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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목사가 된 해인사 스님, 최봉희 목사

by gospel79 2024.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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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생활의 시작과 고통의 수행

할머니의 사리와 아버지의 강요로 인한 출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불교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할머니께서는 막내 손자인 저를 무척 사랑하셨고, 불교에 대한 신심 또한 남다르셨죠. 할머니께서는 평소 다비식과 절을 많이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화장을 하셨는데 그때 사리(수련의 결정체)가 나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 사리가 나오면 그 분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라고 믿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유언을 남기셨는데, 내용인즉 사리를 모시기 위해 저를 승려로 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할머니의 유언대로 저를 승려로 삼으려 하셨죠. 저는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무서운 기세 협박으로 인해 결국 해인사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해인사에 들어가니 그곳의 삶이 너무나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다른 중들의 욕설과 비속어 가득한 대화, 음담패설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순수했던 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인사에서 청정한 수행을 다짐했습니다.

고된 행자 생활과 축구 운동

해인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며 셀 수 없이 많은 고된 수행을 했습니다. 새벽 같이 일어나 본당을 정돈하고, 이어서 예불을 드렸습니다. 그 후 역할 분담에 따라 잡역도 해야 했는데, 설거지, 식당 청소, 빨래까지 해야 했죠. 말 그대로 머슴과 다름없는 생활이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법회에 참여해야 했고, 법회가 끝나면 참선을 했습니다. 참선 시간에는 오로지 부처님 말씀에만 전념해야 했죠. 최소 2시간 이상 꼿꼿한 앉은 자세로 명상을 해야 했기에 어린 나이에도 다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면 바로 축구였습니다. 해인사에는 운동장이 있었는데, 저는 축구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다른 중들과 축구를 하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죠. 하지만 어느 날 축구 경기 중에 다리를 크게 삐끗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부상이었지만, 의사 치료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절 안에서 휴식을 취하며 낫기만을 기다려야 했죠.

고행과 단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승려 생활 초기에는 열심히 고행 단식을 했습니다. 오전 중 물만 마셨고, 오후에 한 끼 식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단식으로 인해 극심한 영양실조와 기력 저하를 겪었죠. 두 달 가까이 단식을 하다 보니 체중이 20kg 이상 빠졌고, 기운 하나 없었습니다.

 

게다가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인해 영양분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 근육이 많이 빠지고 허약해졌습니다. 또한 많은 중들이 술과 담배를 하는 모습을 보며 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금기시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이렇게 수행 생활을 하며 많은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을 겪었는데, 그때마다 '이것이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중들 스스로가 부처님 말씀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불교에 대한 회의와 의문

중들의 위선적 모습과 부처님 가르침의 모순

수행 생활을 하면서 점점 불교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중들의 위선적인 모습 때문이었죠. 절에서는 청정과 수행을 강조하지만, 막상 중들은 욕심과 탐욕, 부정에 가득했습니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여자 이야기, 돈 문제 등으로 꾸준히 구설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기도 시간에 엄숙해야 함에도 음담패설을 주고받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심지어 절 건물 구석구석에서도 숨어서 술을 마시는 중들도 있었죠. 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는커녕 오히려 위반하는 모습을 보며 크게 실망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번뇌와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 스스로 탐욕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중들 스스로가 탐욕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이는 모순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불교가 단지 삶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종교가 아닌 생활 방식으로 불교를 삼고 있었던 것이죠. 아침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고, 청소와 일과를 마친 뒤에는 기도라기보다는 소원을 빌며 숭배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있는 듯 없는 듯 하더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금기

불교에서는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합니다. 남성 중에 비해 여성 중들의 역할과 기회가 현저히 제한되어 있었죠. 여성은 참선조차 할 수 없었고, 비구니가 되기 위한 조건도 까다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비구니가 되려면 불법을 배우기 위해 20년 이상의 수행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절에서는 여성들의 생리 기간 중에는 절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죠. 임신한 비구니들에겐 외부 활동 자체가 통제되기도 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차별은 불교의 평등 사상과도 모순되는 것이었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평등하다고 가르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죠. 제가 지켜본 바로는 여성 중들이 남성에 비해 멸시와 차별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단지 평등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차별이 넘쳐나는 구조였던 것이죠.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불교에 대한 회의가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

불교의 신비주의와 허구성

불교에는 신비주의와 허구가 가득합니다. 특히 사리 부처의 가르침 등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중들은 사리를 최고의 수련 결정체라고 했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사리는 턱없이 작고 초라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과연 사리인지 의심이 들었죠. 심지어 중들 사이에서 사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예를 들면 주지 스님께서 화가 나셨을 때 사리를 툭툭 치시며 놀리시던 것이었죠.

 

이처럼 신성시되던 사리마저 장난감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며 불교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중들 사이에서 사리를 둘러싼 이야기가 지나치게 신비화되어 있는 것도 못내 아쉬웠습니다.

 

또한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불경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았고, 그것을 맹신하는 중들의 모습을 보며 의구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석가모니의 탄생설화와 전생 이야기 등이 허구라는 것을 깨달았죠.

 

심지어 부처님 자신도 자신이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며, 추종자들이 지나치게 신격화한 것을 경계했다는 불경 구절도 있었습니다. 결국 불교는 허구와 신비주의에 가득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독교로의 영적 전환과 하나님 은혜의 체험

예수님을 만나고 기독교에 대한 관심

불교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계속되자 저는 종교를 바꿀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시절 친구 중 한 명이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저에게 교회 생활을 적극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친구의 끈질긴 설득으로 어느 날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니 처음으로 예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인간들을 사랑하시되, 오직 사랑과 용서로 대하신다는 것이 너무나 새로웠습니다.

 

불교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수행을 강조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저로서도 매우 낯선 개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큰 위로가 되었죠.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서서히 예수님께 관심이 갔고, 결국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살 시도와 하나님의 은혜 체험

불교 수행을 접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세일즈 직종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저의 성격과 잘 맞지 않아 실적이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했던 일자리마저 그만두게 되면서 실직 상태에 놓이게 되었죠.

 

당시 저희 부부는 아이 한 명을 두고 있었는데, 생계를 꾸리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아내 혼자 돈을 벌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저는 빚만 꼬이고 꼬였습니다. 집에만 있을 때면 아내와 아이들의 눈길이 두려웠죠. 가장으로서의 무능함이 자꾸만 자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절망감이 몰려왔고,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회는 잠시 다녔을 뿐 신앙심이 굳건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살은 저에게 유일한 탈출구처럼 여겨졌죠. 그래서 어느 날 밤, 술을 한잔하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바로 뛰어내리려 했습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아내의 전화였죠. 아내는 제가 술을 마시고 우울해 하는 것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저를 걱정한 탓에 전화를 한 것이었죠. 전화통화를 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혔고, 결국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바로 그때, 제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아내의 전화 한 통 때문에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술에 취해 자살을 결심했던 저를 하나님께서는 지켜주셨던 것이죠. 그리고 그 은혜의 순간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제 삶의 모든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삶이 변화됨

자살 충동에서 벗어난 후, 저는 교회에 더욱 열심히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점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자라났죠.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와 친구들 앞에서 예수를 믿겠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격렬히 반대하셨지만, 저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힘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예수님을 영접한 후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실패만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죠. 먼저 안정된 직장을 잡을 수 있었고, 급여도 점점 올랐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사업의 기회도 주셨는데, 제가 한 번 실패했던 전자 교환기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에,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원가를 최소화하는 노하우를 알게 해주셨고, 좋은 거래처들을 연결해주셨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제 삶에는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분의 은혜로 저는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과 간증의 나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정적인 신앙 생활

저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과 사업을 하면서도 매 순간 기도하는 삶을 살았죠.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응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직장에서 승진의 기회가 왔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죠. 상사 몇 분이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고, 다른 동료들 역시 저를 옹호해주었습니다. 결국 승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컸습니다. 프로젝트가 실패할 것만 같았을 때, 하나님께 매달렸더니 돌파구를 열어주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 지원이 이루어졌고,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니, 제 삶에서는 계속해서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모든 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분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었죠. 이렇게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간증 나눔과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강조

제 인생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많은 이들에게 간증으로 나누었습니다. 불교 수행의 괴로움, 기독교로의 전환, 하나님 은혜의 체험 등을 상세히 이야기했죠. 어떤 이들은 제 간증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뀌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넉넉히 공급해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저 역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의 필요를 늘 채워주셨습니다.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는 물론이고 예기치 못한 지출에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죠.

 

한 번은 제가 아파트를 구입하려 했을 때도 부족한 자금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저는 기도했고, 바로 그 이튿날 뜻밖의 사업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수익금으로 아파트 계약금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랄 때마다 필요를 따라 공급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을 너무나 많은데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한 간증을 가지고 있음도 많아요. 그 간증들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 염려하지 않고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들꽃을 보라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우리 힘들 읽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제 영적 여정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간증으로 나누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 불교의 한계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불교에는 죄와 구원의 개념이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해탈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입니다. 중생인 우리는 누구나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번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죠.

 

이에 반해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제가 당시 해인사 중들의 탐욕과 부정을 목격했듯이, 불교에서 참되고 완전한 해탈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세속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죠. 반면 기독교에서는 우리의 영혼이 죄에서 용서받고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구원의 길을 여신 하나님의 은혜

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불교 수행 기간 내내 고행과 절제로 몸과 마음을 혹사했지만, 결국 제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었죠. 그저 더욱 깊은 혼란과 방황에 빠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죄와 잘못된 행실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더는 저 스스로 방황하거나 고행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천국에 대한 소망

불교에서는 해탈과 열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더 이상 윤회할 필요가 없는 경지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결국 마지막에는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더 나은 세상, 즉 하나님 나라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면, 마지막에는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곳으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3)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를 위한 처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따르면, 마지막에는 그분 곁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곳이 바로 영생과 기쁨이 가득한 천국입니다.

 

이처럼 저는 기독교 신앙을 통해 진정한 구원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최고의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뿐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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