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윤 목사의 북한 선교 여정과 개성공단 진출
김주윤 목사님의 북한 선교에 대한 열정은 그의 가족 배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장모님과 장인어른 모두가 평안도 출신이며, 특히 장모님은 평양신학교 신학교장의 따님이셨습니다. 이러한 가족사를 통해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북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워왔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경험 또한 북한 선교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10년간 사역하신 교회는 흥남 부두에서 피난 온 성도들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에서 목사님은 북한 이탈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을 돕는 사역을 하면서 북한 선교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2004년, 개성공단 설립 소식을 접한 김 목사님은 즉각적으로 그곳에서의 사역을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사 신분으로는 직접 진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의료 선교 단체인 그린닥터스를 통해 개성공단 내 남북협력병원에 행정 부장으로 입주하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는 선교사로서의 사명감과 동시에 남북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이 만들어낸 창의적인 접근이었습니다.
개성공단 내 교회 설립과 예배 활동의 세부 과정
김 목사님의 개성공단 내 선교 활동은 매우 조심스럽고 전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의 행정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동시에 남측 근로자들과의 관계를 쌓아나갔습니다. 청소, 환자 접수, 엑스레이 촬영, 앰뷸런스 운전 등 다양한 역할을 자처하며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예배 모임의 시작은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먼저 개성공단 내 한 회사의 신우회와 연계하여 주일 예배를 시작했고, 이후 수요 예배를 병원 로비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예배 참석 인원의 변동은 개성공단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했습니다. 주말에는 많은 남측 근로자들이 귀가하기 때문에 주일 예배 참석자가 12-20명 정도였지만, 수요 예배에는 40-50명이 참석하는 독특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개성공단의 근무 환경과 생활 패턴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목사님의 용기 있는 시도 중 하나는 '개성교회'라는 간판을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북한 당국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강당동'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해야 했습니다. 교회 내부에 설치한 십자가도 이동식 벽 뒤에 숨겨두었다가 예배 시에만 드러내는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북한에서의 종교 활동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위험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북한 주민들과의 교류와 복음 전파의 구체적 사례들
김 목사님은 직접적인 선교 활동의 한계 속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주민들과 교류하며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한 가지 인상적인 사례는 북한의 의료 현실을 직접 목격한 경험입니다. 북한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일회용 주사기를 물에 담가 소독한 후 재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실감하셨고, 동시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을 절감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북한 근로자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그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에도 맨발로 작업하는 근로자들, 양말 대신 천으로 발을 감싼 군 간부의 모습 등을 목격하셨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목사님께 북한 주민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함께 영적인 위로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북한 주민들과의 대화에서는 그들의 세계관과 신념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북한 간호사와의 대화에서 그녀가 북한의 지도자를 '태양'에 비유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목사님은 그들의 신념이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실감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사님은 직접적인 복음 전파 대신 '삶의 모범'을 통한 간접적인 선교 방식을 채택하셨습니다. 친절과 사랑의 행동으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열고, 그들이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가치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사용하셨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신념 체계와 선교사의 영적 도전
김 목사님은 북한 주민들의 강한 신념 체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셨습니다. 그들의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은 종교적 신앙과 유사한 수준이었고, 이는 선교 활동에 있어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한 주민들의 '행복'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 덕분에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이는 목사님께 큰 충격이자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김 목사님은 북한 선교의 방향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물질적 지원이나 복음의 언어적 전파를 넘어서, 북한 주민들보다 더 강한 신앙과 더 깊은 행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목사님은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들의 믿음의 대상은 잘못되었지만, 저들이 믿는 믿음을 넘어서는 신앙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비록 외롭고 답답한 현장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변화된 모습으로 담대히 저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북한 선교에 대한 목사님의 깊은 통찰과 결단을 잘 보여줍니다. 북한 주민들의 강한 신념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신앙이 더욱 깊고 진실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신앙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적인 기쁨과 평안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사역의 어려움과 위기 극복
김 목사님의 개성공단 사역은 끊임없는 위기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의 감시와 제재, 신분 노출의 위험, 그리고 남북 관계의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 등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셨습니다.
특히, 목사님의 신분이 노출될 뻔한 위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병원을 방문한 남측 교인이 무심코 "김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북측 의사가 들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사님은 때로는 "무역회사에서 20년 일했다"는 식의 거짓말을 해야 했고, 이는 목사님께 큰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북한 당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선생, 병원에 뭣하러 오셨습니까?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세요."라는 경고를 들었을 때, 목사님은 큰 압박감을 느끼셨지만 묵묵히 참고 견디셨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들을 극복하기 위해 목사님은 지혜롭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셨고, 동시에 끊임없는 기도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셨습니다. 때로는 사재(謝罪)를 써야 하는 상황까지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역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개성공단 폐쇄와 향후 북한 선교의 전망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김 목사님의 11년간의 사역도 중단되었습니다. 이는 목사님께 큰 아쉬움과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그동안의 사역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북한 선교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개성공단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셨습니다:
- "통일 연습장":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장소였습니다.
- "훈련장": 북한 주민들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기업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간접 교육장": 북한 근로자들이 남한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땅": 비록 직접적인 전도는 어려웠지만, 기독교적 가치와 사랑을 실천하고 전할 수 있는 장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여전히 개성공단의 재개와 북한 선교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더욱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선교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1.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2-3.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2-4.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3.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6. 체험적인 증거들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8. 결정하셨습니까?
9. 구원의 길
전직 깡패 박영문씨의 실화
필립 만토파가 직접 겪은 지옥의 참상
지옥에 있는 크리스천들
어느 목사님의 화려했던 과거 (실화)
26세에 세계 최고의 증권 회사 부사장에 오른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
최선규 아나운서의 충격적인 실화 - 즉사했던 딸이 다시 살아나다
'실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니아 연대기로 전하는 하나님의 세계: 초등학교 교사 정인영의 창의적 교육 방식 (3) | 2024.10.21 |
---|---|
남을 빛나게 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은정 대표의 감동 스토리 (4) | 2024.10.21 |
꿈의 학교를 짓는 사람들: 임채종 집사의 드림스드림 프로젝트 (4) | 2024.10.21 |
구약의 메시지로 한국 교회를 재건하다: 김근주 교수의 신학 여정 (3) | 2024.10.21 |
과학자 이정모 관장의 신앙과 과학의 조화: "과학 한번 만나볼래요?" (3) | 2024.10.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