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을 통해 본 무신론 이론의 허구성
이번 포스팅에서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 연구를 통해 무신론 이론의 허구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는 21세기 과학기술 시대에도 여전히 수십억 명의 사람들에게 영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계몽주의 이후 비이성적이고 미신적인 것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확산되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히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선언하는 이들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 찬 허구의 신화로 치부하며, 과학적 사고에 기반한 합리적인 세계관으로서 무신론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신론적 주장들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신봉하는 과학적 사고의 엄밀한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 글에서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의 주요 흐름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무신론 이론의 논리적 허점과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자 합니다. 또한, 치밀한 철학적 논증과 역사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과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제시함으로써, 독자 여러분께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더욱 굳건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1.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신 존재 증명
1.1. 방법적 회의: 확실한 진리에 이르는 길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는 근대철학의 문을 연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1]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스콜라 철학의 권위에 의존하는 독단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methodological skepticism)를 통해 확실하고 분명한 진리에 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감각 경험은 착각이나 환상에 속을 수 있으며, 심지어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존의 지식 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회의를 통해 진정한 지식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단순한 회의주의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방법적 회의를 통해 자신의 존재 자체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설령 악마가 나를 속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속고 있는 나 자신은 실제로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즉,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그 자체로서 확실하게 존재하며, 이는 다른 어떤 지식보다도 우선하는 기초가 됩니다.
1.2. 신 존재 증명: 완전한 존재에 대한 논증
흥미롭게도, 철저한 회의주의자였던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오히려 신 존재의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세 가지 주요 논증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첫째, 인과율 논증(causal argument)[2]에 따르면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으며, 결과는 원인보다 더 크거나 완전할 수 없습니다. 데카르트는 스스로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지하면서, 자신에게 존재의 개념을 부여한 더 완전한 존재가 존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유한한 존재가 스스로 존재하는 완전한 존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본유적 관념 논증(innate idea argument)[3]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신에 대한 관념은 경험이나 상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본유적으로 심어져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데카르트는 신에 대한 관념은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며, 이러한 관념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신이 직접 인간의 마음속에 신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었으며, 이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셋째,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4]은 신의 존재를 신의 본질 개념으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합니다. 데카르트는 신을 “완전한 존재”로 정의하고, 완전성에는 존재가 필수적으로 포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존재는 완전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은 완전한 존재이므로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은 여러 철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인과율 논증에 대해 우리가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유한한 원인과 결과의 연쇄일 뿐이며, 이를 통해 무한한 존재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존재론적 논증에 대해 존재는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나타내는 술어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단순히 개념 분석만으로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1.3. 데카르트의 유산: 이성적 신 존재 증명의 시발점
비록 데카르트의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도 존재하지만, 그의 철학적 업적이 지닌 의의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중세 시대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이후 서양 철학사에서 신 존재 증명 논의의 중요한 출발점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이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등 합리주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들은 각자 독창적인 방식으로 신 존재 증명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2. 근대 경험론과 무신론의 대두
2.1. 경험주의: 지식의 원천에 대한 새로운 시각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더불어 근대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경험주의(empiricism)는 모든 지식의 원천을 경험에서 찾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경험주의자들은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며, 오직 감각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주의는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2.2. 존 로크의 경험론: 신 존재에 대한 제한적 입장
존 로크는 『인간 지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1689)[5]에서 인간의 마음은 태어날 때 백지 상태이며, 모든 지식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데카르트의 본유적 관념론을 비판하며, 신에 대한 관념 역시 경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로크는 경험만을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강조하면서도 신 존재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지성을 가진 창조주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주장하며, 이성적인 존재라면 신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았습니다.
2.3.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 인과론과 기적에 대한 비판
데이비드 흄은 경험주의를 극단까지 밀고 나가 회의주의(skepticism)에 도달한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 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1739-1740)[6]에서 인간의 이성은 경험을 통해 얻은 인상들을 연결하는 습관에 불과하며, 따라서 우리는 세계의 본질이나 인과 관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흄은 특히 기독교 신앙의 핵심 근거 중 하나인 기적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기적은 자연 법칙에 위배되는 사건이며, 자연 법칙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립된 불변의 진리이므로 기적이 일어났다는 증언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2.4. 경험론과 무신론의 대두: 이성과 신앙의 괴리 심화
흄의 회의주의는 이후 서양 철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무신론(atheism) 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흄은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철학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토대를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특히 인과론에 대한 그의 회의주의적 입장은 전통적인 신 존재 증명을 반박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기적에 대한 그의 비판은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이처럼 경험주의는 이성과 신앙의 괴리를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으며, 이는 이후 무신론 사상이 대두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3. 칸트의 비판철학: 이성의 한계와 신앙의 영역
3.1. 순수이성비판: 형이상학적 지식에 대한 회의적 시각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독일의 철학자로서,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7]은 서양 철학사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칸트는 그의 비판철학을 통해 당시 유럽 철학계를 지배하던 합리론과 경험론의 한계를 동시에 지적하고, 인간 이성의 본성과 한계를 탐구하여 지식의 가능 조건을 밝히고자 노력했습니다.
칸트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주관적인 인식 능력에 의해 규정되며, 따라서 우리는 사물 자체(Ding an sich)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감성(Sensibilität)과 오성(Verstand), 이성(Vernunft)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인식 능력이 어떻게 작용하여 지식을 형성하는지 분석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감성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선험적 형식을 통해 감각 자료를 받아들이고, 오성은 12가지 범주를 통해 감각 자료를 정리하고 통일하여 경험적 대상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이성은 오성을 초월하여 세계의 궁극적인 원리나 근거를 탐구하려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담당합니다.
칸트는 형이상학적 지식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이성이 세계의 궁극적인 원리를 탐구하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이율배반(antinomy)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성은 세계의 시작과 끝, 영혼의 유한성과 무한성, 자유의지와 결정론 등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주장을 모두 정당화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이러한 이율배반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성이 경험의 영역을 벗어나 사물 자체를 인식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3.2. 실천이성비판: 도덕법칙과 신 존재의 실천적 요청
칸트는 『실천이성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1788)[8]에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탐구하고, 순수이성에서는 인식할 수 없었던 신 존재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칸트는 인간에게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법칙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도덕법칙을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으로 표현했습니다.
칸트는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며, 이러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존재, 자유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도덕법칙에 따라 행위했을 때 최고선(summum bonum)이 실현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도덕법칙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덕법칙이 의미를 가지려면 도덕적으로 완전한 존재인 신이 존재해야 하며, 신은 도덕법칙에 따라 행위하는 자에게 행복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3.3. 칸트 철학의 영향: 신 존재 증명 논쟁의 새로운 국면
칸트의 비판철학은 서양 철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신 존재 증명 논쟁에도 새로운 국면을 열었습니다.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신 존재 증명을 비판하면서도,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신 존재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이후 신 존재 증명 논의를 이성의 영역에서 신앙의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 등 근대 신학과 실존주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4. 19세기 무신론의 발전과 그 한계
4.1.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신은 인간의 소외된 본질
19세기는 유럽 사회 전반에 걸쳐 무신론 사상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고 확산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무신론은 단순히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넘어, 기존 사회 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는 신은 인간이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투영하여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1841)[9]에서 신은 인간의 사랑, 지혜, 정의 등 긍정적인 속성들을 추상화하고 객관화하여 만들어 낸 존재이며, 인간은 신에게 자신의 본질을 투사함으로써 스스로 소외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4.2. 카를 마르크스: 종교는 인민의 아편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종교를 억압받는 민중의 환상이자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간주했습니다. 그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Religion is the opium of the people)”[10]이라는 유명한 말을 통해, 종교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사회 변혁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상부 구조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과 착취가 해소되면 종교는 자연스럽게 소멸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4.3. 프리드리히 니체: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신의 죽음(God is dead)[11]을 선언하며 서구 문명의 위기를 진단했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전파한 금욕주의와 평등 사상이 인간의 의지와 생명력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하며, 강한 인간, 초인(Übermensch)이 등장하여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니체는 신의 부재는 인간에게 절망이 아닌 자유를 의미한다고 보았으며, 인간은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어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4.4. 19세기 무신론의 한계: 논리적 근거 부족과 대안 제시의 실패
19세기 무신론은 기존의 종교적 권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닙니다. 하지만 19세기 무신론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첫째, 19세기 무신론은 신 존재를 부정하는 데는 적극적이었지만,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포이어바흐의 주장은 신이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며, 마르크스의 주장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분석에 치중되어 신 존재 자체에 대한 논증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니체의 주장은 신의 죽음을 선언했지만, 이것이 실제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19세기 무신론은 종교를 대체할 만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이론과 현실의 괴리, 인간 본성에 대한 몰이해 등으로 인해 수많은 문제점을 야기했으며, 니체의 초인 사상은 엘리트주의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5. 현대 무신론: 새로운 무신론 논쟁과 그 허점
5.1. 새로운 무신론의 등장: 과학주의와 진화론에 기반한 비판
20세기 후반 이후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무신론(New Atheism)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샘 해리스(Sam Harris),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무신론 주장을 더욱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전개하며, 특히 과학주의(scientism)와 진화론(evolution)에 기반하여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강한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2006)[12]에서 신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미신이며, 종교는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망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복잡성과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 신이라는 존재는 불필요하며,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2007)[13]에서 종교는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억압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며, 도덕과 윤리의 근원은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과 공감 능력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역사 속에서 자행된 수많은 종교 전쟁과 폭력, 차별 등을 예로 들며, 종교는 인류에게 해악만을 끼쳐 왔다고 비판했습니다.
5.2. 새로운 무신론의 주장: 과학적 증거와 논리적 추론의 허점
새로운 무신론은 과학적 증거와 논리적 추론을 통해 신 존재를 반박하고, 종교의 비합리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기존 무신론과 차별성을 지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 역시 여전히 논리적 허점과 한계를 드러냅니다.
첫째, 새로운 무신론은 과학만능주의에 빠져 과학의 한계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과학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현상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신 존재 여부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과학은 항상 변화하고 발전하는 학문이며, 현재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미래에도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둘째, 새로운 무신론은 진화론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는 독단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진화론은 생명체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이지만, 아직까지 몇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과 같이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한 생물 다양성이 나타난 현상은 기존의 점진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우며, 생명체의 복잡한 정보 시스템의 기원 역시 진화론의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셋째, 새로운 무신론은 종교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긍정적인 측면은 외면합니다. 물론 종교는 역사 속에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도덕과 윤리의 기틀을 마련하고, 예술과 문화 발전에 기여,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희망과 위로를 제공하는 등 인류 문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5.3. 무신론 논증의 허점: 오류에 빠지기 쉬운 논리적 함정
무신론 논증은 종종 몇 가지 논리적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대표적인 오류로는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argumentum ad ignorantiam)', '인신 공격의 오류(argumentum ad hominem)',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false dilemma fallacy)' 등이 있습니다.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는 어떤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신은 존재한다”는 주장은 무지에 호소하는 오류입니다. 신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하며, 증거가 없다고 해서 신이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신 공격의 오류는 주장 자체에 대한 반박 대신 주장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신념 등을 공격하는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종교인이기 때문에 하는 말은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인신 공격의 오류입니다. 주장의 타당성은 주장 자체의 논리적 근거에 따라 판단해야 하며, 주장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배경과는 무관합니다.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는 두 가지 선택지만을 제시하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오류입니다. 특히 제시된 두 가지 선택지 외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는데도 이를 무시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진화론이 틀렸다면 창조론이 맞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입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외에도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다른 이론이 존재할 수 있으며,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창조론이 옳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
지금까지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의 흐름 속에서 무신론 이론의 허점과 한계를 살펴보았습니다. 무신론은 과학과 이성을 근거로 신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를 비판하지만, 그 논리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현상만을 다루며, 신 존재 여부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또한, 무신론은 종종 논리적 오류에 빠지거나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처럼 기독교와 성경은 허구의 산물이 아닌 객관적 진실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반드시 지옥에 가기 때문에 지체하지 말고 지금 즉시 이 블로그의 글을 읽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1] 데카르트. (1637). 방법서설.
[2] Aquinas, T. (1274). Summa Theologica.
[3] Descartes, R. (1641).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4] Anselm of Canterbury. (1078). Proslogion.
[5] Locke, J. (1689).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6] Hume, D. (1739-1740). A Treatise of Human Nature.
[7] Kant, I. (1781). Kritik der reinen Vernunft.
[8] Kant, I. (1788).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9] Feuerbach, L. (1841). Das Wesen des Christentums.
[10] Marx, K. (1844).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11] Nietzsche, F. (1882). The Gay Science.
[12] Dawkins, R. (2006). The God Delusion.
[13] Hitchens, C. (2007). God is not Great: How Religion Poisons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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