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슐라이어마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슐라이어마허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는 1768년 11월 21일, 당시 프로이센의 영토였던 브레슬라우(현재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개혁 교회 목사이자 프로이센 군목이었던 고틀립 슐라이어마허(Gottlieb Schleiermacher)였고, 슐라이어마허는 경건한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sup>1</sup> 그는 1787년 할레 대학교(University of Halle)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칸트와 스피노자의 사상에 심취했습니다.<sup>2</sup> 1794년에 개혁 교회 목사로 안수받은 후,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Charité hospital)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sup>3</sup> 이 시기 슐라이어마허는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는데, 특히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과 같은 낭만주의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sup>4</sup>
18세기 말, 유럽은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이 중시되고, 종교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나는 분위기였습니다.<sup>5</sup> 더불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였습니다.<sup>6</sup>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고, 기독교가 이성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는 1799년 "종교론: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들에 대한 강연"(On Religion: Speeches to Its Cultured Despisers)을 출판하여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습니다.<sup>7</sup> 1810년에는 베를린 대학교(University of Berlin)의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821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기독교 신앙"(The Christian Faith)을 출판했습니다.<sup>8</sup> 이 책은 근대 자유주의 신학의 초석을 놓은 저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1834년 2월 12일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신학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개신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sup>9</sup>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칼 바르트(Karl Barth)와 같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비판하며,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신학을 전개했습니다.<sup>10</sup>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라이어마허는 여전히 근대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sup>11</sup>
2. '종교의 본질은 감정'이라는 슐라이어마허의 주장과 그 위험성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론"**에서 "종교의 본질은 사유도 행위도 아닌 직관과 감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sup>12</sup> 그는 종교를 지성이나 윤리와 분리된, 인간 내면의 독립적인 영역으로 보았습니다.<sup>13</sup>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종교적 경험의 핵심은 **"우주에 대한 직관"**과 "무한자에 대한 감정", 즉 "절대의존감정"(Gefühl schlechthinniger Abhängigkeit)입니다.<sup>14</sup> 그는 이 감정을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종교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슐라이어마허가 활동하던 시기, 기독교 신앙은 계몽주의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칸트와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기독교의 초자연적 교리들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기독교를 단지 도덕적 가르침을 주는 종교 중 하나로 격하시켰습니다.<sup>15</sup> 이러한 상황에서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이성과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감정"**을 종교의 본질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계몽주의자들에게 **"당신들이 멸시하는 종교는 사실 당신들의 이성으로는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심오한 감정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며, 기독교 신앙을 이성의 심판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절대의존감정을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는 이 감정을 통해 모든 종교가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sup>16</sup> 그는 다양한 종교들을 절대의존감정을 표현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라고 보았고, 기독교는 이러한 종교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sup>17</sup>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은 기독교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 종교를 감정의 영역으로 한정함으로써, 객관적 진리로서의 기독교 신앙을 약화시켰습니다.<sup>18</sup> 감정은 주관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감정에 기초한 신앙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켰습니다.<sup>19</sup>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을 단지 종교적 천재들의 감정을 기록한 책으로 보았기 때문에,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부정했습니다. 셋째, 죄와 구원에 대한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왜곡했습니다.<sup>20</sup> 슐라이어마허에게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아니라, 절대의존감정이 약화된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한 죄 사함이 아니라, 절대의존감정의 회복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슐라이어마허는 계몽주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려는 시도에서 종교의 본질을 감정으로 정의했지만, 이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객관성, 유일성, 역사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의 주장은 기독교를 단지 개인의 주관적 경험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자유주의 신학의 문을 여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sup>21</sup>
3. '기독론'이 아닌 '인간론'에 가까운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기독론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했지만, 그것을 전통적인 삼위일체 교리에서 말하는 본질적 신성이 아닌, 기능적 신성으로 이해했습니다.<sup>22</sup>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 의식"(God-consciousness)을 가진 인간이었으며, 이러한 하나님 의식을 통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모범이 되었습니다.<sup>23</sup>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저서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는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을 지녔지만, 그의 독특함은 그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현존이 끊임없이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곧 그의 신성의 본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sup>24</sup> 그는 그리스도를 "원형적 인간"(Urbild)이자 **"제2의 아담"**으로 묘사하며, 그의 완전한 하나님 의식이 인류 구원의 모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sup>25</sup> 즉,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절대의존감정이 가장 완벽하게 실현된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슐라이어마허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신화적 표현으로 해석했습니다.<sup>26</sup>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로서의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전달하고자 하는 종교적 의미였습니다. 예를 들어, 부활은 그리스도의 하나님 의식이 제자들에게 계승되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되었습니다.<sup>27</sup>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기독교 신앙을 주관적 경험으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은 구원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전통적인 대속적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sup>28</sup> 대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하나님 의식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우리의 하나님 의식을 일깨우는 사건으로 보았습니다.<sup>29</sup> 슐라이어마허에 따르면, 구원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우리의 절대의존감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sup>30</sup> 이러한 구원론은 인간의 노력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은 본질적으로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입니다.<sup>31</sup>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그의 인간성에서 찾으려고 했으며, 그의 완전한 하나님 의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그리스도의 선재성(pre-existence)과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드러냅니다.<sup>32</sup> 결론적으로, 슐라이어마허의 그리스도론은 전통적인 기독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적이고 경험 중심적인 해석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변질시켰습니다.
4.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킨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을 **"종교적 천재들의 감정을 기록한 책"**으로 보았습니다.<sup>33</sup> 그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부정했으며, 성경을 단지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담은 문학 작품으로 간주했습니다.<sup>34</sup> 이러한 관점은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 진리에서 상대적 진리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그의 저서 **"기독교 신앙"**에서 "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 아니며, 교회의 전통과 개인의 종교적 경험도 신앙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주장했습니다.<sup>35</sup> 그는 성경을 해석할 때 역사 비평적 방법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성경 본문을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였습니다.<sup>36</sup>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성경의 초자연적 기원을 무시하고, 성경을 단지 인간의 저작물로 간주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슐라이어마허의 성경관은 그의 신론과 그리스도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역사적 사건이 아닌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했습니다.<sup>37</sup> 예를 들어, 그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을 신화로 간주했으며, 이러한 사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종교적 의미에 집중했습니다.<sup>38</sup> 이러한 해석은 성경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기독교 신앙을 주관적 경험으로 환원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성경의 권위를 개인의 종교적 경험에 종속시켰습니다.<sup>39</sup> 그는 "성경의 어떤 구절이 나에게 종교적 감동을 주지 않는다면, 그 구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sup>40</sup> 이러한 주장은 성경 해석의 객관성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슐라이어마허의 성경관은 성경의 영감, 무오성, 역사성을 부정함으로써,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약화시켰습니다. 그의 신학은 성경을 단지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기록한 책으로 간주하며, 기독교 신앙의 객관적 토대를 허물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성경관은 이후 자유주의 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도 교회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sup>41</sup>
5. 슐라이어마허 신학의 유산과 현대 교회에 미치는 영향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개신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sup>42</sup> 그의 사상은 자유주의 신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역사 비평, 종교 다원주의, 경험 중심 신학 등 현대 신학의 여러 흐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sup>43</sup>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은 교회의 선교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유일성을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sup>44</sup> 이러한 태도는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복음 전도의 열정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sup>45</sup>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개인의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은 슐라이어마허 신학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sup>46</sup> 또한, 종교 다원주의와 혼합주의의 위험성도 슐라이어마허의 신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sup>47</sup>
슐라이어마허는 계몽주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려는 시도에서 **"감정"**을 강조했지만, 이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의 신학은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훼손했으며, 복음의 객관성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굳게 붙잡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담대히 선포하며, 복음의 진리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계승하며, 건전한 신학 위에 교회를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은 현대 교회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으며, 우리는 그의 신학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성경적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혼합주의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도 순수한 복음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슐라이어마허는 계몽주의 시대의 도전에 맞서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려 했지만, 그의 시도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변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는 종교의 본질을 감정으로 정의함으로써 기독교의 객관적 진리를 약화시켰고, 성경의 권위를 훼손했으며,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의 문을 열었고, 오늘날까지도 교회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서 1:7-9)<sup>48</sup>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오직 성경에 기초한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굳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처럼 기독교와 성경은 허구의 산물이 아닌 객관적 진실입니다.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은 성경의 진리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명백히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슐라이어마허의 주장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만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즉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 불못에서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즉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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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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