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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 (박한수 목사님)

by gospel79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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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여호수아서 2장은 그 유명한 정탐꾼 사건입니다. 이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닌 것이, 라합의 이 행위는 정당했는가 하는 것을 한번 질문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 기생 라합은 두 가지 면에서 이렇게 보편적 도덕으로 보면 잘못했어요. 첫째는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 물론이 생사가 오가는 문제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거죠.

 

두 번째는 나라를 반역한 사람이에요. 예, 그죠. 이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죠. 이 사람은 어, 여리고성 가나안 족속에 속한 사람인데,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다. 나라 팔아먹은 사람이에요. 심하게 표현하면 국가에 반역한 사람. 근데 성경은 이 기생 라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 의롭게 평가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만큼 의롭게 평가한다.

 

그러면 여기서 이제 어떻게 우리가 해석을 해야 하냐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정리할 것은 뭐냐면, 우선 가치, 중요한 우선 가치가 혼동이 되면 우리가 아무리 옳은 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욕망으로 끝나버리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갈라디아 교회처럼 육으로 끝날 때가 많아요. 선교 갔다가 망가지기도 하고, 목회했다가 타락하기도 하고, 심하게는 이단에 빠지기도 하고. 그런 일이 수시로 있다는 거죠. 우리는 한 시도 방심할 수 없어요.

 

 

한 시도, 저는 목회를 하면서 내 자신도 문제지만, 사람은 이제 자기의 허물은 잘 안 보이는 법이니까, 성도들의 삶이나 이런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무슨 말이냐면, 그런 일로 믿음을 버리면 안 돼. 그런 일로. 근데 그분의 신앙의 궤적을 곁에서 봤을 때, 예를 들면, 예를 드는 거예요. 비판하자는 게 아니에요. 분별을 해보자는 거예요. 평소에 대충대충 믿는 사람이었다면, '그렇지, 저 수준이니까 저렇게 하겠지'. 그렇지만 그런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러면 결국은 둘 중에 하나지요. 그동안 실체가 숨겨졌던 거예요. 그 안에는 실제로 믿음이 없었는데 기질상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든지. 또 하나는 어느 날부터 우선순위가, 뭐 이게 헷갈려버린 거예요. 그니까 자기 우상화에 빠진 거지. 내 열심이 우선이고, 내 믿음이 우선이 된 것이지, 하나님이 우선이 아니게 되어버렸어요.

 

말들은 다 '주여, 주여' 하지요. '주님'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저 이제 교회에 처음 나가자마자 '주여'라는 말을 들었고, 첫날에 '주님'이라고 안 하겠어요? 그 입에서 '주님'이라고 했겠지요. 기도할 때도 '주여, 주여' 하지. 근데 실제로 주인을 바꿨냐, 그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지금도 역투쟁하고 있는 중에 있다는 거죠. 끊임없이 내가 주인이 되려고 하니까.

 

좀 말이 복잡합니다만, 우리에게는 중간 목표가 있고, 마지막 목표가 있어요. 지난주 설교 제목이 이거 있어요. '그리스도를 위해 투표하라'. 그리스도를 위하는 게 우리의 최종 목적이에요. 그렇게 하면 갈등하게 없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해. 이렇게도 하고. 저, 어떤 사람은 기도를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은 행동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보수를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건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예요.

 

그러면 그렇게 헷갈릴 때, 굉장히 헷갈리거나 어떤 것이 옳은지를 모르겠어. 그때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일의 최종 목적이 어디냐는 거예요. 이 일의 최종 목적이 뭐냐?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그러면 포기할 수도 있고, 끝까지 갈 수도 있어요. '내가 이 일을 하는 거보다 다른 사람이 이 일을 해서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다.' 기꺼이 물러날 수 있죠. '기꺼이, 오늘 내가 이 일을 행하는 것이 결국은 내 자신의 야망과 욕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다.' 그러면 누가 비난하는 게 뭐가 무섭겠어요? 끝까지 가버리는 거죠.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아멘.

믿음과 행동

어제 이제 제가 교제하는 목사님 내분이, 뭐 상담할 것이 있어서 지방에서 올라와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중에, 이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제 개척교회를 하고 어렵지요. 성도들이 떠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뭐 권사님, 뭐 이런 분들이 왔다가 열심히 하다가 떠나간대요. 근데 왜 떠나가느냐? 이야기를 들어보면, 목사님이 강단에서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천국을 가는 것이다.' 틀린 말이 없잖아요. 성경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고. 천국이 없다면 모르지만, 천국 가는 게 최종 목적이죠. 어찌됐든. 근데 이분이 견디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을 하면서, 뭐라 그러냐면, '기껏 교회 나오는 것이 천국 가기 위한 거냐고. 왜 이런 이야기를 자꾸 하냐고.' 시비를 건다는 거예요. 권사님이. 그리고 교회를 떠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교회를 나오십니까?' 그렇게 말을 하면, '평안을 얻고 성화를 이루어서 선한 사람 되고 싶어서 교회에 온다. 그니까 구원은 이미 받았으니까, 자꾸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마라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리고 교회를 떠났다는 거예요. 권사가 이런 상태니 뭘 하겠냐는 거예요.

 

오늘 기생 라합은 단순히 나라를 반역한, 그리고 자기 혼자 살기 위해서 그런 이기적인 행동을 한 매국노가 아닙니다. 사실 이 여인은 엄청난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어요. 첩자를 숨겨주고 들키면 어떻게 할 건데? 들키면 어떻게 할 건데? 이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결코. 그런데 기생 라합이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그것은 뭐냐면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생 라합

자, 한번 봅시다. 9절 보세요. 9절. 다 같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나니"

자, 이미 이 땅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준 당신들에게 줬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떻게? 싸워보지도 않고 이렇게 항복을 해버려? 그리고 가나안은 만만치 않습니다. 가나안은 훨씬 더 숫자가 많았어요. 그리고 강대한 성벽이 있었어요. 여리고, 보통 성벽이 아니죠. 무너진 적이 없는 성벽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리고 군인들이, 짱짱한 군인들이 철기 문화로 무장하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숫자도 많았고, 무기도 출중했고, 전술도 더 잘 알아요. 질 수 있는 환경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가나안 땅에 이미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들어오면 한번 해보자.' 그런 분위기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나 기생 라합은 달리 생각했어요. '못 이긴다.' 그 이유는 무기 때문에 지는 게 아니고, '저들에게 지금까지 40년 동안 하나님이 함께하신 행적을 봐라.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저들은 저들만이 아니다. 저들 뒤에는 누가 있다. 저들이 믿는 신 여호와가 계시다.'

 

이게 믿어지나요? 그리고 40년 동안 여리고 건너편에서, 광야에서 지날 때 했던 일들이 소문으로 들려, 들려가지고 이미 전해졌다는 거예요. '우리 앞에 시혼과 옥을 다 전멸시키고 홍해,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 나오고' 그런 일들. 그래서 11절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게 신앙고백이에요. 한번 봅시다. 11절, 시작.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우리가 듣자 마음이 녹아버렸다는 거예요. 근데 가나안 족속들이 다 그런 게 아니에요. 가나안 족속들이 다 녹은 게 아니라니까. 기생 라합과 그의 일가만 마음이 녹은 거예요. '우리만 녹았다. 우리가 녹았다. 너희로 말미암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도 하나님이고,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다.' 이런 위대한 신앙고백을 누가 할 수 있냐 이 말이죠.

 

단순히 라합은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 아니에요. 자기 살겠다고 나라를 배신한 못된 짓을 한 여인이 아니라,역사의식이 없는 매국노 여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인이 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켰을 리 없지요. 이 사람이 뭐 재물을 드릴 리가 없겠죠. 뭐 성막이 있어야 재물을 드리지.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를 알 길도 없지요. 그러나 기생 라합에게는 어떤 믿음이 이미 있었냐? 듣고 믿음이 생겼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광야에 있는 어설픈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요. 흘러들어온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어버린 거예요. 그 믿음이 딱 생기니까 행동하기가 쉬워졌어요. 이것은 뭐냐?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이 땅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차피 전쟁에도 못 이긴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저들의 군대를 무슨 수로 이기냐? 어차피 지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살 길을 찾아야겠다.' 그 살 길은 무엇이냐? '여호와의 편에 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동이 나왔어요. 그게 뭐냐? 정탐꾼을 숨겨주는 거예요. 정탐꾼 숨겨주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 편을 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니까. 최종 목적은 뭐냐면, 자기의 식솔들이 구원을 받는 거예요. 구원을 받는 거. 그러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 결단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 '여리고 배신하는 이 여인을 뭐라고 평가할까요? 매국노로 평가하겠습니다.' 그런 거 두렵지 않는 거예요. 왜냐?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아멘.

 

그래서 믿음이 있었어요.

첫째, 이 전쟁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이스라엘이 반드시 이긴다.

두 번째, 그 하나님 편에 서면 나는 살 수 있다.

그래서 세 번째로 행동이 나왔는데, 구체적인 행동이 나온 거예요. 그건 뭐냐? 정탐꾼을 숨겨주는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후대의 생명을 보장받기를 원했어요. 그러면 이제 이들이 여리고 건너서 파죽지세로 밀려들어올 텐데, 누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냐 이 말이야. 그래서 서로 간에 약속을 했죠. 그게 뭐예요? 빨간 끈을 창문 밖에다가 매달아 놓으라. 증표를 삼은 거예요. 그리고 이 정탐꾼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돌아가서 그걸 다 서로 간에 약속을 했겠지요.

그대신 조건이 두 가지가 있었어요.

 

첫째, 이 집에서 나가면 생명을 보장 못한다. 나가서 죽어버리는 거, 우리가 무슨 수로 살려내? 어떻게 구분하겠냐? 똑같은 가나안 족속인데.

 

두 번째, 소문 내면 장난 못 한다. 보장 못 한다. 소문 내가지고, 그거의 소문이 났다? 그럼 끈을 뛰어버리든지, 어쩌든지 해서. 그런 불상사가 생겨서 너희 가족이 몰살당한다면 그건 우리의 책임이 아니다.

대단히 합리적인 이야기죠. 라합은 전쟁이 나서 들어올 때까지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이 빨간 끈이 뭐냐 그러면, '아, 그냥 심심해서 달아놨어' 뭐 이렇게 하면서.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이것을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 숨어 있어야 된다는 거죠.

 

믿음은 필연적으로 행동을 가져와요. 아멘. 어쩔 수 없어요. 아멘. 그래놓고 끈을 안 매달았다? 그래놓고 잊어버렸다? 그래놓고 자기 가족들을 불러모으지 않았다? 그러면 아무 필요가 없는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다면 구체적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더라는 거죠. 아멘.

 

이건 무엇을 합니까? 유월절 날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를 때, 그 피 아래 숨는 자는 다 살아남았어요. 이게 다 맥이 통하는 이야기예요. 도피성에 도피한 자는, 그 사람이 남녀노소 어떤 일이든지 간에, 도피성 아래 숨는 자는 다 살아남았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있는 모든 인생은 살게 되는 거예요. 아멘. 이게 동일한 선상에 있는 거예요.

구원의 길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기만 했으면 살았어요. 그들이 악해서 망한 것도 맞지만, 방주 안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죽은 거야. 따져봅시다. 역사의 가정은 없지만은, 여덟 명 외에 어떤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와가지고 '나를 태워 주라'고, 자기 가족을 데리고 왔어. 그럼 그러면 노아가 안 태워줬어요? 하나님이 '너는 안 된다'고 그렇게 했겠어요? 아니에요, 100% 아니에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방주 속에 들어가는 걸 원하셨어요.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그 말을 들었죠. 방주가 지어지는 걸 보았지요. 그러나 홍수가 시작되기 그 전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느라고 방주에 올 생각을 못 하고, 결국은 들어가자마자 그 문을 누가 닫아버렸어요. 하나님이 닫아버렸다는 거예요. 노아가 닫았으면 열어줄 수 있죠. 그에게도 친구와 친척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와서 사정하면, 홍수가 시작됐지만 둥둥 떠 있을 때 왜 문을 안 열어줬겠어요? 그러나 노아가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것은 하나님이 봉해버린 문이기 때문에 풀릴 때까지 1년간 꼼짝없이 있었어요.

 

들어가면 살아요. 빨간 징표 아래 가면 사는 거예요. 도피성에 피하면 사는 거예요. 누구든지 예수 안에 오면 사는 겁니다. 아멘.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어요. 하나님. 그런데 그 기회는 누가 잡느냐? 믿는 자가 잡는다는 거예요. 아멘.

이런 가정도 해볼 수 있죠. 라합이 이제 가서 은밀하게 쫓아다니면서 엄청난 작업을 했을 거예요. 지금 이때부터 이게 복음 증거 아닙니까? '여기 오면 산다.' 이게 복음 아니에요? '여기 오면 산다. 예수 아래 오면 산다. 예수 믿으면 산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아멘. 이거 외에 무엇이 복음이에요? 아멘. 이게 복음이에요. '우리 집에 오면 산다.' 이게 복음이에요. 이거 전하고 다녔을 거예요.

 

근데 어떤 사람은 그걸 듣고 반응했겠지요. '맞아, 나도 소문 들었어. 응, 그 여호와라는 신이 그렇게 대단하다며? 나 너 정말 지혜롭게 판단했다. 고맙다, 고맙다.' 그리고 그 말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근데 그 말을 했는데, '웃기고 있네. 응,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 할지라도.' 자기 가족도 안 믿는 사람도 있었어요. '응, 당신 들키면 어떡할래 그래? 미쳤어? 나라 팔아먹었어? 내가 비밀로 묻어줄 테니까 어디 가서 있다고 소리 좀 하지 마.' 그런 사람도 있었을 거란 말이에요. 모르죠. 우리가 천국 가봐야 알겠지만은, 분명히 그랬을 거라고. 그런 사람은 거절했겠죠. 

그러나 그 말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겨서 행동한 자는 살게 되었을 거라는 거예요. 아멘.

라합의 결단과 구원

라합은 단순한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가 아니라는 거예요. 믿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었고, 그 과감한 결단과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살 수 있는 보상의 생명을 주셨다는 거죠. 아멘.

 

더 중요한 건 이거예요.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나병이 낫는 것도 보이지만, 그중에 한 명만 구원받았어요. 누가?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한 한 사람만. '가라, 네가 구원을 얻었느니라.' 병 낫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구원 얻는 게 목적이에요. 아멘.

 

심하게 표현하면, 나병을 평생 갖고 있어도 믿음으로 산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면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겠습니까?

 

더 중요한 건 뭐냐면, 기생 라합과 그의 일가족이 생명을 유지한들 얼마나 더 살았겠죠? 응, 얼마나 더 살았겠죠? 결국 몇십 년 안에 다 죽었어요. 그리고 생명을 구원받은들 그 삶은 어떠했겠어요? 그래, 한번 따져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섞여서 막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결정적일 때는 차별받았어요. 있어요. 안 그랬을 것 같아요? 그건 모르는 거야. '속은 썩어도 겉은 낫죠.' 와, 그런 일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우리를 위해서 큰일했네.' 근데 결국은 다르잖아요, 다른 민족이니까. 그때부터 또 시련이 시작이에요, 또다시.

 

어차피 이 땅에는 마찬가지예요. 질병에서 나와봤자 또다시 질병이 와요. 누군가를 이기고 정상에 올라봤자 또 누군가 그 정상을 얻기 위해서 쫓아오는 사람이 있어요. 평생 투쟁하다가 가는 거죠.

 

기생 라합이 그의 일가족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이냐면, 이 땅에서 생명을 조금 더 연장받아서 수십 년 살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의 영원한 생명이 구원함을 얻어서 천국에 갔다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우리도 이것을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이걸 절대로 잊으면 안 돼요. 아멘.

우리의 최종 목표

포괄적차별금지법을 뭐 하러 반대합니까? 누차 말하지만 이것이 만약 통과되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 같습니까? 거꾸로. 나는 그렇게 전제하지 않지만, 이것이 통과된들 하나님이 패배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죠. 응,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거예요, 사실은. 단지 우리는 하루하루 어쨌든 부족한 죄인들이, 한계가 많은 죄인이지만, 하나님 편에 서서 싸워보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냥, 그것도 너무 부끄럽고 부족한 것뿐이지. 뭐 그건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거예요.

 

최종 목표가 뭐냐? 나라를 살리는 거? 이것도 최종 목표가 아니에요. 욕해도 좋은데. 애국, 나라, 다 좋아요. 그런들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우리의 최종 목적은 뭐냐? 저 천국에 입성하는 거예요. 아멘.

 

고랑 그것이고, 그 말하는 사람은 천국을 안 믿는 사람이에요. '겨우 그것 때문에 이거 하냐고' 하는 사람은 지옥의 심판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모인 거예요. 그것 때문에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성경 공부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길거리 가서 전도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전도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선교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목회하는 것입니다.

 

기생 라합과 그의 일가족, 기생 라합의 마음속에 어떤 믿음이 있었냐? '내가 위에서도 하나님이시요 땅에서도 하나님이신 진정한 신이신 참된 하나님을 믿고, 내가 영혼의 구원을 받아 저 천국에 가리라.'

 

내 삶은 비록 이 땅에서 기생의 모습으로, 이 기생인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단순한 술집 마담인지, 몸을 파는 창기인지, 아니면 표현을 이렇게 했을 뿐이지 꼭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건 모르지만은,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기생'이라는 칭호가 이미 가져다주고 있어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내가 이 땅에서는 비록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삶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은, 나는 다음 세상에, 저 천국에 가서는 주님 앞에 설 것이다' 이런 믿음이 이런 용기와 행동을 가져온 것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이것을 잊지 말고, 우리가 중간 목표와 최종 목표가 있다는 걸 절대로 잊지 말고, 헷갈리지 말고, 주변을 잘 정리하고 지혜롭게 행하여, 낙심할 것도 없고 싸울 것도 없고 할 필요도 없고 보기도 안 되고, 꿋꿋하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달려가는, 쉬지 않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기도하십시다.

날마다 우리에게 선택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라합은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라합은 위험하지만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오늘 하루를 위해 살았다면 라합은 이런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영원한 시간을 생각하며 이런 결단을 했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날마다 사는 길을 택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믿음에는 행동이 있으니, 우리 모두가 행동하는,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하여, 다 같이 이 시간에 나라와 민족과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라합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이었으며,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사는 길을 택해야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두도 우리 인생 가운데 중간 목표가 있고 영원한 목표가 있는데, 그 영원한 종착점을 향하여 달려가는 지혜로운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먹고 마시는 것은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목적이 아닐 것입니다. 성공하고 부해지며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중간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의 종착점은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올 것이니, 주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 서서, '나는 주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늘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줬고 나라를 배신한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은 최종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사 우리도 사는 길을 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사는 길을 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가족이 사는 길을 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자녀들이 사는 길을 가게 하여 주시고, 이 민족이 사는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 땅을 살려 주십시오.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사는 길이 아니라, 여호와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무지한 백성들 깨어나게 하여 주시고, 사는 길을 택하여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주여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는 중간 목표가 있고 마지막 목표가 있음을 압니다. 주님, 사는 것은 중간 목표일 뿐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 예배하며 사는 것, 기도하며 사는 것, 나라를 위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 나라를 위해서 투표하고 선거하는 행위, 이 모든 일들이 중간 목표일 뿐입니다. 결국은 우리는 이런 일을 통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원합니다. 이 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의 결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이 민족을 살려주옵소서. 아멘.

 

우리를 살게 하시려 투쟁하시고, 살기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살기 위해서 예배하게 하시고, 살기 위해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여, 주여.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주님, 기생 라합과 그의 일가족과 그의 아는 모든 이들이 광야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간담이 녹고 믿음이 생겨서 이 엄청난 결단을 통하여 사는 길을 택하였듯이, 우리도 죽는 길로 가지 않게 하소서. 우리도 사는 길로 똑바로 행하여 가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때로는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때로는 조롱을 받습니다. 때로는 가족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알리니, 주님, 우리가 사는 길을 택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최종 목적이 천국임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자광성교회 : 박한수 목사님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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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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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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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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