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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만들어진 신 리뷰 (4) - 믿음을 '믿다'

by gospel79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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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의 첫 번째 장에서는 '믿음을 믿다' 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도킨스는, 어린 시절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신비함에 압도되어 성직자의 길을 선택한 한 소년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논리

도킨스는 자신이 같은 시기, 같은 상황의 소년이었다면, 똑같은 경험을 통해 똑같은 자연의 신비함과 놀라움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전혀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자연 현상에 대한 신비함과 놀라움은 무신론적 진화론으로 설명이 되기 때문에,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함을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설명하는 것은 바보같은 논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도킨스는, 신이 존재한다는 소년의 믿음을, '믿음을 믿다' 라는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즉, 아무런 근거가 없는 자신의 믿음을 맹목적으로 믿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후 전개되는 내용에서 도킨스는 저명한 과학자였던 칼 세이건, 와인버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이 얼핏 언급한 '신적인 존재' 에 대한 속성은 '사실은 신적인 존재' 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아니며, 철저하게 자연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며 편향적인 시각에서 해석을 합니다.

요약하면 첫 번째 장에서 도킨스는, 동일한 자연 현상을 바라볼 때 누구나 다 자연의 아름다움, 신비함,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지만, 이를 '유신론적', '초자연적' 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근거 없는 믿음'에 불과하며, 무신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궤변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이 챕터의 어디를 찾아보아도, 동일한 현상을 해석할 때,

왜 유신론적 관점은 비논리적이고 근거가 없는지
왜 무신론적 관점이 타당한지
왜 무신론 과학자들이 유신론적인 해석의 여지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도와 다르게 무신론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해야 하는지

에 대한 근거는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동일한 현상을 바라볼 때, 어떤 관점이 참인지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무신론과 유신론 모두 다 참일 가능성을 공정하게 오픈한 상태에서, 각각의 전제가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어떤 관점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적절한지를 논리적, 통계적, 과학적, 합리적 관점에서 비교한 후, 상대적으로 더 신뢰성이 높은 관점을 채택하는 것이 진정한 지성인의 자세이자 과학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자신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인을 자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 단계에서부터, '무신론은 진리이고 유신론은 거짓' 이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참이라고 전제하고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는 지독한 궤변이자, 논리학의 기본조차 모르는 한심한 논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도킨스는 왜 유신론이 거짓이고 무신론이 참인지에 대한 논증을 이후에 진행될 챕터에서 상세히 할애하고 있으니 이렇게 써도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는 대단한 착각입니다.

 

그런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전에는 철저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연의 신비함을 설명하는 데는 유신론적인 가정, 무신론적인 가정 모두 가능함을 일차적으로 전제하고, 어떤 관점이 옳은지는 논리적, 합리적 검증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는 방식으로 논증해야 설득력이 있으나 도킨스는 감정과 편견에 치우쳐 시작 단계에서부터 암묵적으로 '유신론은 거짓이고 무신론이 참'이며, '자연 현상은 무신론적 진화론' 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는 논리적 오류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주장을 함에 있어서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무신론에 가까운 과학자들이 유신론적인 가능성을 어느 정도 암시하는 말을 했을 때도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도 않고 그들의 의도를 왜곡해서까지 자연주의적인 주장으로 해석해서 본인의 주장에 끼워맞추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도킨스가 똑같은 노선을 견지하는 동료 무신론자들에게조차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상적인 논증은?

그렇다면, 도킨스가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논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서술해야 했을까요? 다음과 같이 서술했어야 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신비감에 도취되어 신의 존재를 믿게 된 한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동일한 경험을 겪고도 무신론적 진화론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똑같은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다양한 가설이 존재할 수 있다. 유신론도 있고, 진화론도 있고, 불가지론, 아니면 제 3의 이론도 있을 수 있다'

 

'어떤 가설이 검증되기 전까지, 가설 자체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다만 가설이 객관적인 팩트에 의해 반박되었다면 그 때 기각하면 된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 아름다움은 유신론적 가설, 진화론적 가설의 관점에서 모두에서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가설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한지 엄격하고 객관적인 절차로 검증해서 두 가지 관점의 진위를 공정하게 가려보고, 최종 결론을 내려보자. 유신론을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은 다 검증한 이후에 해도 결코 늦지 않으며, 오히려 제대로 검증한 후에는 훨씬 더 지독하게 깔수 있다.'

 

도킨스는 그 자신이 뛰어난 과학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이런 자연과학적 검증방법의 기본 중의 기본이자 핵심 중의 핵심인 가설 검정의 기본 원리조차 암묵적으로 무시한 상태에서 논증을 펴고 있습니다.

 

전제는 하지 않았지만, 이 유신론적 관점은 잘못되었고 무신론적 관점이 참이라는 근거 없는 전체를 암묵적으로 가정한 상태에서 논지를 펴니, 논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전형적인 순환 논증의 오류를 펴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극도로 심각한 오류인데, 이는 도킨스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편향되어 같은 무신론자들에게 동일한 논리로 공격을 받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믿음을 믿다' 는 부제는, 유신론자들의 논리를 공격하기 위한 제목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신론은 근거는 없지만 참이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무신론자인 도킨스가 가지고 있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종교의 해악에 대한 도킨스의 주장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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