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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by gospel79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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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3 수요말씀 - 박현명 담임목사

 

 

 


이 밤에 이 시간에 예배당에 있는 것이 제일 귀하고 복된 시간이고, 이 맛을 아는 분들이 계속 쭉 나오시다 보면 마침내 고래밥을 선물로 받으실 줄 믿습니다. 물론 고래밥 때문에 나오시는 거 아니지만 예전에 우리 교회 대학부 제가 지도할 때, 그 당시 고신대학교 신학과 형제 한 명이 저하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 중에 자기가 있었던 일을 얘기했습니다. 

당시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한 선교 단체에 꽤 오래 깊이 몸을 담고 있는 여친이었고, 남자는 고신대 신학과 학부 학생이었습니다. 선교 단체의 여자친구가 오래 다니다 보니까 자꾸 요구를 하는 거예요. "같이 가자, 같이 좀 훈련받고 참여하자." 근데 이 남자친구는 내키지 않지만, 여자친구가 자꾸 결혼을 전제로 협박을 하니까 이렇게 갈팡질팡하다가 갔습니다. 

가서 이박 3일 수련회를 참석했는데, 저녁에 집회를 마치고 12명씩 소그룹으로 나눠 쉐어링을 하는데, 그 조에 리더 간사가 인도하면서 거기 있는 12명의 지체들에게 다 눈을 감으라고 하고, 이제부터 눈을 감고 3분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 듣고 나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뭘 들었는지 얘기를 한다는 겁니다. 

12명이 3분 동안 다 이렇게 있다가 한 명씩 얘기를 시켰습니다. 간사가 그러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이미 훈련이 됐는지, "하나님께서 방금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면서 말하고, 그 옆에는 "아, 하나님께서 저에게는 요렇게 요렇게 말씀하셨어요." 또 옆에 가니까 "아, 하나님께서 저에게는 이만큼 저만큼 자세하게 말씀하셨어요." 하면서 얘기를 쭉 돌아갔습니다.

이 신학생의 순서가 왔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어요. 근데 고신대 신학생이라고 이미 자기를 소개를 했고, 자기 체면도 있어서 순간 고민하다가 "그래도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 싶어서 솔직하게 "예, 저는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리더가 "형제님은 지금 영적 상태가 매우 둔감한 상태다."라고 하면서, 조금 여러 사람이 있는데 민망하기까지 지적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된다, 더 기도하고 더 하나님 음성을 갈망해야 된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여자친구도 자기를 대하는 게 어떻게 신학생이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해, 하는 좀 무시하는 말투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좀 지나면서 계속 갈등이 생기고 하니까, 이 신학생이 그 자매에게 설득을 했대요. "하나님 음성은 내가 알기로 그렇게 듣는 게 아니다, 그건 아니다."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부딪히고 안 되니까 저한테 기도하면서 "자매랑 어떻게 해야 될까요?" 했습니다.

제가 "헤어지라"고 했어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 선교단체 실명을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교단의 신학교 교수진에서 다수가 이단성이 있다고 진단한 단체였기 때문에, 저는 그 형제에게 그렇게 조언을 올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표현을 종종 우리가 합니다. 근데 그 표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죠. 근데 하나님 음성은 그렇게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게 하나님 음성으로 들었다 싶은 것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근데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이,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성경이 가르치는 지향점과 어긋납니다. 상충되고 배치됩니다. 그럼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은혜시대, 복음시대에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벗어난 하나님의 음성은 없습니다. 여러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게 아니면 다시 창세기 전으로 돌아가는 거, 혼돈과 카오스의 시대가 됩니다. "나도 들었다, 너도 들었다. 누가 하나님의 음성이냐." 오직 성경입니다. 

성경에 비춰 내가 기도했던 이런 확신이 든다, 이게 성경이 가르치는 바다, 그럼 하나님 음성이 그건 분명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하나님의 음성과 일치한다면, 방법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음성을 어떻게 듣는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주의 종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주의 몸 된 교회들마다 하나님께서 위임 목사를 세우셨어요. 담임 목사를 위임 목사로 세우셨죠. 그 목사의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하시고, 또 우리 교육자들의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그게 첫 번째고요.

두 번째는 부모의 권위를 통해서 말씀하세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예요.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서 자녀를 키우게 하셨습니다. 부모를 세우셨어요. 그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겁니다. 부모의 권위, 영적 권위를 부모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의 뜻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저 같은 경우도 부모님이, 제가 중년이지만 지금도 말씀하세요. 부모님을 통해서, 특히 저희 아버지는 손흥민 선수 아버지처럼 저한테 칭찬을 안 하십니다. "너 뭐 젊은 나이에 담임 됐다고 교만하지 마라. 요즘도 네 얼굴 믿고 까불지 마라. 너 목소리 좀 좋다고 그렇게 교만하지 마라." 요즘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사직동에 가면 그래서 요즘엔 잘 안 갑니다. 

네, 저는 보라고 안 했는데 저희 아버지는 주일 설교 유튜브로 한 번씩 보시고, 갈 때마다 지적할 거 기억해 놨다가 지적하세요. 

저희 어머니도 "아들아, 요즘 힘들지, 고생 많지, 피곤하지." 하면, 저희 아버지는 옆에서 "뭐 피곤해, 다 하는 건데." 저희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시고 저한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십니다. 근데 이제 그것도 사랑의 표현이죠.

세 번째는 환경, 주변에 일어나는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제일 알아들을 수 있었던 최근의 일이 뭐죠? 코로나입니다. 교회에 많이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많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특별히 예배에 대해서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또 전쟁을 통해서 말씀하세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2년 넘어가는 전쟁,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이런 전쟁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세요. 성경은 마태복음 뒤쪽에 가면 마지막 때에 처처에 전쟁이 있고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뭐 종말론 제기한 건 아니지만, 그런 성경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가 깨어 있어야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을 통해 말씀하시고요.  

넷째는 주변인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변인들, 친구, 신앙의 선후배들, 멘토 등을 통해서 교회 안이건 직장이건 말씀하시고, 심지어 오늘의 포인트는 불신자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아마 체험하신 적 있을 거예요. 불신자들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 그리고 불신자를 통해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먼저 4절을 한번 보실까요?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그랬습니다. 어떻게 시작하죠?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셨다." 주어와 주체가 누굽니까? 여호와께서. 그니까 이 환경을, 이 폭풍을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일으키셨다는 거죠. 

하나님이 코로나를 허용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바다에 노를 허용하셨습니다. 그 자연 재해나 재난, 사고, 이런 것들 우리가 보면 안타깝고 사상자가 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그걸 오늘 살펴볼 것입니다. 

또 하나는 5절과 6절입니다.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더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하느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더라" 

선장이 요나에게 와서 지금이 난리통인데 당신 잠이 오냐고 깨우는 겁니다.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당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거예요. 

근데 여러분 여기 주목할 점은, 제가 표시해 놨지만, 선장이 "내 하나님께" 그랬어요. "너의 하나님께 기도해라" 하지 않고요. 이 말은 선장은 하나님 밖의 사람, 이방인이고 불신자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방인 불신자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말씀하세요. "지금 위급할 때 자고 있냐, 기도해야지." 

이 순간만 보면 불신자가 믿음이 좋은 것 같아 보여요. 자, 이런 장면들이 바로 조금 전에 말씀드린, 불신자 주변인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뭐 가끔 예화 책에 나오는 이런 얘기 있잖아요. 회사 생활하면서 어쩔 수 없이 술자리도 따라다니고 사람 눈치도 봐야 되니까 이렇게 했는데, 한번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부장님이 "너 근데 교회 다닌다면서, 이게 뭐냐" 이런 식으로 말한 경우 말이죠. 이런 게 실제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불신자를 통해서도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볼 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폭풍이라는 환경과 이방인 선장, 불신자의 입술을 통해서 이렇게까지 요나에게 집착하실까 하는 점입니다. 요나에게 뭘 깨닫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이 관점으로 두 가지만 발견해 보겠습니다.

요나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것

첫째, 하나님은 니느웨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요나가 먼저 변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요나가 먼저 변하기를 원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왜 폭풍까지 일으켜서 다시스로 가는 배에 타격을 주면서까지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려고 하실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솔직히 요나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하나님 쓰실 만한 선지자들이 유명하고 유능한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야, 얘 뺀질거리고 진짜 내 말 안 듣는다. 아웃시킬 수 있지 않느냐." 얘는 안 되겠다 싶어도 되는데, 선지자가 어떻게 하나님이 니느웨를 가라 하는데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까. 이건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고 거역 아닙니까. 제껴놔도 됩니다. 다른 선지자 데려와서 보내실 만한 능력 있으신 분이에요. 

근데 하나님은 굳이 이렇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또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이 폭풍 난리 속에 모른 척하고 "하나님도 모르시겠지" 생각했던 요나를 이렇게 어떻게 보면 집착하시듯이, 불신자의 입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깨우시는 거예요. 

왜일까요?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는 타락한 도시지만, 그 도시를 회개시키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큰 계획이지만, 그에 앞서 하나님은 요나도 변화시키려는 마음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니느웨가 변화되는 것보다 요나 한 사람이 다시 하나님 앞에 변화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더 우선순위에 두었던 관심이었다는 겁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요나는 그냥 하나님 눈 밖에 아웃, 충분히 그럴 만한 요건이 갖춰진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김지철 목사님의 '사랑은 늘 옳다'라는 책에서 이 부분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끈질긴 사랑의 추적자이십니다. 변함없이 우리 삶에 노크를 하십니다. 아무리 멀리 도망을 가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배 아래로 숨는 그곳에 하나님의 사랑은 끝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피하려 해도 그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택하신 자녀를 세상 끝까지 놓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이해가 되시죠? 하나님은 그냥 일꾼이 필요해서 요나를 부르신 게 아닙니다. 일할 사람은 널렸어요. 하나님은 사울 같은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 죽이던 사람도 변화시켜서 바울로 만드실 수 있는 분 아닙니까. 

일꾼을 먼저 찾으신 게 아니라, 요나를 진정 사랑하셨던 겁니다. 요나가 이대로 가면 니느웨 못지않은 타락한 이방인 인생이 될 수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막으시고 돌아오게 하신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추적하는 사랑,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인 것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한국교회는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목회자들과 지도자들도 당황하고 의견이 분분했죠. "모여야 된다", "지금은 모일 때가 아니다" 하는 식으로요. 

그때 일부 이름난 목사님들 가운데는 강단에서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은퇴한 한 유명한 목사님은 교회에다 "제 이름을 다 지워주시고 잊어버려 달라"고 하시더니, 은퇴 후에는 유튜브에서 더 열심히 활동하시더라고요.

그분이 주장하기를 "하나님께서 코로나를 통해 한국교회에 폭탄을 던지셨다. 그 폭탄의 의미는 이제 모이는 교회의 의미는 버려야 한다, 이제 흩어져야 한다, 온라인 교회로 가야 한다, 사도행전의 디아스포라 교회처럼 흩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근데 한국교회에 영향력 있는 목사님이 은퇴하고 나서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시는데, 정작 그 현장에서 목회하시는 후배 목사님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본인은 목회 일선에서 은퇴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저는 솔직히 "당신이나 잘하세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분들 보면, 저는 "당신들이나 잘하면 됩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깨어져야 한다, 한국교회가 회개해야 한다"라고 하면, 자꾸만 뭐 문제를 일으킨 교회, 목사들만 생각하게 되는데,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코로나를 허용하신 이유, 환경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결국 '나'라는 겁니다. 내가 내가 예배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지,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는지, 이게 문제의 핵심인데, 우리는 자꾸 한국교회면 큰 교회, 대형교회 이런 데만 한정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바라보기 전에 "요나야,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신 겁니다. 선장을 통해 "자는 자여, 어찌하느냐" 하시면서 불신자의 입을 통해, 니느웨에 가기 전에 요나를 먼저 깨우치신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요나야, 네가 먼저 깨어야 해. 너는 네가 내 앞에 은혜와 사랑 안에 머물기 전까지 나는 계속 너를 추적할 거야." 그래서 바다 깊은 곳까지 이방인 선장을 통해 말씀하신 겁니다. 

여러분 중에 마음에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막 봉사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까요? 멈추셔야 돼요. 마음이 바싹 말랐는데 교사를 해야 한다고 억지로 하면, 여러분 즉각 멈추십시오. 그거 안 해도 그 기관, 그 사역은 잘 돌아갑니다. 

내가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도 없고 사랑도 없이, 그 결핍 속에서 기계적으로 억지로 하는 게 여러분 진정한 헌신이 아닙니다. 진짜 헌신은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은 단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없이 열심히 하는 건 오히려 제일 위험합니다. 종교적 테크니션이 되는 겁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은혜가 흘러가지 않고 막힐 수 있어요. 내가 부르는 찬양이 그냥 노래로 끝날 수 있고, 예배가 아니라 그냥 특송이 될 수 있습니다. 

니느웨에 가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어디에 있는지, 내 신앙의 현주소가 어딘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폭풍을 통해, 불신자의 입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데, 난 지금 뭘 하고 있나요. 내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지금 눈뜨고 있지 못한 채 열심만 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야, 네가 먼저야. 그 다음이 니느웨야." 이걸 지금 환경과 불신자의 입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깨달음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요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것은 인간은 절대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나야, 너는 절대 나를 떠나, 나를 피해, 나를 벗어나 살 수 없단다."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그 전에 읽은 본문 중에 이런 말씀 기억나시죠?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도망가는 것은 마치 타조가 머리를 모래에 처박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자기 눈에 위험한 게 안 보이니까 위험이 없어진 줄 알고 도망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게 바로 요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살펴본 3절을 보세요.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의 얼굴을 피했어요. 하나님께 무슨 잘못한 거 있어서 숨으려고 도망간 겁니다. 그런데 폭풍이 치자 어떻게 합니까?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더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하나님을 피해 도망간다고 간 게, 배 밑창에서 "아무리 폭풍이 치고 배가 흔들려도 하나님은 모르시겠지" 생각한 거예요. 요나는 자기가 제비뽑기에 걸려서 "아, 이게 다 나 때문이구나" 깨달았는데도 모른 척 한 겁니다. 그래서 배 밑으로 내려가 잠든 거죠.

다시 말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면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겁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여긴 거예요. 하나님을 벗어나 살 수 있고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게 바로 요나의 타조 증후군이에요.

자기 눈에만 위험이 안 보이면 위험이 없어진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다 지켜보고 계셨던 겁니다.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은 없고,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영역도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 하나님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피할 수 없고, 내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그런 일을 저지르는 것일 뿐, 하나님은 늘 언제나 우리를 보고 계시고 감찰하고 계십니다.

열왕기상 6장에 보면 아람과 이스라엘이 전쟁 중인데, 아람 왕이 작전 회의를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전략을 짭니다. 그런데 막상 작전을 수행하려 하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알았는지 다 요새를 구축해 놓고 방비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이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래서 아람 왕이 신하들을 불러 모아 "너희 중에 누가 스파이냐, 누가 이스라엘에게 내통하고 있느냐"고 추궁을 합니다. 그때 한 신하가 답을 해줍니다. 열왕기상 6장 12절을 보세요. 

"그 신복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나이다 하는지라."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엘리사가 아람 왕의 침실 밑에 들어가 엿듣고 있었다는 게 아니에요. 아람 왕의 은밀한 작전 회의 내용까지 하나님이 다 알고 계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주의 종 엘리사에게 알려주신 겁니다. 

우리도 가끔 목사님 설교 듣다가 "어, 저건 지금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은데... 목사님이 어떻게 아셨지? 누가 일러바쳤나?" 하는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설령 누가 제게 말해줬다 해도 저는 강단에서 특정인을 겨냥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건 강단을 자기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삼는 죄악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여러분의 형편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겁니다. 목회자가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과 상황을 알게 해주시는 거예요.

시편 139편 1절부터 4절까지 보세요.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여기에 '아시나이다', '살펴보셨으므로 아시오니' 하는 표현이 반복되죠.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일어섬, 생각, 가는 길, 누움, 행위, 혀의 말까지 하나도 모르시는 게 없다는 겁니다. 

이 정도면 CCTV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눈과 귀에는 사각지대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히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신 바를 전하는 것이죠. 때로 그 말씀이 특정 성도에게 꼭 들어맞는 것 같아도 제발 삐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건 누가 일러바쳐서가 아니라, 시편 139편에 나오신 그 하나님, 우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벗어나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 이 설교를 듣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샅샅이 지켜보시면 너무 답답해서 어떻게 사냐"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게 버겁고 힘들 수 있죠.

그러나 기억하세요. 우리가 좀 힘들고 불편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결국 그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말씀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거예요. 

유대인들에게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면 안식일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면 십계명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물론 안식일과 십계명에 담긴 의미가 다르긴 합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주일을 거룩히 지키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기 위해 주의 율법을 따르려 애쓰면, 그 삶 자체가 우리 영혼을 지켜줍니다. 죄에 물들지 않고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참된 안식과 안전을 누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신명기 10장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교회 오는 게 늘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언제나 은혜가 넘치는 곳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힘들고 불편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요.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사는 것이 곧 우리 영혼이 누리는 행복의 길이라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말씀의 길을 꿋꿋이 가면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행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믿으시나요?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는 우리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 심지어 불신자의 입을 통해서라도 나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잊지 말고, 내가 먼저 변화를 받는 지혜로운 신앙인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말씀 안에 거하며 사는 것이 곧 우리 영혼의 안전이요 행복임을 믿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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