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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 속 빛나는 헌신, 5인의 선교사 이야기

by gospel79 202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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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하소서: 숭고한 헌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들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의 주영훈입니다. 오늘 저희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숭고한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볼 예정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신 선교사님들인데요, 깊은 감동과 은혜가 넘치는 시간, 함께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들은 바로 김태훈 선교사님, 이선수 선교사님, 그리고 이은상 선교사님, 마지막으로 박상원 선교사님과 김성녀 선교사님입니다. 이 다섯 분의 선교사님들은 각기 다른 부르심과 삶의 여정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낯선 땅,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헌신하고 계십니다.

먼저, 김태훈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순종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겠습니다. 김태훈 선교사님은 국내 최고 병원인 서울대 병원과 아산 병원에서 인정받는 외과 전문의로 활동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라는 소명을 따라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에티오피아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셨는데요,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2011년 연말, 김태훈 선교사님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2013년 7월, 다섯 식구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이주하셨습니다. 그 결정은 주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는데요, 하지만 김 선교사님에게는 давление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순종의 마음만이 존재했습니다.

외과 의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인턴 시절, 힘든 외과 생활과 과도한 음주 문화에 지쳐 외과의사의 꿈을 접으려던 찰나, 2박 3일 금식 수련회에서 기도 중 “네가 외과의사 하면 좋겠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음성은 김 선교사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고, 결국 그는 외과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험난했습니다. 낯선 문화, 언어 장벽,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큰 인내심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에티오피아는 물과 전기가 수시로 끊기는 곳이었기에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생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파킨슨병 진단까지 받게 되면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2014년 가을,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한국에 돌아와 검사를 받은 결과 파킨슨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김 선교사님은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 고난을 통해 더욱 깊은 감사를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뜨거운 찬양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김 선교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예배 시간,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셨다는 확신을 얻었고, 이후 삶의 가치관 자체가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의 인정과 성공을 쫓던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 주는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선교에 대한 비전은 대학교 시절, 단기 선교 여행과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제주도 아웃리치 당시, 예배 준비 중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 속에서 “네가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겠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을 받게 되었고, “주님이 함께 하시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하며 선교사의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를 선교지로 선택하게 된 것은 의료 시스템 구축이라는 구체적인 목표 때문이었습니다. 남수단과 에티오피아 두 곳에서 의료 선교 자리가 있었는데, 기도 끝에 에티오피아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분은 아프리카만은 안 된다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에티오피아였습니다.

파킨슨병 진단은 큰 충격이었지만, 김 선교사님은 원망 대신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라는 질문 대신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를 고민하며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폭우 속에서 잠시 비를 피할 수 있었던 공원 산책길에서 “네가 쏟아진다고 해서 집으로 가지 않아도 돼”라는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듣고 큰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내분 또한 환상을 통해 위로와 확신을 얻었습니다. 환상 속에서 아기처럼 예수님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가시밭길, 돌짝밭길을 걸어가시는 것을 목격하면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품 안에 있다는 위로와 확신을 얻었다고 합니다.

저서 "깨어진 그릇"은 고난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를 담담하게 풀어낸 책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사역하며 겪었던 어려움과 파킨슨병 진단 이후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깨달음을 진솔하게 담아냈습니다. 특히, “너의 깨어짐 때문에 내가 십자가에 달렸어”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깨어진 그릇과 같은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자비량 선교사로서 모든 것을 기도에 의존해야 했던 에티오피아 생활은 김 선교사님과 가족들에게 더욱 깊은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5년 자비량 선교 후 직장을 그만두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을 때, 놀랍게도 후원자들이 나타나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신 하나님, 사르밧 과부의 가정을 통해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은 김 선교사님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셨습니다.

미국 안식년 기간, 편안한 삶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했던 경험은 에티오피아가 진정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육체는 편안했지만 영혼은 갈급했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에티오피아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에티오피아에는 소아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한국 의료진들과 협력하여 현지 의료진에게 수술 기술을 전수하는 프로젝트를 5년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에티오피아 현지 의료진만으로도 소아 심장병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에티오피아는 내전 상황으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반군이 수도 아디스아바바 진격을 앞두고 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김 선교사님은 에티오피아를 떠나지 않고 그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에티오피아의 영혼들을 더 걱정하는 김 선교사님의 모습은 진정한 선교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김태훈 선교사님은 에티오피아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파킨슨병 치료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김태훈 선교사님을 위해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깨어진 그릇,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선수 선교사의 고백

다음으로, 이선수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감사의 꽃과 같습니다. 이선수 선교사님은 가족성 다발성 용종증이라는 희귀 질환과 싸워오며 “나는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질병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에콰도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대장암, 소장암, 췌장 종양, 담낭 용종, 부신 종양, 뇌종양 등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질병들이 이선수 선교사님을 괴롭혔습니다. 27세 젊은 나이에 대장암 진단을 받고 대장 전절제 수술을 받았지만, 7개월 만에 재발하여 소장 일부까지 절제해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재발하는 용종과 암세포는 이 선교사님을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에콰도르 선교사로 헌신했지만, 건강은 계속 악화되었습니다. 극심한 장 유착으로 응급실을 들락날락해야 했고,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이 선교사님은 오히려 에콰도르 땅에서 더 큰 행복과 감사를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이선수 선교사님은 학교 체육 시간에도 자주 쓰러지곤 했습니다. 결혼 후, 94년 12월 갑작스러운 복통과 혈변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가족성 다발성 용종증이라는 희귀 질환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희귀병이라는 진단은 이 선교사님에게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고, “왜 하필 나에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뇌게 했습니다.

어린 시절, 오빠로부터 “너만 아니었으면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기억은 “나는 저주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에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가족들의 잇따른 질병과 불행은 이 선교사님을 더욱 힘들게 했고, 죄책감과 절망감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던 젊은 엄마에게 암 진단은 사형 선고와 같았습니다. 아이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치료에 전념해야 했지만, 어린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일곱 살 아들은 “엄마, 우리끼리 살게 해 주세요”라고 애원했고, 식당에서 어른들의 대화를 엿듣고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살지?”라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면서 이 선교사님의 마음은 더욱 무너져 내렸습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했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선수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더 달라”고 기도했지만,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을 통해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자신의 생명과 아이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드렸습니다.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 속에서 이선수 선교사님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경험했습니다. 육체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웠지만, 밤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큰 기쁨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병상에서도 전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저러고 다닌다”는 비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남편분 또한 아내의 투병 생활에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예감하고 빚과 홀로 남겨질 현실에 절망하여 자해를 시도했지만, 친구 부부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후 남편분은 자신의 연약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이선수 선교사님은 가족 안에서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후,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달았고, 함께 예배드리고 여행을 떠나고 거실에서 함께 잠자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울고 웃는 시간 속에서 가족 사랑은 더욱 끈끈해졌습니다.

이선수 선교사님의 질병은 어머니로부터 유전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또한 동일한 질병으로 고통받았고, 이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임종 직전 “예수가 참 하나님”이라는 유언을 남겼고,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양을 부르며 눈을 감으셨습니다.

딸에게도 유전된 질병은 이선수 선교사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딸에게 결혼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절망했지만,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고린도전서 7장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고 딸을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놀랍게도 딸은 캄보디아 비전트립 중 선교사님으로부터 안수를 받고 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딸의 질병 치유는 이선수 선교님에게 큰 기쁨과 감사를 안겨주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위에 있던 종양이 사라지고 장에 있던 용종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딸은 건강을 회복했고, 이 선교사님은 딸과 함께 에콰도르 선교 사역에 헌신할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선교에 대한 비전은 교회 집회 마지막 날, 환상을 통해 받았습니다. 기도 중 까만 흑판에 “선교사”라는 글씨가 쓰여지는 환상을 보았고, 10년 전 하나님께 서원했던 “생명 주시면 드리겠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콰도르 선교는 쉽지 않았지만, 이선수 선교사님은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육체는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스럽지만, 영혼은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매일 응급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에콰도르 땅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선수 선교사님은 “오늘 주어진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살고 싶다”는 기도 제목을 나누었습니다. 언제 다시 응급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이선수 선교사님의 강건함과 에콰도르 선교 사역을 위해 뜨거운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순종, 사랑, 헌신: 이은상 선교사의 미얀마 사랑과 100명의 제자 양성

세 번째 이야기는 이은상 선교사님의 헌신적인 삶입니다. 미국 상류 사회의 삶을 뒤로하고 오지 선교를 택한 이은상 선교사님은 30여 개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고, 미얀마에 신학교를 세워 100명의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로 혼란에 빠져있고, 이 선교사님은 제자들을 걱정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은상 선교사님은 “유령 선교사”라고 불립니다. 오랫동안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순회하며 선교 활동을 펼치기 때문에 다른 선교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 파키스탄, 인도, 차마고도 등 복음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복음을 전하는 열정적인 선교사입니다.

미얀마에 특별한 비전을 품고 신학교까지 세웠지만, 최근 미얀마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군부 쿠데타로 인해 정국은 불안정하고, 코로나19까지 겹쳐 제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미얀마 제자들을 “영적인 아들딸”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상류 사회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던 이은상 선교사님은 어느 날 갑자기 “너 뭐 하다 왔니?”라는 하나님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주일 예배 중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이 선교사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좋은 환경, 좋은 배우자를 주었는데 너만 잘 먹고 잘 살다 왔니?”라는 질문은 이 선교사님을 깊은 회개와 헌신으로 이끌었습니다.

“빛나는 평신도”로 살고 싶었던 이은상 선교사님은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입술을 통해 “너 이제 때가 되지 않았니? 빨리 순종해야 되지 않니?”라는 말씀을 듣고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30여 개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순회 선교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오지”였습니다. 미전도 종족 정보를 통해 복음이 필요한 지역을 파악하고,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시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너는 가서 복음을 전하고”라는 단순한 말씀에 순종하며 오지 선교를 감당했지만,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혼들을 만나고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했습니다.

모잠비크 오지 마을에서 겪었던 감동적인 예배는 이은상 선교사님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집에서 자가 발전기를 돌려 예배를 드렸지만, 밤늦도록 찬양과 춤이 끊이지 않았고, 가난한 주민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나누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후에 그 마을에 교회가 세워지는 기적을 목격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스와질랜드 오지에서 차량 전복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낭떠러지 직전에 멈춰 섰지만, 두려움 대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나의 기쁨을 너희 안에 있게 하여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는 요한복음 15장 11절 말씀처럼, 고난 속에서도 넘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짐 없이 떠났던 모잠비크 선교 여행에서 “주님 한 분만이 족하다”는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짐이 분실되어 난감했지만, 오히려 짐 없이도 주님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미얀마 신학교 설립과 100명의 제자 양성은 이은상 선교사님의 삶의 큰 열매입니다. 미얀마 젊은이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그들을 통해 미얀마 복음화를 이루고자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얀마 상황은 매우 어렵고, 제자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자녀들에게는 늘 유언과 같은 메시지를 남기고 선교지를 떠납니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예수님 똑바로 믿어라, 천국에서 만나자”라는 메시지를 통해 자녀들에게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애썼습니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을 존경하고 지지하며,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선교사의 길을 걷겠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남편 황목사님은 먼저 천국으로 떠났지만, 이은상 선교사님에게는 천국 소망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남편의 장례식은 슬픔과 기쁨, 감사와 소망이 공존하는 특별한 예배였습니다. 장례식을 통해 오히려 두 명의 친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30년 만에 교회로 돌아온 성도도 있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영혼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경험했습니다.

남편과의 사별 후에도 여전히 24시간 남편 생각을 하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품고 슬픔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까지, 힘 주시는 대로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는 이은상 선교사님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은상 선교사님은 미얀마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그리고 미얀마 성도들과 제자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얀마 영혼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잃지 않는 이은상 선교사님께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척박한 땅에 피어난 사랑, 박상원 선교사의 아프리카 헌신

마지막 이야기는 박상원 선교사님의 감동적인 아프리카 선교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보다 더 가난한 선교사로 살아가지만,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내와 끊임없는 부부 싸움 속에서도 선교 사역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박상원 선교사님의 삶은 진정한 사랑과 헌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독일 유학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남편을 따라 아프리카 말라위 선교를 시작했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척박했습니다. 가난, 질병, 문화 차이, 언어 장벽 등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부부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박 선교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선교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결혼 후 독일 유학을 떠났지만, 남편은 유학 중 갑자기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안정된 삶을 기대했던 박 선교사님에게 남편의 갑작스러운 결정은 당황스러움과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결국 아프리카 말라위 선교사의 아내로 낯선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84년 말라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박상원 선교사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공항은 마치 시골 버스 터미널처럼 허름했고, 흑인과 백인들 틈에 홀로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 풍족했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에 박 선교사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난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남편은 벨트 구멍을 여섯 개나 더 뚫어야 할 정도로 야위었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두 달 동안 현지인 집사님 댁에 얹혀살면서 불편함과 서러움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교회에 가는 시간만이 유일한 위안이었지만, 교회에서 돌아오면 또다시 답답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교회 광고 시간에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은 우리 집으로 오라”는 남편의 말은 박상원 선교사님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벅찬 일이었습니다. 매일 찾아오는 배고픈 영혼들 때문에 부부 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박 선교사님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어 남편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실제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낯선 땅에서 박 선교사님은 절망감과 무력감에 휩싸였습니다.

어느 날, 한국 선교사 가정이 말라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만, 그들의 풍족한 생활은 오히려 박상원 선교사님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결핍과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신과 비교하며 더욱 비참한 심정을 느꼈습니다.

결국 박상원 선교사님은 꾀병을 부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선교사의 아내가 되었으면 선교사답게 살라”며 냉담하게 대했습니다. 부부 싸움은 극에 달했고, 박 선교사님은 절망과 분노로 가득 찬 나날을 보냈습니다.

결국, 박상원 선교사님은 하나님께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러십니까? 차라리 데려가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절망적인 기도를 하던 어느 날 밤, 하나님께서 박 선교사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라는 음성과 함께 시작된 하나님의 음성은 박상원 선교사님의 영혼을 깊이 울렸습니다. 하나님은 박 선교사님에게 “내가 너를 아프리카로 불렀다, 내가 너를 사용할 것이다, 네가 거듭나야 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박 선교사님은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과 태도로 살아왔는지 깨닫고 통렬하게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박상원 선교사님에게 충격적인 장면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빵을 얇게 썰어주고 자신의 아들에게는 두껍게 썰어주는 모습, 맛있는 밥을 몰래 감춰놓는 모습 등 자신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모습들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서 네가 사랑하는 네 아들을 내가 사랑해서 내 아들을 십자가에 달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박상원 선교사님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자신의 죄악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오열하며 회개했고, 비로소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했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1.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2-3.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2-4.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3.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6. 체험적인 증거들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8. 결정하셨습니까?
9. 구원의 길
전직 깡패 박영문씨의 실화
필립 만토파가 직접 겪은 지옥의 참상
지옥에 있는 크리스천들
어느 목사님의 화려했던 과거 (실화)
26세에 세계 최고의 증권 회사 부사장에 오른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
최선규 아나운서의 충격적인 실화 - 즉사했던 딸이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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