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의 유년 시절: 신앙의 씨앗
외할머니를 통해 처음 접한 하나님, 그리고 신앙의 싹
김혜영 님의 이야기는 그녀의 어린 시절, 북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녀는 외할머니를 통해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손녀를 무릎에 눕히고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불러주시던 외할머니의 따스한 음성은, 훗날 그녀의 삶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신앙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 김혜영 님은 하나님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어느 나라 분이신지” 궁금해하며 외할머니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종교를 금기시하는 북한 사회에서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순수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종교를 믿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기에, 외할머니는 신앙을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믿음을 지켜나가셨습니다. 혹여나 발각될까 두려워 이불 속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거나, 집안 구석에서 조용히 성경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이처럼 은밀하게 전해진 신앙의 가르침은, 어린 김혜영 님에게는 마치 비밀스러운 자장가와도 같았습니다. 비록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외할머니의 신앙은 그녀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녀가 겪게 될 수많은 시련 속에서, 이때의 기억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그녀를 인도하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가수로서의 재능 발견, 그리고 좌절: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섭리
김혜영 님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노래 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여섯 살 때, 김일성의 생일 잔치에서 독창 가수로 뽑힐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는 어린아이에게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딸의 선발을 기원했고, 그 기도의 힘이었을까요? 김혜영 님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종 2인까지 선발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단 한 명, 최종 선발만을 남겨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잔혹한 현실의 벽은 어린 김혜영 님 앞에 거대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북한 사회는 출신 성분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마저도 무력하게 만들 만큼 강력한 족쇄였습니다. 남한에 간첩을 보내는 '대남 연락소' 직원의 자녀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 김혜영 님은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남한 출신이고 일본에 친척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좌절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일은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김혜영 님은 당시의 탈락이 없었다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합니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모든 것은 더 큰 그림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김혜영 님이 북한에서 겪은 좌절을 통해, 훗날 그녀와 가족들을 한국으로 인도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때로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시련과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분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됩니다.
목숨을 건 탈북: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기적
평양연극영화대학 시절, 그리고 갑작스러운 탈북 여정
김혜영 님은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배우의 꿈을 키우며, 연기 공부에 매진하던 어느 날, 방학을 맞아 고향인 함경북도 청진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은 "친척집에 놀러 가자"라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고, 온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하는 여행에 김혜영 님은 마냥 설레고 기뻤습니다. 당시 김혜영 님은 대학생이었지만, 이것이 단순한 여행이 아닌, 목숨을 건 탈출의 시작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 가족이 함께 감행하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건 탈북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어린 자녀들이 혹시라도 고문을 당해 탈북 계획을 발설할까 봐,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숨기셨습니다. 밤늦게 집을 나선 가족은 기차를 타고 이틀 동안 달려 양강도 혜산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는 마치 이별을 예감한 듯, 기차역까지 따라오며 슬프게 짖었고, 김혜영 님은 그제서야 불길한 예감을 느꼈습니다. 가족은 집안의 모든 가전제품을 그대로 둔 채, 말 그대로 몸만 빠져나온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정황들은 김혜영 님에게 혼란과 불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압록강을 건너다: 엇갈린 만남,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만남
혜산에 도착한 가족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있는 고모를 만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경비대의 삼엄한 경계와 추격은 가족의 앞날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김혜영 님과 두 여동생은 먼저 강을 건너 고모를 만나라는 부모님의 지시에 따라,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강을 건넜습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서 고모를 만나지 못했고, 세 자매는 낯선 땅에서 불안에 떨며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나타나 "너희가 북에서 온 아이들이 아니냐"라고 물으며, "여기 있으면 잡혀가니 우리 집에 들어가 있거라"라고 말하며 세 자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손주 아기를 돌보게 하고, 세 자매에게는 잠시 집에 머물라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갔습니다. 낯선 이의 호의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던 김혜영 님은 할아버지의 행동에서 왠지 모를 수상함을 느꼈습니다. 잠시 후, 할머니마저 "손주 좀 봐줘. 나 잠깐 나갔다 올게"라며 집을 나섰고, 김혜영 님은 불안한 마음에 할머니를 몰래 뒤따라 나갔습니다.
탈출, 그리고 고모와의 극적인 상봉: 하나님의 도우심
김혜영 님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습니다. 할머니는 대문 밖에서 문을 잠그고 떠났고, 이는 곧 세 자매가 위험에 처했음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탈북민을 신고하면 돈을 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경비대에 신고하러 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김혜영 님은 기지를 발휘하여, 장독대를 밟고 올라가 동생들을 먼저 담 밖으로 대피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온 힘을 다해 담을 뛰어넘어, 할머니와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저 멀리서 한 여인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사진으로만 보았던 고모였습니다. 고모 역시 사진으로만 보았던 조카들을 알아보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극적인 상봉을 이루었습니다. 고모는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어. 빨리 아빠가 마련해 둔 중국 은신처로 가야 해"라며, 세 자매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부모님도 무사히 강을 건너 가족은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의 은신 생활, 그리고 납치의 위기
중국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가족은 북한 보위부의 추격을 피해, 아빠의 친구가 마련해 준 은신처에서 7개월 동안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창문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밧줄을 내려놓았고,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며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마치 감옥과도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혜영 님은 일주일에 한 번 허락된 장을 보러 나갔다가 끔찍한 일을 겪게 됩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 씌운 자루에 갇혀 납치를 당한 것입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인신매매, 장기 밀매 등이 성행했기에, 김혜영 님은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납치범들이 차 안에서 나누는 중국말 대화를 어렴풋이 알아들은 김혜영 님은, 자신이 끔찍한 운명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 지금 이대로 가서 그냥 죽는 건가요? 나 죽으면 안 돼요. 하나님 아버지, 나 지금 우리 엄마 아빠 내 동생들이 나 기다리고 있다고... 아버지, 하나님이 지금 나 안 살려 주시면 나 지금 여기서 엄마 아빠 못 만나게 되고... 근데 지금 어디 가는지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하나님 아버지 제발 제 옆에서 어디 가지 마시고 좀 붙어 있어 주세요. 하나님, 제발요. 나 지금 죽고 싶지 않아요..."
납치범을 기절시키고 극적 탈출: 하나님의 기적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낯선 시골집이었습니다. 납치범들은 김혜영 님을 묶어 놓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났습니다. 김혜영 님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필사적으로 밧줄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던 중, 부엌에서 작은 부삽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너 거기서 빨리 나오지 않으면 죽어. 너 빨리 나와"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김혜영 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직감했습니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잠시 후, 납치범 중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김혜영 님은 온 힘을 다해 그를 향해 부삽을 휘둘렀습니다. 납치범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김혜영 님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따라 정신없이 달리던 김혜영 님은, 어느 집 앞에 쓰러져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그 집에는 연로하신 할아버지 세 분이 마작을 두고 계셨고, 김혜영 님의 사연을 들은 할아버지들은 그녀를 안심시키고, 아빠 친구분께 연락을 취해 주었습니다.
베트남에서의 고난, 그리고 한국으로의 귀환: 하나님의 인도하심
베트남으로의 여정, 그리고 동생의 사경
중국에서 더 이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가족은, 베트남을 거쳐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베트남 주재 한국 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가족은 영사관 직원의 집에서 머물며,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베트남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에어컨 바람을 너무 오래 쐰 둘째 동생이 냉방병에 걸려, 몸이 굳어지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딸, 소중한 딸 살려주세요. 하나님, 여기서 한국까지 못 가고 여기서 죽으면 안 돼요. 하나님 아버지..."
기적적인 회복, 그리고 깊어진 신앙
그때,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이 지긋한 여자 의사가 나타나, 동생의 굳은 몸을 30분 넘게 마사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동생은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김혜영 님은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동생의 기적적인 회복은, 가족들에게 깊은 신앙의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한국으로의 귀환, 그리고 새로운 시작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김혜영 님 가족은 마침내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김혜영 님은 귀순 배우 1호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 아픔 속에서 더욱 깊어진 신앙
첫 번째 결혼: 성형외과 의사와의 만남, 그리고 이별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가던 김혜영 님은 20대 중반, 연극 '열아홉 순정' 공연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온 성형외과 의사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김혜영 님의 열렬한 팬이었고, 공연이 끝난 후 그녀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적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잘생긴 외모에 유머 감각까지 겸비한, 누가 봐도 매력적인 남자였습니다.
북한에서는 이성 간에 손만 잡아도 결혼을 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었기에, 이성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김혜영 님은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김혜영 님이 공연하는 열흘 동안 매일같이 공연장을 찾았고, 심지어 배우 대기실에 링거를 꽂고 누워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감동한 김혜영 님은, 그와交往를 시작했고, 2년 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후, 김혜영 님은 시댁을 따라 천주교로 개종했고, '미카엘라'라는 세례명도 받았습니다. 남편은 신앙심이 깊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김혜영 님은 그런 그의 모습에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이상과 달랐습니다. 김혜영 님은 배우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고, 남편은 춘천에서 병원을 운영했기에, 두 사람은 주말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점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서로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혜영 님은 공연을 마치고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들고, 남편에게 깜짝 선물을 주기 위해 춘천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남편의 외도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큰 충격을 받은 김혜영 님은 이혼을 결심했고, 3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두 번째 결혼: 연극배우와의 만남,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이별
첫 번째 이혼의 아픔을 겪은 김혜영 님은, 연극 '홍도야 울지 마라'에 출연하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상대역이었던 연극배우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김혜영 님의 북한 사투리를 지적하며 장난스럽게 다가왔고, 김혜영 님은 그런 그의 모습에 호감을 느꼈습니다. 두 사람은 연극 연습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연인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그 역시 이혼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었고, 김혜영 님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서로의 고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그에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다시 한번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결혼 생활 역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김혜영 님은 "남자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술, 도박, 여자 이 세 부류의 남자를 조심하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 세 부류의 사람을 다 만난 것 같다"라고 말하며, 두 번째 이혼의 아픔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세 번째 결혼: 사업가와의 만남, 그리고 계속되는 시련
두 번의 이혼 후, 김혜영 님은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를 또 다른 만남으로 이끌었습니다. MC를 맡았던 낚시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이왕표 선수의 소개로 한 사업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김혜영 님의 아픔을 이해하고, 아들까지 친자식처럼 사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들에게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김혜영 님의 소망은, 그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열게 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결혼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남편은 김혜영 님에게 일을 하지 말고, 자신에게만 집중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지나친 간섭과 의심은, 김혜영 님을 점점 숨 막히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남편의 구속으로 인해 또 한 번의 갈등을 겪게 되었고, 김혜영 님은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이혼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 측에서 소송을 제기했고,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법정 다툼을 벌여야 했습니다. 김혜영 님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조정 재판 과정에서 판사의 조언을 통해,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이혼을 최종적으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 그리고 새로운 시작: 희망의 메시지
시련 속에서 더욱 깊어진 신앙: 하나님의 음성을 듣다
세 번의 이혼은 김혜영 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녀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이혼 후, 김혜영 님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자해를 시도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그녀를 끌어안고 오열했습니다. 어머니는 밤새도록 딸을 위해 기도했고, 김혜영 님은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를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이혼 후, 김혜영 님은 수면제를 모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습니다. 유서를 쓰고 약을 입에 털어 넣으려는 순간, 아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안겼습니다. 김혜영 님은 아들의 품에서, "네 아들 희성이는 어떡할 거니? 그리고 너희 부모님은 그렇게 너를 위해 기도하는데, 네가 죽으면 어떻게 사시겠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 새로운 삶의 시작
김혜영 님은 이제 하나님과 결혼하겠다는 마음으로, 침대 머리맡에 예수님의 초상화를 두고 기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세상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아들의 격려에 힘입어, 8년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노래 '삐딱선'을 발표하며 가수로서의 활동도 재개했고, 드라마와 뮤지컬에도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김혜영 님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희망의 메시지: 앞으로의 소망
김혜영 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녀는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김혜영 님은 앞으로도 하나님 안에서 더욱 행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하나님과의 동행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내가 살아온 길에서, 이 길이 세상에 다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을 가리고 있던 눈가리개를 치우는 순간,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에게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겠습니다."
김혜영 님의 고백처럼, 우리도 세상의 헛된 것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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