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기독교 관련 흔적과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기독교의 초기 전파 경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순식간에 파괴된 고대 도시로, 화산재와 용암에 의해 도시가 통째로 매장되면서 당시의 건물과 유물들이 잘 보존되었습니다[1].
폼페이 유적에서는 그동안 기독교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발견들이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폼페이의 건물 벽에서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십자가 낙서를 발견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알렉사메노스의 풍자화'**로 알려진 그라피토(graffito)입니다. 이 벽화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인간과 당나귀 머리를 한 인물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 한 남자가 경배하는 자세로 서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인간 옆에는 "알렉사메노스는 자신의 신을 경배한다"는 그리스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2].
이 벽화는 기독교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의미로 그려진 것으로 해석되는데, 2-3세기 당시 로마인들 사이에서 기독교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당나귀를 숭배하는 사람들로 매도했는데, 이는 당시 반유대주의가 만연했던 로마 사회에 기독교를 유대교의 일파로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3].
그러나 '알렉사메노스의 풍자화'는 역설적으로 1세기 후반 폼페이에 이미 기독교 신자들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음을 방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폼페이가 파괴된 시점이 기원후 79년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1세기 내에 이미 로마의 수도와 이탈리아 남부 등지로 전파되었음을 시사합니다[4]. 폼페이의 발견은 로마 전역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 흔적들, 즉 기독교 묘지나 카타콤, 예배당 등과 더불어 복음이 지중해 연안을 따라 신속하게 퍼져나갔음을 말해줍니다.
폼페이 유적의 주택교회 흔적
폼페이 유적에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예배와 관련된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되었습니다. 2018년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은 폼페이 남쪽에 위치한 한 대형 저택에서 기독교 예배당으로 추정되는 공간을 발견했습니다[5].
이 공간은 약 15평 크기로, 바닥에는 기하학적인 모자이크 문양이 깔려 있고 벽에는 포도나무와 식물 등을 소재로 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벽화에 사용된 상징들은 신약성경의 비유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로, 포도나무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을, 새와 물고기는 신자와 영혼을 상징하는 초기 기독교 도상(圖像)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공간의 출입구 근처에서 작은 샘을 발견했는데, 이는 예배당 입구에 세례를 위한 시설을 두었던 초기 기독교 건축 양식과 일치합니다. 벽에 남아 있는 못 자국들은 이곳에 선반이나 의자 등의 설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이는 초기 기독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인 성만찬을 위한 테이블이 있었음을 추측케 합니다[6].
폼페이에서 발견된 이 공간은 초기 기독교 예배당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에 속합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초기 교회는 성전이 아닌 신자들의 집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었습니다(행 2:46). 이런 초기 교회의 모습은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까지 300여 년 동안 지속되었고, 3-4세기 이후에 와서야 전문적인 교회 건축물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폼페이의 발굴은 신약성경에 기록된 주택교회(house church)의 실체를 고고학적으로 확인시켜 준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는 로마 전역에서 발견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흔적들과 맥을 같이 하면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금기와 박해 속에서도 민간을 중심으로 꾸준히 확산되어 갔음을 말해줍니다[7].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 경로와 폼페이
폼페이에서 발견된 기독교 관련 증거들은 베드로와 바울로 대표되는 사도들의 전도 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의 제자들이 로마제국 전역에 복음을 전했음을 증언하고 있는데, 특히 베드로와 바울의 발자취는 기독교 전파의 두 축으로 여겨집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초대교회를 세운 인물로 전해지며, 그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교회사적 증언이 다수 존재합니다. 2세기 말 로마의 감독 이레니우스는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고 기록했으며, 3세기 교부 터툴리안과 카이사랴의 유세비우스도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을 남겼습니다[8]. 베드로전후서가 소아시아 지역 교회들을 대상으로 쓰인 점에서 베드로의 전도 경로는 수리아-소아시아-로마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들에서 수리아 안디옥을 거쳐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아가야 등 그리스 반도 일대를 전도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롬 15:19). 바울은 자신에게 "서쪽 지역에서 전할 것"(롬 15:24)이 남아 있음을 밝히며 로마와 스페인 선교를 계획했는데,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인사말은 바울이 편지를 쓸 당시 로마에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 약 2년간 복음을 전하다가 64년 네로 황제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9].
이상의 성경적, 역사적 근거들과 폼페이 등지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1세기 중반 무렵부터 베드로와 바울을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전도 활동을 통해 소아시아와 그리스, 이탈리아 반도를 거쳐 서쪽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기독교 흔적들은 이런 기독교 확산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주는 물적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0].
로마의 기독교 박해와 카타콤브
폼페이 등지의 기독교 유적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나간 역사를 말해줍니다. 기독교는 그 시작부터 유대교와 로마 제국으로부터 극심한 탄압과 적대에 직면했습니다. 로마는 황제숭배 체제를 거부하는 기독교를 불온한 종교로 간주했고, 네로와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기에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박해를 자행했습니다.
1세기 말부터 3세기 중반까지 200여 년간 단속적으로 이어진 이런 박해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 시기 기독교인들은 예배와 장례를 위해 로마 시내 곳곳에 지하묘지인 카타콤브(catacomb)를 구축했는데, 이는 종교적 금기에 따라 성 밖에 묘지를 조성해야 했던 로마인들의 매장 문화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카타콤브의 벽과 무덤에는 초기 기독교 미술의 귀중한 자료가 되는 각종 상징과 성경 장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는 신자의 영혼을, 정박(碇泊)은 구원과 희망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11]. 예수의 기적을 소재로 한 벽화들도 빈번히 등장하는데 이는 고난 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카타콤브는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신앙 공동체가 지속되는 거점이기도 했습니다. 카타콤브에는 지하 예배당과 모임 장소가 있었고, 순교자들의 기일을 기념하는 의식도 이곳에서 행해졌습니다. 또한 이곳은 각지에서 로마로 오는 성도들과 감독들 간의 교제와 교통이 이뤄지는 연결망이기도 했습니다[12].
로마 전역에 산재한 60여 개의 카타콤브는 박해 속에서도 기독교가 꿋꿋이 명맥을 이어갔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쉼 없이 박해를 받았으나 날로 교세가 확장되었다"고 기록했는데[13], 이는 카타콤브가 단적으로 증언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와 로마의 관계 전환
폼페이와 로마의 기독교 유적들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민간을 넘어 로마 지배층으로까지 꾸준히 확산되어 갔음을 시사합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64년 네로의 박해 당시 "엄청난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었다"며 기독교가 이미 로마 안에 상당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전합니다[14].
180년경 크레스켄스라는 철학자는 "상원의원들과 로마의귀족 부인들 상당수가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개탄했는데, 이는 기독교가 서서히 지배계층 내부로 침투해 들어가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15]. 북아프리카 교부 터툴리안은 200년경 "기독교인들은 궁정과 원로원, 법정과 군대에도 있으며 우리에게 남겨진 곳은 신전들 뿐"이라고 언급했습니다[16].
결국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교회는 극심한 시련을 딛고 마침내 로마를 정복하는 위업을 이뤄냈습니다. 5세기 초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 지상의 도성인 로마를 정복했다"고 선언했는데[17], 이는 300여 년 동안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지켜낸 순교자들의 신앙이 빚어낸 결실이었습니다.
폼페이와 로마의 기독교 유적들은 이처럼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파하고 부활의 소망을 간직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증거를 통해 기독교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변혁적 생명력을 발휘한 실재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폼페이와 로마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과 문헌 기록들은 기독교가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발원해 지중해 연안을 따라 급속도로 확산되었으며, 체계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 전역에 뿌리내렸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기독교가 한낱 종교적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실체로서 존재했음을 방증하는 강력한 증거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복음, 사도들의 사역과 초대교회의 수난사는 이 모든 고고학적, 문헌적 자료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역사성과 신빙성을 놓고 더 이상 의심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00년 전 갈릴리에서 시작된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과정을 냉철하게 성찰하고, 이 복음을 우리의 삶으로 증거하는 일입니다.
폼페이와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불굴의 믿음으로 복음을 지켜냈듯이, 우리 또한 세상 한복판에서 "오직 예수"를 담대히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분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하며 믿음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곧 여러분의 삶 가운데 奇蹟과 같은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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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ufmann, T. (2019). The World of Early Christianity. National Geographic History, 4(1), 28–41.
- Boin, D. (2018). A Social and Cultural History of Late Antiquity. John Wiley & Sons.
- Longenecker, R. N. (2016). The Cross Before Constantine: The Early Life of a Christian Symbol. Fortress Press.
- Ströbele, C., Genequand, D., & Reusser, C. (2018). POMPEII: A fully integrated approach to the study of an ancient city and its hinterland. Eisenberg, M., & Cinamon, G. (2020). The Socio-Economic and Religious Background of the Early Christ-Movement in the Galilee. Religions, 11(8),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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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ken, R. L. (2009). The Christians as the Romans Saw Them. Yale University Press.
- Tertullian. (n.d.). Apology.
- Augustine. (n.d.). The City of God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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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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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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