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최초의 교회 건물 발굴과 초대교회 예배 장소에 대한 고고학적, 역사적 증거들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 초기 예배 장소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고고학적 호기심을 넘어,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주후 30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제자들과 초기 신자들에 의해 탄생한 기독교 공동체는 약 300여 년 동안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성장해 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어떤 공간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오랫동안 분분했는데, 크게 유대교 회당 병용설, 가정교회설, 지하 카타콤설 등으로 나뉘어져 왔습니다.[1]
그런데 근래 들어 고고학 발굴 성과가 축적되면서, 초기 기독교 예배 장소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중요한 발견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 중 단연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1920년대 시리아 국경 도시 두라 에우로포스(Dura-Europos)에서 발굴된 가정교회 유적입니다.
두라 에우로포스는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설된 요새 도시로,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했습니다.[2] 이 도시는 파르티아 제국과 로마 제국 간 국경 분쟁의 각축장이 되었고, 주후 256년경 사산조 페르시아군의 공격으로 함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3]
그로부터 약 1700년의 시간이 흐른 1920년대, 예일대 고고학팀에 의해 두라 에우로포스의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래 폭풍에 휩쓸려 사막 속에 파묻혀 있던 이 도시의 건물들은 놀랍게도 훌륭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기독교 역사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바로 두라 교회(Dura-Europos Church)입니다.
발굴 당시 학계에 충격을 안겨준 이 건물은, 3세기 중반 경 약 100여 년간 기독교 공동체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 주택을 개조한 교회당이었습니다.[4] 마치 예루살렘 성전 같은 웅장한 종교 건축물을 예상했던 고고학자들 앞에 펼쳐진 것은, 평범한 가정집을 교회로 사용했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소박하고 역동적인 신앙 공동체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두라 교회는 약 113제곱미터(34평) 크기의 장방형 구조로, 입구에서부터 침례탕, 예배실, 중정 등 다양한 공간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5] 무엇보다 이 교회의 백미는 건물 내부 벽면에 그려진 다채로운 성경 장면 벽화들입니다. 구약의 아담과 하와, 모세와 홍해 도하, 다윗과 골리앗은 물론 신약의 선한 목자, 치유 기적, 베드로 사도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묘사된 이 벽화들은 문자 그대로 "성경의 그림책"이나 다름없었습니다.[6]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침례실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목자의 형상을 한 예수님이 물속에 있는 한 사람에게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은 당시의 침례 예식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7] 아울러 성도들이 한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성찬을 기념하는 벽화는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성만찬 예식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8]
두라 교회 벽화는 고고학사에 있어 기독교 미술의 최초이자 최고(最古)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단순히 예술사적 의미를 넘어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발견물입니다. 무엇보다 이 벽화는 2~3세기 기독교 신앙과 신학, 예배 전통의 구체적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초대교회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주고 있습니다.[9]
특별히 두라 교회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가정집을 교회당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물증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집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었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6-47)
"라오디게아에 있는 님바와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 (골로새서 4:15)
"너희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또 오네시보로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 (디모데후서 4:19)
이러한 성경 구절들은 두라 교회의 고고학적 증거와 합쳐질 때, 초기 기독교가 가정교회 중심으로 출발했음을 강력히 뒷받침해 줍니다.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신자들의 집은 예배와 교제, 선교의 거점이자 피난처로서 교회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10]
3세기 후반 이후 박해가 잦아들면서 기독교인들은 특정 건물들을 교회당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정교회에서 교회당으로의 이러한 전환은 기독교가 점차 공적 영역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11]
그리고 마침내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게 됩니다. 이는 교회 건축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는데, 4세기 들어 제국 각지에서는 웅장한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들이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12]
324년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직접 발의하여 로마에 최초의 대성당인 라테란 대성당(Basilica of St. John Lateran)이 건립되었고, 이어서 베들레헴의 구유교회(Church of the Nativity), 예루살렘의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등 기념비적인 교회당들이 잇따라 세워졌습니다.[13][14]
이러한 4세기 교회 건축의 양상은 박해받던 소수 종교에서 제국의 국교로 발돋움한 기독교의 위상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웅장화되고 제도화된 교회당은 교회의 세속화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독교 문화가 후대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15]
지금까지 살펴본 두라 교회의 발굴과 초기 교회 예배처의 변천사는 기독교 신앙이 지닌 역사성과 실재성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라 교회 벽화에 묘사된 예배와 성례의 모습, 신약성경에 기록된 가정교회의 증언들, 그리고 로마 제국 공인 이후 본격화된 교회 건축의 흐름은 모두 기독교가 허구나 신화가 아닌 실제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초대교회의 역사적 증거들을 통해, 기독교 복음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十(그리스어 알파벳 첫 글자)자가 상징하듯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요 근본이십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를 붙드시고 인도하신 주님은 오늘도 세상 끝 날까지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복음을 외면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비합리적인 맹신이나 정서적 위안거리쯤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심지어 일부 회의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고고학적, 역사적 증거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진실"임을 웅변해 줍니다. 초대 교회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두라 교회의 벽화들, 2천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의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엄연한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믿음을 주저하거나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 14:6). 그 어떤 철학이나 이데올로기, 종교도 예수 그리스도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만이 온 인류의 구원이요 희망입니다.
만일 당신이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열고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될 것이라 약속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천국의 상급과 영생이 그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과 축복, 그리고천국의 상급과 영생이 그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과 축복,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당신의 남은 인생을 더욱 풍성하고 의미있게 만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구원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 주저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길 간절히 권합니다. 그것만이 진정한 자유와 기쁨, 참된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초기 기독교 예배 장소의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역사성과 진실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시리아 두라 에우로포스에서 발견된 최초의 교회당은 초대 교회의 가정 중심적이고 역동적인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두라 교회 벽화에 담긴 성경 장면들과 신약성경에 기록된 가정교회의 증언들은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사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뚜렷이 확증해 줍니다.
나아가 4세기 들어 본격화된 대규모 교회 건축은 기독교가 박해받는 소수 종교에서 로마제국의 국교로 발돋움하는 일대 전환기를 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웅장한 대성당들은 기독교 문화가 서구 문명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의 고고학적 유산은 기독교 복음이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 속에서 전개되고 구현된 생생한 진실임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고학은 기독교 변증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되며, 성경의 역사성과 신뢰성을 확고히 입증해 주는 학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 더욱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며, 다양한 학문적 증거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변호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고고학뿐 아니라 역사학, 철학, 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회의주의와 다원주의, 상대주의 속에서도 기독교 진리를 당당히 변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우리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와 학문, 이성으로도 충분히 변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두려움을 벗어 버리십시오. 당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며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되어 주십시오(마 5:13-14). 지식인들과 대화하고,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한국 교회와 성도 여러분! 초대 교회의 모습을 회복합시다. 화려한 건물이 아닌 자발적 공동체로, 권위적 제도가 아닌 역동적 유기체로, 개 교회 이기주의가 아닌 연합과 부흥의 운동으로 다시 태어납시다. 거룩한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아 민족과 열방을 향한 복음의 등대가 됩시다.
끝으로,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깊이 묵상합시다. 주님의 고난을 본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갑시다. 고난 받는 이 땅의 교회들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여전히 핍박받고 있는 수많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뜨겁게 기도합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온전히 임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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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Rordorf, Willy. "The Didache." The Eucharist of the Early Christians, Willy Rordorf et al., Pueblo Publishing Company, 1978, pp. 1-23.
[2] Hopkins, Clark. The Discovery of Dura-Europos. Yale University Press, 1979. pp. 252-256.
[3] Dirven, Lucinda. "The Julius Terentius fresco and the Roman imperial cult." Mediterraneo Antico, vol. 10, no. 1-2, 2007, pp. 115-128.
[4] Snyder, Graydon F. Ante Pacem: Archaeological Evidence of Church Life Before Constantine. Mercer University Press, 2003. pp. 128-129.
[5] Wharton, Annabel Jane. "Erasure: Eliminating the Space of Late Ancient Judaism." From Dura to Sepphoris: Studies in Jewish Art and Society in Late Antiquity, edited by Lee I. Levine and Zeev Weiss, Journal of Roman Archaeology, 2000, pp. 195-214.
[6] Kraeling, Carl H., et al. The Synagogue. Yale University Press, 1979. pp. 234-238.
[7] White, L. Michael. Building God's House in the Roman World: Architectural Adaptation among Pagans, Jews, and Christians.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 pp. 47-59.
[8] Korol, Dieter. "Neues zu den alt- und neutestamentlichen Darstellungen im Baptisterium von Dura-Europos." Ablution, Initiation, and Baptism, edited by David Hellholm et al., De Gruyter, 2011, pp. 1611-1672.
[9] Peppard, Michael. The World's Oldest Church: Bible, Art, and Ritual at Dura-Europos, Syria. Yale University Press, 2016. pp. 2-5, 16-27, 177-188.
[10] Jewett, Robert. "Tenement Churches and Communal Meals in the Early Church: The Implications of a Form-Critical Analysis of 2 Thessalonians 3:10." Biblical Research, vol. 38, 1993, pp. 23-43.
[11] Doig, Allan. Liturgy and Architecture: From the Early Church to the Middle Ages. Routledge, 2008. pp. 11-29.
[12] Krautheimer, Richard. Early Christian and Byzantine Architecture. Yale University Press, 1986. pp. 39-67.
[13] Bowes, Kim. Private Worship, Public Values, and Religious Change in Late Antiqui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pp. 95-115.
[14] Doig, Allan. Liturgy and Architecture: From the Early Church to the Middle Ages. Routledge, 2008. pp. 30-51.
[15] Rordorf, Willy. Sabbat und Sonntag in der Alten Kirche. Theologischer Verlag, 1972. pp. 110-134.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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