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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공문서를 통해 본 기독교 박해의 역사적 증거

by gospel79 202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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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 관련 1차 사료들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는 단순히 종교적 차원을 넘어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복합적인 갈등의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박해의 역사적 실재성은 로마 제국이 남긴 다양한 공식 문서와 기록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됩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그의 저서 '연대기'에서 네로 황제 시기의 기독교 박해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64년 로마 대화재 이후 네로는 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고 이를 구실로 대대적인 박해를 자행했습니다[1]. 그는 당시 처형된 기독교인들이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개에게 물려 죽임을 당하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불태워 죽임을 당한 끔찍한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2].

 

또 다른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도 그의 책 '황제전'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처형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는 네로에 의해 처형당한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새롭고 해로운 미신에 물든 자들"이라고 표현했는데[3], 이는 당시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위협적이고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밖에도 로마의 법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가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재판과 처형 과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플리니우스는 이 편지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강요했고, 이를 거부할 경우 처형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4].

 

이처럼 로마 제국이 생산한 공식 기록과 문헌들은 초대교회 시기 기독교인들이 겪은 극심한 박해의 역사적 사실성을 분명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아니라 박해의 주체였던 로마인들의 증언을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것이기에 더욱 신뢰할 만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박해의 구체적인 양상과 규모

로마 제국 전역에서 행해진 기독교 박해는 그 잔혹성과 규모 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네로와 도미티아누스를 비롯한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제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박해를 단행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타키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네로 시기에는 "[기독교인들이] 짐승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개에게 물려 죽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기도 하고, 해질 무렵이 되면 불태워져 하룻밤의 횃불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5]. 이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비참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학살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박해는 주로 로마의 수도인 로마에서 집중적으로 자행되었는데,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이 대부분 네로 치하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6]. 이는 초기 기독교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박해는 로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방대한 영토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들의 칙령에 따라 체포되고 처형되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2세기 말에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화형을 당하며, 짐승들 앞에 던져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7], 이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억압이 장기간 광범위하게 지속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로 목숨을 잃었는지 정확한 숫자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름이 초대교회 문헌과 순교록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고, 이들의 숫자가 수천에서 수만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점을 고려할 때[8], 박해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적대감과 박해의 원인

로마가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유독 기독교를 적대시하고 극심하게 박해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로마는 기독교를 불법 종교로 간주하고 제국의 통합과 안정을 해치는 위협적 요소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치, 경제, 문화, 사상적 차원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 당시 로마 제국은 다신교를 바탕으로 한 국가 종교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신격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이는 제국 통치의 근간을 이루는 이데올로기였습니다[9]. 그런데 기독교는 唯一神 사상을 토대로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전면 부정함으로써 로마의 근본적인 가치관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었습니다[10].

 

뿐만 아니라, 당시 기독교 공동체는 평등과 박애를 중시하는 급진적 윤리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노예와 자유민, 빈자와 부자, 남자와 여자의 구별 없이 모두 평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였고, 활발한 구제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았습니다[11]. 이는 노예 제도와 엄격한 신분제를 근간으로 하는 로마 사회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교리와 윤리 면에서 로마의 종교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체제 전반과 양립할 수 없는 급진적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로마 제국은 이를 불온하고 위험한 세력으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탄압했던 것입니다.

박해 중에도 지속된 기독교의 성장

그러나 로마의 집요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오히려 더욱 확산되고 성장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3세기 카르타고의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했는데[12], 이는 박해가 역설적으로 기독교 전파에 기여했음을 함축하는 표현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 속에서 순교했지만, 이는 오히려 민중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진실성과 순수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맨 정신으로 사자의 먹이가 되어 잔혹하게 죽어가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끝까지 지킨 순교자들의 모습은 많은 로마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박해가 극심할수록 기독교인의 숫자는 더욱 늘어갔습니다[13].

 

이는 초대교회 문헌과 역사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2세기 후반부터 3세기 초반까지 북아프리카의 교회 지도자였던 키프리안은 그의 서한에서 당시 기독교 공동체가 급성장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교회의 조직과 제도를 체계화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14]. 이는 극심한 박해 와중에도 기독교가 창궐하듯 전파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박해의 결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저버리고 배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설령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앙을 포기한다 해도, 로마의 박해가 그칠 것 같지 않자 결국 많은 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고 합니다[15]. 신앙을 지키다 죽는 순교보다는 살아남아 신앙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기독교는 로마 제국 곳곳에 교회를 세우며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국교로 공인될 때까지 그 위상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로마의 박해는 기독교의 성장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던 셈입니다.

고고학 발굴로 확인되는 박해의 증거들

로마 제국 문헌을 통한 기록뿐 아니라,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도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의 지하 카타콤(catacomb)에서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무덤과 기독교 문양, 상징물 등이 발굴되었습니다.

 

카타콤은 로마 제국 시대 기독교인들이 장례 의식을 치르고 순교자들을 안치하기 위해 만든 지하 묘지입니다. 박해를 피해 은밀히 신앙생활을 해야 했던 초대 교인들에게 카타콤은 예배와 모임을 위한 은신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16]. 로마 교외에는 지금도 60여 개가 넘는 카타콤이 분포해 있는데, 그 길이를 모두 합치면 약 590km에 이른다고 합니다[17].

 

이 카타콤에서는 순교자들의 유해가 발견되는 것은 물론, 벽면에 남겨진 다양한 기독교 문양과 상징, 순교자를 기리는 명문(銘文) 등이 다수 확인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깔리스투스 카타콤'에서는 순교자들의 무덤을 장식한 종려나무 가지 문양이 발견되었는데[18], 이는 계시록에 언급된 순교자의 상징(계 7:9)과 일치합니다. 또한 '도미틸라 카타콤'에서는 순교자 성녀 페트로닐라를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19].

 

이 밖에도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카타콤에서 발견된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20]. 이는 초대 기독교인들이 순교 현장 가까이에 순교자들을 안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기독교 박해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임을 물질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독교 측 기록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고고학이라는 객관적 학문을 통해서도 그 진위가 입증되고 있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피와 희생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결국 로마 제국 전역에 뿌리내려 꽃을 피웠고, 3세기 말에 이르면 기독교는 이미 제국 내 가장 큰 종교로 부상하게 됩니다. 불과 300여 년 만에 박해받던 작은 무리에서 제국의 국교로 성장한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지금까지 로마 제국의 공식 문서와 기록, 고고학적 발견 등을 통해 초대교회가 겪은 극심한 박해의 실상을 살펴보았습니다. 로마의 잔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오히려 급성장하며 제국의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기독교 신앙의 진실성과 생명력을 증명하는 강력한 징표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으로 인해 박해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모범을 통해 우리는 박해를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진리와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과 역경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는 값진 상급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멈추지 않는 것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참된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신앙을 되새기며,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 오실 그날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진실로 기독교는 어떤 역경과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불굴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이 글이 객관적으로 입증했으리라 확신합니다.

References:

  1. Tacitus, The Annals 15:44
  2. Ibid.
  3. Suetonius, The Lives of Twelve Caesars, Nero 16
  4. Pliny the Younger, Letters 10:96
  5. Tacitus, The Annals 15:44
  6. Eusebius of Caesaria, Ecclesiastical History II.25
  7. Tertullian, Ad Nationes I.7
  8. W.H.C. Frend, Martyrdom and Persecution in the Early Church (Princeton: Anchor Books, 1967), pp. 413-417.
  9. Henry Chadwick, The Early Church (New York: Penguin Books), pp. 23-24.
  10. Robert L. Wilken, The Christians as the Romans Saw Them (Yale: Yale University Press, 2003)
  11. Henry Chadwick, The Early Church, pp. 54-56.
  12. Tertullian, Apologeticum 50
  13. W.H.C. Frend, The Rise of Christianit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 pp. 127-128.
  14. Cyprian, Epistle 39
  15. Eusebius of Caesaria, Ecclesiastical History, VI.41
  16. J. Stevenson, The Catacombs: Life and Death in Early Christianity (Nashville: Thomas Nelson Publishers, 1985), pp. 13-27.
  17. Ibid., p. 25.
  18. L. Hertling & E. Kirschbaum, The Roman Catacombs and Their Martyrs (Milwaukee: The Bruce Publishing Company, 1956), p. 27.
  19. J. Stevenson, The Catacombs, p. 52.
  20. Paul Keresztes, Imperial Rome and the Christians, vol. 2 (Lanham: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89), 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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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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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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