태까지의 모든 화학적 진화의 가설도 결국은 무생물에서 생물이 발생했다는 이론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암모니아와 메탄, 수소 가스에서 DNA와 아미노산이 생성되어 생명체가 될 가능성보다는 무수한 '완성된' 단백질 분자와 DNA를 포함하고 있는 돼지고기에서 생명체가 발생하기가 훨씬 더 쉽지 않겠습니까? 

 '원시 상태의 화학 물질에 환경적인 조건이 갖추어져 기본 아미노산이 형성되고, 이들이 조합되어 단백질과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갖추고 진화하여 고등한 생명체가 되었다는 화학적 진화가설과 진화론은, 이렇게 원리만 놓고 본다면 얼핏 그럴싸해보입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예를 들어 생각해보니 어떻습니까? 믿겨지십니까?

 여러분은 정말로 바닷물고기가 먹고 사는 세포 하나로 구성된 플랑크톤과 같은 단세포 생물이 수십억년 동안 진화를 거듭하면 기쁨과 슬픔과 사랑과 증오를 느끼는 60조 개의 세포를 가진 만물의 영장 인간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직관적으로 정말로 확신하십니까? 

 여러분, 생물체의 세포하나는 인간이 발명해낸 그 어떤 복잡한 기계 장비보다도 정교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런데, 이토록 정교한 세포가 셀 수 없이 많이 모여 정교한 시스템을 이루는 생명체가 어떻게 우연한 변화의 누적으로 생겨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그러한 변화의 원동력은 '발전'과 '생존'이 아닌 '도태'와 '사멸'의 방향으로 나타남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는데 말이죠. 

이처럼 이 모든 기원에 대한 무수한 이론, 가설, 억측 중에 이 모든 객관적인 사실을 가장 완벽하고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가설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막무가내식의 아무 근거도 없는 '종교적 믿음'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 가장 '과학적'이며, 가장 '논리적'이며,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lakesid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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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지금까지 여러 포스팅을 통해 왜 성경의 모든 내용이 사실이고, 하나님이 인간이 꾸며낸 종교적 허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신'인지에 대한 논리적, 고고학적, 역사적, 과학적, 예언적, 실제적인 증거를  살펴보았


습니다.


 이 정도까지 확인했다면,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서 그래도 못믿겠다


라고 저항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고집'이라는 단어를 썼고, 실제로도 억지를 부리면서 궤변


을 주장하는 분도 물론 계시지만, '진지한 의미'에서의 더 깊은 수준의 '논리적인 근거'에 대한 추가적인 회의


가 필요하신 분도 계시기 때문에, 이 포스팅에서는 '믿음'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깊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부분입니다. 


1.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달라. 그러면 믿겠다. 


2. 당신이 여러가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증거 자료를 제시한 것은 확인했다. 그런데 그것이 하

나도 빠짐이 100% 완벽하게 옳다고 논리적으로 '보장'할 수 있느냐


3. 논리적으로, 진실과 거짓은 모순이고  상호간에 결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이 주장한 

수많은 증거 중에 단 하나라도 틀린 것이 있다면 당신의 주장은 거짓인 것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과 하나님은 거짓이다. 

 실제로 여러 자료를 보면, 성경의 내용과 배치되는 내용이나 정보들이 많이 있는데, 성경이 진리라면, 성경의 모든 것 단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사실이어야 하는데, 이것이 아니므로 성경과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거짓이 된다. 이 논리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크게 의문을 3가지로 구분하긴 했지만, 사실은 이 3가지의 의문에 대한 핵심은, 어떤 사실의 '근거'와 '믿음'에 


대한 논리적인 사유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미 앞선 포스팅에서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와 '근거'를 제시했습니


다. 그런데도 추가적인 증거와 논리를 요구하는 사람의 논리는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 사실에 대한 '근거'나 '증거'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논리적


이고 합리적으로 타당한지의 여부를 판정한 이후에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실에 대한 '믿음'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의 존재 유무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사실 정말 심도 있게 따져보면, '믿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근거'와 '증거'에 기반을 두고 


고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그 근


거에 '믿음'의 문제를 결코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즉, 어떤사람이 우리에게 '당신은 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볼때, 이러이러한 '합리


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증거'가 믿음의 근거라고 생각하지만 , 엄밀히 따져보면, 실제로


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떤 사실을 믿는 이유의 한계점에 도달해보면, 결국에는 그 '근거'에 대한 


'믿음'의 문제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한 번 따져볼까요? 쉬운 예로, 예전에 한창 이슈가 되었던 '타진요'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타진요 사건은 가수인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씨의 학력 위조 논란이 중심이 되었던 사건이죠. 타블로


씨는 자신이 미국 명문대학교인 스탠포드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고 이야기했는데, 네티즌들이 이에 대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믿지 못하겠으니 그에 대한 증거를 끝없이 요구해서 이슈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각종 자료와 정황자료를 '근거'로 타블로씨에게 '당신이 실제로 스탠포드대를 


졸업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고, 타블로씨는 이에 실제로 응해서 스탠포드대에서 발행한


성적 증명서와 졸업장, 졸업증명서를 실제로 공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타진요'측에서는 막상 이에 대한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자, 그 근거에 대한 또 다른 증거


를 요구합니다. 니가 제시한 졸업 증명서가 진짜 졸업증명서가 맞고 위조되지 않았다는 추가적인 '근


거'와 '증거'를 보여달라라고 말이죠.


 사건이 점점 이슈가 되고 점점 커지자 타블로씨는 아예 방송사를 대동했고, 방송사에서는 스탠포드대학교에


직접 찾아가 실제로 학장과 성적 관리하는 담당자, 그리고 타블로를 알고 있는 대학친구들까지 직접 찾아가


인터뷰까지 했고, 그가 스탠포드대학교를 실제로 졸업했음을 입증하는 증거자료를 실제로 보여주었습니다. 


 이 정도 되었으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진요 측에서는, 끝없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방송사가 타블로에 매수된 것 아니냐?", "스탠포드대 방문도 조작 아니냐?"


 어떤 증거를 요구해서 그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를 요구하고, 막상 그러면 또 그


에 대한 증거를 요구했습니다..타블로 측에서는 그에 응해서 지속적으로 증거를 제출했지만, 타진요측에서는 


막상 증거를 제시하면 그에 대한 끝없는 '증거에 대한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과연, 증거에 대한 증거를 무한


대로 제시한다고 한들타진요 측에서 이를 믿을 수 있을까요? 



타진요를 과연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존재할까요?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타진요' 식의 논리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합리적인 지성을 가지신 분이라면, 이런 식의 끝없는 의혹제기는 '합리적인 논박이나 의혹제기'가 아닌 소


모적이고 지리멸렬한 '궤변'에 가깝다는 것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자신들은 마치 치밀한 논리에 대한 근거를 추구하는 이성적인 분석


가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이들을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책없는 고집쟁이나 음모론자들로 치부합니다..그렇죠? 여러분도 이런 사람들을 보면 아마 역겨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결국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근거가 부족해서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기 때문에, '논리'를 가장한 


'근거에 대한 끊임없는 근거를 요구하는 궤변을반복할 뿐입니다. 이는 명백하게 비논리적이고 비합


리적인 태도이죠...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매일 저녁 여러분께 따뜻한 저녁을 해주시는 여러분의 부모님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그 분이 여러분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여러분께,


그 사람들이 당신의 친부모라는 증거를 대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가지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나와 함께 살았다'


'내가 아플때 마치 자신의 일처럼 힘들어 하셨고, 늘 병원에 데려가셨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셨다'


'끊없는 사랑으로 양육해주신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부모와 일치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똑같이 생겼다'


한 두가지 정보만 가지고는 부모라고 단정하기 힘들지 몰라도,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부모님이라고 믿기


에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그런데 만일 이에 대해서 삐딱한 방식으로 '타진요'식으로 한 번 접근해 볼까요? 태클은 얼마든지 걸 수 있


습니다.


 '어렸을 때 입양되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양부모나 사회 복지사도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것은 마음씨 좋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끝없는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전자 검사의 정확도는 99.9% 이상이지만, 틀릴 가능성도 0.1%는 있는 것 아닌가?'


 '똑같이 생기기는 부모가 아니면 확률적으로 생기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희박한 확률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 않는가?'


 부모가 아님에도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그 가능성이 0.0000001%라도 존재하므


 로, 우리는 이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위의 조건들을 근거로 친부모님이라고 100%


완벽하게 주장할 '100% 확실한 논리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므로, 여러 증거와 정황상 그 사람이 내 부모일


가능성은 99.99%이지만, 0.01%의 불확실성과 거짓일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배제하지는 못하므로, 내 부모라


로 결코 믿을 수 없다..


라는 접근방식이 사실 '타진요'식의 접근 방식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한편으로는 거부감이 들고 욕이 나오는 것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논리적으로 반박하려고 해보


니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말은 맞는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드시지는 않으신가요? 그러시다면, 아직 '믿음'과


'근거'에 대한 부분에 대한 확실한 개념을 아직 정립하지 못하신 부분입니다. 


위의 접근 방식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들은 어떤 사실에 '믿음'에 대한 근거를 어떤 '증거'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그 '증거'에 


대한 '믿음'의 문제는 끝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근거가 필요하다고 해서 근거를대면, 그 근거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고, 그것을 믿기 위해서는 그 근거에 대한 


근거에 대한 근거가 또 필요하고....이런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과정이 수백, 수천 단


계, 아니 무한대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논리적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어느 단계에서는 그 근거에 대한 '믿음'의 문제로 귀결이 


되는 것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해결책은 어느 단계에서 불확실성을 상쇄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


를 확인했다면, 그 단계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는 논리적인 불확실성은 존재함을 인정함에도 불구하


고 이를 '믿음'의 문제로 극복하는 방법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실에 대한 근거의 여부를 '100% 논리적으로 확증'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겠다라는 접


근 방법은 현실에서는 결코 적용되지 않고 , 막상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조차 일상적인 가치판단의 


과정 속에서는사용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실제로도 궤변으로 인정하고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런 비논리


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또한, 설령 100% 논리적으로 옳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근거는 결코 되


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단지 우리가 그 미세한 불확실성에 대해서 '모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모르


는 것 = 틀린 것 입니까? 이는 명백한 논리적 오류죠?


이런 관점에서 따져본다면, 막상 여러분이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100% 의심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달라'라는


식의 접근 방법으로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고, 얼핏 생각하면 대단히 치밀한


논리에 바탕을 둔 것 같지만, 사실은 끝없는 회의주의적이고 현실적으로는 전혀 이용되지 않는 궤변입니다. 


일상적인 사실 판단이건, 논리적인 의사 판단이건, 사회과학적인 추론이건, 심지어는 자연과학적인 사실의


판단이건 그 어떤 영역에서건 '100%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맞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사실이다라는 궤변을 


이용하는 분야는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0.000001% 의 불확실성마저 논리적으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는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여러분이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사실을 제게 제시해도 이런 식으로 딴지를 걸려고 한다면 저는 얼마


든지 태클을 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2년도에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다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도 저는 이런 식의 100% 확


실한 논리적 접근 방식으로 얼마든지 부정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모여 경기를 하고, 수십개 국가 대표팀이


경기하는 것을 목도한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냐고요? 여러분이 그토록 좋아하시는 '100%


확실한 논리'의 개념을 들이대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확률이 지극히 낮긴 하지만' 월드컵이 안열려도 수십만의 군중에게 일당을 주면 동원할 수 있는 것이고, '확


률이 지극히 낮긴 하지만',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와 스타 플레이어도 엄청난 돈을 들이면 유치할 수 있는 것이


고, '확률이 지극히 낮고 기술적으로 어렵겠지만' 경기 영상을 어떻게 어떻게 조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 확률이 지극히 낮긴 해도, 내가 직접 목도를 한 것이 환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확률이 지극히 낮긴 하지만', 2002년도에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다는 것을 사실이라고 '100%


확실하게 논리적으로 주장할 증거는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죠..그렇죠?


얼마나 역겹고 억지스러운 주장입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들도 역겨워


하는 주장을 유독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할 때, 아니 조금 더 광범위하게 말씀드리자면,


자신이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주장에 대해서만 유독 이런 비합리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입니다.  


 '100% 확실한 논리적 증거'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대단히 무식하고 감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진위 여부를 결정하는데에는 '합리적인 근거'가 반


드시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합리적인 근거'에 대한 '믿음'의 문제는 결코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결국에는 '근거에 대한 '믿음'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건 작건, 사소


한 일상적인 일이건, 엄밀한 자연과학적인 법칙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무런 '근거가 없는 믿음'은 맹신이기에 배격해야 할 부분이지만, 분명한 근거가 있다면 그 이후의 문제


는 안타깝긴 해도 '그 근거에 대한 믿음'의 문제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아무리 여러분이 논리와 100% 확실한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이는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과학과 논리를 중요시하는 분들 중, 마치 '자연과학'의 법칙이나 사실은 이런 '믿음'의 문제를 비껴가 있을 것


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을 많이 보는데,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은 과학을 잘 모르시는 분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연 과학적인 '법칙'에 대한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100% 확실한 논리적 사실'에 기반을 둘 


것 같나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자연 과학적 법칙은 수많은  객관적인 '증거'에 기반을 둔 것이 사실이지만, 과학적 진리도 결코 ' 


근거에 대한 믿음'과 '불확실성'의 문제를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한 번 자세히 알아볼까요?


 모든 자연과학적 사실이나 법칙의 진위 여부를 탐구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방법은 공통적입니다. 다양한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 현상 속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확인합니다. 이를 확인한 뒤에는 


'음...이러이러한 현상이 자연계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니, 실제로 자연계에는 이러한 규칙성이 존재하겠군'


이라는 '가설'을 설정합니다. 그리고, 그 '가설'이 맞다는 가정하에, 실험을 해보고, 실험결과 가설과 일치되는


결과가 나타나면 우리는 그 가설을 참으로 인정하고 하나의 과학적인 사실 내지는 법칙으로 인정하는 것입니


다.


여러분이 이 부분을 보고 혹시, '음 역시 다른 분야는 몰라도 적어도 '과학'에 있어서는 100% 확실한 논리적인 


증거가 제시되는 분야이군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이는 대단히 무식한 착각을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100% 확실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령


100%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나온다하더라도 실험군의 개수나 n수를 늘리면 가설과 일치되지 않는


경우도 얼마든지 추가적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가설을 설정하고 그 가설이 맞다는 가정하에 실험을 디자인해서 여러 차례 실험이나 전향


적인 연구를 진행한 결과 100번의 시행 중 98번에서 가설과 일치되는 결과가 나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나는 '100% 논리적으로 확실하지 않으면 결코 믿을 수 없는 냉철한 이성주의자이기 때문에 두리뭉실하게


2%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겠다. 논리적으로 100%가 아니므로 그 사실을 믿을 수 없다'라고 하시겠습니까? 


 물론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대부분의 사회과학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그토록 논리와 


이성 100% 확실성을 추구하는 자연 과학에서조차 일반적으로 5%의 불확실성(유의 수준)을 인정합니다. 즉, 


이 불확실성이란, 우리가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관점에서 어떤 현상에 대한 100% 논리적인 확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설이 맞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실험이나 관찰을 했을 


때 그것이 맞을 가능성이 95% 이상이 되면, 사실상 5% 이하는 그 가설이 틀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가설이 옳다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좀 더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에는 이 불확실성과 에러에 대한 가능성을 1% 정도로 좀 더 좁게 잡기도 


합니다만, 그 어떤 자연과학이나 사회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에서도 100% 완벽한 사실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


을 가지는 곳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연 과학에서는 이런 불확실성을 '100% 완벽한 논리'로 묵살하려는 것


이 아니라, 그 가설이 틀릴 수도 있을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인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허접한 논문을 


한 편이라도 써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제가 언급한 부분은 굉장히 러프하게 개념만 언급한 부분이기 때문에 엄밀하고 정확한 통계적인 개념


에서 치밀하게 보시면 표현상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고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쓴 부


분이니 큰 줄기를 보시는 방향에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즉, 여러분이 그토록 부르짖고, 맹신하고, 100% 완벽, 논리적으로 무결할 것이라고 착각하실지도 모


르는 자연과학적 진리나 방법론도 사실은 전혀 '100%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자연과학적인 법칙이나 확립된 이론은 연역적이고 이론적인 논리의 도출과정이


 아닌 경우에는 오히려 이런 '오류의 가능성'과 '틀릴 가능성'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습


니다. 


 다만, 엄격한 조건에서 수행된 자연과학적 사실이나 진리는, 그것이 100%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99% 이상


사실일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99% 사실일 가능성을 믿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


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죠. 어떤 것이 사실인지 사실이 아닐지를 판단해야 할 상황에서, 사실일 확률이 99%


거짓일 가능성이 1%인데, 100% 완전무결하게 논리적으로 확증할 방법은 없다면, 우리는 당연히 99% 쪽을


믿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과학의 방법론이죠...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것은 '분명한 증거'에 기


반을 두지만, 그 증거가 '논리적으로 100% 완벽하다고 보장'할 수 있음을 증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에, 참과 거짓에 대한 확률적인 개념을 도입해서, 거짓일 확률이 우리가 임의로 정한 한계치(5% 내지는 1%)


이하(즉, 참일 확률은 95% 혹은 99% 이상)일 경우 참으로 인정을 하는 '불완전한 방법론'입니다. 


즉, 그 어떤 방법을 써도 비록 작기는 하지만, 이 불확실성에 대한 '논리적인 완벽한 제거' 방법은 존


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위 '과학적'인 방법론에서 어떤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 쓰는 최선의 


방법은 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방법입니다.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고 거짓일 가능성이 낮은 다양한 증거 자료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료가 많이 누적될수록 수학적으로 참일 확률 또한 누적되


어 커지기 때문이죠.


자...그럼 한 번 계산해볼까요? 


여러분의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를 수상히 여긴 경비원 아저씨가 도둑을 잡았다고 칩시


다. 도둑은 아니라고 발뺌을 하는데 여러분은 이 사람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증거는 거짓말 탐지기였습니다.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 결과 도둑으로 판명되었는데, 이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는 90%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즉, 거짓말 탐지기에 근거했을 때 이 사람이 도둑일 확률은 90%가 될 것입


니다. 나머지 10%는 도둑이 아닌데 도둑으로 잘못 판정될 확률이겠죠?


둘째 증거는 CCTV였습니다. CCTV상 물건을 훔친 도둑으로 판명되었는데, 이 판단이 맞을 확률을 80%라고 가


정하겠습니다.


셋째 증거는 지문 감식이었는데, 지문 감식상 도둑으로 판명되었는데, 지문감식의 정확도는 99%라고 가정하


겠습니다.


자..그러면 문제를 내겠습니다. 


세가지 증거를 종합했을 때 이 사람이 도둑일 가능성은 몇 %일까요? 


혹시, 각각의 모든 증거가 참이므로 각각의 증거상 도둑일 확률을 모두 곱하면 되니까, 0.9 X 0.8 X 0.99 = 0.71


71%라고 계산하셨습니까? 틀렸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런 계산 방식이라면, 증거가 누적될수록 참일 확률은 더 떨


어지니 말이죠...


이 확률을 올바로 계산하려면, 조건부 확률을 이용해야 합니다. 


즉,  

실제로 도둑일 확률 = 실제로 도둑이고 3가지 증거 자료상 도둑으로 판정된 확률  / (실제로 도둑이고 3가지 증거 자료상 도둑으로 판정된 확률 + 실제로 도둑이 아닌데 3가지 증거 자료상 도둑으로 판정된 확률)


이 됩니다. 


계산하면 3가지 테스트상 도둑일 확률은 0.9 X 0.8 X 0.99 / (0.9 X 0.8 X 0.99 + 0.1 X 0.2 X 0.01) = 0.999719


즉, 99.9%가 넘게 되죠.  이를 확률 계산에 있어서 '베이즈 정리' 라고 합니다.


이 수학적인 계산 방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확률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증거 자료들이 축적될수록 그 사실의 신뢰도는 높아진다.


둘째, 여러 증거 자료들이 있을 때, 대부분의 증거자료의 신뢰도가 떨어져도, 대단히 높은 신뢰도


를 가진 증거자료가 하나라도 존재하면, 전체적인 신뢰도는 급격히 증가한다.


어렵게 써놓았지만, 직관적으로 뻔한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한가지 증거자료보다는 여러가지 증거자료를 수


집할수록 신뢰도가 높아지고, 증거자료를 여러개 수집했는데 사실 별로 믿을 만한 증거가 되지는 못했는데,


아주 결정적으로 확실한 증거(이를테면, 친부모인지 여러 자료를 통해 검증해도 정말 의심스러웠는데 99.99%


의 정확도를 지닌 유전자 검사상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는 경우)가 하나가 발견되면, 다른 증거의


불확실성은 상쇄된다는 것이죠..베이즈 정리를 이용하면 이런 직관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을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확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왜 단순하게 결론만 제시해도 되는 것을 이렇게 생소한 확률 이론까지 들먹이면서 설명드리는지 혹시 여


러분은 아십니까? 이 부분에 대한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이해가 없으면, 자신이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궤변을 주장하면서도 그것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오류가 제가 앞서 제시한 궤변입니다.


 '논리적으로, 진실과 거짓은 모순이고  상호간에 결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이 주장한 수


은 증거 중에 단 하나라도 틀린 것이 있다면 당신의 주장은 거짓인 것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과 하나님은 거짓이다. 실제로 여러 자료를 보면, 성경의 내용과 배치되는 내용이나 정보들


이 많이 있는데, 성경이 진리라면,성경의 모든 것 단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사실이어야 하는데, 이


것이 아니므로 성경과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거짓이 된다. 이 논리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


인가?'


여러분은 이 주장의 논리적인 허점을 발견하셨습니까? 그럴 듯해 보이고 모순점을 찾을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