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기독교 탄압 개관
로마 제국은 기원후 1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약 300여 년간 기독교인들에 대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그 시작은 네로 황제(재위 54-68년) 때로, 그는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며 잔인한 처형을 감행했습니다[1]. 이후에도 도미티아누스(81-96년), 데키우스(249-251년),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년) 등 수많은 황제들이 반기독교 정책을 펼쳤고, 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가 기독교를 탄압한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단순히 황제 개인의 성향이나 정치적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로마의 전통 종교와 문화, 사회 체제를 수호하려는 제국 지배층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2]. 원로원(Senate) 문서에 드러난 제국 당국의 인식과 정책 기조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 탄압의 배경을 보다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의 국가 종교 정책과 황제 숭배
로마 제국은 건국 초기부터 다신교 전통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주피터를 비롯한 여러 신들에 대한 제의와 숭배는 로마인들의 일상이자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등장은 이러한 로마의 종교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키케로 서한집』에는 "종교는 로마의 위대함을 지탱하는 기둥"이라거나 "국가의 운명은 신들에 대한 경건함에 달려 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3]. 원로원 의원이자 법률가였던 키케로는 국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시민의 의무로 간주했고, 새로운 종교의 유입을 경계했습니다. 이는 유대교나 기독교에 대한 로마 지배층의 인식을 잘 대변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황제 숭배를 거부한 것도 박해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플리니우스 서한집』에 묘사된 것처럼[4], 로마 제국에서는 황제를 신격화하고 제단에 절하는 것이 충성의 표식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유일신 여호와만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는 우상숭배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이유로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며 우상숭배를 경계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황제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반역자로 낙인찍혔고, 이는 곧 박해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의심과 두려움
기독교인들이 수적으로 급격히 증가하면서, 그들을 향한 로마 사회의 의심과 두려움도 깊어졌습니다. 53-54년경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칙령을 내렸는데(행 18:2 참조), 이는 당시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기던 인식을 반영합니다[5]. 즉 기독교는 제국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이방의 미신"으로 치부되었던 것입니다.
68년경 갈바 황제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로원 문서에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선동과 폭동의 위험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6]. 기독교인들이 종종 은밀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던 사실이 제국 당국에는 불온한 것으로 비쳐졌던 듯합니다. 3세기의 변증가 터툴리아누스는 『변증』에서 "비밀스런 모임을 가졌다는 이유로 우리는 '환란의 단체'로 불리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7].
또한 『타키투스 연대기』에는 기독교가 "인류에 대한 증오"를 조장한다는 대목이 등장합니다[8].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며 타종교를 배격하는 태도를 보였던 점이, 외부인의 눈에는 반사회적 행위로 비춰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타키투스를 비롯한 로마인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불과했지만,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순교와 저항
그러나 탄압이 거세질수록 역설적이게도 기독교는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초기 교부들의 문헌에는 이 시기 기독교인들의 굴하지 않는 신앙과 담대한 순교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2세기 중반 스뮈르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로마 총독의 심문에서 이렇게 답했다고 전해집니다. "86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 왔는데 그가 나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습니다. 내 왕이요 구주이신 그분을 내가 어찌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9]. 폴리갑은 이교도들 앞에서 당당히 신앙을 증언하다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순교자들의 신앙 고백은 오히려 복음 전파의 기회가 되었고, 불신자들에게 강력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한편 기독교 지도자들은 박해에 대한 지적 대응에도 힘썼습니다. 177년 루그두눔(리옹) 교회가 겪은 극심한 박해에 대해, 이레니우스 감독은 "진리를 위해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며 『박해사』를 남겼습니다[10]. 같은 시기 터툴리아누스는 『국가론』을 통해 "사자와 십자가 앞에서 신음하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로마의 진정한 시민"이라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11]. 이들의 변증은 박해에 맞선 교회의 지적, 영적 저항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기독교 공인
결국 로마의 집요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약 300년 만에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이 극적 전환의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3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회심입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는 막센티우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하늘에서 "이 표징으로 정복하라"는 환상을 보았고, 그 뒤 군기에 그리스도의 머리 글자인 카이 로(☧)를 새겨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12].
이듬해 콘스탄티누스는 동료 황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교회에 재산을 돌려주도록 명령했습니다[13]. 기독교 박해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순간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자신도 후에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제국 전역에 교회 건축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 친교정책을 펼쳤습니다[14].
물론 콘스탄티누스의 회심에 정치적 동기가 작용했으리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국 최고 통치자의 종교적 선택이 이전까지 박해받던 기독교의 지위를 극적으로 반전시켰다는 사실입니다. 터툴리아누스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인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 되어, 마침내 로마 제국 전체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15]. 박해와 순교의 역사는 오히려 교회를 성장시키고 복음을 확산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셈입니다.
지금까지 로마 제국 시대 기독교 박해의 역사적 배경을, 특히 원로원 문서와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습니다. 국가 종교 체제와 황제 숭배 문화, 기독교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 등이 박해의 주된 동인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순교자들의 신앙과 지도자들의 변증은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세우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복음은 시련과 고난을 딛고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기독교 신앙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증언되어야 합니다. 박해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결코 헛되이 흘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복음 확산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기독교가 결코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웅변해 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부활의 진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로마 제국의 칼날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실제 역사적 사실임을 전제로 설명될 수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간 복음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망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순교자들처럼 담대한 신앙으로 응답하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생명이요 구원자이심을 고백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환란 속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드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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