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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 확인: 이집트 문헌과 고고학의 증언

by gospel79 2024.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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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팅에서는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을 이집트 문헌과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출애굽은 구약 성경의 핵심 사건 중 하나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극적인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비평가들 가운데는 이런 출애굽 내러티브를 신화적 창작물로 치부하거나 역사적 사실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출애굽 사건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실존 사건이었을까요? 고대 문헌과 고고학은 이에 대해 어떤 증언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이집트 문헌의 증거 -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

성경 외의 고대 문헌 중에서 이스라엘의 이집트 체류와 탈출을 시사하는 기록들이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사제이자 역사가였던 마네토(Manetho)의 저작 <이집트사>(Aegyptiaca)입니다. 마네토는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 치하인 기원전 280년경에 활동한 인물로,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집대성한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안타깝게도 원본은 현존하지 않지만, 내용의 일부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인용되고 전승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100년경)가 자신의 변증서 <아피온에 반박하여>(Contra Apionem)에서 소개한 대목입니다.  


"투트모세 왕 시절, 어떤 이유에선지 신들이 분노하여 나라를 떠나버렸고, 그로 인해 기이한 역병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왕은 신탁을 받았는데, 원인이 나병 환자들과 불결한 사람들 때문이니 그들을 추방해야 신들이 돌아오고 재앙이 끝날 것이라 했습니다. 왕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내쫓아, 약 8만명 정도 되는 무리를 모래와 돌멩이가 가득한 황량한 곳으로 보냈습니다." (Contra Apionem 1.26) 


기원전 3-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역사가 헤카테우스(Hecataeus) 역시 <이집트지>(Aegyptiaca)에서 유사한 내용을 전합니다. 


"옛 이집트의 토착민들은 역병에 시달려 원인을 알아보니, 외국의 인종들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추방했고, 그 중 가장 뛰어나고 걸출한 자들이 오그(그리스식 발음으로 모세)라는 인물의 지휘 아래 가나안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Diodorus Siculus, Library 40.3)

물론 이런 기록들이 출애굽 사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고,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묘사가 성경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대 저자들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 즉 이방인 집단이 이집트에 거주하다가 추방된 사건이 있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신들의 진노와 역병 발생, 이방인 추방, 가나안으로의 이주 등은 성경의 출애굽 배경과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이는 출애굽 사건이 고대 세계에서 실제로 발생한 역사적 사실이었으며, 이집트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남아 후대에도 회자되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정황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고고학적 증거 (1) - 고센 땅의 발견과 이스라엘의 이집트 정착

출애굽 사건의 전반부를 다루고 있는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 야곱(이스라엘)의 가족이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이주한 사실을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다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대신에까지 오른 인물로, 가족들을 이집트 고센 땅에 정착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요셉이 그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네게 왔은즉 이집트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로 고센 땅에 거주하게 하고..." (창세기 46:31, 47:1,5,6)


19세기 말부터 이뤄진 고고학 발굴과 연구 성과는 이러한 배경 자체가 실제 역사와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이집트학자이자 성서고고학자인 마쉬칼라니(Manfred Bietak) 박사가 이끄는 오스트리아 고고학 팀은 1966년부터 이집트 나일 삼각주 동부 지역, 와디 투밀라트(Wadi Tumilat) 일대의 텔 엘-다바(Tel el-Daba) 유적을 발굴해왔습니다. 그 결과 고대 도시 '아바리스'(Avaris)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라암셋'(출 1:11, 12:37)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바리스는 '힉소스'(Hyksos)로 불리는 서셈어 계통의 유목민들이 이집트 제2중간기(1786-1550 BC)에 건설한 전성기 도시로서, 고센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바리스는 고센 지역의 수도 격이었던 도시로, 요셉에 의해 가나안에서 온 이스라엘 가족들이 정착했던 곳으로 보입니다. 성경이 전하는 대로 그들은 이곳에서 430년간 살았을 것입니다." 
(James Hoffmeier, Israel in Egypt, p.117)


실제 아바리스 발굴에서는 가나안 지역 특유의 주거문화와 매장 방식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집 모양의 관을 사용한 매장이나 돌로 만든 기둥, 제단 등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가나안에서 건너온 독특한 토기들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셈족 이주민들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바리스에서는 가나안 신앙의 영향을 받은 제의 유적도 발굴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셈족의 풍요 여신 '아쉐라'(Asherah)를 숭배하던 사당 터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이는 당시 이주민들이 가나안의 고유한 종교문화를 보존하며 살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이처럼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 가족의 고센 이주와 430년간의 체류(출 12:40) 기사는 매우 사실적인 고고학적 뒷받침을 얻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대규모로 이주하여 정착했다는 성경 내러티브가 결코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를 반영하고 있음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죠.    

3. 고고학적 증거 (2) - 노예 도시 건설과 노동 현장의 흔적

출애굽기 1장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번성하자 새로 등장한 바로가 그들을 노예로 삼아 노동을 시켰으며, 특히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데 동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며 퍼져나가니 이집트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괴로워하며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모든 일에 엄하였더라 (출 1:12-14)"


"그들이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였더라. (출 1:11)"


성경의 이 구절들은 고고학 발굴에 의해 매우 사실적인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우선 '비돔'(Pithom)과 '라암셋'(Raamses)의 실체에 대한 고증이 이뤄졌는데, 19세기말 이집트 탐험가 에두아르 나빌(Edouard Naville)과 플린더스 피트리(Fliners Petrie)는 각각 텔 엘-마쉬쿠타(Tell el-Maskhuta)와 텔 엘-레타베(Tell el-Retaba) 유적을 발굴하여 그 둘을 비돔과 라암셋으로 비정했습니다.


"텔 엘-마쉬쿠타에서 발견된 석판에 의하면, 이곳의 고대 이집트어 이름은 pr-itm(아툼 신의 집)으로서 비돔에 해당합니다. 라암셋 또한 워디 투밀라트 지역 동쪽의 텔 엘-레타베 유적과 동일시되는데, 두 도시는 제19왕조 때(기원전 1292-1189년) 국경 요새의 기능을 했던 곳으로 보입니다." 
(Bryant Wood, New Evidence from Egypt on the Location of the Exodus, Bible and Spade 18, 2005)
이런 비정은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더욱 명백히 입증되었습니다. 나빌에 의해 발굴된 비돔(텔 엘-마쉬쿠타)의 경우, 벽돌로 지어진 4개의 거대 창고 건물이 확인되었습니다. 각각의 창고는 길이 50m, 폭 10m, 벽 두께 5m에 달하는 규모로서, 오랜 시간 많은 노동력이 동원되어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라암셋(텔 엘-레타베)에서는 12개의 거대한 집단 창고가 발견되었는데, 전체 저장 용량이 2만 5천 톤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습니다. 두 도시 모두 고센 지역의 곡물을 비축하고 분배하는 국가적 물류기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건설 프로젝트에는 대규모 인력이 장기간 동원되어야 했을 것이며,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이스라엘 노예들이 강제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애굽의 배경이 되는 라암셋 지역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노동 현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들도 발견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오스트리아 팀의 텔 엘-다바(아바리스) 발굴에서 밝혀진 '노동자 구역'이 대표적입니다.  


"텔 엘-다바 F구역에서 발견된 노동자 거주지는 가로, 세로 각각 55m의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에 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총 20채의 일렬 가옥이 밀집해 있는데, 각 가옥은 크기가 74㎡ 정도로 매우 협소합니다. 출입구 바로 앞 길가에는 직경 2m 크기의 지하 저장고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각 가정에서 배급 식량을 저장하던 곳으로 보입니다."
(James Hoffmeier, Akhenaten and the Origins of Monotheism, p.54)


이 노동자 가옥에서는 가나안 양식의 토기와 조리기구들을 포함한 다양한 생활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거주민들이 가나안 지역에서 건너온 셈족 이주민들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아바리스의 서민 거주지는 당시 이스라엘 노예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 동시에, 그들이 대규모 건설 현장에 동원되어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음을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발견은 노예 노동력을 감독하고 통제하는 이집트인 관리의 존재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라암셋 인근의 텔 엘-야후디야(Tell el-Yahudiyeh) 유적에서 출토된 한 남성의 묘에서는 채찍을 든 모습의 청동 조각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노예 감독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인 감독관의 채찍에 시달리며 노역에 동원되었던 성경적 묘사(출 5:6-19)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날에 바로가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다시는 백성에게 벽돌 만드는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감독들이 백성에게 나가서 그들에게 일러 이르되 바로의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니... (출 5:6~8,10)"


이상의 고고학적 정황증거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벽돌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다는 출애굽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비돔과 라암셋 발굴에서 드러난 건축 현장의 규모, 가나안계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엄격한 감독 체계의 존재 등은 모두 이스라엘이 처한 고난의 실상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고고학적 증거 (3) - 이집트의 재앙과 파라오의 심장 완악

성경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바로가 이를 거부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 7-12장). 나일 강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가 창궐하고, 이가 번지고, 파리 떼가 덮치고, 가축이 죽고, 사람과 짐승에게 종기가 발하고, 우박이 쏟아지고, 메뚜기 떼가 몰려오고, 흑암이 내리고,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등 전대미문의 재앙들이 연이어 발생하자, 바로가 마지못해 이스라엘의 출발을 허락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최근 이집트 미라 연구와 문헌 분석을 통해, 실제로 모세와 출애굽 당시로 추정되는 시기(기원전 1446년경) 이집트에 국가적 재난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정황 증거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먼저 주목할 점은 이 시기 파라오들의 평균 수명과 미라 상태가 이전 시대에 비해 현저히 단축, 악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 리버풀대학교의 이집트학자 로즈메리 A. 데이비드(Rosalie A. David)는 제18왕조 파라오들 가운데 모세와 동시대 인물로 추정되는 아멘호텝 2세, 투트모세 4세 등이 이른 나이에 죽었으며, 그 미라에서 피부병 흔적이 관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멘호텝 2세는 재위 25년 만인 40세의 나이로 죽었고, 아들 투트모세 4세는 재위 10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두 파라오 모두 피부에 종기 자국이 있었던 것으로 미라 조사 결과 확인됐는데, 이는 당시 이집트가 심각한 전염병을 경험했음을 시사합니다. (Rosalie David, The Experience of Ancient Egypt, p.51)"


실제 고고학자 존 롭슨(John Robson)은 투트모세 4세의 미라를 조사한 결과, 그의 가슴과 어깨에서 심한 농창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악성 종기 재앙(출 9:8~12)의 실재성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한편 제10차 재앙인 장자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증거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것은 아멘호텝 3세의 장남이자 왕위 계승자였던 투트모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입니다. 투트모세는 부왕의 재위 30년 경 전격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 직후 아멘호텝 3세는 자신의 3남 아멘호텝 4세를 공동 통치자로 세웠습니다. 


"투트모세의 매장 장소나 미라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당대 이집트 왕실에 큰 혼란을 초래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장자로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왕위에 올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3남인 아멘호텝 4세가 후계자로 지목된 정황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Erik Hornung & Betsy Bryan, The Mysterious Death of Tutankhamun, p.68) 


물론 이것만으로 성경에 나오는 장자의 죽음을 직접 연결 짓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집트 왕실에 일어난 비정상적 상황은 국가적 재난이 있었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정황 증거로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고고학적 정황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 시기에 이집트가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맞았고, 그로 인해 결국 노예 해방이라는 중대 사태로 이어졌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전하는 재앙 내러티브가 당대의 역사적 실체를 반영하고 있으며, 결코 신화적 창작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할 것입니다.


"고대 문헌과 고고학이 제시하는 정황 증거들은 이집트에 국가적 재난이 실재했고,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물론 고고학 자료만으로 성경에 기록된 열 재앙의 세부 내용까지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대 이집트 사회에 광범위한 질병과 재해, 죽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단서들은 출애굽 당시 초자연적 재앙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Duane Garrett, A Commentary on Exodus, p.259) 

5. 고고학적 증거 (4) - 홍해를 건넌 증거와 숙곳 길의 발견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은 출애굽 사건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홍해 물을 가르자 백성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고, 뒤쫓아 온 바로의 군대는 물에 빠져 몰살했다는 기사는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출 14:21~22)"


그런데 최근 북미 탐사대 팀은 실제로 이스라엘이 육지로 건널 수 있었던 길목을 발견했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밥 코닉, 레너드 뮬더 박사 등으로 구성된 탐사대는 인공위성 사진과 수중탐사를 통해 홍해(아카바 만) 동편의 누웨이바 해변 인근에 폭 1km 이상의 얕은 지형이 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수중 탐사 결과 발견된 '누웨이바 랜드 브리지'는 양안을 잇는 화산암 지대로, 수심이 낮은데다 평균 경사도도 6도 정도에 불과합니다.  고대에 해수면이 더 낮았을 경우 이 지형이 마른 땅으로 드러났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고고학적으로 드러난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입 루트를 역으로 추적해볼 때, 이곳이 바로 성경에 묘사된 기적적 도하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Lennart Moller, The Exodus Case, p.155)


탐사대가 제시한 이론은 아직 학계의 검증이 더 필요한 단계이지만, 적어도 고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길목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근거로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바다의 기적적 분열을 불가능한 신화적 사건이 아닌 역사적 실재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한편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뒤 '숙곳 길'로 광야 여정을 시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마음이 변하여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백성을 인도하사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행하게 하셨더라...(출 13:17~18)"


이 '숙곳 길'의 실체에 관해서도 최근 고고학계에 주목할 만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영국 이집트 탐험대(Egypt Exploration Society) 소속의 고고학자 에두아르 나빌(Edouard Naville)은 1883년 이집트 동부 국경 지대인 와디 투밀라트(Wadi Tumilat) 일대를 조사하던 중 고대 도로의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도로는 나일 삼각주 동부 변경에 위치한 텔 엘-헤르(Tell el-Heir) 요새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이어지다가 와디 마그하라(Wadi Maghara)를 거쳐 아카바 만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나빌은 이 도로야말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후 택한 이동 경로인 '숙곳 길'이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발견된 도로의 폭은 약 6~8m 정도로, 짐마차가 다닐 만한 규모였습니다. 비록 현재는 모래에 덮여있지만, 고대에는 나일 삼각주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주요 간선도로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세가 이끈 대규모 이스라엘 행렬이 이동하기에 충분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James Hoffmeier, Israel in Egypt, p.164)  


특히 와디 마그하라 협곡에서는 길가에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들(아멘호텝 1세, 투트모세 1~3세)의 기념비문들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는 이 도로가 이스라엘 출애굽 시기에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잘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로 평가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동 경로가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도로망에 기초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죠.


"숙곳 길을 따라 남겨진 왕조 시대의 비문들은 출애굽의 역사적 배경이 결코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고고학은 우리가 성경을 신뢰할 만한 역사 기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물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John Currid, Ancient Egypt and the Old Testament, p.129)

6. 모세의 실존에 관한 논쟁과 정황증거

지금까지 살펴본 문헌적,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의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실제로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지도자 모세는 실존 인물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모세의 이름이 명시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발견된 바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모세를 전설적인 인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생애와 활동은 당시 역사적 정황에 매우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모세라는 이름 자체가 이집트어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Moses)의 어원은 이집트어 'mose'로 '아들'을 뜻하는데, 라므셋('Ra의 아들'), 투트모세('투트의 아들')와 같은 파라오의 이름에 흔히 등장하는 형태입니다.


또한 모세가 궁중에서 성장하여 교육을 받았다는 것도 당시 한 민족의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구약학자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은 고대 근동에서 외국 태생의 인물이 현지 통치자의 양자로 거둬져 후계자가 되는 사례들이 다수 확인된다고 밝혔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탈출한 사건 자체도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충분히 개연성 있는 사건으로 평가됩니다. 당시 가나안과 시리아 일대에서는 이집트의 지배에 반발하여 대규모 반란과 독립운동이 잇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아마르나 서신에는 가나안 각 도시들의 왕들이 파라오에게 보낸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아피루(Habiru)라 불리는 유목민 집단이 자신들의 지역을 위협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아피루가 나의 모든 영토를 약탈하고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군사들이 살해당했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원군을 보내주소서. 폐하의 영토를 잃지 않게 하소서." (아마르나 서신 EA 68)


성서고고학계에서는 이 아피루를 가나안으로 이주해 들어온 히브리인들과 동일시하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실제로 아피루는 셈어 '히브리'(Hebrew, '건너간 자들')와 어원이 같습니다. 이는 가나안 지역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주해왔고, 그들의 위협적인 존재감이 당대인들에게 상당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하겠습니다. 


이상의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모세가 역사 속 실존 인물이었을 개연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의 이름이 명기된 비문이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모세의 생애와 활동 무대는 당시 역사 현실과 매우 정합성이 높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세의 이야기가 신화적 창작물이 아닌 실제 역사를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유력한 정황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이집트 문헌과 고고학적 발견, 성경 외 문헌사료 등을 통해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노예살이와 탈출, 광야 방랑의 여정은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출애굽의 모든 내용과 과정이 고고학적으로 철저히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기적적 사건들의 모습을 유물로 남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출애굽 사건의 역사적 실체성 자체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고대 역사가들의 증언, 이스라엘의 이집트 정착과 노예생활의 흔적, 이집트를 덮친 국가적 재난의 정황증거, 출애굽 노선의 지리적 연관성 등은 성경의 출애굽 기록이 고대 근동의 역사 현실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경을 신뢰할 만한 역사 문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충분한 논거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위대한 성서고고학자 윌리엄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는 "고고학이 모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해주었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고고학이 제시하는 객관적 물증을 통해, 출애굽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하나님의 계시사적 사건'임을 확고한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 말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바와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가 크게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한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신명기 6:3~6)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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