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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철학자들이 지적하는 무신론의 한계

by gospel79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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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철학자들이 지적하는 무신론의 한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신론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세계관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물질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무신론은 차가운 이성과 논리의 산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 중 상당수는 무신론의 한계를 예리하게 지적해 왔습니다. 이들의 통찰은 무신론이 결코 만능의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심각한 논리적 결함을 안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1. 데카르트 - 무신론은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허물어

먼저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무신론이 확실한 앎의 토대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했습니다. 데카르트가 살던 17세기 당시만 해도 신앙과 이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미 무신론적 회의주의가 싹트고 있었지요. 이에 맞서 데카르트는 의심할 수 없는 명석판명한 진리에서 출발해 하나님의 실재성을 논증하고자 했습니다.[1]

 

데카르트에 따르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설사 모든 것을 의심한다 해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존재만큼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명석판명한 진리에 못지않게 자명한 것이 바로 완전한 존재인 하나님의 현존입니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이 완전자의 관념을 가질 수 없기에, 그 관념은 필연적으로 실재하는 완전자로부터 비롯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2]

 

따라서 무신론은 인간 이성의 토대를 허물 뿐 아니라, 피조세계를 넘어선 초월적 진리의 원천마저 부정하고 맙니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완전한 존재의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은 그런 완전한 존재가 나를 창조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분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나는 결국 나 자신의 존재 근거마저 부정하고 말 것입니다."[3] 무신론은 진리 인식의 출발점인 신적 실재를 허무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2. 흄 - 신 없는 세계에서는 도덕이 불가능해

18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역시 무신론의 한계를 날카롭게 꼬집었습니다. 흄은 이신론자로서 계시나 초자연적 진리를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무신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신은 절대로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상상할 수 있고 받아들일 만한 개념이었지요. 오히려 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무신론이야말로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었습니다.

 

특히 흄은 무신론이 인간 도덕성의 기반을 침식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도덕과 종교를 분리하려는 모든 시도는 헛되고 위험할 뿐입니다. 신앙심을 제거해 버리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선과 정의에 대한 존경심 역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 무신론은 그저 일시적인 망상에 불과하며, 오래 지속되기 힘듭니다."[4]

 

흄이 보기에 도덕은 자연적 욕구나 이기심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인간에게는 이성적 계산을 초월하는 양심과 원칙이 있어야만 공동체적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결국 우리의 마음속에 선을 갈망하고 악을 경계하는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있음을 방증합니다. 로마서 2장 14-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만일 이 세상에 절대적 선악을 규정하고 심판하실 진리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흄은 바로 이 점에서 무신론의 심각한 한계를 간파한 것이지요.

3. 칸트 - 인간은 신 관념 없이 살 수 없어

계몽주의 시대의 거장이자 독일 관념론의 시조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역시 무신론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칸트는 신의 존재를 이론 이성으로 증명하려던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했지만, 동시에 신앙을 윤리와 불가분의 관계로 파악한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그에 따르면 순수 이성만으로는 신의 존재를 논증할 수 없지만, 실천 이성의 요청으로서 신 관념은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5]

 

칸트에게 있어 인간은 이 우주의 우연한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고귀한 목적을 부여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란 바로 도덕 법칙을 자율적으로 따르는 것, 즉 선한 의지를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칸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덕 법칙과 그에 따른 의무는 우리에게 고귀한 근원, 즉 최고선의 이념을 제공해 줍니다. ... 우리는 자연 질서를 초월하는 도덕적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서 신의 현존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6]

 

무신론자들은 도덕이 인간의 자율적 이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지만, 칸트가 보기에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덕 법칙의 명령은 우리에게 무한한 의무를 지우는데,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영혼불멸과 신의 현존, 그리고 최고선의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고서는 도덕적 삶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도덕성의 절대적 토대를 허무는 무신론의 한계를 잘 드러내 줍니다.

4. 키에르케고르 - 무신론은 실존의 심연을 외면해

19세기를 대표하는 덴마크의 기독교 실존주의 철학자 쇠얀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무신론이 인간 실존의 심연을 외면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유한성과 무한성, 시간성과 영원성, 필연성과 자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을 겪는 존재입니다. 이런 실존적 모순을 외면한 채 관념적 사유에만 함몰되어 있는 것이 바로 무신론의 한계라는 것이지요.[7]

 

키에르케고르는 이성만능주의와 체계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구체적인 한 인간의 실존적 진리를 강조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진리는 보편타당한 명제가 아니라, 주체가 실존적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주관적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서만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객관적 진리에 안주하는 순간, 실존은 규격화되고 평준화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무신론은 바로 이 실존의 깊이를 도외시하고, 인간을 수적으로 환원시키는 폐해를 낳습니다. 기계론적 자연관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창조주 앞에 선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가 아니라, 필연성에 예속된 나약한 피조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인간은 신 앞에 홀로 서지 않고서는 결코 참된 실존에 이를 수 없다. ... 오직 신 앞에서, 영원한 진리 앞에서 두려움과 떨림 속에 서 있을 때만이 비로소 시간성의 편견과 유한성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다. 무신론은 바로 이 실존의 도약을 거부하는 것이다."[8]

 

이처럼 키에르케고르는 무신론이 실존의 질곡과 고독 속에서 신을 갈망하는 인간 영혼의 호소를 외면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신앙은 객관적 진리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주체적인 결단과 실천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기에 무신론의 합리주의로는 결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것이지요.

5. 하이데거 - 무신론은 존재 망각에 빠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0세기 최고의 실존철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전통 철학이 존재 물음을 망각하고 존재자 탐구에만 몰두해 왔음을 통렬히 비판했는데요. 그에 따르면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는 곧 '존재 망각'의 역사였으며, 그 극단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무신론이었습니다.[9]

 

먼저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계-내-존재(Dasein)'로 규정합니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의식이나 이성의 주체가 아니라, 언제나 이미 세계 속에 던져진 채 실존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세계와 유리된 추상적 자아는 허구에 불과하며, 오직 자신의 유한성과 죽음 앞에 선 '죽음에로의 존재'만이 참된 실존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이런 실존론적 통찰은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개별 존재자들의 존재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천착할 때 비로소 우리는존재 자체의 빛 속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형이상학은 줄곧 이 근원적 물음을 회피한 채, 존재자의 영역에만 매몰되어 왔습니다. 이는 결국 모든 존재자를 인간의 힘으로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주체 중심주의로 귀결되고 말았지요.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런 존재 망각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무신론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인간의 표상과 의지로 환원시키면서, 존재 자체의 신비에 눈감아 버리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학기술 문명이 지배하는 오늘날, 만물은 단지 이용 가능한 '항존재자(Bestand)'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10]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의 목자'로서 존재의 진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는 자세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신의 부재를 사유하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단순히 무신론의 표어가 아니라, 형이상학의 종말과 존재 망각의 위기를 알리는 증후입니다.[11] 우리가 이 신의 부재를 오롯이 감당할 때, 비로소 존재 진리에로의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무신론은 하이데거에게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서양 형이상학의 종말을 예고하는 필연적 단계로 받아들여집니다.

 

물론 이것이 기독교 신앙과 전적으로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무신론이 존재 물음을 망각한 현대 문명의 병폐임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의 통찰은 귀담아들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피조세계의 존재 근거이신 하나님을 망각한 채 살아갈 때, 삶은 필연적으로 황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6. 플랜팅가 - 자연주의는 자기 논박적이다

20세기 이후 영미 분석철학계에서도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는 철학자들이 무신론의 문제점을 비판해 왔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알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 1932~)입니다. 그는 오늘날 많은 무신론자들이 전제하고 있는 자연주의 세계관 자체가 자기 논박적이라고 주장합니다.[12]

 

플랜팅가에 따르면, 진화론적 자연주의는 "진화의 산물인 우리의 인지 기능은 단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발달했을 뿐, 진리나 합리성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모순입니다. 만일 우리의 이성이 진화의 산물에 불과하다면, 그 이성의 산물인 진화론 역시 진리일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즉 진화론을 참이라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 진화론의 진리성은 훼손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뿐 아닙니다. 플랜팅가는 설령 진화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무신론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진화의 메커니즘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신다는 유신진화론 역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기독교 세계관은 진화론적 자연주의와 달리, 인간이 신의 형상을 따라 진리를 알 수 있는 인지 기능을 부여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이성의 신뢰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토대를 제공해 주는 셈이지요.[13]

 

이처럼 플랜팅가는 증명되지 않은 무신론적 전제들이 얼마나 독단적이고 비합리적인지를 논리적으로 드러냅니다. 그의 논증대로라면, 오히려 유신론이야말로 지식과 이성의 확실한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무신론은 그 강력해 보이는 논변에도 불구하고 결국 모순과 부조리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셈이지요.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지금까지 데카르트, 흄,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플랜팅가 등 동서양을 망라한 거장 철학자들이 제기한 무신론 비판의 핵심 논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의 논변은 한결같이 무신론의 한계와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신 관념의 필요성과 합리성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존재와 인식, 도덕과 진리, 실존과 의미의 토대로서 신 관념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이를 거부하는 무신론 세계관이야말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진리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무신론이 자충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반면 기독교 세계관은 이성과 신앙, 지식과 실존을 조화롭게 설명해 낼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의 궁극적 토대를 신의 형상과 계명 안에서 찾음으로써, 오늘날 만연한 자연주의와 상대주의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선언하며,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임 당하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죄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과연 철학자들이 비판한 무신론의 한계와 독단을 고수하실 것인가요, 아니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생명의 길을 따르실 것인가요?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저는 여러분이 이 초청에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권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13)는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더 이상 무신론의 그늘 아래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빛이 충만히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철학적 논쟁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참된 진리와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레퍼런스

  1. 데카르트, <방법서설>,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2019), 4부.
  2. 데카르트, <제1성찰>, 원석영 옮김 (아카넷, 2012), 3절.
  3. 같은 책, 4절.
  4.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이준호 옮김 (서광사, 2009), 1권 12절.
  5. 임마누엘 칸트, <실천이성비판>,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9), 1장 3절.
  6.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05), 2장 3절.
  7. 쇠얀 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박승오 옮김 (솔, 2008), 3장.
  8. 쇠얀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강성위 옮김 (한길사, 2007), 1부.
  9.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trans. Joan Stambaugh (SUNY Press, 1996), 10절.
  10. Martin Heidegger,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in Basic Writings, ed. David Krell (Harper, 2008).
  11. Martin Heidegger, "The Word of Nietzsche: 'God is Dead'," in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and Other Essays (Harper, 2013).
  12. Alvin Plantinga, Warrant and Proper Fun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12장.
  13. Alvin Plantinga, Where the Conflict Really Lies: Science, Religion, and Natur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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