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뇌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 의식의 기원

by gospel79 2024. 4. 1.
728x90
반응형

 

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뇌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 의식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합니다. 우리 안에는 주관적이고 질적인 느낌들의 세계가 존재하죠. 붉은 장미를 볼 때의 감흥, 아름다운 선율에 젖어드는 황홀경, 사랑하는 연인을 끌어안을 때의 따뜻함, 슬픈 기억에 잠길 때의 먹먹함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모든 감각과 감정, 정서적 체험들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의식(consciousness)입니다.

데이비드 차머스는 의식을 '경험하는 느낌(what it is like)'이라고 정의했습니다.1 예컨대 박쥐가 되어본 적이 없는 우리는 박쥐로서의 경험, 즉 초음파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만큼 의식은 주관적이고 내밀한 체험인 것이죠.

그렇다면 이 신비로운 의식은 어떻게 발생한 걸까요? 이것이 바로 현대 뇌과학과 심리철학이 풀고자 하는 궁극의 난제입니다. 21세기 들어 뇌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fMRI나 PET 등 첨단 뇌영상 장비의 도움으로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미시적 작동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의식의 본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평균 1.4kg 정도의 뇌조직이 어떻게 3D 컬러의 생생한 내적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20~100Hz의 뇌파가 어떻게 주관적 느낌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해서는 뇌과학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븐 시스템과 글리아 세포, 시냅스와 신경전달물질 같은 뇌의 하부 구조로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같은 의식의 질적 속성, 말하자면 감각의 주관적 느낌(qualia)을 설명해내기 어려운 것이죠. 이 심연은 그저 물리적 뇌 상태를 아무리 꼼꼼히 살펴봐도 좁혀지지 않는 '설명적 간극'(explanatory gap)2으로 남아있습니다.

토머스 네이글은 "[뇌 상태에 관한] 물리적 사실들이 주어졌을 때, 왜 그것이 특정한 의식 상태를 낳아야만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즉 정신적인 것이 물리적인 것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3 

신경생물학자 캔델 역시 "뇌가 어떻게 물질적 실체인 뇌에서 비물질적 실체인 마음을 창출해내는지는 신경과학이 풀어야 할 마지막 난제"라고 고백했습니다.4 뇌과학의 대가들조차도 의식의 발생에 대해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의식 문제가 뇌과학으로 풀리기 어려운 걸까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의식의 주관성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각과 느낌, 정서 같은 내적 경험들은 본질적으로 1인칭적 시점에 속하는 현상들입니다. 주관적 체험은 그것을 경험하는 자의 관점에서만 온전히 포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기본적으로 객관적 관찰과 실험을 통해 3인칭적 데이터를 다룹니다. 뇌의 화학 물질이나 전기 신호는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공적 실체이지만, 느낌과 감정은 내적 시점에서만 직접 경험되는 사적 실체인 것이죠. 따라서 3인칭적 방법론인 과학만으로는 의식의 1인칭적 성질을 완전히 포착할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붉은색을 볼 때 후두엽의 시각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뇌 활동이 왜 하필 붉은색의 느낌을 낳는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경세포의 발화 패턴만 가지고는 붉은색의 생생한 감각을 재구성할 수 없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주관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의식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5입니다.

철학자 프랭크 잭슨은 이런 사고실험을 제안했습니다. 색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흑백방에서만 살아온 메리라는 여성 신경과학자가 있다고 칩시다. 메리는 색에 관련된 모든 물리적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파장의 차이라든가 색을 처리하는 뇌의 신경 메커니즘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어느 날 메리가 처음으로 흑백방 밖으로 나와 붉은 장미를 보게 됐습니다. 잭슨은 이때 메리가 붉은색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아무리 색에 대한 물리적 지식이 완벽하더라도 실제로 붉은색을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색의 주관적 속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죠.6

메리의 사고실험은 의식 경험의 느낌(feel)이 물리적 사실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실재임을 시사합니다. 주관성은 객관적 관찰로는 온전히 포착될 수 없는 의식만의 본질적 성질인 셈입니다. 이는 의식이 단순히 뇌 상태의 부산물이 아니라 물리 세계를 넘어서는 비물리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뜻합니다. 

세계적인 뇌과학자 크릭조차도 "아직 우리는 주관성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말하며 겸허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주관적 느낌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7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난제를 의식의 '설명적 간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뇌의 신경 상태와 의식적 경험 사이의 간극은 단순히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론적 한계를 드러내는 근본적인 '심연'(abyss)인지도 모릅니다.

일군의 철학자들은 이 간극이 결코 메워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관성과 객관성 사이에는 존재론적으로 가로놓을 수 없는 깊은 계곡이 있다는 것이죠. 

데이비드 챠머스는 '지식 논증'(knowledge argument)을 통해 의식에 관한 물리적 사실만으로는 주관적 경험의 본질을 알 수 없다고 역설했습니다. 색맹인 메리가 색의 물리적 본성은 다 안다 해도 실제 색 경험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의식이 물질로 환원 불가능한 '추가적 사실'(further facts)을 함축하고 있음을 뜻합니다.8

토머스 네이글은 한발 더 나아가 주관성이 결코 객관적 관점으로 번역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론적 영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의식에는 물리 법칙으로 포착되지 않는 '감각의 질적 성격'(qualitative character)이 있다는 것이죠.9 

이는 주관적 의식이 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를 초월해 있음을 시사합니다. 신경상태와 의식상태는 법칙적으로 연결될 수 없는, 독립적 존재 영역에 속해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관적 느낌을 객관적 시선으로 완전히 포착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식의 본질에 관해 네이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험을 가진 존재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마도 영원히 물리학의 언어로 기술될 수 없을 것입니다. [...] 그 경험의 주관적 성격은 그 자체로 포착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10  의식은 기술된다기보다는 오직 체험될 수밖에 없는 신비로운 실재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감정과 감각을 물질의 작용으로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러운 발상인지도 모릅니다.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은 화학작용으로 환원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현상들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철학자 맥긴은 의식에 대한 유물론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시를 화학으로 설명하려 하는 것"11과 같다고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난제를 낳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물질에서 어떻게 마음이 생겨나는가'라는 물음, 즉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12에서 출발합니다. 데카르트 이래로 심신 관계를 둘러싼 철학적 논쟁은 계속되어 왔지만, 아직도 만족스러운 해답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유물론자들은 마음이란 복잡한 뇌 상태에 지나지 않으며 의식 역시 뇌 활동의 부산물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뇌 작용만으로는 풍부한 내면세계의 창발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칼 포퍼는 "물리적 과정에서 어떻게 비물리적 의식이 생겨날 수 있을지 나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13며 의식에 대한 유물론적 환원을 비판했습니다.

반면 이원론자들은 마음과 물질을 독립된 실체로 간주합니다. 이들은 정신이 뇌를 넘어서는 비물리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의식을 물질과 별개의 존재론적 영역으로 상정하는 것이죠. 그러나 비물질적 실체인 정신과 물질적 실체인 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여전히 해명되지 않은 난제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 데이비드 차머스는 의식에 대한 '범심주의'(panpsychism)를 제안했습니다.14 그에 따르면 의식은 복잡한 정보 처리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편재해 있는 근본적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물질에는 의식의 씨앗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진화의 과정에서 고도로 조직화되어 인간 의식으로 발현된다는 것이죠. 

차머스의 범심주의는 전통적인 유물론과 이원론의 딜레마를 피해가면서도 의식을 근본적 실재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물질이 어떻게 원초적 의식을 품게 되었는지, 그리고 하위 차원의 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고차원적 주관성으로 전환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깁니다.

결국 현재로서는 그 어떤 입장도 의식의 근원에 대한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과학만으로는 의식의 창발을 설명하기 역부족이고, 그렇다고 비물질적 영역을 도입하자니 그것의 작동 방식이 불분명한 것이죠. 이런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의식 문제를 대하는 근본적인 자세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의식을 물리 세계의 테두리 안에서 풀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물질로 온전히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실재라면, 그 기원 역시 물질을 초월하는 어떤 근원으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유신론 세계관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릅니다.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인간을 지성과 영성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고 가르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며, 물질을 초월하는 영혼을 부여받은 독특한 피조물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의 차원을 뛰어넘는 영적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도덕적으로 선택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생령', 곧 영혼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신론 세계관에서는 의식의 기원을 물질계 너머의 실재, 곧 초월적 창조주로부터 찾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형상을 불어넣으심으로 인격성과 자아의식, 그리고 영적 지향성을 품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곧 인간 의식의 존엄성과 신성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관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고귀한 선물이자 초월적 차원을 향한 통로인 셈이죠.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축복하신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는 지성과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에 진리와 선, 아름다움을 향한 갈망을 심어두셨습니다. 이는 곧 인간이 단순한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이고 초월적인 차원을 품은 존재임을 뜻합니다.

칼뱅은 인간의 영혼에 깃든 신적 원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신의 형상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도 신적인 속성이 나타납니다. [...] 그 영혼은 하늘의 은사로 채워졌으며 영원불멸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15 우리의 내면에는 하늘을 향한 비밀스러운 갈망, 영원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내재해 있는 것이죠.  

이처럼 유신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의식은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빚어진 경이로운 비물질적 실재입니다.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고유의 주관성은 우리 안에 내재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의식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해소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창조주의 형상이 우리 안에 각인되었는지, 영혼은 어떻게 육체와 상호작용하는지 등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유신론적 창조관은 의식을 물질계의 그늘에서 해방시켜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유물론의 관점에서 의식은 그저 복잡한 물리 작용의 우연한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신론의 렌즈를 통해 본다면 의식은 초월적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심어준 신적 원리의 발현인 셈입니다. 우리의 주관성은 단순한 뇌의 부산물이 아니라, 영혼의 창(window)을 통해 비치는 신적 실재의 투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성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단순한 물질의 우연한 조합체가 아니라 조물주의 섬세한 솜씨로 지어진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니까요.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의 존엄함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6,9)

이 시편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인간의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고귀한 존재로서의 자아 인식은 결국 조물주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영적 유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물질이 우연히 뿜어낸 부산물일까요, 아니면 초월적 정신의 고귀한 창조물일까요? 이는 단순히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연결된 중차대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물질 그 이상의 존재라면, 우리에게는 물질계를 초월하는 삶의 근거와 희망이 있게 될 것입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테고, 끝없는 무의미 앞에서 좌절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숨결 가운데 역사하시는 영원하신 창조주의 손길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도 바울은 세상의 지혜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인간의 오만한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경륜을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의식의 신비 앞에 설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너머의 초월적 실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무한하신 창조주의 솜씨 앞에서 겸손해질 때, 유한한 피조물로서의 자신을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의식이라는 수수께끼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온전히 꿰뚫을 수 없는 피조물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의 근원이요 목적이심을 고백하라고 말이죠.

존 폴킹혼은 말합니다. "세상은 지적 탐구에 열려 있을 뿐 아니라, [...] 동시에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줄 것이라는 전제와, 피상적인 자연주의도 거부합니다. [...] 이는 과학과 종교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개방적 공간을 마련해줍니다."16 의식의 미스터리는 물질 너머의 실재를 향해 열려 있는 세계관을 요청하는 셈이죠.

바로 여기, 과학의 자족적 폐쇄성이 깨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초월적 차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형상의 신비를 품은 우리 안의 '생령'을 발견하는 것이죠. 그 영혼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참 자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의식의 경이로움 속에서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참된 정체성을 회복하시길 기도합니다. 그 만남의 자리로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아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창조주와의 놀라운만남으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과 다릅니다. 그것은 의식의 깊은 곳에서 우리 영혼에 속삭이는 위로요 소망입니다.

과학적 탐구를 통해 의식의 신비에 접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식의 근원이신 창조주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과 교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부어주시는 생명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창조주의 형상을 발견함으로써 초월적 실재와의 만남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 만남을 통해 흘러나오는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의 의식을 온전히 채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의식의 신비를 통해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십시오. 그분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의식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을 초월하여 신앙과 영성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로서, 우리 각자가 이 초월적 만남에 응답하기를 희망합니다. 오직 그 만남을 통해서만 우리는 참 자아를 발견하고 온전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뇌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의식의 신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이 글이 의식에 관한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겸손한 자세로 경이로운 정신세계의 신비 앞에 서도록 초청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의식의 존재는 단순히 물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인 차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빚어진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진리와 선을 갈망하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한한 존재를 향한 무한자의 사랑의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초월자를 온전히 만날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해 창조주와 단절된 것이 인간의 근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구원자가 필요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안개 속을 방황할 수밖에 없는 길 잃은 존재들이었습니다.

바로 그 길 잃은 우리에게 희망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새롭게 빚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 저 너머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린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의식의 신비는 궁극적으로 창조주와 그의 구속 사역을 가리키는 길잡이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바로 그 길 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안에 심어진 창조주의 형상을 발견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옷 입을 때, 우리는 온전한 참 자아를 회복하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분이 열어주신 영생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의식의 경이로움 속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 초월적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의 영혼은 참된 안식과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의식의 수수께끼 앞에서 과학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오직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열리는 경이로운 신비의 세계입니다. 그 경외로움 속에서 조물주의 형상을 입은 귀한 존재로서, 창조주와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레퍼런스 출처:
1. David Chalmers, The Conscious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p.4.
2. Joseph Levine, "Materialism and Qualia: The Explanatory Gap", Pacific Philosophical Quarterly, 64, 1983, pp. 354–361.
3. Thomas Nagel, "What is it like to be a bat?", Philosophical Review, 1974, 83: 435-450.
4. Eric Kandel, et al. Principles of Neural Science, Fifth Edition, McGraw-Hill, 2012, p.376.
5. David Chalmers, "Facing Up to the Problem of Consciousness", 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 1995, 2: 200-219.
6. Frank Jackson, "Epiphenomenal Qualia", Philosophical Quarterly, 1982, 32: 127-136.
7. Francis Crick, The Astonishing Hypothesis, Simon and Schuster, 1994, pp.3-7.
8. David Chalmers, The Character of Consciousness,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p.126. 
9. Thomas Nagel, "Panpsychism", in Mortal Questi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9.
10. Thomas Nagel, Mind and Cosmos,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p.44.
11. Colin McGinn, The Mysterious Flame, Basic Books, 1999, pp.13-14.
12. Anthony Kenny, The Metaphysics of Mind,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p.17.
13. Karl Popper and John Eccles, The Self and Its Brain, Routledge, 1983, p.96. 
14. David Chalmers, "Panpsychism and Panprotopsychism", in Consciousness in the Physical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 2015.
15.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anslated by Henry Beveridge, James Clarke, 1962, Book I, Chapter XV, Section 2.
16. John Polkinghorne, Belief in God in an Age of Science, Yale University Press, 1998, p.92.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한 고대 문서 이야기

1.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2-3.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2-4.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3.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6. 체험적인 증거들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8. 결정하셨습니까?

9. 구원의 길

전직 깡패 박영문씨의 실화

필립 만토파가 직접 겪은 지옥의 참상

지옥에 있는 크리스천들

어느 목사님의 화려했던 과거 (실화)

26세에 세계 최고의 증권 회사 부사장에 오른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

최선규 아나운서의 충격적인 실화 - 즉사했던 딸이 다시 살아나다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ebook (클릭)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gospel79.netlify.app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