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와 그의 통치 기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는 서기 81년부터 96년까지 15년 간 로마 제국을 통치했습니다.[^1] 그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둘째 아들로, 형인 티투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도미티아누스는 통치 초기에는 비교적 관대한 정책을 펼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독재적이고 폭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2]
특히 그는 자신을 '주'(Dominus)로 칭하며 신격화하였고, 자신에 대한 숭배를 강요하였습니다.[^3] 이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던 기독교와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경배할 수 없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탄압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자신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자, 서기 81년경부터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했습니다.[^4] 그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처형하는 등의 가혹한 박해를 자행했습니다.
1세기 후반 기독교 역사의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으로 유배된 사건입니다. 교부 이레니우스는 그의 저서 『이단 반박』에서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치세 말엽에 밧모 섬으로 유배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5]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다는 이유로" 밧모 섬에 유배되어 계시를 받았습니다.(계 1:9)
뿐만 아니라 1세기 후반에 활동한 교부 클레멘트는 『클레멘트 1서』에서 기독교인들이 도미티아누스 통치 시기에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6]
기독교 박해의 배경과 원인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에는 여러 가지 배경과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째, 로마 황제숭배 사상과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는 전통적으로 황제를 신격화하여 섬기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우상숭배를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 따라서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로마 제국과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과 실라가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황제의 명령을 거스르게 하고,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고 말한다"는 이유로 고발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행 17:7) 이처럼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은 황제숭배 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기독교의 급속한 확산에 대한 로마 제국의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1세기 후반 당시 기독교는 유대 지방을 넘어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 등지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기독교는 가장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종교였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약진은 전통적인 로마 제국의 종교와 문화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한 것입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에 따르면, 도미티아누스는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을 처벌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은 당시 아직 기독교와 유대교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던 로마인들의 시각에서 본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7]
셋째, 도미티아누스 황제 개인의 성격과 통치 스타일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습니다. 로마 제국사 연구의 권위자인 브라이언 존스(Brian W. Jones)는 도미티아누스가 광적인 독재자로서 자신에게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기독교인들 역시 그 대상이 되었다고 분석합니다.[^8] 훗날 그가 자신의 측근들에 의해 암살된 데에는 폭압적 통치에 대한 반발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기독교 박해의 실상과 영향
1세기 후반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자행된 기독교 박해는 매우 잔혹하고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클레멘트 1서』는 당시의 참혹한 박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질투와 시기로 인하여 가장 의로운 자들과 가장 충실한 기둥들이 박해를 받아 죽기까지 싸웠습니다. 여자들은 네로의 잔학한 학대 끝에 다나이데스와 디르케의 고난을 당하고서야 비로소 신앙의 확고한 길에 들어섰으며, 약한 육신으로써 숭고한 상을 얻었습니다."[^9]
여기서 '다나이데스의 고난'과 '디르케의 고난'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당한 끔찍한 고문 방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기독교 변증가 저스틴은 『제2변증』에서 로마 당국이 기독교인들을 체포하여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했으며, 거부할 경우 처형했다고 증언합니다.[^10]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순교를 통해 신앙을 증거했으며, 이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고, 기독교는 더욱 견고해져 갔습니다. 2세기 초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는 기독교의 씨앗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11]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받은 『요한계시록』은 당시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심판 때 악한 세력은 심판을 받고, 신실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약속합니다.(계 20-22장) 이것은 고난 중에 있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자, 암흑 속에 비친 빛줄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의 폭정과 암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폭압적인 통치는 로마 제국 내의 여러 세력으로부터 반발을 샀습니다. 특히 원로원 의원들과 황실의 측근들은 그를 견제하고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에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을 제거할 음모가 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서기 96년 9월 18일, 도미티아누스는 자신의 측근들로부터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도미티아누스의 15년간에 걸친 폭정은 막을 내렸습니다.[^12] 도미티아누스의 뒤를 이은 네르바 황제는 이전의 폭정을 청산하고 관용 정책을 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에 대한 공식적인 박해도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로마 제국의 정책에 따라 박해와 관용을 반복해서 겪게 됩니다. 또한 기독교는 내부적인 이단들과 싸우면서 정통 교리를 확립해 나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역경 속에서 더욱 성장해 갔고,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국교로 공인받기에 이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통치 시기에 자행된 기독교 박해는 초대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도미티아누스의 박해는 황제숭배 사상, 기독교의 급성장에 대한 위기감, 폭군의 광기가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기독교인들은 순교의 피를 흘리며 신앙을 지켜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환난 중에 있는 교회를 붙들어 주었고, 마지막 승리에 대한 소망을 주었습니다. 1세기 기독교 박해의 현장에서 신실한 순교자들의 증거는 복음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게 했습니다.
따라서 1세기 말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당시에 자행된 잔혹한 기독교 박해는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며, 이는 로마 시대의 교회사 문헌과 초대교회 교부들의 증언, 요한계시록과 같은 성경의 증거를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됩니다.
이처럼 기독교에 대한 1세기 로마의 박해는 성경과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엄연한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신뢰할 수 있으며, 기독교 신앙은 공허한 헛된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 속에서 고난을 감내하며 승리해 온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속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진리를 굽히지 않고 증거했던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신앙을 되새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환난과 핍박을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주님을 믿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영생을 얻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요 3:16)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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