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갈라디아서를 보고 있습니다. 이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배경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들이 개척된 것이죠. 바울이 당시 그 갈라디아 지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어떻게 영접했냐면, 갈라디아서 4장 14절, 1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을 그 갈라디아 지역의 사람들이 천사처럼 영접했다고 합니다.
굉장히 이렇게 천사처럼 영접했다는 것은 하늘의 존재와 같이 영접하면서, 정말 거기 보면 눈이라도 빼어 줄 것처럼 그들이 사도 바울을 영접했고, 사도 바울을 맞이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러니까 눈이라도 빼어 줄 만큼, 또 천사처럼 사도 바울을 영접하면서 사도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굉장히 잘 받아들이는 곳이었어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을 굉장히 신뢰하면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이렇게 잘 받아들였던 그런 갈라디아 지역, 그래서 교회가 개척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사도 바울은 그 지역을 떠났는데, 바로 그 갈라디아 지역에 얼마 가지 못해서 거짓 교사들이 출연하게 된 겁니다. 그 거짓 교사들이 말한 복음이 뭐냐면, “바울이 전한 복음은 반쪽짜리 복음이다. 너희가 그 바울이 전해준 복음으로는 온전해지지 못한다. 의롭게 되지 못한다.”라고 거짓 교사들이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니까 원래는 유대교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완전한 유대인들이 아니라,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입니다. 바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이들의 주장이 뭐냐면, 쉽게 말해서 “예수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예수 믿는 것 플러스, 거기다가 너희들이 토라, 율법을 지켜야 되는데, 그 대표적인 율법 중 지켜야 될 것이 뭐냐? 바로 할례다. 할례.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고, 거기다가 플러스 할례를 받아야 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절과 달과 해와, 안식일도 지키고, 절기도 지키고, 또 음식 규정도 지키고, 이러한 율법을 지켜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고, 거기에 유대인처럼 율법을 지켜야, 특히 할례를 받고 절기 등을 지켜야 의롭다, 구원받는다.” 이렇게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그 가르침에 미혹이 되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도 바울이 굉장히 답답한 겁니다. 이게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그런데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7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즉 거짓 교사들이 전한 그 복음, “예수 믿고 플러스 할례를 받아야 되고, 토라를 지켜야 된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의 가르침은 복음도 아니다. 다른 복음일 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은 없고, 오히려 복음을 변절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고 1장 8절에 가서는 뭐라고까지 얘기하냐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 그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래 버립니다. 굉장히 세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굉장히 사실 사도 바울이 머리 끝까지 이렇게 뚜껑이 열린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해서 교회가 개척되고, 믿음 생활 잘 하고 있었는데, 그 거짓 교사들이 전해 준 그 가르침을, 험한 성도들이 그렇게 빨리 받아들이고, 미혹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사실 열이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1장 12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받은 복음이다. 이게 진짜 복음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넘어오면서 이렇게 일침을 날립니다. 우리 갈라디아서 2장 16절, 어제 읽었는데, 우리 한번 읽어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렇게 사도 바울이 1장, 2장을 통해서 이제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사도 바울이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사실 이 복음을 다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어찌 이리 미련하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이렇게 너희들이 빠져 들었느냐? 왜 그 가르침을 받아 들였느냐?” 하면서 사도 바울이 이 답답한 심정으로 토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장으로 넘어옵니다. 그러면 3장 1절에 이제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3장 1절 읽어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예수 그리스도 믿고, 플러스 거기다가 할례 받고, 절기 지키고, 유대인이 먹는 그런 음식법, 그런 정결법, 그런 거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굉장히 사도 바울이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이 어리석도다. 어리석도다. 내가 너희들에게 뭘 전했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지 않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인데, 왜 거기다가 율법을 더 하려고 하는 것이냐?”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호통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는 것,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 받는 것, 절대로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고, 의롭다 되는 것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입고, 또 구원받는 것, 우리가 뭐 십일조를 잘해서, 금식 기도를 많이 해서, 뭐 구제를 많이 해서, 그러나 어떤 종교적 행위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흔들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흔들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다 이루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내가 다 이루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뭘 우리가 또 이루려고 합니까? 여러분, 우리의 선함과 행함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행하신 그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우리의 어떤 선행과 행함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것이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여러분 죄가 됩니다. 거듭나지 못한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것이 죄입니다. 거듭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 앞에 막 종교적인 열심을 내고, 이것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이쁨 받고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이 죄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불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에 열심이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분, 유대교를 얼마나 열심히 믿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까? 유대교로 생각하면 열심히 특심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4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 한번 읽어볼까요? 갈라디아서 1장 14절.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사도 바울이 열심히 유대교를 믿은 것입니다. 그냥 보통 믿은 게 아닙니다. 율법 지키라고 엄청 열심히 했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라고 했잖아요.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엄청난 사람들입니다. 맨날 금식하고, 십일조 하고, 엄청나게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살았던, 종교 행위로 따지면 엄청난 열심이었습니다. 보통 열심이 아닙니다. 열심히 특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향하면 할수록 하나님 앞에서 불의했구나, 그가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했고, 그것이 오히려 불의가 되고, 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3장 10절 말씀, 우리 보면, 3장 10절 말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멘. 그러니까 율법으로 구원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려면,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어떻게 보면 613가지의 그 율법, 거기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받으려고 한다면, 우리가 평생 살아갈 때 1분 1초도 그 율법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준으로 보면 1분 1초도 그 율법을 벗어나면 안 되고, 율법대로 항상 그 율법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고,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능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율법의 저주 아래 다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보면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모든 사람을 다 죄 아래 가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죄인으로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보면 다 죄인입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기 위해서 율법의 저주 안으로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말씀, 오늘 본문 말씀, 3장 13절 말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멘.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고, 그 나무 십자가에서 죽어 버리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자비, 사랑을 믿음으로써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 것이지, 절대로 우리의 어떤 행함과 선행, 종교적인 행위, 율법을 지켜서 우리가 구원받게 되는 것이 아닌 줄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자꾸만 떨어지면,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그런데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이 자꾸만 떨어지면, 그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안 보이고, 자꾸만 우리 자신을 봅니다. 나의 행위, 나의 어떤 행함, 나의 종교적인 어떤 업적, 나의 어떤 직분, 그런 것들로 우리의 시선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육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은 바로 율법의 저주 아래 갇힌 저와 여러분들을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을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의롭다 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줄로 믿습니다. 그 예수님만 밝히 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만 밝히 보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볼 수 있는, 오늘 이 새벽에 들어서 기도할 때 다른 것 기도하지 마시고, “주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여 주시옵소서. 바로 나 때문에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셨구나.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구나. 나를 위하여 죽으셨구나. 정말 이 쓰레기통과 같은 나, 생각하는 것이 죄고, 말하는 것이 죄고, 뭐 움직이는 것이 죄고, 하면 할수록 죄뿐인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구나. 주님께서 나를 속량해 주셨구나.” 이것을 더욱더 깊이, 깊이 깨닫고, 그 은혜에 겨워서 여러분 행함이 나오는 것이지, 선, 율법 준수, 이와 같은 인위적인 것이 먼저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종교적 열심을 행하면 행할수록 하나님 앞에 불의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기도할 때, “주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보여 주시옵소서. 왜 죽으셨는가? 왜 죽으셨는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사랑하셔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성령을 받은 것도 믿음으로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이어갑니다. 2절, 3절 말씀을 보면, 3장 2절, 3장 읽어봅니다.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구원받은 것,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인데, 뿐만 아니라 한번 생각해 보라. “너희가 성령 받은 것, 내가 그때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느냐? 병든 자가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약한 자들이 강해지고, 눌린 자들이 자유케 되는 이러한 역사들이 율법을 행함으로 나타난 거냐? 그게 아니지 않냐?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갔을 때에 성령이 임했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느냐?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믿음으로.” 그렇게 사도 바울이 주장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 받는 것도, 구원받는 것도,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도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실 어떤 의미냐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 갈라디아서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합. 내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26절, 27절에 보면 바로 이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한번 읽어볼까요? 갈라디아서 3장 26절, 27절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아멘. 할렐루야.
그리스도와 연합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뭐냐면, 사실 예수님과 연합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냥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믿음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진짜 믿으면, 행위가 따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었는데 가만히 있는다.”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는데, 예수님의 옷을 입고 나서 어떻게 우리가 죄짓고, 악행을 행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게 오히려 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입어, 예수로 옷 입었다는 것, 이것은 뭐냐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이제 보실 때에 그냥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본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들을 그냥 보는 게 아니고,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를 통과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저와 여러분들을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것이, 그러니까 우리를 의롭다고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여러분, 옷 입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로 날마다 옷 입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이제는, “따라합시다. 예수님의 의가 내 의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사는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 다 사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이제는 옷 입은 사람들이니, 그 예수님의 옷을 입은 사람답게 성령의 능력으로, 하루하루 성령님 의지하면서, 성령 충만, 어떻게 임한다고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온전히 믿음으로, 성령 충만 받아 예수로 옷 입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복을 막 흘려 보내면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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