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게 됨, 칭의
갈라디아서 4장에는 바울 사도의 아주 중요한 신학적 명제들이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의롭게 된다는 칭의는 그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의롭게 여겨 준다는 것은, 원래 어떤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어떤 상태에 있었기에, 그들을 의롭게 한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것은 불의한 상태가 아니라, 죄 된 상태에 있는 죄인들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함을 통하여 의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의롭게 되었다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칭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의 불법함에서, 죄로 말미암아 받을 하나님의 쏟아지는 진노 가운데, 우리를 그 진노에서 건져 내어 의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롭게 되었다면,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죄인에서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2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3장 10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을 행함으로, 내가 저주 아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말씀을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까? 저주 아래 있는 나, 율법의 말씀을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저주받은 자구나, 나는 죄인이 맞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사도가 이야기할 때, 그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주어서 “너는 저주받은 자야. 죄인이야. 그래서 내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 율법의 행위를 더 지켜야만, 행위를 따라야만 너는 의롭게 될 수 있다.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유대주의자들이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니, 바울 사도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었겠습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혀 있느니라.”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율법 아래 매여 있어서 저주받은 자, 저주 아래 있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오니까, 이제는 어떻게 됩니까? 믿음을 통해 저주받은 인생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된다고 할 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상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의롭게 됩니까? 믿음을 통해. 바울이 왜 복음을 전합니까? 복음을 통해서만 믿음이 오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곧 어디로 연결됩니까? 여러분 다 아시겠지만,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복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으로부터 신약, 그리고 앞으로 올 모든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행하시는 일들은 다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자들을? 율법 아래에 지금 갇혀 있는 자들, 율법을 통해서 죄인 된 그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 복음을 통해 우리를 믿음으로써 구원해 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 그게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께서 하신 일, 복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가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그가 부활하심, 이게 복음인데, 바울 사도가 이 복음을 전함으로 율법 아래 모든 갇혀 있는 자들, 믿음이 올 때까지 갇혀 있는 자들을 어떻게 합니까? 구원하기 위해서. 바울이 구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금 무엇 하고 있습니까?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무엇 하라고? 너는 이방의 사도로, 지금 복음 전하는 자로서, 바울을 불러 그 바울이 행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복음이 아니라 바른 복음, 참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본인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으로서, 그 모든 율법의 행위대로 살았던 그 바울을,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만나, 예수 그리스도가 만나, “네가 이제 살아내야 되는 의로운 자로서, 구원받은 자로서의 삶은 바로 너는 이방인의 사도다.”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계시가 그에게 임하자, 이제 바울 사도가 어떻게 가는 것입니까? 수많은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동일하게 직접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를 만나, 믿게 하여, 바울이 지금 어떻게 합니까?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는데, 의롭게 되어 그가 구원받은 자로서의 하나님을 위한 삶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이때 구원에 이를 때, 복음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하면,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믿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함께 따라올 때, 가장 중요한, 종교 개혁의 중요한 슬로건 중 하나, 오직 믿음, 또 하나는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전하는 그 칭의론 속에서,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어떤 일을 더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되어지는 게 아니고, 오직 은혜로.
그러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 그리스도는, 바울의 율법으로 말미암는 열심으로, 바울을 하나님께서 만나 주신 것입니까? 믿게 한 것입니까? 오직 은혜로, 은혜로. 아멘. 우리 모든 삶 가운데 행해지는 믿음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로 주시지 않는 모든 것은 믿음으로 연결될 수 없습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 하고 있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하나님의 모든 일들입니다. 그 은혜 받았다는 것은, 기분이 좋다, 무언가 뻥 뚫렸다, 굉장히 무언가 갇혀 있었고 막 답답했는데 뻥 뚫렸다, 아니고요. 은혜 받았다는 것은, 지금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 나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지가 더 지금 확증되고, 확신이 되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해서 했던 모든 것이, 은혜를 받으니 “아, 착각이었구나. 내 생각이었구나. 내 행위적인 것뿐이었구나.” 이게 깨달아지는 것, 그게 은혜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게 내 만족을 위해서 잘되고 있는 것이 여러분 은혜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삶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었다는 것은, 지금 무엇이 계속 내 삶의 흔적으로 나타나야 됩니까? 예, 십자가의 흔적으로 계속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아멘. 가장 복음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죽음으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내게 믿게 하셨는데, 은혜로 믿게 하셨는데, 지금 내 삶에 십자가의 흔적으로 말미암아 계속된 하나님의, 개입된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걸 어떻게 합니까? 아까 말씀드렸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받아 은혜로, 하나님의 구원이 내 삶을 통해 지금 이어져 가고 있다. 이게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하는 바울 사도의 복음이었고, 이것이 뒤틀려져 다른 복음을 전한 유대주의자들로 말미암아, 지금 갈라디아 교회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믿음이 파선된 자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갈라디아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때가 차매
오늘 4장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 3장에 이어진 말씀 속에서, 유업을 이을 자라고 했을 때, 유업을 이을 자는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 종과 다름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주인으로서, 한 주인의 아들로서 그가 모든 유업을 받을 자이지만, 어릴 때는 종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법에 의하면 14세, 14세 때까지는 어린아이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렸을 동안이 아니고, 그가 진정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자로 되는 것은, 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2절 보니까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돕는 자로서,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서, 아버지가 그 모든 유업을 이을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를 붙입니다. 그게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았다고 해서 이 자가 지금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업을 이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견인과 청지기를 붙여서, 어른이, 장성할 때까지 종에 불과한데,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율법을 행해야만 구원에 이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3절 보니까,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우리도 어렸을 때 어떠했느냐?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 아래의 모든 삶을 이 세상 초등 학문과, 종 된 상태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가 초등학문을 배우고 있잖아요. 어린이 되어서 보면, 초등학교 때 배웠던 그것이 여러분 어떻습니까? 진짜 초등학교 때는 어렵잖아요. 저희 큰 아들이 고 1이고, 막내딸이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딸이 수학이 참 어렵다는 걸 보면은, 큰 아들, 고 1인 아들은 지금 고 1 것도 잘 못 하면서 “야, 그게 뭐가 어렵냐?” 그럽니다. 자신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 1, 고 2, 100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의 수학 문제를 보고 “야, 그게 뭐가 어렵냐?” 그럽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자유자 되어, 의로운 자가 되어서 볼 때, 내가 처음 예수를 믿는 그 상태를 한번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내가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부끄럽지 않습니까? 율법을 받은 것이 모든 것을 소유한 게 아닙니다. 율법을 행하고 있는 것이, 내가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 된 모든 유업을 받고 있다고 여겨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 내가 교회 생활 지금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그 생활 면만 봐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하고 있지. 이렇게 하고 있지.” 초등 학문에 지나지 않는 율법의 행위가 되고 있다고 하면, 아들이 아닌, 아직까지 종과 같은 자로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가 아님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러분, 이 보낸다는 것, 항상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보낸다는 것, 보낸다는 것의 목적은 항상 무엇이냐 하면 구원입니다. 보내사, 아들을 왜 보냅니까? 율법으로는 거듭날 수 없기 때문에,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아들을 보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때가 찰 때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때가 차서, 종 되었던, 율법으로, 아직 초등 학문에 있었던 그들을, 때가 차서 우리를 보내어, 하나님께서 율법 아래에서 나게 하셔서, 어떻게 하시겠느냐? 우리를 이제는 아들의 그 명분, 아들의 신분까지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입니다.
그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믿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 어떤 방법을 쓸까요? 때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하면, 충분하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보냅니다. 어떤 사건을 보낼 수 있고요. 사람을 보낼 수 있고요. 그것은 다 우리를 어떻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잘되기 위해서, 어떤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술술 잘 풀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신다? 아니고, 어떤 사건을 보내고, 사람을 보내고 하시는 일은 다 구원 얻게 하기 위해, 왜? 때가 찼기 때문에. 그래서 초등 학문에 있었던, 아직 유아, 종과 다름없었던 우리를, 아들의 그 명분으로 얻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늘의 그 풍성한, 하늘의 영광됨과 그 은혜를 우리 가운데 어떻게 하시기 위해서? 주시기 위해서, 유업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가운데 보내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영을 받아
6절 보십시오. “너희가 아들이므로,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를 누가 부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보낸 자들. 그러니까 우리가 의롭게 된, 그러니까 복음을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자들, 그들이 이제 아들인데, 그 아들 된 자들에게는 내가 아들, 스스로가 “나는 아들이다.” 아니고,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함께 어떻게 해요? 아들의 영인 성령을 보내사, 우리 가운데 어떻게 해요?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일이 일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또 보내신다는 것은 어떤 기적의 은사를 네가 베풀어라, 어떤 병 고침의 은사를 네가 행하라는 것으로서 보내시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위해서. 나의 구원과, 지금 아프고 연약한 자들을, 내가 너에게 준 그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어떻게 하라고? 그들도 동일하게 믿게 하기 위해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성령을 또한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 주셨는데, 이 성령이 어떤 나를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서, “내가 이만큼 기적의 은혜를, 병 고침의 은혜를 베풀고 있다.”라는 것으로서 나아가게 되면, 무엇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율법의 행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초등 학문과 같은 것입니다. 종과 같은, 다름없는 것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 연결되어져야 됩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서, 그 모든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 때로는 지금 구원 얻지 못한, 의롭게 되지 못한 자를, 성령 받은 나를 통해 그들에게 보내어, 하나님이 무엇 하시는 것입니까?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죄 된 상태에 놓여졌던 이방인을 향하여,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믿게 하여 성령을 주심으로,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왜 전하게 하십니까?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그래서 그들이 지금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제자 반석 교회가 탄생되어진 것입니다.
종이 아닌 아들
그래서 7절, 이제 종이 아니고 아들입니다. 유업을 받을 자가 됐습니다. 됐는데, 왜 다른 길로 너희가 가고 있느냐? 왜 종 노릇하였던 율법 아래 있었던 그 자리로 왜 너희가 지금 다시 가고 있느냐고 이야기를 바울 사도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나오는 말씀들을 보면, 너희가 그랬을 때, 바울이 전하는 그 상황 가운데, 13절, 14절 한번 보십시오. 13절, 14절 보면, 육체적으로 굉장히 약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었습니다.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굉장히 고통 가운데 있었던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육체의 약함은 분명합니다. 14절에 보면, “내 육체에 있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와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할 때, 담임 목사님도 말씀하셨지만, 담임 목사님 청빙하는 기준 속에서 “잘생겼느냐?” 따지는 교회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수많은 스펙이 담임 목사의 조건이 되는 현실입니다. 예, 배우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어떤 것이 있느냐? 복음 전하는 자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있어서, 좀 말끔하고, 깨끗하고, 멋있고, 요즘 스타일과 같이. 그런데 바울을 보면,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그가 전하는 그 복음 속의 바울의 모습만 보면, “저게 지금 무엇 하는 사람인가?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게 전해서 되는 건가? 아이고, 지금 무슨 복음을 한다고 그래.” 지금 그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어떻게 했다? 업신여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았다. 누가? 갈라디아의 그 사람들이.
여기서 버리지도 않았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하면, 본래 귀신들에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신의 수단으로서 침을 뱉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바울 사도의 모습이 얼마나 형편이 없었던지, 침을 뱉을 정도로, 귀신과 같이 여겨, 자기의 수단으로 사람들이 침을 뱉어서 자신을 보호할 수단으로 여겼다고 하면, 그렇게 할 만도 했는데, 지금 업신여기지도 않고, 그렇게 버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러면서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다.” 처음에 갈라디아에 가서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했을 때, 15절에서 어떻게 합니까?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할 정도로.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 바울이 안질에 걸렸기 때문에,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너무 사랑하여, 자신의 눈을 빼어 안질에 걸린 바울에게 줄 만큼, 그만큼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 속에, 갈라디아 교인들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바울이 지금 너무 멋있고, 딱 봤을 때도 “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그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야, 대사도가 왔구나.”라는 모습 속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게 아니고, 형편없고, 자랑하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침을 뱉어 귀신을 쫓을 정도의 그 모습을 갖고 있는 바울 사도가 전한 진짜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게 갈라디아 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러느냐? 바울 사도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해산하는 수고
여러분, 전하는 자의 모습, 전하는 자가 얼마나 유려한 단어와 용어를 써서 지금 복음을 전하고 있느냐가 내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내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을 보니까,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 하나님의 그 모든 성품인 것을 받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로 하신 그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아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에 다 그 뜻을 이룰 때까지, 바울 사도는 어떻게 해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그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을 만드는 그 일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하면, 동일하게 그때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다시 아이 낳고 싶은 분 있습니까? 그 고통 가운데, 그 수고를 다시 한번, “바울이 너희가 그리스도의 형상 이룰 때까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까지, 다시금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닮은 그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살 때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내가 기꺼이 하겠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그런 자가 있다는 것, 그런 목회자가 있다는 것, 사실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나는 제자 반석 교회에 다녀서, “너무 좋아.”가, 어떻게, 또 나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표현하지 마시고요. 구원이 임한 그 은혜로 흐르고 있음에 감사하고, 그 은혜로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를 때까지 살아내야 됨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마지막에 21절부터, 하갈과 사라를 통하여 종 된 자녀와 약속된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자유자, 약속된 자녀로서, 그것이 너희가 약속된 자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유자
하갈은 약속된 자녀가 아니고, 23절 보니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두 자녀가 나는데, 하나는 여종이고, 하나는 자유자입니다. 23절에서, 여종에게는 육체를 따라 낳습니다. 누가? 하갈이. “그러나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스마엘은 훨씬 큰 상태이고, 이삭은 점점점, 아주 아주 어린아이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하갈이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약속된 유업을 받은 자는 종 된 여자에게서 난 이스마엘이 아니고, 약속된 자녀인 이삭입니다. 또 하갈이 장성하여 더 많은 유업을, 받을, 수많은 아들을 낳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유업을 받는 자로서의 아들은, 약속된 하나님의 자녀, 자유자인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유업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서 종 된 자들은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업을 받은 자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 자들은, 비록 지금은 세상과 같은 자들로 말미암아 어떤, 큰,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은, 우리는 종 된 자들이 아니고, 자유자 되어져, 하나님의 그 풍성한 유업을 받는 자로서 우리의 모든 삶은 앞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종 된 자녀가 아니고, 자유 된 자로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는 아들 된 신분으로서 우리는 지금 놓여져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그러니까 초등 학문으로, 율법으로 말미암는 그 죄 아래 우리가 갇혀져 있는 자로 들어가려고 하지 마시고요.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믿음이 은혜로 내게 흘러왔는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어떻게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갖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아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늘 물으며, 늘 묵상하며, 늘 보냄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일을 행하시고, 이 구원의 역사를, 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지, 늘 기도하시면서, 그 은혜가 날마다 여러분 삶 가운데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1.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2-3.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2-4.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3.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6. 체험적인 증거들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8. 결정하셨습니까?
9. 구원의 길
전직 깡패 박영문씨의 실화
필립 만토파가 직접 겪은 지옥의 참상
지옥에 있는 크리스천들
어느 목사님의 화려했던 과거 (실화)
26세에 세계 최고의 증권 회사 부사장에 오른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
최선규 아나운서의 충격적인 실화 - 즉사했던 딸이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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