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탄압의 시작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급격히 확산되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시작된 이후 불과 한 세기 만에 로마 제국 전역에 약 5만여 명의 기독교인이 있었고[1],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는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는 네로 황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64년 로마 대화재 사건 이후 네로는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의 탓으로 돌렸고, 이를 구실로 기독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여 처형했습니다. 그는 타르를 발라 기독교인들을 불태워 죽이거나 맹수의 먹이로 던져 죽게 했습니다[2]. 그 당시 네로에 의해 처형된 로마의 초대 교회 지도자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했습니다.
네로의 기독교 탄압 이후에도 도미티아누스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 등 많은 황제들이 기독교 탄압 정책을 유지했습니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기독교인들은 체포되어 로마 제국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기를 강요받았고, 거부하면 처형되었습니다.
기독교 탄압의 근거
로마가 기독교를 탄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유일신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다신교를 거부하고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제국의 안정과 통치를 위해 황제 숭배를 강요했는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는 곧 황제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습니다[3].
둘째, 당시 로마 사회에서 퍼진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식을 행했는데, 이것이 사람의 피와 살을 먹는 식인 의식으로 오해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이른 새벽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서로 형제자매라 부르며 입맞춤으로 인사를 나누자 이를 두고 근친상간을 저지른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4]. 이는 기독교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셋째, 유대교와의 차별성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교로서, 초기에는 로마가 유대교를 탄압할 때마다 함께 탄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유대교와 분리되어 발전하면서 로마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기독교만을 탄압 대상으로 삼았습니다[5]. 반면 유대교는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았습니다.
기독교인의 대응
이러한 박해 속에서도 초대 교회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굽히지 않고 순교의 피를 흘리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2세기 카르타고의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된다"고 말했는데[6], 실제로 박해가 심해질수록 기독교는 더욱 부흥하고 확산되었습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순교를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이심을 고백하다가 처형되었는데, 이들의 담대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역사가였던 타키투스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받은 박해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그들은 증오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맹수들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개들에게 물려 죽임을 당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화형을 당했고, 날이 저문 후에는 화염에 휩싸여 불타는 횃불로 사용되었다."[7]
이렇게 기독교인들은 로마 제국의 강압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며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는 오히려 기독교 확산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공인
결국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그는 이전의 황제들과 달리 기독교에 우호적인 정책을 폈는데, 이는 그의 어머니 헬레나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스스로도 기독교로 개종했고, 로마를 새롭게 건설하면서 교회와 수도원을 지었습니다[8].
밀라노 칙령은 로마 제국 내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것으로,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로써 300여 년 간 이어졌던 기독교 박해는 중단되었고, 기독교는 제국의 종교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지금까지 밀라노 칙령 이전 로마 제국의 기독교 탄압 배경과 정책, 근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순교의 증거들은 기독교가 단순한 종교적 허구가 아니라, 실존 인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만난 사람들의 증언에 기초한 역사적 사실임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다가 목숨을 잃었지만, 그 믿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들이 증언하고 목숨 바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에도 살아계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요한복음 3:16). 우리 각자 역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말씀 안에 거할 때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당신도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을 믿고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 Stark, Rodney (1996), The Rise of Christian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p. 6-7
- 타키투스, 『연대기』 15권 44장.
- 이상규 (2009), 『고대 로마 제국과 기독교』, 가톨릭출판사, p.263-265.
- Gonzalez, Justo (2010), The Story of Christianity, Volume 1, HarperOne, p. 46-47
- W.H.C. 프렌드 (2018), 『초대교회사』, 은성, p.142-143.
- 터툴리안, 『격언집』, 50장 13절
- 타키투스, 『연대기』 15권 44장.
- Eusebius, Vita Constantini (Life of Constantine) 1.28-29, 3.6-7.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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