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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3대 무신론 사상가의 철학이 지닌 치명적 결함

by gospel79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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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20세기 3대 무신론 사상가의 철학이 지닌 치명적 결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무신론 철학자로는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인간 존재와 세계에 관해 허무주의적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에는 치명적인 결함과 모순점이 존재합니다. 

먼저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사르트르는 1943년 발표한 그의 주저 『존재와 무』에서, 인간의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습니다[1].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미리 규정된 본질이 없으며, 오직 자유로운 선택과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본질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르트르는 신의 존재를 전면 부정했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에게는 이미 본질이 주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르트르에게 인간은 "자유의 무서운 짐"을 홀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됩니다[2]. 

그러나 사르트르의 이런 견해에는 심각한 자기모순이 존재합니다. 사실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의 행사라는 개념 자체가, 물질과 구별되는 정신적 실체로서의 인간 영혼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영혼이 없다면 자유로운 선택도 있을 수 없습니다. 물리법칙에 종속된 물질인 뇌가 홀로 작동한다면, 그 활동은 자유가 아닌 필연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르트르는 실체로서의 영혼 개념 자체를 부정합니다[3]. 결국 사르트르의 자유 개념은 그 토대 자체가 무너지는 셈입니다. 이는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치명적 결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사르트르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모순된 입장을 보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4]. 그에게 타인의 시선은 나의 자유를 위협하는 억압적 요소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전제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5]. 나의 자유로운 행위는 타인도 자유로운 주체임을 인정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순은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무신론적 실존이 궁극적으로는 행복과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담보해주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카뮈는 그의 대표적 저서 『시지프 신화』에서, 인생은 원초적으로 부조리하며 그 어떤 합리적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6].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유한한 존재인데, 이 죽음 앞에서 그 어떤 가치와 의미도 무화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 애쓰는 일체의 시도는 모순이자 부질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카뮈는 인생을 영원히 바위를 굴리지만 정상에 도달하면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빗대어 설명합니다[7].  

그러나 카뮈의 부조리 개념에도 모순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 인생에 그 어떤 합리적 의미도 없다면, 삶의 부조리함 자체를 논하고 있는 카뮈의 행위 또한 부조리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가 지적하는 인생의 모순이 보편타당한 진리라면, 진리를 논하는 그의 글쓰기도 모순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카뮈의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그 자신에 의해 논파당하는 셈입니다. 이는 그의 부조리 철학이 지닌 치명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더 큰 문제는 카뮈의 사상이 지니는 비극적 귀결입니다. 삶이 부조리의 연속이라면 그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와 동기 또한 상실되고 맙니다. 모든 가치와 의미가 붕괴된 세계에서 인간은 살 이유도, 옳게 살 이유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치명적 허무주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카뮈가 평생 부조리에 맞서 싸우려 애썼다는 사실은[8], 역설적으로 그의 부조리 개념이 지닌 위험성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허무주의 철학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니체는 기독교를 비롯한 형이상학 전체를 맹렬히 비판하며, "신은 죽었다"는 충격적인 선언을 남겼습니다[9]. 그는 기독교의 신 개념이야말로 삶을 부정하고 인간을 억압해온 허구이자 거짓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신을 믿는 종교는 약자들의 노예 도덕일 뿐이며, 강자의 자유로운 의지를 가로막는 족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참된 삶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가치를 해체하고, "주인 도덕"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니체 사상의 핵심입니다[10].

그러나 니체의 주장은 자가당착에 빠지고 맙니다. 니체는 일체의 고정된 진리와 가치를 부정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그 부정 자체를 절대적 진리인양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신은 죽었다"는 명제야말로 형이상학적 진리 주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니체는 모든 진리를 해체하려 하지만, 그 해체의 잣대로 삼은 것은 다름 아닌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이상학적 진리입니다. 다시 말해 니체는 반형이상학의 이름으로 형이상학을 밀반입하는 모순을 범하고 만 것입니다[11].

뿐만 아니라 니체가 주창한 '초인' 개념 또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기존의 가치가 무너진 자리에서 등장할 초인은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초인에게 선악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기존 도덕의 제약은 초월되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12].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만일 선악의 기준이 각 개인의 자의적 의지에 맡겨진다면, 강자의 횡포를 막을 도덕적 방파제는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니체의 사상은 나치즘에 의해 악용된 바 있으며[13], 이는 그의 초인 사상이 인류에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무신론 사상가 사르트르, 카뮈, 니체의 철학이 지닌 결함과 모순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들 사상가의 문제의식과 통찰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사유는 결국 신 없는 세계를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하고, 오히려 삶의 근원적 의미마저 파괴하는 위험한 결과로 귀결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신론 사상의 한계를 직시하고, 보다 건강하고 온전한 세계관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매우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인간과 세계, 역사의 의미를 일관되게 설명해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셨음을 증언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하며[14], 시편 19편 1절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노래합니다[15].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 내에서 우주만물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존재하는 의미 있는 피조물이 됩니다.  

나아가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밝힙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합니다[16]. 이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존엄한 존재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적인 속성을 지녔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로 신성불가침의 대상이며, 모든 이는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됩니다.  

또한 기독교는 인류 역사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 있음을 가르칩니다. 성경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이 죄의 속박 아래 놓여있음을 진단합니다(로마서 3:23)[17].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써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전합니다[18]. 나아가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예언합니다(요한계시록 21:1-4)[19].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역사는 결코 부조리의 연속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 최후 심판을 통해 정의를 세우시는 거대한 드라마가 됩니다. 

실로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희망을 회복시켜 줍니다. 나의 존재가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식은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제공하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은 고난 속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용기를 잃지 않도록 북돋아 줍니다. 무엇보다 기독교 복음은 우리의 근본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길을 제시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선포하며[20], 누구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 사함과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됨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기독교 복음이 단순한 종교적 믿음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핵심 사건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죽음과 부활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증언을 기록한 일차 사료이며, 사도 바울 서신은 주후 50년대에 기록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오래된 기록입니다[21]. 사복음서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 지명, 관습 등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 기록의 역사성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22].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으로서,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 의해 목격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을 너희가 받았고 또 그 가운데 선 바 되었으며...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린도전서 15:1-8)"[23].

복음주의 학자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예수의 부활을 입증하는 네 가지 역사적 사실로서, ①예수의 매장, ②제자들의 빈 무덤 발견, ③부활 이후 제자들의 예수 현현 체험, ④기독교의 흥기 등을 제시했습니다[24]. 그는 또한 예수의 부활에 대한 12가지 사실들을 제시하며, 그 사실들이 너무나 잘 입증되기에 심지어 회의적 학자들마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25].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이러한 강력한 증거들은 다른 어떤 가설로도 쉽게 설명되기 어려우며, 결국 부활이야말로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공허한 종교적 주장이 아닌, 견고한 역사적 사실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실로서의 부활은 기독교의 모든 진리 주장을 담보하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기독교 학자 월터슨 M. 캠벨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의 창시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기독교의 모든 교리에 신빙성을 부여한다. 이 사건은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들과 구별 짓는 독특한 기초를 제공한다. 기독교에 반대하는 자들은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부인함으로써만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있다"[26].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무신론 사상은 치명적인 결함과 모순을 지니고 있는 반면, 기독교 세계관은 이 세상과 인간, 역사를 가장 깊이 있게 조망하고 해석하는 진리임이 드러납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사건들은 단순한 종교적 신화가 아닌, 역사적으로 검증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이유로, 우리는 기독교 복음을 단순한 종교적 주장 정도로 가볍게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복음이 제시하는 인간 구원의 길에 귀 기울이고,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진지하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면,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일만큼 중차대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기독교와 성경은 허구나 미신이 아닌 진리이며,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질문과 의심, 고민과 아픔을 다 알고 계시며, 그 모든 것을 끌어안기 원하십니다. 주님은 이 시간 복음을 통해 여러분을 구원의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새롭게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선택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이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은즉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니 너는 생명을 택하라"(신명기 30:19-20)[27]고 말씀합니다. 우리 앞에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온 마음을 다해 여러분이 생명의 길을 택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지금 이 시간 영원한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십시오. 그 선택은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참된 자유와 기쁨, 평안과 소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기도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주의 말씀을 읽는 모든 영혼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의 눈을 열어 주시사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님을 믿노라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죄와 불신앙 가운데 머물러 있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참된 믿음과 회개에 이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든 영혼 위에 주의 놀라운 은혜와 자비를 부어 주시옵소서. 그들이 어둠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로 나아오게 하시고, 사탄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과 평강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참고문헌 :   
[1] Jean-Paul Sartre, Being and Nothingness (New York: Washington Square Press, 1956), 568-570.  
[2] Jean-Paul Sartre, Existentialism and Human Emotions (New York: Citadel Press, 1999), 23.  
[3] Jean-Paul Sartre, Being and Nothingness (New York: Washington Square Press, 1956), 50-54.  
[4] Jean-Paul Sartre, No Exit (New York: Vintage, 1989), 45.  
[5] Jean-Paul Sartre, Being and Nothingness (New York: Washington Square Press, 1956), 555-556.  
[6] Albert Camus, The Myth of Sisyphus and Other Essays (New York: Vintage, 1991), 3-8.  
[7] Ibid., 119-123.  
[8] Jean-Paul Sartre, "An Explication of The Stranger," in Camus: A Collection of Critical Essays, ed. Germaine Bree (Englewood Cliffs: Prentice-Hall, 1962), 108-121.  
[9] Friedrich Nietzsche, The Gay Science (New York: Vintage, 1974), sections 108, 125, 343.  
[10] Friedrich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New York: Vintage, 1966), 215-216.  
[11] Arthur C. Danto, Nietzsche as Philosoph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5), 194-197.  
[12] Friedrich Nietzsche, Thus Spoke Zarathustra (New York: Penguin Books, 1961), 41-43.  
[13] Jacob Golomb and Robert S. Wistrich, eds., Nietzsche, Godfather of Fascism?: On the Uses and Abuses of a Philosoph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14]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15] Ibid.  
[16] Ibid.  
[17] Ibid.  
[18] Ibid.  
[19] Ibid.  
[20] Ibid.  
[21] William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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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2-3.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2-4.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3.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6. 체험적인 증거들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8. 결정하셨습니까?

9. 구원의 길

전직 깡패 박영문씨의 실화

필립 만토파가 직접 겪은 지옥의 참상

지옥에 있는 크리스천들

어느 목사님의 화려했던 과거 (실화)

26세에 세계 최고의 증권 회사 부사장에 오른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

최선규 아나운서의 충격적인 실화 - 즉사했던 딸이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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