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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예수 그리스도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by gospel79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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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교사들의 침투와 그들의 주장

오늘 우리는 갈라디아서 1장 말씀을 통해, 그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했던 거짓 교사들의 주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그 안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 즉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그 진리를 훼손하려 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복음에 율법, 할례, 절기 등 유대교의 전통을 더해야만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불완전하다", "율법도 지켜야 하고, 할례도 받아야 하고, 절기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는 마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른 교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단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 유대교에서 갓 개종한 연약한 성도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유혹이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유대교 문화와 신앙 속에서 자라왔고, 그들의 영혼 깊숙이 율법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유대교 신앙생활을 하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해도, 평생동안 유대교 문화와 율법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겠냐?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것도 지켜야 하지 않겠냐?

얼핏 생각하면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은, 그러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라고 말하며, 그들의 미혹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의 주장은 다른 복음이며, 이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7절에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는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신학적 지식이나 기도의 경험, 심지어 도덕적인 삶을 내세운다고 해도,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흔드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십자가의 능력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다른 무언가를 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의 공로는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베드로조차도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사람들에게 책망 받을까 두려워하여 위선적인 행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수제자였으며,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베드로조차도 과거의 율법적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실수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경험과 율법적인 틀을 버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종교적인 틀, 즉 '경계의 영'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큐티를, 어떤 이는 성령을, 어떤 이는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모두 신앙생활에 있어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마치 신앙의 전부인 양 절대시하고, 다른 이들에게 강요한다면, 이는 오히려 영적인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계의 틀을 깨고, 더욱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치 우물을 팔 때, 고여 있는 물만 계속 퍼내지 말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새로운 물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 특히 영적인 경험이나 신앙적인 산물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신의 틀을 깨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까지 말하며, 심지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자신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이는 그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이 되겠다고 결단했고, 그 결과 그는 그 어떤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토록 확신 가운데 전했던 복음의 진수는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라고 말합니다. 또한 빌립보서 3장 8절에서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고백합니다. 즉, 바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으며, 그 분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한 것 이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와 그 지역에 전해지는 복음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인 메시지였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우리가 무언가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었고,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의문을 파고들어 그들을 미혹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충분한 분이십니다. 그 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완전하고 충분한 속죄 제사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복음을 좇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복음은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 사람도 기쁘시게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야 했습니다.

어떤 선교사는 자신의 직장과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지로 떠납니다. 그들을 향해 주변 사람들은 만류하며 말립니다. “나도 예수님을 믿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확신 가운데 그 길을 선택합니다. 최근에 만난 한 의사 선생님은 6개월 동안 병원 문을 닫고 아프리카 선교를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운영해 오던 병원을 6개월간 닫는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자녀, 직장, 명예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선교지로 떠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환영을 받으며 떠났지만, 지금은 조용히, 마치 숨겨진 보물처럼 떠나고 있습니다. 그 무엇이 그들의 열정을 막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희생을 두려워하고,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그 답을 선택하지 못할 뿐입니다.

바울의 확고한 자기 정체성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누군가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직접 주신 계시를 통해 복음을 전한다고 선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구원을 주셨고, 바울은 기독교를 만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바울은 기독교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원조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13개의 서신서를 기록하게 하셨고, 이 서신서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바르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만약 바울의 서신서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신앙에 큰 혼란을 겪었을 것이고, 더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을 전하는 것은 학문을 전하는 것입니다. 신학은 2천 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령께서 축적되게 해주신 귀한 지식이지만, 성경만큼 완성된 계시는 아닙니다. 신학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신학을 전하는 것은 학문을 전하는 것이며, 이는 지식과 경험, 도덕과 윤리를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사람의 '혼'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시를 전하는 것은 그 영혼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것과 자신의 지식과 학문을 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학문적 지식은 듣기에는 광대하고 시원하며 새로운 것을 던져주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마치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처럼 그 때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흔들고 진동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말씀은 바로 주님께로부터 오는,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때로는 투박하고, 심지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일지라도, 성령께서 함께 역사하시면 그 말씀 한 마디가 우리의 심령을 뒤흔들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됩니다. 이러한 능력은 그리스도와의 깊은 씨름, 계시, 고민 가운데서 나오는 독특하고 특별한 은혜입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은 과거 우리 선배 설교자들만큼 계시를 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세상적인 지식을 장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선배 목사님들은 오직 성경을 붙들고 그리스도와 씨름하며 자신이 받은 계시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투박하고, 지적으로 완벽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새벽마다 하나님과 씨름하며, 눈물로 기도하며, 목이 터져라 외치며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설교자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빠르고, 즉각적이고, 화려하고,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영적으로 살찌우지는 못합니다. 설탕물을 먹여서 꿀을 뱉어내는 벌과 같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속은 영적으로 빈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계시가 있는 말씀을 분별하여 듣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설교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분별하고, 그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이 더욱 강건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지식, 경험, 표적도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우리 힘만으로는 참된 진리를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이 마지막 때에 거짓된 지식과 경험이 난무하는 가운데, 오직 참된 진리로 무장하여, 오직 하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만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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