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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사회의 필연적 귀결, 자살률의 급증이 말해주는 것

by gospel79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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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무신론 사회의 필연적 귀결, 자살률의 급증이 말해주는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자살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WHO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80만 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자살은 15-29세 연령층의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1]. 그런데 최근 여러 조사 결과는 무신론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자살률이 높다는 충격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갤럽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무신론 국가인 중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6명으로 세계 평균(11.4명)의 두 배를 훌쩍 넘었습니다. 반면 기독교 국가인 필리핀의 자살률은 2.1명에 불과했습니다[2].

2014년 서던메소디스트대 연구팀은 1981년부터 2007년까지 42개국을 분석한 결과 무신론 국가일수록 자살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연구 책임자인 크리스 엘리슨 교수는 "종교가 개인의 정신건강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3]. 한편 2018년 미국 CDC의 조사 결과 역시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조사 대상 중 종교가 없다고 답한 이들의 자살 사고 비율이 15.1%였던 반면, 개신교 신자들의 비율은 3.6%에 불과했던 것입니다[4].

그렇다면 왜 무신론 사회에서 자살률이 더 높은 걸까요? 그 근본 원인은 바로 무신론 세계관이 삶에 대한 철저한 허무주의를 낳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 없는 우주관 하에서 인간은 그저 우연히 존재하게 된 물질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삶에는 그 어떤 궁극적 의미나 초월적 가치, 영원한 소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5]. 이는 결국 극단적 염세주의와 자포자기로 귀결되기 쉬운데, 실존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를 "부조리(absurdity)"라 명명한 바 있습니다. 그의 표현대로 인생은 "쓸모없고, 부질없고, 고통스러운" 것일 뿐입니다[6].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니체가 남긴 충격적 선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초인이냐 최후의 인간이냐?"[7] 니체는 신의 죽음이 결국 가치 체계의 붕괴와 허무주의로 이어질 것임을 예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할 길은 스스로를 신으로 세우는 '초인'의 정신이거나, 아니면 그저 동물적 생존에 안주하는 '최후의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초인이 되는 길은 너무나 고독하고 험난합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무의미를 인정하고 그저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최근의 현상을 잘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니힐리즘과 쾌락주의가 팽배한 무신론 사회에서 사람들은 극도의 황폐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한때 무신론자였던 저명 철학자 J. 부에노는 말합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삶은 분명 허무하다. 이는 압도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다. '어떤 의미도 없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의미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8] 삶이 무의미하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결국 죽음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반면 기독교 세계관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제공합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9]. 이는 우리가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나님을 닮은 존귀한 가치를 지녔음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전체 역사가 하나님의 구속 사역 안에서 통일적 의미를 갖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9-10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0]. 인류역사는 그저 무의미한 연대기의 연속이 아니라, 주권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해 가시는 구속 드라마인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에게 삶은 신성하고 숭고한 가치로 충만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져야 할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시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의 뜻을 이뤄가는 귀중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산다는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현세에서 겪는 모든 고난과 좌절도 영원한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고 담대히 고백했습니다[11].

앞서 언급한 엘리슨 교수는 종교가 자살예방에 기여하는 네 가지 기제로 "규범적 메시지, 사회적 통합, 희망과 의미, 초월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12]. 먼저 기독교는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자살을 금기시합니다. 또한 교회공동체는 외로운 현대인에게 든든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제공해줍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고난의 현실을 넘어서는 소망과 영원한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기도와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초월자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며 연약한 자신을 넘어서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해답은 철저한 무신론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참된 위로와 소망의 원천은 바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와 형벌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묵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 십자가만이 우리의 모든 죄와 수치, 절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공포에 짓눌리지 않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살펴보아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후13:5)[14]. 지금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혹시 절망과 염세주의에 사로잡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생명을 지켜주신 주님께 충성을 다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15]는 말씀을 기억하며, 삶의 연단 가운데서도 늘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된 의미와 목적이 있는 인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은혜를 깊이깨달아 날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절망과 무의미로 내모는 유혹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16]고 당당히 고백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죽음의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사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의 삶을 주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15:58)[17].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무장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 우리 삶은 결코 무의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이 진리를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벅찬 나날의 연속일지라도 주님은 반드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시편 23편 4절의 고백처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18].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위로자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붙드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고민과 아픔을 기도로 주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홀로 싸우지 않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성도들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여러분의 연약함을 사랑으로 품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교회의 문을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며 서로의 짐을 나누는 가운데, 여러분은 새 힘을 얻고 소망 가운데 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온 힘을 다해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안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밤이 깊으면 낮이 가까운 법입니다. 지금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겐 부활하신 구주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9]. 그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저는 이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는 모든 분들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수치, 연약함과 절망을 그분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상처를 싸매주시고 새 힘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날, 여러분의 인생은 완전히 새롭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삶에 갇혀 지내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나는 인생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께 마음을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만유의 주재로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크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연약한 우리 곁으로 찾아오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기도로 그분을 부르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사랑과 긍휼의 눈길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 초대에 응하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여러분의 삶은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무신론 사회의 필연적 귀결, 자살률의 급증이 말해주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무신론이 판치는 사회에서 삶의 의미와 희망을 상실한 이들이 자살로 내몰리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기독교 신앙은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주며, 고난 속에서도 견딜 힘을 부여해줌을 강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야말로 절망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됨을 역설하였습니다. 

오늘 제 말씀이 절망 가운데 있는 한 영혼이라도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러분에게 참된 생명과 기쁨, 만족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길에는 결코 후회가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이 복된 길을 걸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ferences
[1] 『세계 자살 예방의 날: 2019년 핵심 사항』, 세계보건기구(WHO), 2019. 
[2] "Religiosity Highest in World's Poorest Nations," Gallup, August 31, 2010.
[3] John Ayers, et al., "Suicide Risk Landscapes: A View from Google," SSRN Electronic Journal, August 12, 2014. 
[4] "Web-based Injury Statistics Query and Reporting System (WISQAR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2018. 
[5] William Lane Craig, Reasonable Faith, 3rd ed. (Wheaton: Crossway Books, 2008), 71-91.
[6] Jean-Paul Sartre, Nausea, trans. Lloyd Alexander (London: Penguin Books, 2000), 132. 
[7] Friedrich Nietzsche, Thus Spoke Zarathustra, trans. R. J. Hollingdale (London: Penguin Books, 1961), 41.
[8] Julian Baggini, Athe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80–84.
[9]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10] Ibid.
[11] Ibid. 
[12] Chris Ellison, "Religious Involvement and Self-Perception among Black Americans," Social Forces 71, no. 4 (1993): 1027-1055.
[13]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14] Ibid.
[15] Ibid.
[16] Ibid.
[17] Ibid.
[18] Ibid.
[19] Ibid.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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