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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집단 학살을 명하는 하나님, 잔인한 신이 아닌가?

by gospel79 2024.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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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

무신론자의 도전

무신론자: 강연에서 도덕성이 신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에 대해 의문이 있습니다. 오히려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신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종교들, 즉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경전들을 보면 대량 학살이나 집단 살해와 같은 도덕적으로 매우 문제가 있는 내용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구약성경에서는 신의 명령으로 인한 집단 살해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는 현대의 도덕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잔인하고 비윤리적으로 보입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설령 신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제시된다 하더라도 도덕적 차원에서 그러한 신을 믿지 않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많은 무신론자들이 "설령 기독교의 신이 실존한다는 것이 증명된다 해도 그를 믿거나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도덕적 불일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도덕 기준으로 볼 때, 성경에 묘사된 신의 행위들이 너무나 잔인하고 부도덕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Frank Turek: 당신의 질문은 매우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먼저 '부도덕하다'는 말의 의미부터 정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무신론자들에겐 성경의 신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무신론적 세계관에서는 궁극적인 도덕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의 행위를 '부도덕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주관적 의견일 뿐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성경의 신이나 다른 어떤 것도 판단할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신론자가 "신의 행위가 부도덕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나는 신의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도의 의미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신의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변은 아닙니다. 성경에 묘사된 신의 행위들, 특히 구약성경의 폭력적 장면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나안 족 멸절에 대한 질문

무신론자: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신이 가나안 족을 멸절시키라고 명령하는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호수아서를 보면, 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의 거의 모든 도시를 점령하고 그곳의 모든 주민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 6장에서는 여리고 성의 모든 주민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심지어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가축까지도 말입니다. 이는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명백한 집단 학살이며, 전쟁 범죄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과 자비의 신이 이런 잔혹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신을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을까요?

Frank Turek: 이는 매우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먼저 한 가지 반문을 하고 싶습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즉 무신론적 세계관에서 왜 구약의 '잔학 행위'가 잘못된 것인지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제가 무신론자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무신론적 세계관에서는 객관적인 도덕 기준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행위를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변하겠습니다. 가나안 족 멸절 명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1. 신의 판단 근거: 먼저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신이 자의적으로 판단했나요, 아니면 사람들을 심판할 정당한 이유를 제시했나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답은 후자입니다. 신은 가나안 사람들의 악행을 400년 동안이나 참아왔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기 15:16).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2. 가나안 족의 악행: 가나안 족이 저지른 일 중 가장 끔찍한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의 아기를 몰렉이라는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금속으로 만든 몰렉 신상을 뜨겁게 달군 후, 살아있는 아기를 그 위에 올려놓아 태워 죽였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이 의식이 진행될 때 북을 치는 사람들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의 비명을 듣지 못하도록 더 크게 북을 쳤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도덕성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행위였습니다.
  3. 악의 확산 방지: 신의 심판은 이러한 극악무도한 관행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문화가 계속 존속했다면, 더 많은 무고한 아기들이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4. 신의 개입에 대한 모순된 태도: 제가 대학 캠퍼스에서 강연할 때 무신론자들은 종종 "좋은 신이 있다면 왜 세상의 모든 악을 멈추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이 악을 멈추려 개입한 사례가 있는데 무신론자들은 이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모순된 태도가 아닐까요? 신이 악을 방관하면 비난하고, 악을 심판하면 또 비난하는 것입니다.
  5. 역사적 문맥: 우리는 고대 근동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 사건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의 전쟁 관행과 문화를 고려할 때, 이스라엘의 행위가 특별히 더 잔인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가나안 족 멸절에 대한 두 가지 해석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주요 견해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Paul Copan의 해석:

Paul Copan은 "Is God a Moral Monster?"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과장된 표현: Copan은 성경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7장에서는 "그들을 완전히 멸하라"고 말한 직후에 "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모순됩니다. 이미 멸망시킨 민족과 어떻게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 고대 근동의 수사학: Copan은 이러한 표현이 고대 근동 문화에서 흔히 사용되던 과장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모두 멸하라"는 표현이 실제로는 "그들을 완전히 물리치고 땅에서 쫓아내라"는 의미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 실제 역사: 실제 역사를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완전히 멸절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그 땅에 살았고, 이후의 성경 기록에서도 등장합니다.
  • 전쟁 용어: "모든 사람을 죽였다"는 표현은 당시의 전형적인 전쟁 수사였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군인들만을 대상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 문자 그대로의 해석: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합니다:

  • 신의 주권: 설령 이것이 문자 그대로의 명령이라 해도, 이는 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며, 따라서 언제든 생명을 거두실 수 있는 권한도 갖고 계십니다.
  • 영원한 생명: 만약 기독교가 진실이라면, 사람들은 실제로 '죽는' 게 아니라 그저 현세에서 내세로 장소를 옮기는 것뿐입니다. 신은 2살이든 82살이든 언제든 사람들을 다음 생으로 인도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끔찍한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우리의 제한된 관점 때문입니다.
  • 더 큰 선: 때로는 더 큰 선을 위해 작은 악을 허용하거나 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암에 걸린 팔을 절단하는 것은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의 이러한 행위도 더 큰 선을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낙태에 대한 비유

Frank Turek: 이 문제와 관련해 제가 Oklahoma Central University에서 겪은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네, 계속해서 Frank Turek의 경험과 그 이후의 내용을 상세히 풀어나가겠습니다.

Frank Turek: 제가 Oklahoma Central University에서 강연할 때의 일입니다. 한 여학생이 질문 시간에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신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그런 신은 너무 잔인하고 비도덕적으로 보입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그녀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낙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나요? 찬성하시나요, 반대하시나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낙태를 지지합니다.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한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더 해도 될까요? 왜 구약에서 신이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결정할 때는 부도덕하다고 하면서, 당신이 낙태를 통해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 결정하는 것은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에 그 학생은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설명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신이 생명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그런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명백한 모순 아닌가요?"

이 대화는 우리가 도덕적 문제를 다룰 때 얼마나 쉽게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의 행위를 판단할 때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자신의 행위나 현대 사회의 관행에 대해서는 훨씬 관대한 기준을 적용합니다.

이는 우리가 도덕적 문제를 고려할 때,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이나 현대의 문화적 규범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더 깊이 있고 일관된 윤리적 기준을 개발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구약성경의 폭력성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이 문제를 단순히 '신은 잔인하다'는 식으로 일축해서는 안 되며, 더 깊이 있는 철학적, 신학적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적 관점에서의 가나안 정복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현대적 관점에서 구약성경의 폭력성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저자들과 당시 사람들의 관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경학자 Dr. Michael Heiser의 견해를 살펴보겠습니다.

Dr. Heiser의 해석

Dr. Heiser: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구약 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이해의 틀이 있었습니다.

먼저, 가나안 정복에 대한 명령을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명령들에는 '죽이다'라는 동사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성경을 자세히 보면, 여러 가지 다른 동사들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쫓아내다', '추방하다', '몰아내다' 등의 동사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신이 반드시 모든 가나안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일부 구절에서는 '죽이다'라는 강한 표현이 사용되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정복 기사에서 '죽이다'라는 동사는 주로 특정 에피소드, 특히 아나킴이나 아모리 거인 족속이 있는 곳을 다룰 때 사용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 저자들과 당시 사람들에게 이 '거인들'은 단순한 키 큰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거인족에 대한 고대 히브리인들의 이해

구약 성경 저자들은 이 거인족들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이 거인들은 타락한 천사들(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인간 여성들과 결합하여 낳은 자손이었습니다. 이는 창세기 6장에 암시되어 있고, 외경인 에녹서에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크고 강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악했습니다. 그들은 악마와 인간의 혼혈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대한 모독이자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거인족들은 흑마술과 어둠의 왕국을 만들어냈다고 믿어졌습니다. 그들은 인간 세계에 악마적인 지식과 관행을 퍼뜨리는 주체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Dr. Turek이 앞서 언급한 몰렉 신에게 아기를 바치는 끔찍한 관행의 기원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지리적 위치와의 연관성

Dr. Heiser: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경의 정복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됩니다. '죽이다'라는 동사가 사용된 장소들은 대부분 '산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수기 13장, 신명기, 여호수아서 등에서 언급되는 장소들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아나킴과 다른 거인족들이 주로 산지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헤브론, 드빌, 아납 등이 모두 산지에 위치해 있었죠.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성경 저자들의 관점에서, 이 산지들은 악마적 존재들의 거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들에 대해서는 더 강력한 정복과 파괴의 명령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승리 선언

Dr. Heiser: 이러한 맥락에서 여호수아의 승리 선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가 정복을 마무리하며 승리를 선언할 때, 그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이 땅에 더 이상 아나킴이 없다"

주목해야 할 점은, 여호수아가 "더 이상 인간이 없다"거나 "더 이상 가나안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초점은 전적으로 이 '거인족'들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가나안 정복의 주요 목적이 단순히 영토 확장이나 일반적인 적의 제거가 아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들의 주된 목표는 이 '악마의 자손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나안 정복은 단순한 영토 전쟁이 아니라 일종의 영적 전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이는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고 악마적 영향력을 제거하는 신성한 임무였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집단 학살'이나 '인종 청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악마적 무질서 사이의 우주적 대결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현대인의 윤리 의식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성경의 이 부분을 이해할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맥락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현대의 관점만으로 고대의 텍스트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그들의 세계관과 믿음 체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실재하십니다. 예수님은 실재하십니다. 그분은 이 땅을 걸으셨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실재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의문, 여러분의 고민, 심지어 여러분의 분노까지도 - 그분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삶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여러분과 깊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무신론자와 회의론자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위한 계획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질문을 던지고 이 영상을 끝까지 보셨다는 사실이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관심이 있기에 여기 계신 것입니다. 그 열정과 호기심을 잃지 마세요. 계속해서 질문하고,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세요. 그 과정에서 예수님 자신이 여러분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신앙의 여정은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의 끝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평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여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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