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의 의미와 그것이 어떻게 구약성경에서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예고하시면서 이를 '요나의 표적'(the sign of Jonah)에 비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40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1]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장사 됨,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요나 선지자의 사건에 빗대어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요나의 사건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걸까요?
잘 아시는 대로 요나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가기를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풍랑을 만나 배에서 내던져졌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낸 후 다시 육지로 토해내진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2] 중요한 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 일종의 '죽음과 부활'의 과정으로 묘사된다는 점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그것을 스스로 "스올 속에서"(욘 2:2) 부르짖었다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스올은 구약 시대에 죽음의 장소 혹은 무덤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3]
또한 요나는 자신이 "땅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느니라"(욘 2:6)고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죽음의 상태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4] 그런데 그런 요나를 하나님은 사흘 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살려내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5]
사실 이런 죽음과 부활의 모티프는 요나서뿐만 아니라 구약성경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아브라함의 사건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 유명한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외아들 이삭을 죽이려 합니다.[6] 그러나 막상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시고 숫양을 예비하여 이삭을 대신 번제물로 드리게 하십니다.[7]
이 사건을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이삭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그의 죽음은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해 희생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예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8] 그리고 이삭이 죽음에서 살아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9] 실제로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갈 때,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다 생각하였다"(히 11:19)고 증언하고 있습니다.[10]
이 밖에도 다니엘서의 사자 굴 사건이나[11] 에스겔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12] 등에서도 죽음과 부활의 모티프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 53장에 등장하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예언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러나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5, 12).[13]
이처럼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요나의 사건에 비유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성경 전체에 흐르는 죽음과 부활의 모티프를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의 운명을 예시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14]. 그래서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요나서를 비롯한 구약 곳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type)과 예표(figure)가 나타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15]
보다 깊이 생각해 보면, 구약에 나타난 죽음과 부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개인의 부활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차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16] 요나가 바다에서 건져져 다시 육지로 돌아온 것은 종말에 있을 의인들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의미에서 새 창조와 부활을 예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17]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나의 사건에 담긴 죽음과 부활의 모티프는 구약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신학적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구약의 통찰을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고, 그것이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절정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이 결코 허구나 신화가 아니라, 오랜 구약의 역사를 관통하며 성취된 하나님의 계시적 진리임을 증거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18]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신뢰하고 고백하는 것은 결코 맹목적 믿음이나 비이성적 도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성경 전체의 일관된 메시지요, 하나님이 친히 계시하신 진리에 근거한 고백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성경에 예표되고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역사 속에서 성취된 사건인 셈입니다.[19]
따라서 우리는 요나의 사건을 비롯해 구약에 나타난 죽음과 부활의 모티프들을 통해 기독교 복음의 진리성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건은 결코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성경으로 예증된 역사적 진실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과 소망에 확고한 토대를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궁극적 이유는 단지 그것이 논리적으로 증명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20]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그분을 믿고 영접해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여러분에게 죄 사함과 영생의 소망을 선사합니다. 그 소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랜 성경의 약속 위에 견고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을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겠습니까? 그 부활의 주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시겠습니까?[21]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주실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22]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부활의 생명을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십시오.[23] 주님은 요나를 사흘 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건지신 것처럼, 여러분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References:
1. 마태복음 12:38-40.
2. 요나 1:17.
3. Bill T. Arnold and Bryan E. Beyer, Encountering the Old Testament: A Christian Survey, 3rd ed. (Baker Academic, 2015), 457.
4. 요나 2:6.
5. Craig L. Blomberg, "Matthew," in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ed. G. K. Beale and D. A. Carson (Baker Academic, 2007), 43.
6. 창세기 22:1-2.
7. 창세기 22:11-13.
8. Leroy A. Huizenga, "The Akedah in Matthew,"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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