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의식의 존재가 무신론의 물질주의를 무너뜨리는 이유

by gospel79 2024. 4. 1.
728x90
반응형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의식의 존재가 무신론의 물질주의를 무너뜨리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네이글은 "의식의 존재는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라고 말했습니다.1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대 과학은 물질이 가진 다양한 성질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해 놀라운 기술적 성취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물질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의식'(consciousness)입니다. 

의식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사고하며 느끼고 선택하는 내적 경험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는 의식을 통해 고통과 즐거움을 느끼고, 논리적 사고를 하며, 도덕적 선택을 합니다. 바로 이 모든 주관적 경험의 총체가 바로 의식인 것이죠. 의식은 물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비물질적 실재로서 물리적 세계를 초월해 있습니다. 

문제는 유물론 세계관으로는 의식의 발생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유물론자들은 모든 것이 물질에서 기원했고 물리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물질은 그저 수동적이고 무의식적일 뿐입니다. 쇠망치는 고통을 느낄 수 없고, 돌멩이는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컴퓨터는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맹목적인 작용과 반작용이 있을 뿐이죠. 물질은 그 자체로 의식을 창발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합니다.

의식은 물리법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론적으로 독립된 실재입니다. 우리의 사고와 감정, 자아 인식은 단순히 뉴런들의 생화학적 작용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의식에는 화학 반응 이상의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합니다.

퍼트남은 "정신적 상태는 물리적 상태로 환원될 수 없다. 감각적 성질은 물리적 대상의 성질과 동일시될 수 없다. 감각과 같은 심적 사건을 뇌의 과정으로 동일시하려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2고 설파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찰머스는 의식의 존재가 제기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3

찰머스는 의식을 일으키는 두뇌의 기능을 밝히는 것과 의식 자체를 설명하는 것을 구분했습니다. 전자는 두뇌 과학이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문제'이지만, 후자는 의식의 본질을 규명하는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죠. 쉬운 문제는 두뇌 상태와 의식 상태 간의 상관관계를 발견하는 것이지만, 두뇌가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내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즉 물리적 과정과 의식적 상태를 설명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라는 말입니다. 

예컨대 특정 뇌파가 고통의 감각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뇌파가 어떻게 아픔을 '느끼는' 주관적 경험을 창출해내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습니다. 우리는 물리적 기제와 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설명적 간극'(explanatory gap)4을 쉽게 메울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철학자 레빈은 이런 사례를 제시합니다. 만일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한 과학자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과학자는 색을 지각하는 뇌의 작용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학자가 흑백 사진으로만 세상을 보며 살아왔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그는 빨강, 노랑, 파랑의 실제 색감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색에 대한 물리적 지식을 아무리 쌓아도 색을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색의 주관적 느낌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레빈의 논점입니다.5

이처럼 의식은 미시 물리학의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실재입니다. 햄릿의 고뇌, 빈센트 반 고흐의 황홀경, 링컨의 사명감 같은 내적 경험을 물리학의 언어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무모해 보입니다. 물리학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나'가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은 뇌가 곧 마음이며, 뇌의 기능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무신론자들은 의식이 뇌의 단순한 부산물이거나 착각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의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무의식적 유물론(eliminative materialism)6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내적 경험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물론의 모순은 명백합니다. 만일 마음이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면 우리의 사고와 이성 역시 그저 물리 작용의 결과물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물론자들의 생각조차도 그저 뇌세포의 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참 또는 거짓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질에 토대를 둔 이성의 판단은 그 자체로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무신론자들의 이성조차 결국 무신론에 의해 정당성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죠. 결국 물리주의는 이성의 토대를 허물어버리는 자가당착에 빠집니다.7

마음과 의식의 독립성을 옹호한 대표적 철학자로는 데카르트가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주체로서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 다시 말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를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습니다.8 의심할 여지없이 자명한 사실은 바로 '의식하는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설령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해도 최소한 '의심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이 의심할 수 없는 유일한 실재라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이 전적으로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물질은 연장성(extension)을 가진 반면 정신은 사유(thought)의 성질을 가집니다. 그는 이 둘을 존재론적으로 구분된 실체로 간주했습니다. 물론 데카르트에게도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숙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신이원론은 정신의 고유한 성질을 옹호하면서 의식에 대한 유물론적 환원을 비판하는 사상적 토대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찰스 태리는 물리학이 제1인칭의 주관적 경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9 메리의 방이라는 사고실험으로 유명한 프랭크 잭슨도 물리적 정보와 경험적 정보가 있음을 지적했습니다.10 그들은 의식의 비물리적 본성에 대한 직관을 철학적으로 옹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물론자들은 물질 외에 다른 실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까요? 그 이유는 과학의 방법론적 제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과학은 물리적 세계만을 탐구 대상으로 삼기에 물질계를 넘어서는 실재는 다루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물론자들은 과학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속단하는 것이죠. 그들에게 물질 너머의 세계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정인 셈입니다.

그러나 과연 과학의 방법론적 제약이 곧바로 존재론적 진리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과학으로 다룰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현재 과학의 지평을 벗어난 것일 뿐 실제로는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영역 밖의 것들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습니다.

의식은 바로 과학의 설명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에 해당합니다. 과학은 물질계 내에서 인과 관계와 규칙성을 탐구하는 데 집중합니다. 반면 의식은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주관적 실재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이 다루지 못한다고 해서 의식이 없다고 말할 순 없는 것이죠. 오히려 의식의 실재성은 물질계를 넘어서는 비물질적 세계가 존재함을 가리키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존재론적 유물론은 과학주의(scientism)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제한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주의는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만 진리로 인정하는 태도를 일컫습니다. 즉 과학이 전체 진리의 영역과 동일시되는 것이죠.

그러나 과학주의는 자기모순적입니다. '오직 과학만이 진리를 말해준다'는 명제 자체가 과학적 방법론으로 입증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11 이는 증명되지 않은 형이상학적 전제인 셈입니다. 일군의 현대 철학자들은 과학만능주의의 독단성을 비판하며 과학의 한계를 지적해 왔습니다.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로 곧바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의식의 문제는 오히려 물질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철학자 윌리엄 하스커는 물리적 사실만으로는 의식의 출현을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의식이 진화의 산물이란 관점에 회의를 표합니다. 생존 경쟁에서 물리적 상태만 중요하다면 의식 같은 비물리적 현상은나타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하스커는 물리적 기반만으로는 의식의 출현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12 의식은 물질계를 초월하는 비물질적 실재의 개입을 시사한다는 것이죠.

이런 의식의 문제는 유신론 세계관에 더 잘 부합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이 있기에 자유의지를 행사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초월하는 영적 실재를 부여하셨습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사유하며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영혼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닙니다. 

카이퍼는 이런 기독교 인간관의 독특성을 잘 포착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이라도 여전히 고귀한 피조물이라는 것, 인간 안에는 신적인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기독교 세계관이 가르치는 바"13라고 했습니다. 인간 내면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기에 우리는 초월적 세계를 동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루이스도 인간의 도덕의식이 초자연적 실재를 가리킨다고 역설했습니다. "우리 가슴속에는 어떤 도덕률이 실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 도덕률은 우리에게 옳고 그른 행동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이 도덕률이 우리 밖의 어딘가에 실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이 우주 너머에는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를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14 인간의 양심은 절대선의 실재성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도덕적 직관 속에서 초월적 세계를 강렬히 느낍니다. 정의감, 연민, 사랑 등의 도덕정서는 우리 안에 내재한 신적 법칙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 안에 각인된 영원한 진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선악의 절대 기준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바로 이 내적 확신이 영적 세계의 실재성을 증언하는 것이죠.

실험심리학자 리처드 스티븐슨은 사람들에게 내재된 도덕성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장소와 문화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선과 악에 대한 관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진화생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스티븐슨은 인간 도덕성의 초자연적 기원을 옹호하며 무신론에 반대했습니다.15

이처럼 우리의 의식 세계는 단순히 물질의 작용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현상들로 가득합니다. 지성과 이성, 자유의지, 사랑과 희생, 예술적 영감과 종교적 직관까지 인간 정신의 모든 측면이 여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초월적 세계와 연결된 영적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몸을 가진 영혼이며, 영원을 사모하도록 창조된 존재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후서 4:16-18)

우리의 궁극적 정체성은 물질이 아닌 영원한 영혼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서는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 의식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의식의 존재는 유물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정신세계의 실재성은 과학의 방법론적 한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통찰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와 인격, 도덕의식 등은 초월적 세계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물론 의식이 곧바로 유신론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의 비물리적 본성이 반드시 유신론으로 귀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의식은 적어도 물질주의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난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의 문제는 물질 너머의 세계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를 취하도록 만듭니다.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계시의 조명 아래 사유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죠.

결론적으로 의식의 존재는 물질주의가 아니라 유신론 세계관에 더 잘 부합합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물질과 정신의 이원적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형상을 부여하셨고 풍성한 내면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영혼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구원자가 필요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바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4-15)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의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귀한 존재임을 증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초월적 세계와 온전히 연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우리는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의 상한 심령을 싸매어 주시고 새 생명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2:9-10)

이 시간 의식의 신비를 통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발견하십시오. 그 영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뛰어넘어 믿음의 눈으로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풍성한 영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레퍼런스 출처: 
1. Thomas Nagel, "What is it like to be a bat?", The Philosophical Review, Vol.83, No.4, p.435, 1974.
2. Putnam, H., Representation and Reality, MIT Press, 1988, 120.
3. David Chalmers, The Conscious Mind: In Search of a Fundamental Theory, Oxford, 1996.
4. Joseph Levine, "Materialism and qualia: The explanatory gap", Pacific Philosophical Quarterly, 64: p.354, 1983.
5. Joseph Levine, "On Leaving Out What It's Like", in Davies and Humphreys (eds.), Consciousness, Blackwell, pp. 121–136, 1993.
6. Richard Rorty, "Mind-body Identity, Privacy and Categories", The Review of Metaphysics 19: pp. 24-54, 1965.
7. C. S. Lewis, Miracles: A Preliminary Study, HarperOne, 2015, p.39.
8. Descartes,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translated by John Cottingha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p.17.
9. Charles Taliaferro, Consciousness and the Mind of God, Cambridge, 1994.
10. Frank Jackson, "Epiphenomenal Qualia", The Philosophical Quarterly 32: 127-36, 1982. 
11. Karl Popper,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Routledge, 2002, p.17.
12. William Hasker, The Emergent Self, Cornell University Press, 1999, p.58.
13.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Hendrickson Publishers, 2008, p.54
14. C. S. Lewis, Mere Christianity, HarperOne, 2001, p.34.
15. Richard G. Swinburne, The Existence of God, Clarendon Press, 2004, p.215.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1.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2-3.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2-4.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3.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6. 체험적인 증거들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8. 결정하셨습니까?

9. 구원의 길

전직 깡패 박영문씨의 실화

필립 만토파가 직접 겪은 지옥의 참상

지옥에 있는 크리스천들

어느 목사님의 화려했던 과거 (실화)

26세에 세계 최고의 증권 회사 부사장에 오른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

최선규 아나운서의 충격적인 실화 - 즉사했던 딸이 다시 살아나다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ebook (클릭)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gospel79.netlify.app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