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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9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99)

4.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에서 고문할 수 있는가?  

-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하면, 결국 하나님이 '죄'와 '악'의 창시자가 아닌가? 차라리 애초부터 '죄'와 '악'을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도 지옥에 갈 이유가 없지 않는가? 

- 하나님이 공의롭고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는 신이라면, 대체 이 세상에는 왜 수많은 고통과 부조리가 존재하는가? 왜 세상에는 끔찍한 범죄와 전재, 자연재해와 재난, 불법이 끊이지 않는가? 왜 정직하고 선하게 살지만 비참하게 사는 사람이 존재하고, 온갖 악과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안락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 존재하는가?


 지금까지 왜 성경과 복음이 단순한 '종교적 허상'이 아닌 역사적, 과학적 '진실'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설령 여러분이 이러한 검증과정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정말로 하나님이라는 신이 존재하고 그 분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을 지옥에서 고문할 수 있는가?'

 '애초부터 죄라는 것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런 골치 아픈 문제가 없지 않았겠는가?'

 '왜 하나님은 세상의 수많은 고통과 부조리를 멍하니 지켜보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일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 모든 속성이 공의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속성과 완전히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라는 신은 사랑보다는 고문과 고통을 좋아하는 잔인한 신인 것 같아보입니다. 

 이 세가지 질문은 서로 다른 질문 같아보이지만, 사실 그 근본을 살펴보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순되어 보이는 내용들은 '하나님'이라는 신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알면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이 난제를 풀어보겠습니다.


A.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주셨다. 

 한가지 질문을 해 볼까요? 여러분은 만일 여러분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그 어떤 경우라도 예외 없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하는 '인사 로봇'과 때로는 TV 보는데 정신 팔려 쳐다보지도 않거나 칭얼대면서 울기도 하지만, 가끔씩 해맑게 웃으면서 여러분께로 달려가는 '아기'중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아무리 '인사 로봇'이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안녕하세요, 주인님? 일하느라 피곤하셨죠? 사랑합니다~'라고 백날천날을 외친다 한들 여러분들은 아무런 감동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생떼를 쓰고 징징대도 가끔씩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아빠'를 외치며 기어오는 아기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아기는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고, 로봇은 자유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봇은 원래 그렇게 하도록 '설계'가 된 것이기 때문에 로봇이 아무리 열심히 인사를 해도 기분이 좋을 이유도 없고, 또한 설령 로봇이 아무리 심한 욕설을 퍼부어도 화가 날 이유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자유 의지를 가진 아기는, 아빠를 거부할 수 있는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에게 달려가서 안기기 때문에 아빠는 사랑과 감동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얼마든지 '자유 의지'를 박탈한 채로 기계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죄'라는 것을 결코 짓지 않고 기계적으로 선한 일만 하거나 하나님을 그 어떤 상황에도 찬양하면서 악을 행치 않는 감정과 인격이 없는'기계'로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존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경배를 받기 원하지 않으시고, 마치 우리처럼, 하나님을 얼마든지 부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B. 자유 의지의 산물 - '선과 악'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창조했느냐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을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악'이 존재할 '가능성'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에서 일방적으로 악을 행하도록 '설계'하지 않았고, 항상 선과 악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당해서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을 보았다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은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 사람을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도록 선행을 베풀 수 있습니다. 반면, 내 일이 아니라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심지어는 피를 흘리는 이 사람의 지갑을 훔쳐 도망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하나님마저도 특정한 선택을 여러분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러분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자유 의지'의 결과로 인해 필연적으로 '선'과 '악'이 갈리게 되고, 결국 선과 악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그에 따른 선택의 산물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 1사람을 도와준 것보다는 10사람을 도와준 것이 더 선하고, 1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보다는 10사람을 죽인 것이 더 악한 것처럼,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개념이고, 비교 대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왜 악이 없이 선만 만들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입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누구도 이 자유 의지의 부산물인 '악'이라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악'을 하나님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에게 모든 의사 결정권을 완전히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나는 토막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사기를 치지도 않았으며, 도둑질도 하지 않았고, 경범죄로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없는 양심적인 시민인데 대체 내가 무슨 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냐' 라고 말이죠. 

 하지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죄와 악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기만 해도 죄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어떤 성자라도 '악을 행하지 않았다'라고 결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C. 죄의 삯은 사망, 사망 이후의 심판

 인간의 '악'의 산물은 '죄'를 짓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성경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죽음이 끝이 아니고 다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대상은 사람이 살면서 지은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사람도 '죄'를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D. 하나님의 속성 -  공의와 사랑

 하나님의 속성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의'롭다는 것이고, 하나는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록,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록 완벽하게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나 하찮고 대수롭게 생각하는 시시한 죄 조차도 그분은 결코 용납을 하시지 못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을 내릴 수 밖에 없는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형벌인 지옥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합니다. 아니 무슨 신이 그렇게 속이 좁고 쩨쩨하냐 공의로운 것은 알겠는데, 한편으로는 사랑도 무한하다고 하면 그냥 사랑을 좀 베풀어서 시시한 죄는 통크게 용서해 주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 아니냐라고요...

 하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의와 사랑은 논리적으로 절대로 어중간하게 타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이 아기를 너무나 사랑한다면, 인위적인 낙태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아이를 살해한 살인범을 지독하게 미워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의 정도가 더 크면 클수록, 살인범에 대한 증오의 정도도 더 커질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의 아이에 대한 사랑이 무한대라면, 살인범과 그의 살인죄에 대한 증오도 무한대일 것입니다.

 이 때, 여러분의 아이의 살인 사건의 판결을 맡은 판사가 공의롭지만, 동시에 사랑도 넘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봅시다. 판사가 법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공의로운 판사이기 때문에, 이 살인범의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끔찍한 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이 죄를 용서하고 무죄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라고 판결을 내린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까? 결코 인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의롭기 때문에, 너무나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이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물쩡 덮을수가 결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합니다.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징역형'이건, '눈물의 사죄'이건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후의 사랑과 용서가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공의와 사랑은 논리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무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결코 인간의 죄를 용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는 죄값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치르고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본성으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고,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이 죄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런 죄를 지을 가능성 자체를 알고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담당하실 이유가 전혀 없고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공의롭게 판결내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히 인간의 죄악을 직접 담당하신 것입니다. 전지 전능하신 신이 자신이 만든 보잘것 없는 피조물의 몸으로 오셔서, 피조물에게 욕설과 비난, 채찍질, 굴욕,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죄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고, 인간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이를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자에게,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공의롭기 때문에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당신에게 유죄 판결과 사형을 면하게 할 수 없소. 당신은 무조건 '사형'!' 이라고 판결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공의롭지만, 동시에 사랑도 넘치기 때문에 이번 한 번만은 살인자를 용서해 주겠습니다. 보호자 분은 가슴이 아프겠지만, 팔자려니 생각하고 이해해 주십시오'라고 억지같은 편법을 쓰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방식은 이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공의로운 판사이기 때문에 결코 이 사람의 죄악을 그대로 묵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한 순간의 실수로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희생당하는 것도 결코 원치 않습니다. 

 보호자께서는 이해가 안가시겠지만, 제가 이 살인자의 죄를 대신 지겠습니다. 저는 아무 죄가 없지만, 이 살인자의 죄를 그 어떤 수단이라도 괞찮으니 제가 대신 지겠습니다. 저를 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때리시든, 제 재산을 빼앗건, 분이 풀릴 때까지 침 뱉고 욕설을 하건 알아서 하십시오. 이 짐승같은 살인자 참회하는 조건으로 제가 다시 사람으로 만들겠습니다.. 차라리 제가 죄값을 대신 치를테니 이 사람은 용서하고 살려주십시오'

 터무니 없어 보였고,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여러분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살인자 대신 공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판사에게 미친듯이 분풀이를 하는 조건으로 살인범을 용서했습니다. 살인범은 석방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살인범이 여러분의 부모님을 또 죽였습니다. 같은 재판과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살인범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판사의 제안에 또 따르시겠습니까? 절대 다수는 한 번은 용납하지만 그 이후로는 결코 용납하지 못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분이 이 판사의 눈물겨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또 동일한 방법으로 살인범을 처리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가정이지만, 이런 과정이 셀 수 없이 많이 반복되었고, 판사는 그 때마다 자신이 죄값을 받겠다고 하며 눈물로 부탁을 했고, 판사는 몸이 너덜너덜해질 지경까지 여러분에게 구타를 당하며 죄값을 대신 치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죄를 짓고, 또 짓고 짓습니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이었다면 용서를 할 수 있었을까요? 설령 한 두번은 '내가 대신 죄값을 치르고 용서할테니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그래도 지으면 넌 진짜 지옥이다.'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에 매일 죄를 짓고 또 지어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또 속아주시고 바보같이 또 죄를 짊어주십니다. 이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그런데, 만일 이 재판관이 반복적인 살인범에 대한 죄를 무한대로 대신 짊어질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이 넘치는 재판관은 자신이 죄값을 치르는 대신 이 흉악한 살인마에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될 것을 부탁했습니다. 

 살인범은 그 때마다 눈물로 참회를 하고 새 사람이 되겠다고 했지만, 항상 그 죄를 반복하며 지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그 재판관은 자신이 죄값을 대신 치러주었고, 또 회개를 전제로 죄값을 대신 치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사랑을 재판관이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살인범이 끝까지 뉘우치치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판관이 대신 죄값을 치르고, 그것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죄를 지어도 뉘우치기만 하면 항상 죄를 대신 해결해준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죄를 뉘우치치 않는다면, 그 때도 재판관이 이 사람에게 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이는 공의로운 속성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살인범을 본다면 분노가 극에 달해서, '아니 판사가 그냥 공정하게 사형판결을 내려도 아무 문제가 안되고, 심지어 자신이 대신 죄값을 치르고, 그것도 모자라 반복적으로 죄를 지어도 뉘우치기만 하면 자신이 죄값을 대신 치러 주겠다고 하는데도 끝까지 뉘우치치 않는 저 인간은 그 어떤 잔인한 방법으로 사형받아도 싸다'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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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입장을 바꿔볼까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끝없이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인정하기 싫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도록 결코 강요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죄와 악은 우리가 선택해서 지었을 뿐이고, 그에 대한 죽음과 심판의 결과는 우리가 져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죽음과 지옥의 고통을 우리 대신 그분이 친히 져주셨고, 너희를 지옥에 보내지 않을테니 대신 회개하고 앞으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죄를 지었습니다. 어제도 짓고, 오늘도 짓고...내일도 짓고...사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눈물고 회개하기만 하면 그 때마다 대신 죄를 져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사랑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지옥의 형벌을 피할 길과 방법이 완전히 열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까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지옥간다면, 이게 과연 불공평한 일일까요? 네...사실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기는 합니다. 다만 범죄자인 우리쪽에 너무나 유리할 정도로 불공평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지만, 너무나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더군다나 그 방법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굴욕적이고도 치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예수 좀 안믿고 회개 좀 안한다고 인간을 지옥에 보낼 수 있어?'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이는 '아니 내가 몇 사람좀 기분 전환용으로 죽였기로서니, 그토록 사랑이 넘치는 재판장님이 어떻게 이 정도 죄를 대충 용서 못하실 수 있습니까?' 라고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재판장은 아무리 흉약한 죄를 아무리 자주 지어도, 회개하고 새 삶을 산다면 자신이 그 모든 무시무시한 죄값을 달게 받겠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랑을 베푼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아닙니까? 어떻게 더 이상의 사랑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래도 끝까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하면서도, '죄값'은 면제받기를 원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결코 불가능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과 사랑이라는 속성이 '죄값'을 치르는 과정이 없이는 결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에 간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의 사랑 부족이 아닌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 때문인 것입니다. 


E. 너무나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

 우리는 살면서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 잘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풍족한 재산, 학벌, 지위, 외모, 권력을 고스란이 물려받아 풍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찢어지는 가난과 질병, 신체적인 약점을 안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있고, 죄 지으면 결국 벌받는다 사실을 목도하기도 하지만, 부정하고 약은 방법으로 살아가도 너무나 인생을 풍족하게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직하고 선하게 살면서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너무나 많습니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것을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 분이 정말로 공의롭다면 어떻게 이런 불합리와 모순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세상의 삶은 영원한 천국이나 지옥, 즉 영원의 삶에 비하면 한낱 순간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일,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이고 모든 것이 끝이라면, 이 세상은 지극히 불공평한 세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이 득세하고 형통할 수 있습니다. 사기치고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100살까지 행복하게 얼마든지 장수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선하고 정직하게 살면서도 불운하게 단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삶에 대한 상급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든 말과 행동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심는대로 거둔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심는 것을 반드시 이 세상 중에 거두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보상의 개념은, 이 땅에서 심는 우리의 행위에 대한 합당한 판결은 죽고 난 이후의 심판대에서 '공정하게'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온갖 악을 행하면서도 세상적인 복을 다 누리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결국 사후의 심판에서 모든 죄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선하게 하나님을 따르며 살았지만 온갖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산사람도 결국 사후에 천국에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부와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받을 복은 이미 세상에서 다 누렸고, 만일 그들이 자신의 세상적인 풍요에 취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면 세상에서 버림받고 비참하게 학대받으면 사는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는 실패한 인생이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만을 의지하며 천국가는 삶을 소망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조금 부유하거나 가난하다고, 혹은 조건이 조금 좋고 나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좋은 조건은 영생에는 불리한 조건이고, 세상적인 악조건은 영생에는 호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언제나 공평합니다. 악인과 죄인은 반드시 심판대에서 죄값을 치르고 의인은 천국의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성경과 복음의 사실성에 대한 수많은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클릭)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특종 믿음 사건:기... 예수는 역사다, 두... 창조설계의 비밀, ... 리 스트로벨의 예수... 정말 지옥은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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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ernity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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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1111 2014.09.13 0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그 전지전능하다는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뭐가 아쉬워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창조해서 경배 받길 원하는 거임?
    애초에 글쓴이가 말한 대로라면 글쓴이가 말하는 신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닌 그저 인간보다 좀 더 상위의 외계인임
    완전히 모순 투성이야
    예수도 몰랐을 거야 2천년 전 자신이 친 사기가 이렇게 까지 심오하게 발전 하리라곤 ㅉㅉㅉ

  3. 이태원 2014.09.17 0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굳이 신이; 있다면 언어(말)가 신일것이다- 신이 없다는 100퍼 완벽한 증거가 나오더라도 신보다 우주보다 더 위대한(무한 팽창 가능) 언어가 있기 때문에 어케든 증명된 과학에 말장난으로 끼어들어 추상적인 소리만 되풀이하면 과학적인척하는 거짓은 기본으로 깔고 신은 살아남는다..애네들은 애초부터 부존재한자들이기에 존재의 증거를 갖출수가없다.있는척할뿐이지,,종교는 언어로 탄생하고 언어로 확장되며 언어로 명맥이 유지되고 언어로 혹세무민하며 언어로 위선을 덮을뿐이며 언어로 새로이 신이 탄생한다 고로 신은 존재하는게 아니고 언어가 곧 신이며 언어가 신의 대부로써 온갖신들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여기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있다고 우기는 자들이 한명이라도 살아있는 이상 박멸하긴 힘들다

  4. chris 2014.11.10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신이 전지전능하면 비인격적이어야 한다는 통념인 것 같네요. 물론 성경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말하고 있죠. 또 전능하다면 꼭 그 능력을 피조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도 극히 인간적 입장이라 봅니다. 전지전능해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 자유가 신에게 없을까요? 인간을 지은 신은 인간보다 더한 자유와 권리가 있을텐데, 인간의 관점에서 계속 이리 저리 자신에게 보여달라고 떼 쓰는 아이 같군요. 떼 쓰는 아이의 말을 다 휘둘리는 건 인간 부모에게도 어리석은 일인데, 하물며 신이 그러겠습니까?

    자유의지니 전지전능이니 이런 용어들은 우리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말일 뿐입니다. 신이 전지전능해서 미래를 철두철미하게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 인간에게는 그것을 말씀해주지 않는 이유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입니다. 또 신이 인간에게 선을 행하라고 했지 악을 행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악을 행해서 그에 대한 심판을 받는 것을 신의 탓으로 돌리는 건 인간의 책임 회피로 보이고요. 처음 창조했을 때 악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 해보시죠.

    선과 악의 개념이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간이 정의하는 선과 악의 개념이 점점 신이 가졌던 선과 악의 개념에서 인간화 되었기 때문에 현재 특히 인간 사회 속에서 엄청난 악이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십계명이 신이 준 것이고 그것만 지키면 선하다고 생각하지만, 신약에서는 그보다 더 엄격한
    내용들이 나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즉, 신이 가진 선과 악의 개념은 인간의 개념보다 더 높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으로 주어진 것들이 거고요.

    또한 신의 전지전능성은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인 것 같네요. 인간을 사랑하니까 악에 빠져서 자멸하지 않도록 계속 선을 행하고 악을 없애려 하는 것이고요.
    악에 빠지면 자멸하는 이유는 이 세계의 창조자인 신이 질서를 만들었고 인간은 그 질서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이라 그 질서에서 벗어나면 자멸하기 때문이겠죠.

    그럼 신은 왜 세상에서 악을 없애지 않는걸까? 인간이 세상에서 없어지길 바라는 악은 신의 개념에서 악보다 더 하위의 것일 것이고 신이 악을 없애려고 개입하는 날은 사실상 인간의 세계에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는 날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인간 사회 안에서 악을 없애도록 계속 선한 행동을 하도록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겠죠. 직접 개입할 때는 엄청난 사건이 될 테니

    결국 인간이 직접 세상의 모든 것을(죽음, 시간) 지배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지 않는 한, 피조물인 한
    어떤 비방도 떼 쓰는 아이의 투정에 불과하겠죠. 세계를 창조한 분의 말이 진실일까, 그 분께 반항하는 같은 또래 친구의 말이 진실일지는 선택의 자유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 선택을 하겠죠.

  5. Nate River 2015.01.19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를 잃어보셨나요?
    자신의 아이를 죽게한 살인범에 대한 감정이
    단지 재판장 한명 '따위'에게 폭력을 가한다고해서
    사그러들까요?
    사람들이 과연 살인범 대신 판사에게 폭력을 가할까요?
    판사가 눈물로 호소한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를 잃은 부모가
    판사로 대신 만족을 할까요?
    아니, 설사 살인범을 죽인다고 해서
    부모의 아픈마음이 치유되는 것입니까?
    죽었던 아이가 돌아오는 것입니까?
    이미 죽은 아이는 어떻게 할 것이며,
    그로 인한 부모의 마음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당신이 만약 부모라면
    당신이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자녀가 끝내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계실 겁니까?
    하나님처럼 전능하신 분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 한분이
    죽기 직전에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용서해준다 하신분이
    왜 우리가 지옥불이 떨어지도록 두시는 겁니까
    하나님은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임종 전에 진정으로 참회하고 회개한자는 용서하고 천국으로 인도하시면서

    평생 선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자는 지옥에서 고통받게 하시는 겁니까?



    • ㅇㄹ 2019.07.04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나님은 완전한 선이고 완전한 정의시기 때문에 그앞에 '평생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란 없습니다. 평생 선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굉장히 오만하시군요. 어떤 사람이든 그 마음을 열어 그 내용을 바라보면 추악하고 더럽기 그지 없는 마음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생각도, 마음도 모두 죄입니다. 그래서 우린 모두 죄인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고 인지할 수 있는 '선악' 개념이란 하나님 입장에선 아주 지극히 낮고 저차원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선악'을 주체적으로 알기 원하지 않으신다고 한거고(그 자체가 타락이 될테니까요), 선악과를 먹음이 곧 죄며, 너희를 죽음으로 이끌 것이라고 하신 겁니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선악'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선 없이는 사실 모든 것을 멸망으로 이끄는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6. 글쎄요 2015.02.12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는것 자체가 죄라면 자살은 회개가 되야하는데

    자살은 기독교에서 큰 죄악으로 여긴다죠..?

    이건 뭐죠??

    • 이상하군요 2019.09.10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살이 회개가 된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당신의 자녀가 말도안되는 죄를 짓는다고 해서 자녀가 자살로 죄값을 갚겠다고 하면 좋아하실 겁니까? 오히려 끝까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큰 죄가 되겠지요. 차라리 살아서 이전에 지은 죄를 부모님앞에 사과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부모는 더욱 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리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죄값을 스스로 치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살인자가 살인자를 대신해서 죽겠다고 해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살인자를 위해 아무 죄없는 부모가 대신해죽을테니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있겠죠

  7. . 2015.03.06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는 그 죄가 믿지 않는 죄라는 사실이죠 빈민이 신의 존재조차 모르고 죽어 지옥에 간다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한가지 묻겠습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했던 질문이지요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그 수많은 자유의지의 결과조차도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전지전능이 아니지요 그러니 하나님은 악의 가능성이 아닌 악을 창조하시고 방관하신 겁니다

    • 라브 2016.01.28 0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하지만 악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다면 거기에는 공허 즉 무질서와 같은 악만 남게되지요

  8. 공존 2015.03.24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장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와 전지전능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 입장에서는 미래를 모르고 순간 순간 선택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아시지만, 그래도 우리를 의식이 없는 로봇이 아닌 의식이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인간으로 지으시고 싶으셨게 아닐까요. 단지 우리의 미래를 안다고 해서, 인간을 지은것이 부질없는 일은 아닙니다.

  9. 삼류복서 2015.05.29 0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복한 가정출신과 불우한 가정출신이 사후 똑같이 구원받았다 가정하죠. 이 둘은 결국 똑같아진 걸까요? 불우한 가정출신이 꽤 억울할 겁니다. 선택하라면 후자를 택할 개인은 아무도 없어요.

    사후 영생에 비하면 세상의 삶이 중요치 않을 수 있겠으나, 세상의 삶 자체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겠지요.
    유복한 가정출신은 불우한 가정출신보다 죄 지을 가능성이 적으므로 사후구원에 있어서 좀 더 유리합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서의 삶과 구원의 기회가 누구에게든 언제나 공평할까요? 불평등 투성이임을 인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전지전능과 자유의지의 양립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신으로부터 허락받은(혹은 부여받은), 즉 자발적이지 않은 자유의지가 진정 자유의지로서의 가치가 있느냐 여부일 겁니다. 이 지점에서 신을 믿는 자와 믿지않는 자는 제 갈길을 가는 거에요.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면(스스로 생겨났다면)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의 가치논란은 없겠지요.

    인격적 대우를 위해 죄지을 가능성이 큰 자유의지를 하사했다는 것은 신이 최고로 인격적일 수는 있어도 정말로 피조물을 한없이 사랑하는지 그리고 최고로 선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죄지을 가능성을 활짝 열어두고, 자발적인 것도 아닌 자유의지의 결과이니 영원히 가혹하게 처벌한다는 것에서 사랑이나 선함은 커녕 심술궂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신이 하사한 자유의지를 과하게 사용한 사람때문에 생긴 선의의 피해자 문제도 간단치 않아요. 자유의지를 사용해 불지르고 자살한 자와 같은 건물에 살아서 끔찍한 화상을 당한 자나, 자유의지로 음주운전한 자의 차량에 치어 불구가 된 자의 남은 인생은 무엇일까요? 이들의 불행에 눈을 감는 신이 전지전능하며 지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후구원을 통해 보상해준다 해도 이 세상 삶에 대한 아쉬움이나 억울함은 여전히 남겠지요.

  10. 지나가는 사람 2015.08.14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사람이기에 신을 전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1. 예수님만을 사랑하는자 2015.08.27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하게 영접한지 1년 조금 넘은 청년입니다.
    하나님과 기도를 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사람을 만들었냐고요?
    그건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랍니다.. 저는 하나님을 찬양할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합니다
    기도할때도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요
    제 글을 절대 이해 못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경험하고 체험하지 않았다고해서
    그것이 없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동일 하십니다.

  12. 하늘소망 2015.09.02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이 재미있습니다^^ ㅎㅎ
    전지전능과 자유의지의 주체를 잘못 설정해서 그런 것 같은데..

    먼저 성경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지요.

    또한 성경에서의 선과 악은 작성자 분이나 댓글다신 분들이 생각하는 그 '선과 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누가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요.. 저는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로의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선과 악은 절대로 자유의지의 산물이 될 수 없습니다. 공부 좀 하세요... 휴..

    마지막으로 조심스래 결론을 내려보자면
    자유의지의 대상은 창조주고, 전지전능의 대상이 바로 인간입니다.

    저는 개독교라 불리우는 종교의 목사입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cwcm1002@hotmail로 연락주세요.

    • eternity79 2015.09.02 2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성경에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노라'라는 말이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안나와 있다고 자유의지는 없다
      성경에 없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주장은 궤변입니다.
      어떤 내용이 성경에 안 나와 있다면, 그 내용은 거짓입니까?
      아니지요?
      창세기에 이미 선악과 사건으로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미 우리는 모두 자유 의지가 있지 않나요? 하늘 소망님의 생각은 모두 이미 결정되어 있나요? 아니지요?
      그럼 자유 의지가 있는 것이지요.

  13. 하늘소망 2015.09.02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유의지와 전지전능이 모순이라는 것에 대해 작성자분이 이해를 못 하시길래 성경적으로 설명드립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갈지 지옥갈지 태초부터 알고 계신다.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 약자를 도와줄지 안 도와줄지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모든 피조물이 하는 행동과 생각, 그리고 선택을 다 알고 있으며
    사후에 심판하신다. 그 결과 또한 알고 계신다.

    성경적이라면 내가 아무리 복음을 믿는다고 하여도 나는 너를 모른다며 버림 받을 수 있고
    아무리 죄를 짓고 비성결적으로 산다하여도 내 친구라하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정해져 있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과연 자유의지일까요..

    운명론과 다르다고 계속 주장하시지만 운명론을 벗어나면 비성경적인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최후의 심판대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자유의지가 진정 있다면 그 누구도.. 신을 용납하지 않고 신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할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내 마음대로 만들고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아니면 둘다 안 갈지 결정하는게 바로

    자. 유. 의. 지. 입니다.

    • eternity79 2015.09.02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완전히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갈지 지옥갈지를 미리 정해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의지를 주셨고 그게 자유 의지입니다.

    • ㅇㄹ 2019.07.04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2차원에 사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그에게도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존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2차원 선내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선을 형성하고 그 선의처음과 끝을 과거와 미래라고 지칭합니다. 하지만 3차원에 사는 우리에겐 2차원에서의 시간이란 또다른 공간축z에 불과합니다. 즉 우리가 보기엔 그 존재의 '처음과 끝'은 한눈에 다 보이는 하나의 선이란 뜻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2차원 존재는 분명 자유의지대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에는 그의 존재와 존재의 움직임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전지전능'한 존재지요. 이제 좀 이해가 가십니까. 3차원에 살면서 시간이 단방향(과거->미래)으로만 흐르는 우리를 고차원에서 보면 모든 행동이 마치 결정되어있듯이 다 보인다는 뜻입니다. 즉 자유의지란 저차원의 문법이며 전지전능이란 고차원의 속성을 나타낸 말입니다. 두 개념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공존할 수 있습니다.

  14. 전형적인 2015.11.05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본문에서 예로 드신 살인범말인데. 그 살인범에게도 자유의지가 있고 ...아니 됐습니다. 그 살인범이 저라면 전 지옥에 갈겁니다. 어떻게 그런짓을 해놓고 뻔뻔하게 죄송합니다 회개하겠습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해놓고 두꺼운 면상으로 천국에 들어가던 영생을 얻는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고있는겁니까? 당신들은 진정으로 자유의지라는게 있긴 한겁니까? 누군가가 당신들 죄를 아무 이유없이 단지 사랑이란 이름으로 대신 뒤집어 쓰겠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마땅히 응당 받아야 할 댓가를 치룰 생각은 안하고 봐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제 영원히 사랑하고 살아갑시다???? 진실로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면 응당 자신의 죄에 대해서 자신이 댓가를 치루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혹여 그렇지 않다면 그건 자유의지의 껍데길 뒤집어쓴 목각인형이겠죠. 당신네들처럼

  15. kumon12 2015.12.11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악과를 먹어서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1)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2) 구분은 원래 가능하였으나 선만 있다가 악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인가?

    전자라면 아담은 어린아이나 동물과 같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어떤 행위를 해도 그것은 행위 자체일 뿐, 그것의 도덕적 성격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죄와 악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존재에게 죄를 묻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먹는 게 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미 선악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순이다.

    후자라면 아담은 선악과를 먹기 전에 원래 악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는 것이 죄라면 그 죄짓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악이 들어가 있는 상태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 성질은 아담을 창조한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므로 모순이다. 만약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사단이 그렇게 만든 거라면 하나님은 왜 그 성질을 없애지 않았으며(혹은 아담에게 그 정도로 부족한 절제력밖에 주지 않았으며) 왜 사단만을 벌하지 않고 아담까지 벌하였는가.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담은 태어날 때 탐욕이라는 성격을 가지겠다고 자의로 선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욕심이 자유의지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관계라면 애초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영원한 천국’은 보장될 수 없다(요한계시록21~22장). 이 논리는 아담보다 먼저 타락한 사단의 탄생 과정에도 해당된다.
    또한 후자의 해석으로는 아담이 원래 벌거벗은 상태였으나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그것을 인식하고 부끄러워하는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16. kumon12 2015.12.11 2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죄가 유전이 되는 상황이다. 왜 자식이 부모의 죄를 물려받아야 하는가? 부모가 살인자라 할지라도 자식에게까지 그 책임이 있지는 않다.
    아담의 죄가 자손에게 직접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성질’이 유전되어서 자신이 ‘그 성질을 스스로 발현한 것에 대한 대가’를 묻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영적인 성질까지 유전되는 시스템 자체도 하나님이 설계한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따라 죄악을 가지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창조주이며, 날 때부터 죄가 있다면 그 책임은 가장 먼저 그 설계자에게 있다. 하나님은 죄가 유전되지 않도록 생식체계를 만들 능력이 없으셨는가? 자녀가 부모의 육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가치중립적이기에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장애를 물려받았다고 죄를 묻지는 않는다. 그러나 육적인 부모님에게 영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의 육적인 자녀까지 영적인 문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17. 야훼시팔새끼 2016.07.14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그 알량한 자유의지로 천년만년도 아닌 백년도 채 못살고 죽어서 '영원히' 불구덩이에 떨어지는건 인간적으로 시팔 자비롭습니까?
    백년살고 백년 지옥가는것도 좆같이 애미없을텐데 자유의~지? 참~으로 자비롭고 사랑가득한 지옥구덩이의 아비십니다

    • ㅇㄹ 2019.07.04 2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원히'를 늘 오해하시는데 '영원'이란 시간이 있을 때는 아주 긴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모든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3차원의 공간축처럼 보이는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당연한 말입니다. '시간'도 개념일 뿐입니다. 죽고 신의 앞에 가면 그 곳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존재'할 뿐

  18. 네? 2016.10.01 2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지전능+절대선+인격이라는게 절대 될수없다는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신히 존재하더라도 당신이 말하는 신은 아닐겁니다.

  19. 나그네 2016.10.05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인간은 나약합니다. 악마가 첫인간을 유혹할 때 쓴 방법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느님과 같이 될까봐 하느님께서 먹지말라 하셨단 거짓말이며 인간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의 삶에 주체라는 교만입니다. 이 거짓은 인본주의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목숨을 거두어 가시면 그의 생명은 그날로 끝입니다. 책임진다구요? 그말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올무요 심판하는 잣대가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2) 마리아 고레띠라는 성녀가 있습니다.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개개인으로서 동시에 전체 인류로서 죄를 짓는 탓을 하느님탓으로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비단 논리적으로만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많은 문제는 내탓인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하느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제 짧은 지혜로는 구분학기가 어렵습니다. 이해도 어렵구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고 자신을 맡기듯 신앙을 가지게 되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도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천주교 개신교를 망라하는 기독교는 계시종교입니다. 가르침과 교리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사도신경이라고 신앙인들이 믿고 고백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소개해보면,
    " 전능하신 천주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천주성부 오른 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진선미의 원천임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피조물을 통해 그 피조물간의 질서를 통해 어렴풋이 뭔가가 있다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때가 무르익어 하느님 당신께서 친히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전 인류에 대한 구원사업으로서 기독교 즉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하느님 자신을 드러내신 모습이 정의로우시며 동시에 사랑이신 모습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숟가락을 보고 젓가락이라고 고집을 부릴 순 있겠지만 숟가락은 숟가락입니다. 하느님을 부정하더라도 하느님은 전부터 있으시고 지금도 있으시며 앞으로도 있으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도저히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고 다 알 길도 없는 분이지만 그분께서 친히 인간에게 허리를 굽히셔서 말을 걸고 대화를 하시려는 분이십니다.

    그뿐입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류 탄생부터 세상 종말까지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죄값을 대신 치루시고 그 결과로서 영원한 생명을, 하느님 계신 하늘나라를 믿는 사람들에게 상속해 주시려는 분입니다.

    정진석 추기경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애완용으로 개를 키우고는 하는데 정말 개를 너무나 무지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개가 되라하면 그럴 사람이 몇명이나 되겠는가 또 개가 될 방법도 없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동정녀를 통해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 당신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다.

    본문의 내용이 맞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기독교인이건 아니건간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에 찔리고 침뱉음과 모욕을 당하시며 사랑의 고통으로 심장이 활활 타오르시며 창이 관통하는 고통을 겪으십니다. 아버지 제가 이 사람들 대신에 값을 치르겠으니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요 라고 하시면서요.

    옛적에 자식이 죽음의 위기에 있을 때 단지 즉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자식의 입에 흘려넣어 생명을 살리려는 그런 장면을 티비에서 보신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실재로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간에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아들 딸 들어 하시며 온몸을 다 짜내어 흘려주신 피로서 구하고자 하신 분, 하느님이시자 사람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기독교는 바로 그런 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20. ㅁㄴㅇㄹ 2017.01.22 0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째 , 내가 아담이었다면 난 분명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거다. 진심이다.

    그런데, 왜 아담과 하와가 선택한 행동으로 인해서 영혼의 주체가 염연히 다른 '나'라는 영혼까지 죄악성이라는 원죄를 물려받아야 하는가?

    인간 지성으로 연좌제는 분명 '공의롭지 못한' 제도 아닌가?

    설령 나라고 해도 무조건 선악과를 먹게 되어있었다면, 그 어떤 인간이라도 선악과를 먹게 되어있었다면, 그 죄의 책임은 애초에 인간의 본성을 그렇게 설계한 하나님의 책임 아닌가?

    즉, 선악과를 먹지 않을 자유의지는 진짜로 인간에게 있었던게 맞냐는 소리다.

    둘째, 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는것만이 정답인양 말하는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져서 그 속성을 누리되 죄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는 방식은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영원히 지옥불에 고통받는일이 하이리스크가 아니라면 뭐겠는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고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으며 죄를 짓지 않는 방식은 Low risk Low return 이다.

    애초에 선악과의 문제는 인간의 모든 자유의지가 제한받는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는 다 자유의지를 가지되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만 제한을 받는건지 알수 없기에 로우리턴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사실 나는 후자가 더 옳다고 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라면 자칫 잘못하면 영겁의 시간을 고통받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보단 로우리스크 로우리턴을 더 선호하겠다. 사실 아마 거의 모든 인류가 후자를 선호할거다.

    좀 세속적 비유를 들어서, 남자한테 비아그라 왕창 먹이고 벌거벗은 여자들 잔뜩 놔두고 너 절대로 여자 건들지마, 건들면 지옥감, 이게 낫겠나, 그냥 고자를 만들어 버리고 여자 건들지 말라고 하는게 낫겠나?

    당신이라면 어떡하겠는가? 당신이 정말로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자유의지가 없지만 그래도 영원히 당신과 멀어지지 않으며 안전하고 행복하고 복되게 살게 하겠는가, 아니면 자칫 미끄러지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불에 던져지게 되는, 게다가 확률적으로도 그럴 확률이 절반이 넘는(전인류의 비기독교인 비율) 인생을 살게 하셌는가?

    당신이 후자를 고른다면, 당신은 분명히 사랑이란 개념을 왜곡해서 이해한 새디스트 싸이코패스일거다.

    셋째, 만약 당신이, 어찌되었든 현실은 신이 갑이고, 우리는 병이나 정보다 못한 존재이므로 신이 짠 허접한 각본대로 따라주는게 인간이라는 축생의 살길이라고 말한다면, 차라리 나는 신을 받아들일것이다.

    사실 내가 방금 말한게 당신 주장의 본질이긴 하다. "피조물"과 "창조주" 타령에 그 본질이 드러나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자비로우시고 사랑많으신 하나님이니 인간의 죄때문이니 뭐니로 포장하려고 하냐는거다.

    그놈의 죄타령, 인간의 본성을 제조한게 누구신데?

    인간의 모든 욕망을 거세하라는게 아니라, 죄악으로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본성을 즐기도록 인간을 설계할수도 있었잖냐.

    왜, 그건 너무 인간이 편하니까 안돼? 인간은 좀 고통받아야되는거야? 인내라는 고통을? 실족이라는 하이리스크를?

    하나님은 결국 짜여진 각본(성경)대로 인간에게 죄와 악이라는 책임을 전가시켜놓은뒤 인류를 고통받게 내버려두고는 너 나 사랑안해? 그러면 지옥감ㅋ 이따위의 나르시스즘이나 걸린 새디스트 신일 뿐이다.

    당신이 계속 주장하는, 죽어서 지옥가서 후회해봤자 늦으니 믿어라 라는 말은 결국 당신이 전도하는 당위성을 하나님의 사랑보다 사후의 형벌에 포커스를 맞춘걸 드러내는 말이다.

    "신은 좆같지만 별수 없잖냐, 까라면 까야지." 제발 이렇게 말해봐라. 당신은 한사람의 영혼을 구할수 있다.

    • ㅇㄹ 2019.07.04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다. 그런데 당신의 절규에는 한가지 전제가 깔려있다.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을 '믿고' 이 세상을 '진짜'로 보는 것. 그러니 억울할 수 밖에 없고, 이런 복음을 들으면 화부터 나고 신이란 작자를 모욕하고 싶어지는 본능이 드는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을 신보다 더 사랑한다. 그런데 만약 이 세상이 존재의 거품일 뿐이라면? 잊지마라. 언젠가는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접혀서 말려올라가리라는 예언을. 상상해보라. 마치 이는 지금 세상이 트루먼쇼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언젠가는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세상을 더 사랑한 자여, 아담은, 창세기는, 인류의 시초를 나타내는 경서이자 곧 당신과 나를 나타내는 '예언'임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세상을 아버지보다 더 사랑한 자여, 당신은 이미 당신 손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당신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돌이켜 회개하자.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니 이 때는 구원과 오래 참으심의 때라.

  21. ㅇㅇ 2017.02.03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계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결국 자신이 그냥 기계로 만들어졌으면 된다는 말과 같다

    • ㅁㄴㅇㄹ 2017.02.04 0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 글을 똑바로 읽기는 한건가, 애초에 선악에 관한 자유의지가 없다고 모든 생각과 행동의 자유의지도 없어질거라고 추측하는것 자체가 잘못이다. 내가 자유의지의 "삭제"를 말했나? 인간이 영겁의시간을 지옥불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자유의지를 "수정"할수도 있지 않냐고 했지. 게다가, 기계처럼 사는게 뭐가 그리 나쁜가? 제발 글을 제대로 읽어라. 당신 자식에게 자유의지를 없애고 기계처럼 사는 대신에 영원히 당신과 교제하고 소통하며 행복하게 사는것과, 절반 이상의 확률로 당신이 절대로 다시 꺼내오지도 못하는 지옥불에 던져저서 영원히 고통받을수도 있는데 자유의지를 주는것, 당신은 뭘 선택하겠는가? 뭐 인간은 로봇하고 다르니까? 스스로 생각해서 판단하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고귀한 인간의 존엄이 있어서?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도 용감히 맞서는게 멋있으니까? 이 싸람아, 건방떨지마. "두번다시 돌이킬수 없는" "영원히" "극도의 고통을 받는" 지옥이라니까? 이게 극도의 하이리스크가 아니면 뭐냐? 니가 한번 실족해서 지옥에 가봐야 아 그냥 자유의지따위 개나 줘버리고 "안전하게" 천국가는게 나았다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하나님을 원망할걸.

    • df 2019.07.04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또한 이런 생각을 하다가 천국과 지옥이란 하나님이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즉 죽고 나서 우리가 '영적 세계'에 들어가면 내 안에 신의 빛(믿음)이 있으면 고차원적 영적 세계내에서 내 영혼은 보호를 받고 '천국'을 누릴 것이지만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신 빛이 없으면 그 영적 세계에 내가 신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고통일 것이란 결론. 그리고 그 세계에선 죽을 수도 '시간'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불에 있는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영적
      세계의 질서 같은거지. 마치 태양빛을 우리가 정면으로 보면 눈이 멀듯이. 그래서 신이 당신이 원하는 '수정'을 하러 몸소 인간이 되어 세상에 침투해오지 않았나? 우리가 신에게 가면 갈수도 없거니와 신과 함께 존재함 자체가 지옥과 같은 고통이기 때문에 신이 직접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내려오지 않았나.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수정'을 해주지 않았나? 당신이 살아있을 때 아직 육체에뿌리를 두고 있어서 신과 결합하더라도 영적으로 크게 다치지 않는 지금, 당신의 마음에 신에 대한 믿음, 신 자신을 심으려고 몸소 오시지 않았나? 그런데 왜 그게 싫은거지? 난 안다. 그 이유를. 그렇게 쉽게 구원받기는 싫은거다. 인간의 자존심이, 죄악성이 내손으로 하지 않은 신의 엄청난 전지전능을 그렇게 값없이 손쉽게얻을 수 있다니까 자존심이 상하는거야.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은거지.

    • ㅇㄹ 2019.07.04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가 아담이면 너는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웃기지마라. 아담은 바로 너 자신이다. 아담이 사람 이름인 것 같나? 아담이 히브리어로 뭔지 아는가? '인간'이다. 즉 모든 인간의 표상이자 대표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지. 태초부터 너는 존재했다. 그리고 너의 죄성을 '아담'이라 한다. 나라고 뭐 다르겠는가. 나또한 아담이다. 나는 내가 선악과를 기꺼이 따먹은 죄인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있지. 두번째 아담, 다시 오실 아담. 인간으로 온 신. 예수. 그가 내 죄값을 대신 다 치렀다. 사실 이게 성경의 요약이다. 자유의지에 대한 '수정'을 원한다고? 웃기지마라. 그 잘난 '수정'을 해준다고 우리 죄성이 선한것을, 완전한 선이신 신을 선택할 것 같나?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를 태초부터 만드신 신께서 잘 아시기 때문에 몸소 피조물의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는거다. 내가 말한게 강하게 들려서 싫을 수도 있겠지. 원래 이런 말 잘안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니가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셈치고 말해달라'고 하길래 쓴다. 언젠가 주님이 인도하시면 당신도 나도 알게 되겠지. 신과 인간에 대한 모든 감추어진 비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