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분노: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흔히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혹은 '정의를 위해서'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야, 이렇게 하는 게 하나님의 뜻에 맞아!", "야, 저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 외치며 분노를 쏟아낸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송준기 목사님은 솔직한 경험담을 먼저 털어놓으십니다. "저도 화를 많이 내 봤거든요.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면서 화를 냈지만, 일이 되는 게 없더라고요." 경험에 기반한 이 고백은,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거룩한 분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20) 소명자, 즉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분노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다면, 이미 예수님은 재림하시고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아직 남아있고, 예수님의 재림은 2000년째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분노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화를 낸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셔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2.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분노,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예 화를 내면 안 되는 걸까요? 성경은 인간의 분노를 무조건적으로 금지하지 않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6-27)는 말씀은, 분노 자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제시합니다. "분을 내어도"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성경은 분노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분노는 인간에게 허용된 감정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속'입니다. 화를 내는 것은 괜찮지만, 그 분노를 계속 품고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위험합니다. 만약 분노 상태를 지속한다면, 이는 마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분노를 틈타 우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심고,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분노를 오랫동안 품고 있으면, 마귀에게 "내 마음으로 들어와라"라고 초대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노는 신속하게 해소하고,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3. 분노는 쓰레기처럼 버려라: 분노의 속성과 처리 방법
성경은 분노를 '쓰레기'에 비유하며, 즉각적으로 버려야 할 감정임을 강조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 (에베소서 4:31)는 말씀은, 분노를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쓰레기'처럼 취급하고,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분노는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고,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는 '악의'와 같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분노를 쓰레기처럼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신속하게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리라"는 명령은 단순한 권고가 아닌, 단호한 지시입니다. 우리는 분노를 버리는 데 적극적으로 힘써야 합니다. 마치 쓰레기를 집 밖으로 내다 버리듯이, 분노를 우리 마음 밖으로 내쫓아야 합니다. 분노를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은 마치 쓰레기를 집 안에 쌓아두는 것과 같습니다. 악취가 나고, 벌레가 꼬이고, 결국에는 우리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분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품고 있으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그러므로 분노는 발견 즉시, 미련 없이 버려야 할 쓰레기와 같은 감정입니다.
4. 분노에 즉각 반응하지 마라: 지혜로운 분노 조절법
성경은 우리에게 자신의 분노에 대해 '즉각 반응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내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도서 7:9)는 말씀은, 분노라는 감정에 휩쓸려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리석은 행동임을 지적합니다. 분노는 감정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격렬하게 끓어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에 휩쓸려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후회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노가 느껴질 때, 우리는 '관찰자 시점'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치 제 3자가 되어 자신의 분노를 쳐다보듯이, "이 분노를 내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냉철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노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분노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늦추는 것은, 분노를 '천천히' 진행시키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분노로 인한 말이나 행동이 '천천히' 나오게 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을 다스리고 지혜로운 판단을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잠언은 이러한 태도를 '지혜자의 모습'이라고 칭찬합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언 12:16) 분노를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미련한 자의 특징이고, 분노를 참고 다스리는 것이 슬기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분노라는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에 압도당하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합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분노 조절법은, 단순히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지혜자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께서 분노를 표출하시는 방식과도 일맥상통합니다.
5. 하나님의 분노: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노
인간의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화내시고,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로새서 3:6) 여기서 '이것들'은 구체적으로 불순종, 음란, 탐심 등 죄악들을 의미합니다. 죄악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묵과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십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로마서 2:5) 이 말씀은 더욱 강력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향한 심판의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날에, 그 쌓인 분노를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6. 심판을 유보하시는 하나님의 인내: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사랑
하나님은 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분노를 쌓고만 계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분노를 쌓으시는 과정 자체가, 이미 심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출애굽기 34:6) 하나님은 우리 앞을 '지나다니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고 측정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판단이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위해 분노를 쌓으시지만, 동시에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짓는 즉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며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내는 '무한정'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보류하시는 것은, 심판이 '진행 중'임을 의미합니다. 심판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 가운데 머무른다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오해하여, 회개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7. 긴 코를 가지신 하나님: 분노하시기를 더디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의 분노를 설명하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로 '긴 코'를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구약 히브리어 원어에서 '긴 코'의 하나님은 '에레크 아파임'으로 표현됩니다. '에레크 아파임'은 문자적으로 '코가 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 문화권에서는, 사람이 화를 내면 코가 빨개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코가 빨개지는 것은 분노의 시각적인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코가 '길면' 어떻게 될까요? 코가 짧은 사람보다 코가 긴 사람이 화가 났을 때, 코가 빨개지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입니다. 즉, '코가 긴 하나님'은 '화내시기를 천천히 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내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전도서 7:9) 다시 한번 이 말씀을 떠올려 봅시다. 만약 하나님께서 '코가 짧은' 하나님, 즉 인간처럼 즉흥적으로 화내고 즉흥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이셨다면, 우리는 이미 멸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코가 긴' 하나님, 화내시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공의로운 심판이 '진행'되는 동시에,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사랑의 유보'가 허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긴 코'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에 감사하며,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8. 분노와 사랑의 병행: 홍해 사건을 통해 본 하나님의 양면성
성경은 하나님의 분노와 함께,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홍해를 가르시는 장면은, 하나님의 분노와 사랑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서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출애굽기 14:27-28)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역사였지만, 애굽 군대에게는 심판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모세를 보내 구원 계획을 시작하셨습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에게 경고하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이 기회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열 번이나 되는 재앙은, 애굽에게 열 번의 회개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심지어 홍해 앞, 마지막 순간까지도 회개의 기회는 열려 있었습니다. 애굽 특수부대원들이 홍해의 마른 땅을 추격해 올 때, 그들에게도 마지막 회개의 순간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홍해 사건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공의로운 심판'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지만, '천천히'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반드시 이루어지지만, 그 전에 충분한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완벽하게 조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홍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와 사랑이라는 양면성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앞에 회개하는 삶
송준기 목사님은 설교를 마무리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 이게 남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수준에 어떻게 나를 갖다 대겠습니까? 나는 회개할 것이 너무 많은데, 하나님 나를 오래 참고 견뎌주시며 아직 살려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회개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진솔한 기도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낱낱이 아시지만, 동시에 회개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내'는,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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