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해당되는 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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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10.31 1.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692)
  3. 2012.10.19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100)
  4. 2012.10.11 9. 구원의 길 (496)


  박영문씨는 젊은 시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소위 말하는 막장 인생을 살던 깡패였습니다. 

 가정 불화로 아내가 떠나게 되자 복수심에 불타 일가족을 몰살시키려는 무서운 계획을 세우던 중 놀라운 경험을 하고 극적으로 회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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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 년 4월 3일은 내 일생을 변화시켰던 일이 있었던 날이다. 

 1985년 술에 취해 오토바이 사고를 내고 구치소에 갇혔다가 풀려난 내게 아내는 이혼요구를 했고 나는 아내와 이혼을 부추긴 처가댁 식구들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8명에 대한 철저한 살해계획을 세웠었다.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광주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서울로 가는 기차 10시 40분 표를 예매해 놓았다.


 그때가 86년 4월 3일 밤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기 불과 40분전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렁찬 음성을 들었다. 귀에 고막이 터질듯한 아주 크고 우렁찬 음성이었다. 


 “여봐라! 여봐라!” 

 너무도 이상하여 대문 밖으로 나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의아해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와 피우려던 담배를 손에 쥐고 성냥불을 막 그으려는 순간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는 것이 아닌가. 


 깜짝놀라 엉겹결에 문쪽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놀라움에 소리치고 말았다. 

 선명한 일곱 빛깔의 무지개 빛이 내리깔리면서(계 4:3) 그 빛 가운데로 위에서 어떤 물체가 내려오는데 자세히 보니 하얀 옷을 입은 한 사람이었다(계 1:13). 

 밝은 빛 때문에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우리와 같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윽고 그 하얀 옷을 입은 사람 뒤로 네모난 모양의 마차가 따라내려오고 있었다. 


 그 마차에는 의자 셋이 있었는데 가운데는 비어 있고 양쪽에는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마 내가 예수믿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큰 감동을 느꼈겠지만 나는 그쪽으론 전혀 문외한이었기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한가지 이상한 것은 불타오르던 증오심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에서 주무시던 어머니를 깨웠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이 장면이 보이지 않았고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다시 주무셨다. 


 내가 다시 마차를 쳐다보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비어있는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분명 몸을 만져 보며 확인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했다. 그 마차에 앉자마자 마차는 출발했고 나는 그 때부터 천국과 지옥을 생생히 보게 되었다. 


 눈이 부실만큼 찬란한 황금빛 길을 지나 세상에선 맡을 수 없는 꽃향기를 맡으며 꽃밭길을 지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세계각국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계 7:9). 


그리고 나는 예수를 믿다가 병환으로 돌아가신 외삼촌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병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외삼촌의 모습은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보았던 젊은 얼굴과 체격으로 싱그러운 30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 얼굴에는 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모두 떨쳐 버린 평화와 기쁨만 빛나고 있었다(계 21:4). 계속해서 들려오는 은은한 음악소리를 들으며 황금마차는 몇날 며칠이 되도록 달려 황금빛 찬란한 집들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무슨 질문을 해도 대답이 없었던 내 옆의 천사들은 비로소 이곳에 이르러서는 분명한 목소리로 “여기가 천국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 집들은 내가 볼 수 있는 데까지 길다랗게 뻗쳐 지어져 있었는데 도저히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세상에선 볼 수 없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황금빛 찬란한 집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부가 새로 지은 듯 말끔히 단장하고 있었고 누군가가 금방이라도 이사올 듯이 채비를 갖추고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는 점이다(요 14:2~3). 


 외삼촌이 있는 곳과는 달리 이곳에선 단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역시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마차는 밤처럼 캄캄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만 마차를 인도하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의 형상으로 된 보름달 크기만한 불빛이 비치는 곳만 환할 뿐이었다. 들려오던 음악소리도 멎어 있었다. 


 어느새 내 마음 가운데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보여주더니 이젠 죽여 버릴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겁에 질려 있었다. 


 어느새 앞에 사람의 형상을 한 불빛은 한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6년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유교학자로 향교에서 장의까지 지내며 문중 일도 도맡아 하던 집안에 대들보와 같은 분이셨다. 살아계실 때 예수의 ‘예’자만 들어도 불호령을 치셨던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병환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 관을 두 개 크기로 짜야할 만큼 비참했는데 이곳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돌아가시기 직전 그 비참한 모습 그대로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발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세모난 머리를 한 새파란 독사들이 구물구물거리며 아버지의 온몸을 기어다니면서 물어뜯고 찢고 할퀴어서 아버지의 온몸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울부짖고 통곡하며 아버지를 불렀지만 아버지는 나의 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셨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둥그스름한 화로 위에 그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큰 석쇠같은 철판 위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꽃을 피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계 20:15). 이곳에서 나는 또 다른 익히 아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바로 생전에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며 구두쇠같이 살다간 큰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큰아버지도 역시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셨다. 


 셋째 불빛이 비친 곳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를 보게 되었는데 온몸이 세 마리의 보기에도 흉칙한 구렁이에게 감겨 어찌나 세게 조였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 친구 역시 나와 같이 술을 좋아하다 결국 술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이었다. 


 넷째로 불빛이 비추인 곳에서는 깊은 늪, 수렁 속에 허리부분까지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름 모를 조그맣고 시커먼 짐승들이 앞 뒤 옆에서 치고 뜯고 할퀴고 해서 피투성이를 만들고 있었다. 도망가지도 못하고 몸만 좌우로 움직여 짐승을 피하느라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친척과 같은 고향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사실 그 친척은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교회가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구원의 확신없이 그저 교회 문턱만 왔다갔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쪽 다리는 교회 안에 들여놓고 다른 한쪽은 교회 밖 세상에 놓고 건성으로 다닌다면 시간만 축내며 결국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마 7:21). 


 지옥에서 본 아버지와 천국에서 본 외삼촌 이렇게 내가 본 지옥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곳이었다. 그 어둡고 비참한 곳에서 나는 아버지, 큰아버지, 친구, 친척, 고향 사람들을 분명 보았고 저들을 보며 울부짖을 밖에는 달리 힘이 없었다. 


 이 세상 살다가 죽어버리면 그만인 줄 알았던 나는 진실과 맞닿게 된 것이다. 지옥을 본 후 마차가 처음으로 멈춰선 곳은 ‘심판대’라는 곳이었다(계 20:13). 이곳에서 나는 내가 태어나서 눈, 입, 손과 발 그리고 마음속으로 지은 죄까지 적혀 있는 ‘회고록’이란 것을 보았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의 종류가 무려 1백32종류나 되었고 각각의 종류별로 세분화되어 그 가짓수는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었다. 그중 술먹고 실수한 죄 밑에 가장 많은 가짓수가 뻗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전 6:10, 롬 13:13).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세상살이에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죄가 되는 항목 두 가지를 보게 되었다. 

 하나는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이요, 둘째는 예수 믿는 사람을 욕하고 멸시, 괄시하며 핍박한 것이 죄라는 것이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성경, 찬송가를 찢고 불에 쳐넣어 태워버린 일, 전도하는 친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멸시하고 심지어 발길질에 뺨까지 때렸던 지난 날의 죄가 시간과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돼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내내 궁금히 여기던 질문을 했다. 


 “왜 예수믿는 일이라면 물불을 안가린 형님 같은 사람에게 이런 곳을 보여주지 예수라면 징그럽게 싫어하고 세상에서 온갖죄를 저지른 죄인인 내게 왜 이런 곳을 보여 주냐”고 말이다. 이러한 물음에 내 옆에 있던 천사가 답해주었다. “너희 형님같은 사람은 이런 곳에 올 필요가 없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네 눈으로 직접 보아야지 천국와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렇다. 형님처럼 보지않고 믿는자가 더 복되다는 성경말씀과 일치하는 답변이었다(요 20:29). 


 이윽고 마차는 다시 출발했고 갑자기 밑도끝도 없이 무조건 “믿겠느냐?” 하는 크고 우렁찬 음성이 다시 내 귓전에 들려왔다. 이 음성은 내가 일가족 여덟명을 죽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기 40분전 방안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음성이었다. 

 당시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보지 않았으면서도 “주여! 믿습니다!”라는 대답이 절로 나왔고 주님을 영접했다. 그러자 뒤이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세상에 나가면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도 보태지 말고 빼지도 말고 네가 본 그대로 증언해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들려주신 음성은 “두고 보리라!”였다. 


 이렇게 몇날 며칠 동안 긴 여행을 한 것 같았는데 깜짝 놀라서 벌벌 떨며 깨어보니 밤 11시 10분이었다. 불과 70여분 사이에 이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숫자의 개념도 시간의 개념도 없었던 것이다(벧후 3:8).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가 방 한구석에서 벌벌 떨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어머니 말을 빌자면 내가 한 시간이 넘도록 세상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혼자 중얼중얼거리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모르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내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어머니께 상세히 말씀드렸다. 

 예수의 ‘예’자만 들어도 아버지처럼 불호령을 치셨던 어머니께서는 당신 남편의 비참한 얘기를 들으시곤 눈시울을 적시셨다. 


 이렇게 어머니와 난 예수동창생이 되어 함께 학습세례도 받고 같은 날에 집사가 되기도 했다. 이제 얼마나 열심히 교회에 다니시며 전도하시는지 나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신 분이 되셨다. 


 이 때부터 내 삶은 180도 변화되었고 이젠 내 주먹을 믿으라가 아닌 오직 주 예수를 믿으라가 입술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어 지금껏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오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내 귓가에 맴도는 “두고 보리라!” 하신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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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문씨는 회심한 이후 장로로서 천국과 지옥을 열심히 증거하며 사역하시다 2009년 6월 소천하셨습니다. 

 간증에 나오는 박영문 장로의 형은 박영우 목사로 현재 광주 안디옥 교회를 담임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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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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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식당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선생님, 그 물에는 치명적인 독약이 섞여 있으니 절대로 마시지 마십시오.'라고 얘기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단순히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 사람 말이 맞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으니,'이 사람은 미친 사람일거야' 라고 생각하여 벌컥벌컥 마시겠습니까?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여러분은 함부로 그 물을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에 하나라도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었는데 물을 마셨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말을 믿지 않거나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은 이유 때문에 죽음이라는 너무나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영원한 기쁨이냐 너무도 끔찍한 영원한 고통이냐가 달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얼핏 아무리 황당하게 여겨지고 믿기지 않아도  정말 사실인지  심각하게 한 번 쯤은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순히 그럴리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도박 아닙니까?

 혹시라도 지금까지 이 문제를 흘려들으셨다면,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따져보시기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그 '불편한 진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이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태어난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그 이후에는 아무런 세상도 없고, '나'라는 존재도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 뿐인 인생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삶을 추구하며 한바탕 즐겁게 살다가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산 사람들은 영원히 천국에서 무한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부인하거나 자신의 욕망에만 사로 잡혀서 인생을 산 사람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종교적인 환타지나 환상의 산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존재하는 이 세상과 똑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사람을 창조했을 때에는 이 지상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면서 살도록 계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함으로써, 이 원죄가 인간에게 유전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사람은 '죄의 결과'인 사망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이유로 하나님의 속성상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위해 준비된 고통의 장소인 '지옥'의 영원한 형벌 또한 사람이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류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은 3일만에 부활함으로써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로써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산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며 산 사람은 죽음 이후에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지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뜨거운 유황불로 사람을 태우면서 영원토록 고문하는 무시무시한 장소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무한대이며, 너무나 절망적인 사실은 그 고통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절망' 그 자체입니다.. 설령,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아무리 주변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성자같은 삶을 산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결코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시간이 없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1분 1초 후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지체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동안 지었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여 믿고, 그 분이 원하는 거룩한 삶을 사십시오. 바로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이며,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거듭 강조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진짜로' 있습니다! 그냥 사람들이 꾸며낸 종교적인 허상이나 환타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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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신 여러분 중 상당수는 아마 이런 반응을 보이실 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 소리였군...'


'하나님, 예수님 운운하기 전에, 우선 신이 있는지 없는지부터 검증하고 증거를 얘기해줘야 할 것 아닌가?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는데 대체 무슨 근거로 신이 있다고 뻥을 치는 거냐?...'


'예수, 부활, 천지 창조, 처녀가 임신해서 예수를 낳은 것,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물위를 걷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인 것,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해서 승천한 것...진화론과 배치되는 비과학적인 창조론...등등..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내용으로 점철된 종교적인 신화를 무슨 근거로 믿으라는 것이냐?


'성경도 사람이 만들어낸 수많은 종교 경전의 하나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냥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기 위해 조작하고 짜깁기 한 역사적 픽션 아니냐? '종교'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광신도들이나 믿는 것 아닌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도 않은 신의 존재를 대체 무슨 근거로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이 공의롭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 세상의 불합리와 고통, 악이 존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정말로 사랑이 넘치는 존재라면 어떻게 인간을 그토록 무자비한 지옥에서 영원히 고문을 할 수가 있는가? 지옥이 존재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므로, 그런 신은 존재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위와 같은 의문이나 회의 없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그 분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셨다면, 더 이상 이 사이트의 자질구레한 변증이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믿고는 싶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위와 같은 의문과 모순 때문에 믿기를 주저하셨거나,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안티'라면, 절대로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왜 성경과 복음, 하나님이 진리인지를 '아주 꼼꼼하고 확실하게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겨지지도 않는 신화를 '맹목적'으로 믿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으로 '과연 저 복음이라는 것이 사실인가'에 대해서 치밀하게 의심하고 따져보기를 원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골치 아픈 종교 얘기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냥 넘어가려고 하신다면, 그새 잊으셨습니까?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치명적인 독이 든 물을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단순히 믿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검증해보지도 않고 독이 든 물을 겁도 없이 벌컥벌컥 마시려 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편한 진실이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종교적 신화로 점철된 허구의 산물인지 지금부터 하나씩 확인해보겠습니다 (클릭). 


(종교적 변증을 떠나, 지적이고 합리적인 분들이 좋아하실 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여러분은 충분히 지적이고 합리적인 분이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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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 [불편한 진실] -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7 - [불편한 진실] -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6 - [불편한 진실] -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5 - [불편한 진실] -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4 - [불편한 진실] -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3 - [불편한 진실] -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2 - [불편한 진실] -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1 - [불편한 진실] -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2012/10/20 - [불편한 진실] -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2012/10/20 - [불편한 진실] - 6. 하나님이 있다는 논리적인 증거가 있는가?

2012/10/19 - [불편한 진실] - 6. 체험적인 증거들

2012/10/19 - [불편한 진실] -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12/10/18 - [불편한 진실] - 8. 결정하셨습니까?

2012/10/11 - [불편한 진실] - 9.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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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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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섻스 2018.05.06 0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섻스 글 읽지도 않았다 딱봐도 싸이비를 알았다 이기

  3. 어휴 2018.09.02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살지말아라 인간쓰레기야

  4. 123 2018.09.03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부터 공감이 안돼ㅋㅋㅋ
    모르는 사람이 "독약이 들었습니다." 하고 말했는데
    이걸 이분법으로 [무시하고 마신다 or 마시지 않는다.]라는 예시를 드는게 말이 되냐.
    당연히 마시진 않겠지, 근데 그 이전에 정보에 대한 판단, 즉 사고란걸 하겠지.

    저렇게 무시하고 쳐마신다는건 그냥 반감의 표현이고,
    또 그렇다고 마시지 않는다는건 근거없는 순종아니냐.

    애초에 둘다 두루뭉실하게 적어놨으면 인상이 옅어 눈에 거슬리지라도 않았을텐데,
    마신다는 예에 "미친사람"이라고 다짜고짜 업신여기고 '벌컥벌컥'마신다는게 오히려 내용에 신빙성을 잃었네. 생각을 하고 글을 적었다고 보여지지가 않아.

    ♩♩♬ 사고방식이 왜케 1차원적이고 극단적이냐.
    머가리가 있는 놈이 적은 글이란 생각이 안든다.

  5. 1234 2018.09.22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2018.10.12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예수엄마 2018.10.16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야.. 엄마가 너 좋아하는 김치볶음밥해놨다..
    그러니까 그만 하자..

  8. 이한경 2018.10.20 2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경험해 봤다고들 하는데, 정말 당신이 관심이 있고,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한다면, 기독교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후에 엄청난 안락함을 느꼈다', '편안함을 느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반응할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선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라는 말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리고 기독교를 믿지 않았던 역사 인물들에게 있어 엄청난 실례입니다.

    역사적 인물을 하나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임진왜란때 나라의 절체절명적 위기에서 구한 '이순신 장군'은 생전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니었으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업적을 이루며 조선을 위기에서 구했고, 노량해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속죄'를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기에 고통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전지전능하며, 자신이 만든 인간을 구원하고 싶어하며, 속죄가 있어 그것을 회개하여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면.

    당장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믿어 천국에 간 사람과. 업적을 이루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아 지옥에 간 사람이 나오면 안됩니다.

    1km 달리기를 하는데, 그것을 기록하는 체육선생이 1km달리기를 한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았고, 그것을 일부에게만 말하여서 그 일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길 원했다면, 그 체육선생은 학생들에게 욕을 먹어야 '정상'이고, 그 체육선생은 분명한 '잘못'을 했으며, '질책'을 받아야 하는겁니다.

    왜 기독교는 외국에서 들어왔어야만 했습니까?
    세계 천지창조 신화에서 보듯, 대부분 세계 천지창조 신화에서 '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처럼, 고대로 올라갈수록 공통적으로 서술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지금의 이스라엘부근에서'만' 예수님이 나타나게 하셨습니까?

    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진정한 '진리의 종교'입니까?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평등의 종교'입니까?

    기독교인이면서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위의 평범한 고등학생도 할 수 있는 사고방식에 대해 반박하기 어려워서 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 당시의 아시아에선 불교와 유교등의 종교들이 나왔기에 선교를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았다'
    '그땐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로 말합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단순히 저런 이유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전지전능하지 않다'라고 입증하는 꼴이 됩니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말합니다.
    생각하고 말하십시오.
    잠언에서도 말합니다. 입은 함부로 놀리는게 아니라고.

  9. 낚시 2018.10.22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글도 지수에도움이되나요?
    낚시좀..하지맙시다

  10. 하나로진주대리운전 2018.11.25 00: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로진주대리운전 사업번창하게 도와주소서
    055 712 1111

  11. socrated 2018.11.30 0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가 망상에 시달린다면 정신이상이라 하고 다수가 망상에 시달린다면 종교라 한다. 로버트 퍼시그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고 인간이 필요에 의해 신을 창조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극성스런 예수꾼들에겐 불편하겠지만 ᆢ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 땅의 대부분의 종교앞잡이들은 벼락을 맞아야겠지요? 이게 신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랍니다.

  12. 붕알마루 2018.12.05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에서 더 안읽고 걸렀다

  13. ㅁㅈ 2018.12.11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쟁이가또. 메일까지 보내면서 사람을 빡치게하네

  14. . 2018.12.12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슬프네요..ㅜ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천국과 지옥을 믿습니다.
    그리고 잘 안되지만 나름대로 성경대로 살려고 하고있습니다..

    저는 이 신앙이 믿어지고 때로는 희망을 품기도하고
    때로는 위로도 받고 힘을 얻습니다.

    내 마음에 불편하다고 해서
    내 논리로 받아지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하고 비난한다면
    여러분이 욕하는 개독교나 무슨 차이가 있나요?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모든사람들이 다 온전해 지는것이 아닙니다.
    부족하니까 믿는겁니다.
    조금씩 변화해 가는 과정이 필요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냥 믿는 사람으로써 지나치기가 뭐해서 올렸는데
    불편했다면 죄송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뭐라고 안하셨음 좋겠어요..
    개인블로그에 이런저런거 올릴수 있잖아요 ㅎ

    모두 좋은하루되시기를 바래요~^^

  15. 하누리 2018.12.26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해동안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16. 그냥 한마디만 2018.12.27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독교... 천주교..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이스라엘에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왜 그럴까요?

    왜 .. 왜.. 눈으로 보지도 .. 실제 경험해 보지도 않은 타국 타민족 타인종이 .. 더 믿는 걸까?

    왜 일까?

    재미 있을 뿐입니다. 왜 믿는지도 모르고 ... 혹 모르겠습니다. 내가 죽기전에.... 아니 죽을 정도로 늙는 다면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 종교를 믿어볼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 그 종교가 종파되기 전에는 그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뭐 모든나라가 마찮가지 겠지만... 왜 거기에 한명이 나타났고 그걸 왜 그나라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믿질 않는지 ..

    궁금합니다.

    • 천사 2019.08.05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경에나와있어요. 믿지 않는 이유!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돌리실거에요.144000명만요ㅎㅎ장담합니다.왜냐구요?성경에 써있네~요

  17. 모든건 개인의 자유 2019.02.02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쓰는 것도 개인의 자유고 읽기 싫으면 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종교가 없고, 종교에 대해 나름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독교의 이런 글들에 대해서 느낌만을 말하자면
    설령 이기적일 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종교를 전파하는 것은 자유라 한다면,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
    그리고, 한가지 더. 종교가 없어서 그렇다 하지만, 사실 설교문이나 위와 같은 글을 읽으면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문화적인 느낌에 맞는 언어선택으로서의 설파방법은 없는 것일까?
    항상 기독교의 글들이나 말들에는 이질감을 느끼는 언어들로 가득할까라는 것이다.
    다른 언어와 다른 문화의 종교를 우리나라에 억지로 가져들여왔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고,
    만약 그게 정말 당신들이 해야할 사명이라 생각한다면 적어도, 듣는 이에게 이질감을 주는 전파대신 다른 방법을 연구하지는 않는건가?
    이렇게 얘기하면 항상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건.. 그저 사탄이 그렇게 마음을 유혹하기 때문이다라고 하겠지..

  18. 제석천왕 2019.02.10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미타부처님의_구제와_하나님의_구원에는_무엇이_다른가?

    http://cafe.daum.net/amtb/ZEB/161685

  19. 제석천왕 2019.02.10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질문: 아미타부처님의 구제와 하나님의 구원에는 무엇이 다른가?

    대답: 어떤 종류의 구제든 간에 모두 귀하고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간략히 말하면 양자에는 열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 공간이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은 지구에 국한되지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시방의 일체 세계에 편만해 있습니다.

    둘째: 시간이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마감일이 있지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영원히 멈추지 않습니다.

    셋째: 넓고 좁음이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지 인류에게만 미치지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널리 일체 천인·인간·지옥·아귀·축생 등의 육도중생에게 미칩니다.

    넷째: 확률이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은 한 사람에게 단 한 번의 기회만 있지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누구나 무수한 기회가 있어서, 설사 금생에 구제되지 못해 삼악도에 들어가더라도 아미타부처님은 여전히 따라다니면서 포기하지 않고 구제를 해주시거나 혹은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여 구제될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하지가 않아서 반드시 일부 사람들은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구제될 수 없지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설사 죄업을 짓고 지옥에 들어간 중생일지라도 맹세코 한 중생도 빠짐없이 구제를 해주시기 때문에 끝없는 시간으로부터 볼 때 어떠한 중생도 백퍼센트 극락정토로 구제될 확률이 갖고 있습니다.

    다섯째: 역할이 다르다. 하나님은 구원자이자 또한 심판자입니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은 순전히 구제자이지 심판자가 아닙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죄업을 짓고 고통 받는 중생을 자비로 가엾이 여겨 죄업이 두텁고 고통이 깊을수록 더욱 구제를 해주시고 나아가 영원히 아비지옥에 떨어진 중생도 맹세코 구제하려 하십니다.

    여섯째: 어렵고 쉬움이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순하게 믿음만 강조하여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간단한 수단이 부족한 듯하다보니, 누군가 믿지를 못한다거나 믿음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언제 어디서나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할 수 있어서 편리하고 간단하고 쉽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중생들이 알든 모르든, 믿든 안 믿든, 믿음이 깊든 믿음이 얕든 간에 모두 아미타부처님과 연결되고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의 비춤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이익이 다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천당에 태어나게 하지만, 진리와 완전한 한 몸은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피조물과 조물주는 영원히 평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께서 중생을 구제하여 극락왕생하면 모두가 평등하게 성불하고 진리와 완전한 한 몸이 되어 전혀 다름이 없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진리의 경계입니다.

    여덟째: 자비가 다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구원은 자비가 작으면서 한계가 있지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는 자비가 크고도 무한합니다.

    아홉째: 이론이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은 창세론을 기반으로 합니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만들었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조물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구제를 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은 불성과 연기론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고, 또 불성은 청정하고 평등하여 한 몸으로 둘이 아님이 진리의 본체이므로 창조도 없고 피조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생은 이 불성을 미혹하고 스스로 전도되어 죄업을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제불보살님들은 이 불성을 깨달아 대해탈과 대자유를 누리면서 중생이 미혹되고 전도되어 죄업을 짓고 고통을 받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연스럽게 평등한 대자비심으로 구제를 해주려고 하십니다.

    열 번째: 깨달음이 다르다. 만약 “사랑이 곧 진리이다”라고 말한다면, 사랑의 깊이와 넓이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깊이에 따라 결정됩니다.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해보면, 매우 분명한 것은 유신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주·신)의 사랑과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는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신종교에서 진리에 대한 깨달음에 한계가 있다 보니, 마치 안개 속에서 꽃을 보는 것처럼 억측의 성분이 있어서 합리적인 질의를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불교와 같이 확철대오를 통해 대자대비를 일으켰기 때문에 그 이치와 사실은 어떤 질의도 이겨낼 수 있는 것만 못합니다.

  20. 포레스트검프 2019.03.24 1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켓 들고 예천불지 외치는 인간이나
    독이 든 물을 얘기하는 인간이나 도찐 개찐.
    야훼에 세뇌된 인간들의 특징...

  21. 개독박멸 2019.10.26 0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쉬불누무쉬캬!!! 자꾸 메일 보낼래?
    대가리가 굳었냐? 뇌가 썩었냐?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개독타령이냐?
    그렇게 살다 DG면 느덜 외치는 천국에 가거라.
    에~~~~이 더러운 족속들...

4.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에서 고문할 수 있는가?  

-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하면, 결국 하나님이 '죄'와 '악'의 창시자가 아닌가? 차라리 애초부터 '죄'와 '악'을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도 지옥에 갈 이유가 없지 않는가? 

- 하나님이 공의롭고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는 신이라면, 대체 이 세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과 부조리가 존재하는가? 왜 세상에는 끔찍한 범죄와 전재, 자연재해와 재난, 불법이 끊이지 않는가? 왜 정직하고 선하게 살지만 비참하게 사는 사람이 존재하고, 온갖 악과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안락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지금까지 왜 성경과 복음이 단순한 '종교적 허상'이 아닌 역사적, 과학적 '진실'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설령 여러분이 이러한 검증과정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정말로 하나님이라는 신이 존재하고 그 분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을 지옥에서 고문할 수 있는가?'

 '애초부터 죄라는 것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골치 아픈 문제가 없지 않았겠는가?'

 '왜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고통과 부조리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일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 모든 속성이 공의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속성과 완전히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라는 신은 사랑보다는 고문과 고통을 좋아하는 잔인한 신인 것 같아보입니다. 

 이 세가지 질문은 서로 다른 질문 같아보이지만, 사실 그 근본을 살펴보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내용들은 '하나님'이라는 신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알면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난제를 풀어보겠습니다.


A.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주셨다. 

 한가지 질문을 해 볼까요? 여러분은 만일 여러분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어떤 경우라도 예외 없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는 '인사 로봇'과 때로는 TV 보는데 정신 팔려 쳐다보지도 않거나 칭얼대면서 울기도 하지만, 가끔씩 해맑게 웃으면서 여러분께로 달려가는 '아기'중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아무리 '인사 로봇'이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안녕하세요, 주인님? 일하느라 피곤하셨죠? 사랑합니다~'라고 백날천날을 외친다 한들 여러분들은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생떼를 쓰고 징징대도 가끔씩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아빠'를 외치며 기어오는 아기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아기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고, 로봇은 자유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봇은 원래 그렇게 하도록 '설계'가 된 것이기 때문에 로봇이 아무리 열심히 인사를 해도 기분이 좋을 이유도 없고, 또한 설령 로봇이 아무리 심한 욕설을 퍼부어도 화가 날 이유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자유 의지를 가진 아기는, 아빠를 거부할 수 있는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에게 달려가서 안기기 때문에 아빠는 사랑과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얼마든지 '자유 의지'를 박탈한 채로 기계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죄'라는 것을 결코 짓지 않고 기계적으로 선한 일만 하거나 하나님을 그 어떤 상황에도 찬양하면서 악을 행치 않는 감정과 인격이 없는'기계'로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존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경배를 받기 원하지 않으시고, 마치 우리처럼, 하나님을 얼마든지 부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B. 자유 의지의 산물 - '선과 악'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창조했느냐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악'이 존재할 '가능성'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에서 일방적으로 악을 행하도록 '설계'하지 않았고, 항상 선과 악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당해서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을 보았다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 사람을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도록 선행을 베풀 수 있습니다. 반면, 내 일이 아니라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심지어는 피를 흘리는 이 사람의 지갑을 훔쳐 도망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하나님마저도 특정한 선택을 여러분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러분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자유 의지'의 결과로 인해 필연적으로 '선'과 '악'이 갈리게 되고, 결국 선과 악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그에 따른 선택의 산물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 1사람을 도와준 것보다는 10사람을 도와준 것이 더 선하고, 1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보다는 10사람을 죽인 것이 더 악한 것처럼,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개념이고, 비교 대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왜 악이 없이 선만 만들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누구도 이 자유 의지의 부산물인 '악'이라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악'을 하나님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에게 모든 의사 결정권을 완전히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나는 토막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사기를 치지도 않았으며, 도둑질도 하지 않았고, 경범죄로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없는 양심적인 시민인데 대체 내가 무슨 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냐' 라고 말이죠. 

 하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죄와 악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기만 해도 죄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어떤 성자라도 '악을 행하지 않았다'라고 결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C. 죄의 삯은 사망, 사망 이후의 심판

 인간의 '악'의 산물은 '죄'를 짓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다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대상은 사람이 살면서 지은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사람도 '죄'를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D. 하나님의 속성 -  공의와 사랑

 하나님의 속성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의'롭다는 것이고, 하나는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록,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록 완벽하게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나 하찮고 대수롭게 생각하는 시시한 죄 조차도 그분은 결코 용납을 하시지 못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릴 수 밖에 없는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형벌인 지옥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합니다. 아니 무슨 신이 그렇게 속이 좁고 쩨쩨하냐 공의로운 것은 알겠는데, 한편으로는 사랑도 무한하다고 하면 그냥 사랑을 좀 베풀어서 시시한 죄는 통크게 용서해 주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 아니냐라고요...

 하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의와 사랑은 논리적으로 절대로 어중간하게 타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이 아기를 너무나 사랑한다면, 인위적인 낙태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아이를 살해한 살인범을 지독하게 미워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정도가 더 크면 클수록, 살인범에 대한 증오의 정도도 더 커질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의 아이에 대한 사랑이 무한대라면, 살인범과 그의 살인죄에 대한 증오도 무한대일 것입니다.

 이 때, 여러분의 아이의 살인 사건의 판결을 맡은 판사가 공의롭지만, 동시에 사랑도 넘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봅시다. 판사가 법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공의로운 판사이기 때문에, 이 살인범의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이 죄를 용서하고 무죄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라고 판결을 내린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결코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의롭기 때문에, 너무나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이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물쩡 덮을수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징역형'이건, '눈물의 사죄'이건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후의 사랑과 용서가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공의와 사랑은 논리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무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결코 인간의 죄를 용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죄값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치르고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고,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이 죄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런 죄를 지을 가능성 자체를 알고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담당하실 이유가 전혀 없고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공의롭게 판결내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히 인간의 죄악을 직접 담당하신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신이 자신이 만든 보잘것 없는 피조물의 몸으로 오셔서, 피조물에게 욕설과 비난, 채찍질, 굴욕,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죄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인간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자에게,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공의롭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당신에게 유죄 판결과 사형을 면하게 할 수 없소. 당신은 무조건 '사형'!' 이라고 판결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공의롭지만, 동시에 사랑도 넘치기 때문에 이번 한 번만은 살인자를 용서해 주겠습니다. 보호자 분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팔자려니 생각하고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억지같은 편법을 쓰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방식은 이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공의로운 판사이기 때문에 결코 이 사람의 죄악을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한 순간의 실수로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희생당하는 것도 결코 원치 않습니다. 

 보호자께서는 이해가 안가시겠지만, 제가 이 살인자의 죄를 대신 지겠습니다. 저는 아무 죄가 없지만, 이 살인자의 죄를 그 어떤 수단이라도 괞찮으니 제가 대신 지겠습니다. 저를 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때리시든, 제 재산을 빼앗건, 분이 풀릴 때까지 침 뱉고 욕설을 하건 알아서 하십시오. 이 짐승같은 살인자 참회하는 조건으로 제가 다시 사람으로 만들겠습니다.. 차라리 제가 죄값을 대신 치를테니 이 사람은 용서하고 살려주십시오'

 터무니 없어 보였고,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여러분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살인자 대신 공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판사에게 미친듯이 분풀이를 하는 조건으로 살인범을 용서했습니다. 살인범은 석방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살인범이 여러분의 부모님을 또 죽였습니다. 같은 재판과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살인범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판사의 제안에 또 따르시겠습니까? 절대 다수는 한 번은 용납하지만 그 이후로는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분이 이 판사의 눈물겨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또 동일한 방법으로 살인범을 처리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가정이지만, 이런 과정이 셀 수 없이 많이 반복되었고, 판사는 그 때마다 자신이 죄값을 받겠다고 하며 눈물로 부탁을 했고, 판사는 몸이 너덜너덜해질 지경까지 여러분에게 구타를 당하며 죄값을 대신 치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죄를 짓고, 또 짓고 짓습니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이었다면 용서를 할 수 있었을까요? 설령 한 두번은 '내가 대신 죄값을 치르고 용서할테니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그래도 지으면 넌 진짜 지옥이다.'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에 매일 죄를 짓고 또 지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또 속아주시고 바보같이 또 죄를 짊어주십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그런데, 만일 이 재판관이 반복적인 살인범에 대한 죄를 무한대로 대신 짊어질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이 넘치는 재판관은 자신이 죄값을 치르는 대신 이 흉악한 살인마에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될 것을 부탁했습니다. 

 살인범은 그 때마다 눈물로 참회를 하고 새 사람이 되겠다고 했지만, 항상 그 죄를 반복하며 지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그 재판관은 자신이 죄값을 대신 치러주었고, 또 회개를 전제로 죄값을 대신 치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사랑을 재판관이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살인범이 끝까지 뉘우치치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판관이 대신 죄값을 치르고, 그것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죄를 지어도 뉘우치기만 하면 항상 죄를 대신 해결해준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치 않는다면, 그 때도 재판관이 이 사람에게 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이는 공의로운 속성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살인범을 본다면 분노가 극에 달해서, '아니 판사가 그냥 공정하게 사형판결을 내려도 아무 문제가 안되고, 심지어 자신이 대신 죄값을 치르고, 그것도 모자라 반복적으로 죄를 지어도 뉘우치기만 하면 자신이 죄값을 대신 치러 주겠다고 하는데도 끝까지 뉘우치치 않는 저 인간은 그 어떤 잔인한 방법으로 사형받아도 싸다'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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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입장을 바꿔볼까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끝없이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인정하기 싫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도록 결코 강요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죄와 악은 우리가 선택해서 지었을 뿐이고, 그에 대한 죽음과 심판의 결과는 우리가 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우리 대신 그분이 친히 져주셨고, 너희를 지옥에 보내지 않을테니 대신 회개하고 앞으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죄를 지었습니다. 어제도 짓고, 오늘도 짓고...내일도 짓고...사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눈물고 회개하기만 하면 그 때마다 대신 죄를 져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사랑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길과 방법이 완전히 열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지옥간다면, 이게 과연 불공평한 일일까요? 네...사실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기는 합니다. 다만 범죄자인 우리쪽에 너무나 유리할 정도로 불공평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지만, 너무나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더군다나 그 방법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굴욕적이고도 치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예수 좀 안믿고 회개 좀 안한다고 인간을 지옥에 보낼 수 있어?'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이는 '아니 내가 몇 사람좀 기분 전환용으로 죽였기로서니, 그토록 사랑이 넘치는 재판장님이 어떻게 이 정도 죄를 대충 용서 못하실 수 있습니까?' 라고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재판장은 아무리 흉약한 죄를 아무리 자주 지어도, 회개하고 새 삶을 산다면 자신이 그 모든 무시무시한 죄값을 달게 받겠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랑을 베푼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아닙니까? 어떻게 더 이상의 사랑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래도 끝까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면서도, '죄값'은 면제받기를 원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결코 불가능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과 사랑이라는 속성이 '죄값'을 치르는 과정이 없이는 결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간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 부족이 아닌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 때문인 것입니다. 


E. 너무나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

 우리는 살면서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 잘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풍족한 재산, 학벌, 지위, 외모, 권력을 고스란이 물려받아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찢어지는 가난과 질병, 신체적인 약점을 안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있고, 죄 지으면 결국 벌받는다 사실을 목도하기도 하지만, 부정하고 약은 방법으로 살아가도 너무나 인생을 풍족하게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직하고 선하게 살면서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너무나 많습니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것을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 분이 정말로 공의롭다면 어떻게 이런 불합리와 모순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세상의 삶은 영원한 천국이나 지옥, 즉 영원의 삶에 비하면 한낱 순간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이고 모든 것이 끝이라면, 이 세상은 지극히 불공평한 세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이 득세하고 형통할 수 있습니다. 사기치고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100살까지 행복하게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선하고 정직하게 살면서도 불운하게 단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삶에 대한 상급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든 말과 행동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심는대로 거둔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심는 것을 반드시 이 세상 중에 거두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보상의 개념은, 이 땅에서 심는 우리의 행위에 대한 합당한 판결은 죽고 난 이후의 심판대에서 '공정하게'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세상적인 복을 다 누리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결국 사후의 심판에서 모든 죄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선하게 하나님을 따르며 살았지만 온갖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산사람도 결국 사후에 천국에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부와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받을 복은 이미 세상에서 다 누렸고, 만일 그들이 자신의 세상적인 풍요에 취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면 세상에서 버림받고 비참하게 학대받으면 사는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는 실패한 인생이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만을 의지하며 천국가는 삶을 소망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조금 부유하거나 가난하다고, 혹은 조건이 조금 좋고 나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좋은 조건은 영생에는 불리한 조건이고, 세상적인 악조건은 영생에는 호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언제나 공평합니다. 악인과 죄인은 반드시 심판대에서 죄값을 치르고 의인은 천국의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성경과 복음의 사실성에 대한 수많은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클릭)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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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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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태원 2014.09.17 0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굳이 신이; 있다면 언어(말)가 신일것이다- 신이 없다는 100퍼 완벽한 증거가 나오더라도 신보다 우주보다 더 위대한(무한 팽창 가능) 언어가 있기 때문에 어케든 증명된 과학에 말장난으로 끼어들어 추상적인 소리만 되풀이하면 과학적인척하는 거짓은 기본으로 깔고 신은 살아남는다..애네들은 애초부터 부존재한자들이기에 존재의 증거를 갖출수가없다.있는척할뿐이지,,종교는 언어로 탄생하고 언어로 확장되며 언어로 명맥이 유지되고 언어로 혹세무민하며 언어로 위선을 덮을뿐이며 언어로 새로이 신이 탄생한다 고로 신은 존재하는게 아니고 언어가 곧 신이며 언어가 신의 대부로써 온갖신들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있다고 우기는 자들이 한명이라도 살아있는 이상 박멸하긴 힘들다

  3. chris 2014.11.10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신이 전지전능하면 비인격적이어야 한다는 통념인 것 같네요. 물론 성경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말하고 있죠. 또 전능하다면 꼭 그 능력을 피조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도 극히 인간적 입장이라 봅니다. 전지전능해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자유가 신에게 없을까요? 인간을 지은 신은 인간보다 더한 자유와 권리가 있을텐데, 인간의 관점에서 계속 이리 저리 자신에게 보여달라고 떼 쓰는 아이 같군요. 떼 쓰는 아이의 말을 다 휘둘리는 건 인간 부모에게도 어리석은 일인데, 하물며 신이 그러겠습니까?

    자유의지니 전지전능이니 이런 용어들은 우리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말일 뿐입니다. 신이 전지전능해서 미래를 철두철미하게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 인간에게는 그것을 말씀해주지 않는 이유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입니다. 또 신이 인간에게 선을 행하라고 했지 악을 행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악을 행해서 그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것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건 인간의 책임 회피로 보이고요. 처음 창조했을 때 악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 해보시죠.

    선과 악의 개념이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이 정의하는 선과 악의 개념이 점점 신이 가졌던 선과 악의 개념에서 인간화 되었기 때문에 현재 특히 인간 사회 속에서 엄청난 악이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십계명이 신이 준 것이고 그것만 지키면 선하다고 생각하지만, 신약에서는 그보다 더 엄격한
    내용들이 나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즉, 신이 가진 선과 악의 개념은 인간의 개념보다 더 높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주어진 것들이 거고요.

    또한 신의 전지전능성은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인 것 같네요. 인간을 사랑하니까 악에 빠져서 자멸하지 않도록 계속 선을 행하고 악을 없애려 하는 것이고요.
    악에 빠지면 자멸하는 이유는 이 세계의 창조자인 신이 질서를 만들었고 인간은 그 질서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라 그 질서에서 벗어나면 자멸하기 때문이겠죠.

    그럼 신은 왜 세상에서 악을 없애지 않는걸까? 인간이 세상에서 없어지길 바라는 악은 신의 개념에서 악보다 더 하위의 것일 것이고 신이 악을 없애려고 개입하는 날은 사실상 인간의 세계에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날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인간 사회 안에서 악을 없애도록 계속 선한 행동을 하도록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겠죠. 직접 개입할 때는 엄청난 사건이 될 테니

    결국 인간이 직접 세상의 모든 것을(죽음, 시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지 않는 한, 피조물인 한
    어떤 비방도 떼 쓰는 아이의 투정에 불과하겠죠. 세계를 창조한 분의 말이 진실일까, 그 분께 반항하는 같은 또래 친구의 말이 진실일지는 선택의 자유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 선택을 하겠죠.

  4. Nate River 2015.01.19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를 잃어보셨나요?
    자신의 아이를 죽게한 살인범에 대한 감정이
    단지 재판장 한명 '따위'에게 폭력을 가한다고해서
    사그러들까요?
    사람들이 과연 살인범 대신 판사에게 폭력을 가할까요?
    판사가 눈물로 호소한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를 잃은 부모가
    판사로 대신 만족을 할까요?
    아니, 설사 살인범을 죽인다고 해서
    부모의 아픈마음이 치유되는 것입니까?
    죽었던 아이가 돌아오는 것입니까?
    이미 죽은 아이는 어떻게 할 것이며,
    그로 인한 부모의 마음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당신이 만약 부모라면
    당신이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자녀가 끝내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계실 겁니까?
    하나님처럼 전능하신 분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한분이
    죽기 직전에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용서해준다 하신분이
    왜 우리가 지옥불이 떨어지도록 두시는 겁니까
    하나님은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임종 전에 진정으로 참회하고 회개한자는 용서하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면서

    평생 선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자는 지옥에서 고통받게 하시는 겁니까?



    • ㅇㄹ 2019.07.04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나님은 완전한 선이고 완전한 정의시기 때문에 그앞에 '평생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란 없습니다. 평생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굉장히 오만하시군요. 어떤 사람이든 그 마음을 열어 그 내용을 바라보면 추악하고 더럽기 그지 없는 마음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생각도, 마음도 모두 죄입니다. 그래서 우린 모두 죄인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고 인지할 수 있는 '선악' 개념이란 하나님 입장에선 아주 지극히 낮고 저차원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선악'을 주체적으로 알기 원하지 않으신다고 한거고(그 자체가 타락이 될테니까요), 선악과를 먹음이 곧 죄며, 너희를 죽음으로 이끌 것이라고 하신 겁니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선악'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선 없이는 사실 모든 것을 멸망으로 이끄는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5. 글쎄요 2015.02.12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는것 자체가 죄라면 자살은 회개가 되야하는데

    자살은 기독교에서 큰 죄악으로 여긴다죠..?

    이건 뭐죠??

    • 이상하군요 2019.09.10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살이 회개가 된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말도안되는 죄를 짓는다고 해서 자녀가 자살로 죄값을 갚겠다고 하면 좋아하실 겁니까? 오히려 끝까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큰 죄가 되겠지요. 차라리 살아서 이전에 지은 죄를 부모님앞에 사과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부모는 더욱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리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값을 스스로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살인자가 살인자를 대신해서 죽겠다고 해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살인자를 위해 아무 죄없는 부모가 대신해죽을테니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있겠죠

  6. . 2015.03.06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그 죄가 믿지 않는 죄라는 사실이죠 빈민이 신의 존재조차 모르고 죽어 지옥에 간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한가지 묻겠습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했던 질문이지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그 수많은 자유의지의 결과조차도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전지전능이 아니지요 그러니 하나님은 악의 가능성이 아닌 악을 창조하시고 방관하신 겁니다

    • 라브 2016.01.28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하지만 악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다면 거기에는 공허 즉 무질서와 같은 악만 남게되지요

  7. 공존 2015.03.24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장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와 전지전능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입장에서는 미래를 모르고 순간 순간 선택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아시지만, 그래도 우리를 의식이 없는 로봇이 아닌 의식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시고 싶으셨게 아닐까요. 단지 우리의 미래를 안다고 해서, 인간을 지은것이 부질없는 일은 아닙니다.

  8. 삼류복서 2015.05.29 0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복한 가정출신과 불우한 가정출신이 사후 똑같이 구원받았다 가정하죠. 이 둘은 결국 똑같아진 걸까요? 불우한 가정출신이 꽤 억울할 겁니다. 선택하라면 후자를 택할 개인은 아무도 없어요.

    사후 영생에 비하면 세상의 삶이 중요치 않을 수 있겠으나, 세상의 삶 자체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겠지요.
    유복한 가정출신은 불우한 가정출신보다 죄 지을 가능성이 적으므로 사후구원에 있어서 좀 더 유리합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서의 삶과 구원의 기회가 누구에게든 언제나 공평할까요? 불평등 투성이임을 인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전지전능과 자유의지의 양립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신으로부터 허락받은(혹은 부여받은), 즉 자발적이지 않은 자유의지가 진정 자유의지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여부일 겁니다. 이 지점에서 신을 믿는 자와 믿지않는 자는 제 갈길을 가는 거에요.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면(스스로 생겨났다면)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의 가치논란은 없겠지요.

    인격적 대우를 위해 죄지을 가능성이 큰 자유의지를 하사했다는 것은 신이 최고로 인격적일 수는 있어도 정말로 피조물을 한없이 사랑하는지 그리고 최고로 선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죄지을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자발적인 것도 아닌 자유의지의 결과이니 영원히 가혹하게 처벌한다는 것에서 사랑이나 선함은 커녕 심술궂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신이 하사한 자유의지를 과하게 사용한 사람때문에 생긴 선의의 피해자 문제도 간단치 않아요. 자유의지를 사용해 불지르고 자살한 자와 같은 건물에 살아서 끔찍한 화상을 당한 자나, 자유의지로 음주운전한 자의 차량에 치어 불구가 된 자의 남은 인생은 무엇일까요? 이들의 불행에 눈을 감는 신이 전지전능하며 지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후구원을 통해 보상해준다 해도 이 세상 삶에 대한 아쉬움이나 억울함은 여전히 남겠지요.

  9. 지나가는 사람 2015.08.14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사람이기에 신을 전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0. 예수님만을 사랑하는자 2015.08.27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영접한지 1년 조금 넘은 청년입니다.
    하나님과 기도를 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사람을 만들었냐고요?
    그건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랍니다.. 저는 하나님을 찬양할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기도할때도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요
    제 글을 절대 이해 못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경험하고 체험하지 않았다고해서
    그것이 없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동일 하십니다.

  11. 하늘소망 2015.09.02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이 재미있습니다^^ ㅎㅎ
    전지전능과 자유의지의 주체를 잘못 설정해서 그런 것 같은데..

    먼저 성경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지요.

    또한 성경에서의 선과 악은 작성자 분이나 댓글다신 분들이 생각하는 그 '선과 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누가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요.. 저는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로의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선과 악은 절대로 자유의지의 산물이 될 수 없습니다. 공부 좀 하세요... 휴..

    마지막으로 조심스래 결론을 내려보자면
    자유의지의 대상은 창조주고, 전지전능의 대상이 바로 인간입니다.

    저는 개독교라 불리우는 종교의 목사입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cwcm1002@hotmail로 연락주세요.

    • eternity79 2015.09.02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경에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노라'라는 말이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안나와 있다고 자유의지는 없다
      성경에 없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주장은 궤변입니다.
      어떤 내용이 성경에 안 나와 있다면, 그 내용은 거짓입니까?
      아니지요?
      창세기에 이미 선악과 사건으로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미 우리는 모두 자유 의지가 있지 않나요? 하늘 소망님의 생각은 모두 이미 결정되어 있나요? 아니지요?
      그럼 자유 의지가 있는 것이지요.

  12. 하늘소망 2015.09.02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의지와 전지전능이 모순이라는 것에 대해 작성자분이 이해를 못 하시길래 성경적으로 설명드립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갈지 지옥갈지 태초부터 알고 계신다.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 약자를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모든 피조물이 하는 행동과 생각, 그리고 선택을 다 알고 있으며
    사후에 심판하신다. 그 결과 또한 알고 계신다.

    성경적이라면 내가 아무리 복음을 믿는다고 하여도 나는 너를 모른다며 버림 받을 수 있고
    아무리 죄를 짓고 비성결적으로 산다하여도 내 친구라하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정해져 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과연 자유의지일까요..

    운명론과 다르다고 계속 주장하시지만 운명론을 벗어나면 비성경적인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최후의 심판대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지가 진정 있다면 그 누구도.. 신을 용납하지 않고 신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내 마음대로 만들고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아니면 둘다 안 갈지 결정하는게 바로

    자. 유. 의. 지. 입니다.

    • eternity79 2015.09.02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완전히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갈지 지옥갈지를 미리 정해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고 그게 자유 의지입니다.

    • ㅇㄹ 2019.07.04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2차원에 사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그에게도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존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2차원 선내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선을 형성하고 그 선의처음과 끝을 과거와 미래라고 지칭합니다. 하지만 3차원에 사는 우리에겐 2차원에서의 시간이란 또다른 공간축z에 불과합니다. 즉 우리가 보기엔 그 존재의 '처음과 끝'은 한눈에 다 보이는 하나의 선이란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2차원 존재는 분명 자유의지대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그의 존재와 존재의 움직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전지전능'한 존재지요. 이제 좀 이해가 가십니까. 3차원에 살면서 시간이 단방향(과거->미래)으로만 흐르는 우리를 고차원에서 보면 모든 행동이 마치 결정되어있듯이 다 보인다는 뜻입니다. 즉 자유의지란 저차원의 문법이며 전지전능이란 고차원의 속성을 나타낸 말입니다. 두 개념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공존할 수 있습니다.

  13. 전형적인 2015.11.05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본문에서 예로 드신 살인범말인데. 그 살인범에게도 자유의지가 있고 ...아니 됐습니다. 그 살인범이 저라면 전 지옥에 갈겁니다. 어떻게 그런짓을 해놓고 뻔뻔하게 죄송합니다 회개하겠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해놓고 두꺼운 면상으로 천국에 들어가던 영생을 얻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고있는겁니까? 당신들은 진정으로 자유의지라는게 있긴 한겁니까? 누군가가 당신들 죄를 아무 이유없이 단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대신 뒤집어 쓰겠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마땅히 응당 받아야 할 댓가를 치룰 생각은 안하고 봐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제 영원히 사랑하고 살아갑시다???? 진실로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면 응당 자신의 죄에 대해서 자신이 댓가를 치루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혹여 그렇지 않다면 그건 자유의지의 껍데길 뒤집어쓴 목각인형이겠죠. 당신네들처럼

  14. kumon12 2015.12.11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악과를 먹어서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1)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2) 구분은 원래 가능하였으나 선만 있다가 악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인가?

    전자라면 아담은 어린아이나 동물과 같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행위를 해도 그것은 행위 자체일 뿐, 그것의 도덕적 성격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죄와 악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존재에게 죄를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먹는 게 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미 선악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순이다.

    후자라면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 원래 악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는 것이 죄라면 그 죄짓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악이 들어가 있는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성질은 아담을 창조한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므로 모순이다. 만약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사단이 그렇게 만든 거라면 하나님은 왜 그 성질을 없애지 않았으며(혹은 아담에게 그 정도로 부족한 절제력밖에 주지 않았으며) 왜 사단만을 벌하지 않고 아담까지 벌하였는가.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담은 태어날 때 탐욕이라는 성격을 가지겠다고 자의로 선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욕심이 자유의지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애초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영원한 천국’은 보장될 수 없다(요한계시록21~22장). 이 논리는 아담보다 먼저 타락한 사단의 탄생 과정에도 해당된다.
    또한 후자의 해석으로는 아담이 원래 벌거벗은 상태였으나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그것을 인식하고 부끄러워하는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15. kumon12 2015.12.11 2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죄가 유전이 되는 상황이다. 왜 자식이 부모의 죄를 물려받아야 하는가? 부모가 살인자라 할지라도 자식에게까지 그 책임이 있지는 않다.
    아담의 죄가 자손에게 직접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성질’이 유전되어서 자신이 ‘그 성질을 스스로 발현한 것에 대한 대가’를 묻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영적인 성질까지 유전되는 시스템 자체도 하나님이 설계한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따라 죄악을 가지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창조주이며, 날 때부터 죄가 있다면 그 책임은 가장 먼저 그 설계자에게 있다. 하나님은 죄가 유전되지 않도록 생식체계를 만들 능력이 없으셨는가? 자녀가 부모의 육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가치중립적이기에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장애를 물려받았다고 죄를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육적인 부모님에게 영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의 육적인 자녀까지 영적인 문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16. 야훼시팔새끼 2016.07.14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그 알량한 자유의지로 천년만년도 아닌 백년도 채 못살고 죽어서 '영원히' 불구덩이에 떨어지는건 인간적으로 시팔 자비롭습니까?
    백년살고 백년 지옥가는것도 좆같이 애미없을텐데 자유의~지? 참~으로 자비롭고 사랑가득한 지옥구덩이의 아비십니다

    • ㅇㄹ 2019.07.04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원히'를 늘 오해하시는데 '영원'이란 시간이 있을 때는 아주 긴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3차원의 공간축처럼 보이는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말입니다. '시간'도 개념일 뿐입니다. 죽고 신의 앞에 가면 그 곳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존재'할 뿐

  17. 네? 2016.10.01 2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지전능+절대선+인격이라는게 절대 될수없다는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신히 존재하더라도 당신이 말하는 신은 아닐겁니다.

  18. 나그네 2016.10.05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인간은 나약합니다. 악마가 첫인간을 유혹할 때 쓴 방법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느님과 같이 될까봐 하느님께서 먹지말라 하셨단 거짓말이며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의 삶에 주체라는 교만입니다. 이 거짓은 인본주의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목숨을 거두어 가시면 그의 생명은 그날로 끝입니다. 책임진다구요? 그말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올무요 심판하는 잣대가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2) 마리아 고레띠라는 성녀가 있습니다.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개개인으로서 동시에 전체 인류로서 죄를 짓는 탓을 하느님탓으로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비단 논리적으로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많은 문제는 내탓인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느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제 짧은 지혜로는 구분학기가 어렵습니다. 이해도 어렵구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고 자신을 맡기듯 신앙을 가지게 되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도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천주교 개신교를 망라하는 기독교는 계시종교입니다. 가르침과 교리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이라고 신앙인들이 믿고 고백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소개해보면,
    " 전능하신 천주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천주성부 오른 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진선미의 원천임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피조물을 통해 그 피조물간의 질서를 통해 어렴풋이 뭔가가 있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때가 무르익어 하느님 당신께서 친히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전 인류에 대한 구원사업으로서 기독교 즉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하느님 자신을 드러내신 모습이 정의로우시며 동시에 사랑이신 모습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숟가락을 보고 젓가락이라고 고집을 부릴 순 있겠지만 숟가락은 숟가락입니다. 하느님을 부정하더라도 하느님은 전부터 있으시고 지금도 있으시며 앞으로도 있으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도저히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고 다 알 길도 없는 분이지만 그분께서 친히 인간에게 허리를 굽히셔서 말을 걸고 대화를 하시려는 분이십니다.

    그뿐입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류 탄생부터 세상 종말까지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죄값을 대신 치루시고 그 결과로서 영원한 생명을, 하느님 계신 하늘나라를 믿는 사람들에게 상속해 주시려는 분입니다.

    정진석 추기경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애완용으로 개를 키우고는 하는데 정말 개를 너무나 무지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개가 되라하면 그럴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또 개가 될 방법도 없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동정녀를 통해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 당신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다.

    본문의 내용이 맞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기독교인이건 아니건간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에 찔리고 침뱉음과 모욕을 당하시며 사랑의 고통으로 심장이 활활 타오르시며 창이 관통하는 고통을 겪으십니다. 아버지 제가 이 사람들 대신에 값을 치르겠으니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라고 하시면서요.

    옛적에 자식이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단지 즉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자식의 입에 흘려넣어 생명을 살리려는 그런 장면을 티비에서 보신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실재로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간에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아들 딸 들어 하시며 온몸을 다 짜내어 흘려주신 피로서 구하고자 하신 분, 하느님이시자 사람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기독교는 바로 그런 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19. ㅁㄴㅇㄹ 2017.01.22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째 , 내가 아담이었다면 난 분명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거다. 진심이다.

    그런데, 왜 아담과 하와가 선택한 행동으로 인해서 영혼의 주체가 염연히 다른 '나'라는 영혼까지 죄악성이라는 원죄를 물려받아야 하는가?

    인간 지성으로 연좌제는 분명 '공의롭지 못한' 제도 아닌가?

    설령 나라고 해도 무조건 선악과를 먹게 되어있었다면, 그 어떤 인간이라도 선악과를 먹게 되어있었다면, 그 죄의 책임은 애초에 인간의 본성을 그렇게 설계한 하나님의 책임 아닌가?

    즉, 선악과를 먹지 않을 자유의지는 진짜로 인간에게 있었던게 맞냐는 소리다.

    둘째, 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는것만이 정답인양 말하는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져서 그 속성을 누리되 죄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는 방식은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영원히 지옥불에 고통받는일이 하이리스크가 아니라면 뭐겠는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고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으며 죄를 짓지 않는 방식은 Low risk Low return 이다.

    애초에 선악과의 문제는 인간의 모든 자유의지가 제한받는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는 다 자유의지를 가지되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만 제한을 받는건지 알수 없기에 로우리턴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사실 나는 후자가 더 옳다고 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라면 자칫 잘못하면 영겁의 시간을 고통받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보단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을 더 선호하겠다. 사실 아마 거의 모든 인류가 후자를 선호할거다.

    좀 세속적 비유를 들어서, 남자한테 비아그라 왕창 먹이고 벌거벗은 여자들 잔뜩 놔두고 너 절대로 여자 건들지마, 건들면 지옥감, 이게 낫겠나, 그냥 고자를 만들어 버리고 여자 건들지 말라고 하는게 낫겠나?

    당신이라면 어떡하겠는가? 당신이 정말로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자유의지가 없지만 그래도 영원히 당신과 멀어지지 않으며 안전하고 행복하고 복되게 살게 하겠는가, 아니면 자칫 미끄러지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불에 던져지게 되는, 게다가 확률적으로도 그럴 확률이 절반이 넘는(전인류의 비기독교인 비율) 인생을 살게 하셌는가?

    당신이 후자를 고른다면, 당신은 분명히 사랑이란 개념을 왜곡해서 이해한 새디스트 싸이코패스일거다.

    셋째, 만약 당신이, 어찌되었든 현실은 신이 갑이고, 우리는 병이나 정보다 못한 존재이므로 신이 짠 허접한 각본대로 따라주는게 인간이라는 축생의 살길이라고 말한다면, 차라리 나는 신을 받아들일것이다.

    사실 내가 방금 말한게 당신 주장의 본질이긴 하다. "피조물"과 "창조주" 타령에 그 본질이 드러나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자비로우시고 사랑많으신 하나님이니 인간의 죄때문이니 뭐니로 포장하려고 하냐는거다.

    그놈의 죄타령, 인간의 본성을 제조한게 누구신데?

    인간의 모든 욕망을 거세하라는게 아니라, 죄악으로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본성을 즐기도록 인간을 설계할수도 있었잖냐.

    왜, 그건 너무 인간이 편하니까 안돼? 인간은 좀 고통받아야되는거야? 인내라는 고통을? 실족이라는 하이리스크를?

    하나님은 결국 짜여진 각본(성경)대로 인간에게 죄와 악이라는 책임을 전가시켜놓은뒤 인류를 고통받게 내버려두고는 너 나 사랑안해? 그러면 지옥감ㅋ 이따위의 나르시스즘이나 걸린 새디스트 신일 뿐이다.

    당신이 계속 주장하는, 죽어서 지옥가서 후회해봤자 늦으니 믿어라 라는 말은 결국 당신이 전도하는 당위성을 하나님의 사랑보다 사후의 형벌에 포커스를 맞춘걸 드러내는 말이다.

    "신은 좆같지만 별수 없잖냐, 까라면 까야지." 제발 이렇게 말해봐라. 당신은 한사람의 영혼을 구할수 있다.

    • ㅇㄹ 2019.07.0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다. 그런데 당신의 절규에는 한가지 전제가 깔려있다.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을 '믿고' 이 세상을 '진짜'로 보는 것. 그러니 억울할 수 밖에 없고, 이런 복음을 들으면 화부터 나고 신이란 작자를 모욕하고 싶어지는 본능이 드는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을 신보다 더 사랑한다. 그런데 만약 이 세상이 존재의 거품일 뿐이라면? 잊지마라. 언젠가는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접혀서 말려올라가리라는 예언을. 상상해보라. 마치 이는 지금 세상이 트루먼쇼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언젠가는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세상을 더 사랑한 자여, 아담은, 창세기는, 인류의 시초를 나타내는 경서이자 곧 당신과 나를 나타내는 '예언'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세상을 아버지보다 더 사랑한 자여, 당신은 이미 당신 손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당신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돌이켜 회개하자.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니 이 때는 구원과 오래 참으심의 때라.

  20. ㅇㅇ 2017.02.03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계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결국 자신이 그냥 기계로 만들어졌으면 된다는 말과 같다

    • ㅁㄴㅇㄹ 2017.02.04 0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 글을 똑바로 읽기는 한건가, 애초에 선악에 관한 자유의지가 없다고 모든 생각과 행동의 자유의지도 없어질거라고 추측하는것 자체가 잘못이다. 내가 자유의지의 "삭제"를 말했나? 인간이 영겁의시간을 지옥불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자유의지를 "수정"할수도 있지 않냐고 했지. 게다가, 기계처럼 사는게 뭐가 그리 나쁜가? 제발 글을 제대로 읽어라. 당신 자식에게 자유의지를 없애고 기계처럼 사는 대신에 영원히 당신과 교제하고 소통하며 행복하게 사는것과, 절반 이상의 확률로 당신이 절대로 다시 꺼내오지도 못하는 지옥불에 던져저서 영원히 고통받을수도 있는데 자유의지를 주는것, 당신은 뭘 선택하겠는가? 뭐 인간은 로봇하고 다르니까?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고귀한 인간의 존엄이 있어서?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도 용감히 맞서는게 멋있으니까? 이 싸람아, 건방떨지마. "두번다시 돌이킬수 없는" "영원히" "극도의 고통을 받는" 지옥이라니까? 이게 극도의 하이리스크가 아니면 뭐냐? 니가 한번 실족해서 지옥에 가봐야 아 그냥 자유의지따위 개나 줘버리고 "안전하게" 천국가는게 나았다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하나님을 원망할걸.

    • df 2019.07.04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또한 이런 생각을 하다가 천국과 지옥이란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즉 죽고 나서 우리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면 내 안에 신의 빛(믿음)이 있으면 고차원적 영적 세계내에서 내 영혼은 보호를 받고 '천국'을 누릴 것이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신 빛이 없으면 그 영적 세계에 내가 신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일 것이란 결론. 그리고 그 세계에선 죽을 수도 '시간'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불에 있는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영적
      세계의 질서 같은거지. 마치 태양빛을 우리가 정면으로 보면 눈이 멀듯이. 그래서 신이 당신이 원하는 '수정'을 하러 몸소 인간이 되어 세상에 침투해오지 않았나? 우리가 신에게 가면 갈수도 없거니와 신과 함께 존재함 자체가 지옥과 같은 고통이기 때문에 신이 직접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내려오지 않았나.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수정'을 해주지 않았나? 당신이 살아있을 때 아직 육체에뿌리를 두고 있어서 신과 결합하더라도 영적으로 크게 다치지 않는 지금, 당신의 마음에 신에 대한 믿음, 신 자신을 심으려고 몸소 오시지 않았나? 그런데 왜 그게 싫은거지? 난 안다. 그 이유를. 그렇게 쉽게 구원받기는 싫은거다. 인간의 자존심이, 죄악성이 내손으로 하지 않은 신의 엄청난 전지전능을 그렇게 값없이 손쉽게얻을 수 있다니까 자존심이 상하는거야.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거지.

    • ㅇㄹ 2019.07.04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가 아담이면 너는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웃기지마라. 아담은 바로 너 자신이다. 아담이 사람 이름인 것 같나? 아담이 히브리어로 뭔지 아는가? '인간'이다. 즉 모든 인간의 표상이자 대표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 태초부터 너는 존재했다. 그리고 너의 죄성을 '아담'이라 한다. 나라고 뭐 다르겠는가. 나또한 아담이다. 나는 내가 선악과를 기꺼이 따먹은 죄인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있지. 두번째 아담, 다시 오실 아담. 인간으로 온 신. 예수. 그가 내 죄값을 대신 다 치렀다. 사실 이게 성경의 요약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수정'을 원한다고? 웃기지마라. 그 잘난 '수정'을 해준다고 우리 죄성이 선한것을, 완전한 선이신 신을 선택할 것 같나?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를 태초부터 만드신 신께서 잘 아시기 때문에 몸소 피조물의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는거다. 내가 말한게 강하게 들려서 싫을 수도 있겠지. 원래 이런 말 잘안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니가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셈치고 말해달라'고 하길래 쓴다. 언젠가 주님이 인도하시면 당신도 나도 알게 되겠지. 신과 인간에 대한 모든 감추어진 비밀을.

  21. 개독박멸 2019.10.26 0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 쓰레기집단 개독무리들,
    지구상에서 멸종돼야 하는데...
    이 쉬불쉐키는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 도배를 쳐하고 다녀요.

 여러분이 이제 성경과 복음이 단순히 사람이 꾸며낸 종교적 판타지가 아닌, 분명한 진실임을 아셨다면, 이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아주 쉽고 단순하다고 합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힘들고 치열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또한, 구원에 대한 너무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올바로 믿지 못하고 지옥으로 달려가는 크리스천들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이제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셨으면 올바른 구원의 길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올바른 구원에는 4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 - 죄사함 - 거듭남 - 의의 행실)


 1. 믿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고, 살아서 역사하시며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 5/24)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

  둘째,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으며, 십자가에서 흘린 그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이 씻어져 죄들이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2. 회개를 통한 죄사함

 일단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그 다음에는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죄에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지은 죄가 유전되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죄이고, 자범죄는 스스로 지은 죄입니다. 

 아무리 의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서면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대부분은 자신이 특별히 중한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경찰서나 교도소에 가본 적도 없는 양심적인 소시민인데 대체 왜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일반적인 사회 규범이나 법, 도덕의 기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지 않고, 마음으로 미워하며, 함부로 판단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하고 있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거나, 심지어는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도 죄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한 것이고,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기만 해도 살인을 저지른 것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마음과 혼과 생각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를 지키지 못해도 죄가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사회에서는 살인이나 강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양심적이고 깨끗한 시민으로 봐 줄지는 몰라도 이렇게 하나님의 법앞에서는 끔찍한 범죄자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어떤 성인 군자도 죄인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서 3/10~12) 기록된 바와 같이 "의인은 없나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도다. 모두가 길에서 벗어나 함께 쓸모 없게 되었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로마서 3/23)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 
(야고보 4/17) 그러므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죄가 되느니라.

   죄사함이란 나의 원죄와 과거에 지은 자범죄에 대해 하나님께 완전히 용서받는 것을 말합니다.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내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란 단순히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의 죄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 놓고 용서를 구하고, 행동까지 고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여러분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는, 여러분이 죄인일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믿으며, 예수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우선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사람에게는 죄의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죄를 짓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먼저 나의 구주로 영접한 이후에도 짓는 자범죄에 대해서는 죄를 지을 때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거듭해서 쓰러져 죄가 반복될 지라도 하나님은 회개만 하면 끝까지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반복해서 짓는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회개할 면목이 없다고 자기 자신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회개만 하면 계속 용서해 주시니까 마음대로 죄를 편하게 짓고, 그냥 입으로만 반복적으로 회개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가짜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짓기 위한 면죄부가 결코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설령 나중에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다시 그 죄를 반복할 지언정, 그 죄를 지은 것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강한 결단과 실천이 뒤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악에서 떠나 선을 지향하는 것이며,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거듭남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통한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이자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면 이제부터는 여러분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됩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에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히 신분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쾌락과, 욕망, 이기적인 자아 실현을 목표로 하는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4. 성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거듭났다고 이후에는 죄를 전혀 안짓는 완전 무결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듭났다고 해도 인간의 죄의 본성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거듭나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수많은 죄의 유혹에 시달리고, 때로는 넘어지고, 다시 범죄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죄사함은 결코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후에 의로운 행위가 필요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의인'으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의롭게 살아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욕심과 이기심, 탐심, 돈에 대한 욕심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정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과정을 '성화'라고 합니다.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문도 좁을 뿐더러 들어간 이후의 길도 협착하기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은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수준에 그치고, 이러한 성화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결코 갈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너무나 잘못된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과 천국은 보장된 것이고, 의로운 행실은 '상급'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삶과 성화의 과정을 강조하면,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 구원론이라는 이단 사상이라고 몰아부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지만, 그 믿음이 '행함과 성령의 거룩한 열매'로 증명되지 않으면 가짜 믿음입니다. 즉, 의로운 행실이 없이 머리로만, 마음으로만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행위'가 없어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믿음이 의로운 행위로 증명되지 않은, 가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행함과 믿음은 상식적으로도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마음으로,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매일 폭력을 행사하고 외도를 한다면 어떻게 이 남자가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룩하게 된 사람이 어떻게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돈을 사랑하고, 간음하고 세상과 벗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정말 확실하게 믿는다고 하지만, 삶에는 온갖 악독과 불경건함이 가득하다면 결코 구원받지 못합니다. 바로 지옥입니다. 그 이유는, 선한 '행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받지만, 그 믿음이 거룩함으로 증명되지 않는 가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성화의 과정, 즉 지속적인 회개와 거룩한 열매맺음이 동반되지 '믿음'은 가짜 믿음입니다. 따라서, 이런 믿음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 받고, 거듭난 성도는 이처럼 세상에 사는 동안 끝까지 정결한 삶과 거룩한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를 구원해 줄 구세주로만 생각하지, 나의 삶의 주인인 '주님'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순한 구세주가 아닌, 나의 삶의 '주인' 으로 모시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와 가치관, 말과 행동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송두리째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은 결코 만만하고 쉬운 길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심을 포기하고, 자아를 죽여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길이 비록 힘들지라도 이 길을 가기로 작정하는 사람에게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능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도와주시며 그 길을 평탄케 한다는 사실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거라면 차라리 안 믿겠다고.

 하지만,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 결코 불신앙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쉽고 편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다는 것도 믿음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오직 이 복음이 '사실이냐 거짓이냐'가 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도 이 복음이라는 것이 때로는 부담스럽고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복음을 믿는 이유는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복음이 '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피곤하고 까탈스러운 복음에 얽매일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죽음 뒤에 심판이 없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면, 우리는 한 번 밖에 없는 이 인생,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누리고 싶은 것 마음껏 누리다가 가면 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기독교에서는 자기네들만 맞다고 떠들어대니까 기분 나빠서 안믿겠다는 것은 결코 불신앙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이 복음이 비록 불편하기는 하지만, '진실이냐' 아니면, 거짓이냐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복음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이미 앞서 너무나 자세히 살펴보았고, 여러분이 받아들일 이유는 충분합니다. 

 

 여러분, 힘들고 여러운 일이 있습니까?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고민이 되십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문 밖에 서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시어 여러분을 영원한 천국과 기쁨의 세계로 함께하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 좁은 길을 기꺼이 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손으로 도와주시고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세상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구주로, 또 여러분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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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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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ksan 2018.10.05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책보다 화석에서 발견된 인간의뼈조각을 판단해봐야~ 진화론자들은 1~2백만년 전의 직립보행하던 동물화석은 원숭이에 가깝고 인간과 가장 가까운 화석은 1백만년~5백만년의 사이로 추정~유전자을 추적하였던바~동굴생활에 알맞는 긴팔, 짧은목, 짧은다리였던것이 80만년전에 지금의 인간과 같은종으로 발견~ 아프리카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것으로 판단되나~ 과학자들은 화석으로 판단해본 결과 1억년~2억년전사이 생명체가 발생~ 그당시는 암흑시대로 태양도 가려져있고 지구도 물로덮여있었고~태양에서 떨어져나와 약5억년동안 용암이끓듯 끓으며 식어가는 형태로 산소층과 대기권이 생기면서 물속에서 전자와 원자의결합으로 공룡과 물고기와 사람이 보온상태에서 벗어나며 세상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판명됨~5억년전후 태양폭발조각인 지구가 불타오르며 온도와 습도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흑인, 서양의백인, 아시아 필리핀계~ 우리대한민국의 백의민족ㅡ의 각기 다른 피부와 유전자성향이 상이한 인간이 뭍으로 기어나와 자라기 시작한 것. 지금현대에서도 수억년동안 태양온도와 습도를 가지고 폭발하며 끓던 그 당시의 상황을 못만들기때문에 생명체의 탄생을 증명 못하는 것임~이러한 우주창조의 맥락을 기독교사상으로 전파하며 하나님의 천지창조론이 되면서 이스라엘역사가 시작 애덴동산과 가인과 아벨~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등의 역사가 기록된것이 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교인것이다.

  3. 감사 2018.10.14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

  4. 안타깝군요블로거님 2018.11.20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요..? 예수를 믿을거면 제대로 믿으십시오. 그러다 정말 큰일납니다. 그 어떤 죄보다 큰 죄인걸 모르십니까? 순수한 초보 블로거인척 스팸 메일보내서 본인 블로그 링크걸어두고 (이단 종교의 내용)홍보하지말고, 본래의 순수한 개신교 욕 먹이지 말고, (믿지않는 사람들은 개신교이건 이단이건 모두 다 같은 종교로 봐서 개신교가 욕을많이 먹죠^^) 제발 주예수를 믿을거면 제대로, 똑바로 믿으십쇼. 제대로 된 개신교는 이런 스팸메일로 활동하지 않을뿐더러 이런방법으로 본인들이 믿는 종교로, 종교의 교리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습니다. 결론은 이단이나 이런 행동을 한단말입니다. 블로거님이 믿고 있는 그 종교 다시 한번 곰곰히 고민해보십시오.
    블로거님이 믿는 종교의 교리를 통해 이야기하는 구원의 길은 사실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반대말은 죄입니다. 죄는 곧 사망이구요.

    정말 '제대로 된'구원의길이 과연 무엇인지 당신부터 다시, 제대로, 진지하게 고민하세요. 정말 제대로 된 구원의 길을 알아냈을때, 그때 전도해도 늦지 않습니다. 죄, 곧 사망의 길로 당신이외의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5. 개소리왈왈 2018.11.20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이비가 개소리를 아주 정성스럽게도 써놨네^^

  6. 가을 2018.11.20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님앞에 다시한번 마음읖조리며 사랑을 노래합니다 "
    당신앞에 내가 여기있나이다 내가여기있나이다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온천하를얻고도 네생명을잃으면무엇이유익하리요
    예수외에는 구원이없기에 나를대신해서 형벌받으신 고마우신예수님 오늘도 붙들고갑니다 !
    십자가에 죽으심이 멸망하는자들에게는 미련하게보인다고했지요
    오늘도 구원의역사가 충만해지길 기도드립니다♡

  7. 마음 2018.11.21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8. 미친 2018.12.20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우진짜

  9. 에라이 2018.12.24 0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옥가것다 사이비
    정신차려라 지금이라도

  10. 멍멍 2019.01.2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짖네... 스팸메일 보내지 마세요. 혐오스러우니까.

  11. 멍멍2 2019.01.26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혐 메일 보내지마

  12. 그래도 고맙죠-결정은 각자 2019.02.1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다 저렇다 의견은 많지만, 어떻든 감사합니다. 판단은 각자의 자유지만, 이렇게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듣는 자, 부르는 자, 믿는 자가 있다는 Paul의 말씀이 로마서 10장에 있지요.

  13. 성령의 이름이 2019.02.11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28장 끝 부분에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지요. 성자의 이름은 여호와로 알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로 알지만, 요한복음14:26 보혜사 곧 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는데 성령의 이름을 어떻게 알 수 있어야 하는데요...

  14. Second Time 2019.02.11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he Bible says that;
    Hebrew 9:28 so Christ was sacrificed once to take away the sins of many people; and he will appear a second time, not to bear sin, but to bring salvation to those who are waiting for him.
    [Same meaning in Korean]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단번에 들리신 바 되셨고 죄와 상관없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그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15. 새이름을 2019.02.11 1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한 것은 계 2:17 귀있는 자에게 성령의 말씀: 이기는 그에게 내가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줄 터인데 새이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더라(흰 돌 위에 새 이름을)

  16. 예루살렘이름 2019.02.11 17: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3:12 이기는 자 -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7. 무화과나무 2019.02.11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 11:14 예수께서 나무에게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막 11:20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막 11:21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마 24:32~33[=막13:28~29] 말라죽었던 무화과나무[무화과는 무엇?]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날 때에[언제?] 인자가[누구 이름으로?] 문앞에...

  18. dd 2019.05.18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옥이나 가라 븅신아

  19. 와 실시간으로 댓글 지우네 무섭다 광신도야 2019.10.25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일보내지마 민사소송건다 나 ab형에 뒤끝 끝판왕 금수백수인데
    내 메일주소는 얼똏게 알고 메일 보낸거니? 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할일없는데 니인생 피곤하게 해줄까? ㅋㅋㅋㅋㅋ
    민사소송으로 한번 찰모와볼래?
    really pathetic.....

  20. 사이비zelots 2019.10.25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일보내지마 민사소송건다 나 ab형에 뒤끝 끝판왕 금수백수인데
    내 메일주소는 어떻게 알고 메일 보낸거니? 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할일없는데 니 인생 피곤하게 해줄까? ㅋㅋㅋㅋㅋ
    민사소송으로 한번 탈모 와볼래?
    유식이 출장가고 무식이 보초서는 개독 광신도 블로거야
    really pathetic.....what the hack? what the heck!!1
    go to hell religious fanatics
    광신도 출처: https://gospel79.tistory.com/#rp

  21. 신천지만세 ㅋㅋㅋㅋㅋㅋㅋ 2019.10.25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천지만세 여호와 증인 만세 이슬람 만세 너는 씨부엉세 이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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