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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악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과 해법

by gospel79 202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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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만연한 고통과 악을 근거로 들어 선한 신의 존재를 의심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악의 실재성 자체가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강력한 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악하다고 할 때,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것이 어긋나고 있는 선의 기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우리 안에 '올바름'에 대한 관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객관적 악이 존재한다면, 그 판단 기준인 객관적 선도 반드시 존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 선의 근거는 신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악은 모자란 선이기에 절대선인 신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암이 악인 것은 건강한 신체라는 선이 있기에 가능한 말입니다. 마치 구멍 난 옷의 개념이 완전한 옷감을 전제하듯 말이죠.

 

이를 부정하는 순간 무신론자들은 스스로 모순에 빠집니다. 신의 부재를 주장하면서도 신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선악의 기준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은 악하다"라는 명제는 "선하신 신은 없다"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무신론의 세계관 속에서 선악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저명한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조차 이 점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악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신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악의 실존을 인정하되, 그것이 신을 부정하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신을 입증하는 단서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의 문제가 간단히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하신 신이 왜 악을 허용하시는지, 그 목적은 무엇인지 우리는 더 깊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악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실까요? 이에 대한 성경의 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참된 사랑과 선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제가 아닌 자유로운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자유 의지는 필연적으로 악의 가능성을 동반합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진정한 사랑은 거절당할 자유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 의지는 악의 문제에 대한 필연적 해답이 아니라 진정한 선을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연단되고 성숙해진다고 가르칩니다. 용기, 인내, 겸손, 동정심 같은 미덕은 순탄한 삶 속에서 결코 자라날 수 없습니다. 금은 불속에서, 진주는 rough한 모래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것들은 사실 우리를 더 깊은 선으로 이끄는 필요악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악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은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극심하고 부당해 보이는 악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왜?"라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제한된 시야와 달리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매듭 풀린 실타래가 엉킨 채로는 의미를 알 수 없듯, 우리에겐 뒤엉킨 악으로 보이는 것이 전체 그림 속에서는 아름다운 무늬가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한 아기의 죽음이 수백 년 후 위대한 전도자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고, 한 여인에 대한 강간이 그 여인을 통해 훗날 수천 명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목회자를 낳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노예가 된 것은 악이었지만, 그 일이 후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기근에서 구출하는 통로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비록 현재의 우리 눈엔 보이지 않을지라도, 모든 악은 언제나 더 큰 선을 목표로 섭리 가운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8장 28절이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는 소망의 근거입니다.

악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악의 문제에 대한 성경의 궁극적인 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안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악을 심판하시되, 그 심판을 예수님 안에서 대신 감당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간이 되어 고통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죽음과 악이 결코 최종적이지 않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실상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이 놀라운 해법에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나 철학도 제시하지 못했던 희생적 사랑을 통해 하나님은 인류의 죄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었고, 그의 부활은 죽음 너머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복된 교환을 가리켜 "우리의 잠깐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고후 4:17).

 

물론 우리는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고난과 박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결코 무의미하거나 덧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영광이며, 장차 누리게 될 더 큰 영광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즉 우리의 현재적 아픔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미래적 기쁨으로 충분히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능히 고난을 환난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공하신 구원이 결코 강요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랑은 자유로운 선택이 전제되어야만 하기에, 하나님은 당신을 거부하는 이들을 강제로 천국에 끌고 가실 수 없습니다. 비유컨대 구애하는 이가 상대방의 거절을 인정하고 떠나 주는 것이 진정 그를 사랑하는 태도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창조와 양심, 성경과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 이제 그 사랑을 받아들일지의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그분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존중하실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천국보다는 차라리 지옥이 낫다고 스스로 택한 이들을 하나님이 어찌 강제로 구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결국 지옥은 하나님의 부재를 자초한 이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자업자득의 종착지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악의 존재는 신의 부재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선하신 신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허용하심으로써 악의 가능성을 열어두셨지만, 그 악마저도 우리를 성숙시키고 더 큰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악에 대한 궁극적 해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인간이 되어 고난받으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줄 수 없었던, 오직 기독교만의 독보적인 복음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악이 도사리고 있지만, 우리에겐 이미 사탄의 머리를 박살낸 그리스도가 계십니다(창 3:15). 또한 장차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더 이상 사망과 고통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계 21:4).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 대한 의문 때문에 신앙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를 정직하게 직면하면서 동시에 십자가의 복음을 더욱 든든히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신뢰하며, 우리 안에 흘러 넘치는 사랑으로 이 악한 세상과 맞서 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참된 기쁨과 소망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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