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간에는 갈라디아서 6장을 통해 우리 신앙의 본질을 되짚어보고, 어떠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인데요, 비록 6장밖에 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수는 매우 강력하고 심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편지를 놓고, 이단 사이비 종교가 많이 생겨났는데요. 그만큼 잘못 해석되거나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오해와 진실: 이단은 어떻게 성경을 왜곡하는가?
갈라디아서를 근거로 많은 이단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교회는 갈라디아서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라는 구절을 왜곡하여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교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이단적 해석입니다. 고대부터 남신이 있으면 짝이 되는 여신이 있어야 한다는 이방 사상이 있었고, 성경에도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이방 신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이방 사상을 성경에 끼워 맞춘 것입니다.
이 구절은 문맥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갈과 대비되는 인물은 사라 외에는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6절은 결코 '어머니 하나님'을 가리키는 구절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혹세무민하는 이단의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또한 구원파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근거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죄도 다 해결되었고, 어떠한 죄를 지어도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해석입니다.
더불어, 갈라디아서는 율법의 행위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즉, 모든 유대적이고 히브리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일으키는 반유대주의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과 율법주의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며, 사도 바울 역시 율법이 선하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율법 그 자체가 아니라 율법주의, 즉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할례 논쟁: 육신의 표징인가, 마음의 변화인가?
갈라디아서 1장부터 6장까지 계속해서 언급되는 주제는 바로 '할례'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할례가 문제가 되었을까요? 창세기 17장 14절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라는 무시무시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할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거대한 성대한 의식과도 같습니다. 예수님도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고, 사도 바울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할례가 오늘날 유대인들의 눈을 가려서 복음을 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할례를 유대인의 표식으로 여기고, 이방인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 특히 갈라디아서는 이러한 '육신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 구약에서 예표된 영적 변화의 시작
그렇다면, 마음의 할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것은 단지 신약에서만 나오는 개념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 성경 곳곳에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언급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10장 16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의 할례는 단순히 육체적인 표징을 넘어서는 영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신명기 30장 6절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음의 할례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4장 4절 역시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도 "스스로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과 함께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는 영적인 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9장 26절은 더욱 구체적으로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육적인 할례는 받았지만, 진정한 마음의 할례는 받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은 이미 마음의 할례, 즉 영적인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등장하는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포피를 베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백성 그 언약 가운데서 끊어진다"는 말씀은 단순히 육의 할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 영에 속한 새 생명의 시작
그렇다면, 신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할례'는 무엇일까요? 골로새서 2장 11절은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할례는 손으로 행하는 육적인 할례가 아니라, 영적인 변화를 통해 옛 자아를 벗고 새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2장 29절은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라고 말씀하며, 진정한 할례는 마음에 행하는 것이며, 영에 속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마음의 할례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갈라디아서 6장 8절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성령으로 심는 자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의 삶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면 영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할례를 받으셨습니까? 성령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아직 받지 못하셨다면, 이 새벽에 그리고 날마다 간절히 구하시길 바랍니다.
성령 세례: 영생으로 나아가는 필수 관문
유대인들은 육신의 할례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여겼고, 이방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에서 보듯이, 이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성령을 통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요구된 것은 오직 우상 숭배와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금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여기에 할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즉, 이제 구원의 기준은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성령 세례,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 생명의 열매를 거두는 비결
갈라디아서 6장 9절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는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누가복음 6장 9절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며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선을 행하는 것은 곧 생명을 위한 일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위해, 즉 한 영혼을 구원하고 양육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도, 한 명의 영적인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넘어지고, 다치고, 삐지고, 울기도 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렇게 선을 행하고 생명을 향해 나아갈 때 낙심되는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영생의 열매, 생명의 열매를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자랑 vs. 십자가의 자랑: 박해를 피하는 길인가, 영광의 길인가?
갈라디아서 6장 12절은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할례를 강요하는 자들은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피하고자 하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제도권 안에 들어가 타협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육적인 것들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먼저 왔는지, 얼마나 헌금을 했는지, 어떤 직분을 가졌는지 등을 자랑합니다. 물론 주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간증도 필요하지만, 그 안에 자신의 자랑, 자식 자랑, 물질 자랑, 신앙 경력 자랑 등이 섞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발 하라리와 같은 인물은 동성애자이며, 성경에 답이 없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합니다. 그는 새로운 이념과 종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기술 발전을 통해 사후 세계가 아닌 지상 세계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코로나 시대에 인간 해킹 기술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즉,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감시 체제가 강화되면서, 생체 정보를 수집하여 인간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박해를 면하기 위해 타협해야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새 창조: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영적 중생
갈라디아서 6장 15절은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할례의 여부가 아니라, 새롭게 지으심을 받는 것, 즉 새 창조입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는 이유는 십자가가 바로 진정한 할례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은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며, 세례와 할례가 같은 개념임을 보여줍니다. 즉, 세례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 즉 우리의 내면이 새롭게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고린도전서 1장 23절은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고(신명기 21:23), 헬라인들에게 십자가는 어리석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미련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새 창조는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십자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문이며, 성령을 통해 새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의 흔적: 고난의 영광, 십자가의 증거
갈라디아서 6장 17절은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파하다가 수많은 환난과 고난을 겪었고, 그 흔적이 그의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의 흔적은 예수님 때문에 받은 상처와 핍박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상 주실 것입니다. 도마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고 부활을 확신했듯이, 예수님의 흔적은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영원한 증거입니다.
결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의 흔적을 가진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의 할례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육신의 자랑을 내려놓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예수의 흔적을 가진 성도로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마음의 할례를 받고, 새 창조의 은혜를 누리며,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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