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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사랑은 폭력보다 강하다": 36년간의 교도소 선교로 증명한 복음의 힘

by gospel79 202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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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석 목사의 어린 시절과 교정 선교 사역의 시작

김영석 목사의 교정 선교 사역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삶의 여정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8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김 목사는 어린 나이에 큰 책임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이러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그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협 은행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된 계기는 뜻밖의 제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 목사의 중학교 은사이자 교회 장로님이었던 분이 한 사형수와의 편지 교류를 제안한 것입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김 목사는 약 6개월 동안 그 사형수와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는 이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그 사형수는 계속 반박하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그 모양이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왜 사랑을 말로만 하느냐' 등의 내용이었죠. 사실 제가 복음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의 반박에 대응하느라 실질적인 복음 내용은 거의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교류는 갑작스럽게 끝이 났습니다. 어느 날 보낸 편지가 '사망'이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 반송되어 온 것입니다. 이 사건은 김 목사에게 큰 충격과 동시에 깊은 성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6개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결국 그가 결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떠났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경험은 김 목사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는 **"어떻게 하면 사형수들을 매일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은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도관으로의 전직과 주변의 반응

김영석 목사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은 교도관이 되기로 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이 결정의 순간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점심을 먹고 난로가에 앉아서 신문을 보는데, 그 신문에 총무처에서 교정직 공무원 응시 공고가 나와 있는 거예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답이구나 싶었죠."

이 공고를 본 김 목사는 즉시 시험에 응시했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주변 사람들의 이해를 얻기 힘들었습니다.

김 목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반대했어요. '거기 가면 뭐 하는 줄 아느냐', '죄를 지은 사람들하고 살아야 된다'며 말렸죠. 당시에는 교정직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직업으로 봤을 때 하직이라고 할 수 있었죠.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은행보다 못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중에 결정을 했고, 그래서 은행에 사표를 내고 교도관이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그의 강한 신념과 사명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김 목사는 이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사실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했다면 교도관으로 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은행에 있어야 했죠. 하지만 저는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교도관이 된 것입니다." 이는 그의 결정이 단순한 직업 선택이 아닌, 신앙에 기반한 소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교도관 생활의 현실과 어려움

김영석 목사가 교도관으로서 마주한 현실은 그가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첫 근무 날의 충격적인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밤중쯤 됐을 때, 저쪽에서 큰 소리로 '교도관!'하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도 제가 관리인이니 가봐야지 하고 조금 용기를 내서 두벅두벅 걸어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수감자가 제 앞에 있는 철창에 머리를 확 받아버리는 거예요. 피가 막 많이 흘렀죠. 자해를 한 겁니다."

이 사건은 김 목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조금 겁이 났습니다."라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런 일이 일상적인 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보안과 사무실에 연락했더니 '원래 다 그런 거야', '처음엔 다 그런 거야'라고 하더라고요."라고 회상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는 예상치 못한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김 목사는 수감자들의 독특한 행동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단추를 달라고 하면 바늘을 주는데, 그 바늘을 여러 방에서 하나씩밖에 안 주니까 청소하는 도우미들을 통해 여러 개를 모아서 그 바늘을 김에 싸서 삼켜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왜 그러냐면, 중장기수 같은 경우는 밖에 나갈 기회가 없거든요. 수술 목적으로 나가면 사회 구경을 할 수 있으니까요."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었습니다. "바늘로 자기 눈을 꿰매는 사람도 있고, 입을 꿰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김 목사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그가 마주한 현실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수감자들과 교도관 사이의 관계도 늘 긴장 상태에 있었습니다. 김 목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수용자와 교도관은 특별 권력 관계에 있어요. 그래서 항상 적대시하죠. 자기 마음에 안 든 사람이 있으면 배설물을 모아놨다가 뿌리기도 하고,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모아놨다 뿌리기도 합니다."

김 목사 자신도 이런 모욕적인 상황을 겪었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는 것은 저도 경험했습니다. 수용자가 관리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정말 모욕적인 일이죠. 하지만 저는 그런 일을 14년 8개월 동안 견뎌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김 목사에게 큰 도전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사명감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음 전파의 어려움과 새로운 결단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김영석 목사는 본래의 목적이었던 복음 전파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이 상황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늘 얘기하고 나타내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신분이 공무원이다 보니 특정 종교를 이렇게 늘 얘기하고 나타낸다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는 틈틈이 복음을 전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곧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투고가 들어오고, 공무원 신분으로 특정 종교를 전할 수 있느냐는 지적을 받았어요. 자꾸 이렇게 투고를 하고, 또 공무원 신분으로 특정 종교를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제가 쉬는 시간에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러한 제약과 압박은 김 목사에게 큰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과 공무원으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이거 한계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김 목사는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그는 "14년 8개월 만에 사직을 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그가 언급한 것처럼, "공무원은 20년이 지나면 연금 혜택이 되죠"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가 사직을 결심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봉사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그의 강한 신념과 사명감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김 목사의 이 결정은 그의 사역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는 그의 사역이 더욱 깊이 있고 폭넓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존파 사형수들과의 만남

김영석 목사의 사역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경험 중 하나는 '지존파' 사형수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지존파는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극악무도한 범죄 조직이었습니다. 김 목사는 이들과의 만남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지존파들은 가장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서 가장 악한 집단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시 대부분 20대 이하였고, 그들 중 몇몇은 갓 성인이 된 청년들이었습니다. 공장 같은 데 다니면서 일을 해도 제대로 고수를 받지 못하고, 이로 인해 가진 자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죠."

김 목사는 지존파의 범죄 행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들이 범죄 대상을 고를 때는 전부 그랜저 이상의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만 물색했어요. 심지어 인육을 먹는 등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죠."

김 목사가 지존파 사형수들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교도관을 사직하고 목사의 신분으로 종교 위원이 되어서였습니다. 그는 약 10번 정도 그들을 찾아갔지만, 초기에는 전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느냐, 귀찮게 하느냐'며 대화를 거부했어요. 안 보고 싶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아예 말을 안 해요. 그냥 쳐다보고 다시 들어가기만 했죠."

그러나 김 목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끈질긴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열 번째쯤 갔을 때, 그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나를 불러내고 괴롭게 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때 제가 제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죠. 어떻게 해서 교도관이 됐고, 지금은 목사가 돼서 이렇게 온다고 설명했더니, 그 사형수가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김 목사의 진정성 있는 접근은 지존파 사형수들의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그들은 김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다른 목사님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보면 너무 거룩해 보이고 너무 이렇게 해서 가까이 갈 수가 없는데, 당신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 관계는 점차 깊어졌고, 김 목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냉혹한 마음, 강팍한 마음이 녹아지는 데는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사랑의 힘을 강조했습니다.

사형수들의 마지막 순간

김영석 목사는 많은 사형수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그는 이 경험들을 매우 상세하고 감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 찬송을 부르며 걸어가는 모습을 봤어요. 멀리서 들리던 찬송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들이 자신이 목이 매달릴 지하로 통과해 사형장으로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었죠."

김 목사는 특히 지존파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형장에 도착하면 엎드려서 성경책을 끼고 감사 기도를 했어요. 이건 가식일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거든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오히려 김 목사를 위로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저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목사님, 울지 마세요. 제가 비로소 오늘 사형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저는 오늘 천국에 입성합니다. 오히려 목사님을 위로해요. 목사님을 위해서 제가 먼저 가서 기도하겠습니다.'"

김 목사는 사형장에서의 마지막 예배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 사형장의 예배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 싸늘한 장소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은혜의 장소였죠. 그들은 거기 모여 있는 분들에게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부서장님 예수 믿으십시오. 교도관들에게 예수 믿으십시오'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특히 한 지존파 사형수의 마지막 말은 김 목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경책을 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어머니가 믿음 생활을 안 합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이걸 꼭 전해 주셔서 저와 같이 예수 믿게 해 주세요.' 그리고 자신의 영치금 70여만원을 '나와 같은 자들을 위해서 써 주십시오'라고 했죠."

이러한 경험들은 김 목사에게 복음의 힘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외국인 수감자들을 위한 사역

김영석 목사의 사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외국인 수감자들을 위한 사역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 목사는 이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가 되면서 외국인 수감자들이 많아졌어요. 현재 전체 수감자의 약 10%가 외국인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선교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사역을 "황금 어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복음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좋은 기회예요. 만약 우리가 오지에 나가서 선교하려고 한다면 물질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복음을 전할 수 있어요."

김 목사는 이 사역의 효과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본국에 돌아가면 전도자로 살 수도 있고, 또 목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들이 있어요."

특히 그는 한 감동적인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사형수가 있었어요. 그는 원래 무슬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수용자 예배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나중에는 신학 공부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3월부터 8월까지 성경 전체를 영어로 필사했어요. 이런 변화를 보면, 앞으로 하나님께서 무슬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데 그를 크게 사용하실 것 같아요."

이러한 사례들은 김 목사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사역을 통해 국제적인 선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분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수감자들의 예술 활동

김영석 목사는 수감자들의 예술 활동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수감자들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그들의 내면 세계와 변화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형수들을 비롯한 수감자들이 그린 그림들이 있어요. 예수님의 성화를 그리기도 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그들이 영적인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죠."

특히 김 목사는 수감자들이 만든 독특한 작품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비누로 만든 작품이 있어요. 이건 사용할 수 있는 비누인데, 수감자들이 세탁 비누를 가지고 만든 겁니다. 놀라운 점은 그들에게는 조각 도구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오징어를 먹고 난 후의 대꼬챙이를 갈아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물을 보면 정말 놀랍도록 정교해요. 십자가, 예수님의 얼굴, 심지어 수염과 눈, 코까지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죠."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한 예술 활동을 넘어서 수감자들의 내면적 변화와 영적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김 목사는 설명합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이 수감자들의 재활과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

김영석 목사는 36년간의 교정 선교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사역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교정 선교 센터"의 설립입니다.

김 목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갇힌 자 선교를 하게 되면 당연히 풀린 자 선교도 우리가 중점을 둬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정 선교 센터가 우선 세워져야 해요.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 센터의 필요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밤에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나와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오늘 밤 하룻밤 여기서 더 자워 주면 안 돼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죠. 이들이 갈 곳이 없으면 노숙 생활을 하거나, 심지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일주일 내로 다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김 목사는 재범률을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종교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말 재범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도소 안의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종교 프로그램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출소 후에도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해요. 교정 선교 센터가 세워지면, 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할 때까지, 취업을 할 때까지, 자립해서 나갈 때까지 쉴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김 목사의 이러한 비전은 단순히 수감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회 재적응과 재범 방지라는 실질적인 목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역이 개인의 구원을 넘어 사회적 책임과 공헌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힘: 김영석 목사 사역의 핵심

김영석 목사의 36년간의 교정 선교 사역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사랑은 폭력보다 강하다"입니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그의 실제 경험과 믿음에서 나온 확신입니다.

김 목사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악한 사람들, 심지어 지존파와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조차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의 사역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실제적인 사랑과 관심을 통해 수감자들의 마음을 열고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김 목사는 이러한 접근 방식의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처음에는 냉담하고 적대적이었던 수감자들도,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은 자신들이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김 목사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수감자들의 인격적 변화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적 성장과 사회 복귀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변화의 시작점입니다. 수감자들이 출소 후 사회에 돌아갔을 때, 그들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 통합과 회복이 아닐까요?"

결론: 사랑과 용서의 힘

김영석 목사의 36년간의 교정 선교 사역은 **"사랑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그의 믿음을 실제로 증명해 왔습니다. 그의 끈질긴 사랑과 헌신은 많은 수감자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심지어 가장 악명 높았던 범죄자들조차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김 목사의 사역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들에게도 변화의 기회와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요? 김 목사의 경험은 이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제시합니다.

그의 사역은 또한 용서의 힘을 보여줍니다. 인터뷰 초반에 언급된 미국 인디애나 주의 사례처럼, 김 목사의 사역도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화해와 회복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를 시사합니다.

김영석 목사의 삶은 복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의 사역은 또한 사회 정의와 회복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단순히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인격적 변화와 사회 복귀를 돕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의 실현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앞으로도 김영석 목사의 사역이 계속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변화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의 헌신적인 사역을 통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포용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의 사역은 우리 모두에게 개인적인 도전을 제시합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사랑과 용서를 실천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김영석 목사의 삶과 사역이 우리 모두에게 영감과 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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