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기독교 전파의 새로운 방향과 전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역사적 의미와 기독교에 미친 영향
기원후 70년에 발생한 예루살렘 멸망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당하는 엄청난 참화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유대 전쟁 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인한 유대인 사망자 수는 110만 명에 달했으며, 9만 7천 명이 포로로 잡혀갔다고 합니다[1].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 역시 『역사』에서 이 전쟁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포위전 중 하나"였다고 표현했습니다[2].
예루살렘 멸망은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서 예루살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사도들은 모두 유대인이었으며, 그들의 생애와 사역, 복음서와 서신서의 내용 등은 유대교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 몰락은 기독교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루살렘 멸망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세기 교부 멜리토는 "교회는 유대교에서 태어났으나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오히려 은혜 아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3]. 즉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유대교의 율법 체계와 성전 예배가 물리적으로 붕괴되자, 기독교는 유대교와의 연속성보다는 단절을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멸망 이후 기독교는 이방인 선교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유대 중심의 기독교에서 벗어나 이방 세계를 향한 복음 전파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자신의 책에서 바울의 선교 여행을 강조함으로써, 유대 민족주의를 벗어나 복음이 모든 민족을 향해 전파되어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의 결말 부분에서 예수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지상 명령을 제자들에게 남기셨는데(막 16:15), 이는 이방인 선교의 당위성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박해의 격화와 순교 정신
예루살렘 멸망 이후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로마는 유대 전쟁 와중에 기독교를 반로마적이고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종교로 간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독교인들 중 상당수는 예루살렘 함락을 로마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해석했고, 종말이 다가왔다는 묵시적 분위기가 교회 안에 팽배했습니다. 이는 로마 당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타키투스는 64년 로마 대화재 당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방화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로마 사회에서 얼마나 혐오와 박해의 대상이 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4]. 1세기 후반 들어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에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이는 2세기 초 트라야누스 황제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습니다. 트라야누스는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제국의 수호신들에게 제사할 것을 강요했고, 이를 거부할 경우 처형했습니다[5].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길을 택했습니다. 『순교자의 행적』 등 초대교회 문헌들은 네로 시대부터 박해받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로마의 두 사도 베드로와 바울,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 서머나 감독 폴리갑, 가르푸스와 파필루스 등은 박해 시대 순교한 대표적 인물들입니다[6].
이들 순교자들의 신앙은 강렬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되는 길에 쓴 서신에서 "내가 맹수들의 이빨에 맞아 빻히는 하나님의 밀알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으며[7], 폴리갑은 화형 직전 "86년 동안 섬겨온 그리스도를 어찌 저주하겠습니까"라며 당당히 신앙을 고백했습니다[8]. 가르푸스 역시 십자가형을 당하면서 "오늘 내가 주를 뵈올 것이기에 기뻐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9].
이렇듯 기독교 순교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증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세기 교부 터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선언했는데[10], 이는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신앙이 이후 기독교 확산의 토대가 되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죽음으로 신앙을 증언하는 이들의 모습은 당시 이방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박해는 오히려 복음 전파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입니다.
교부 문헌의 발달과 정경화 과정
예루살렘 멸망과 기독교 박해를 거치면서,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교부들의 저술 활동이 활발해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부들은 당시 이단들의 도전에 맞서 정통 교리를 체계화하고, 기독교 신앙의 진리성을 변증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대표적인 교부로는 안디옥 교회의 이그나티우스와 서머나의 폴리갑이 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에서 순교하기 전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을 통해, 교회의 일치와 감독의 권위를 강조했습니다[11]. 그는 이단사설에 빠지지 말고 "감독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교회 질서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입니다[12]. 폴리갑 역시 빌립보서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굳게 살며", "사도들이 가르친 계명을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13].
2세기 변증가 저스틴은 『제1변증』과 『제2변증』을 통해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변호하고, 로마 황제에게 기독교 박해의 중단을 호소했습니다[14]. 저스틴은 『대화편』에서는 유대인 트뤼폰과의 대화를 통해, 기독교가 유대교의 예언을 성취한 참된 이스라엘임을 논증하기도 했습니다[15]. 2세기 후반 리옹 교회의 감독 이레니우스는 『이단 논박』을 집필하여 영지주의 이단을 비판하고, 정통 교리를 변호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16].
이처럼 교부들의 저작 활동은 기독교 박해 시기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신앙을 변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부들은 신약성경 정경화에도 이바지했습니다. 이미 2세기 중반 무렵에는 4복음서와 바울 서신 등 주요 신약 문서들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180년경 작성된 무라토리 단편은 신약성경 27권 중 23권의 목록을 담고 있으며, 이레니우스는 4복음서의 권위를 확고히 했습니다[17].
물론 신약성경의 최종 확정은 4세기 말에야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핍박 속에서도 교부들이 성경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이어간 덕분에, 교회는 이단들의 도전 속에서도 정경에 기초한 정통 신앙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또한 신약성경이 역사적으로 교회에 의해 선별되고 인정된 믿을 만한 정경임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로마 제국 기독교화의 서막
2-3세기 로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지속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2세기 말 무렵 "우리의 교훈은 이미 제국 전역에 울려 퍼졌으며, 도시와 마을과 가정마다 많은 신자를 얻었다"고 증언했습니다[18]. 테르툴리아누스도 "우리는 어제 태어난 존재들이지만 이미 너희의 모든 것을 가득 메웠다. 도시와 섬, 요새와 자치 도시, 광장, 궁전, 원로원, 법정까지도 말이다. 우리는 너희에게 신전만 남겨두었을 뿐"이라고 로마의 현실을 꼬집었습니다[19].
이런 확산에는 박해기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폴리갑, 저스틴을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삶으로 믿음을 증거한 것이 복음 전파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3세기 전반 북아프리카 교부 키프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로 교회가 더욱 풍성해지고 번성하게 되었다"고 술회했습니다[20].
키프리아누스 자신도 258년 로마 총독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 의해 참수형을 당함으로써 순교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함을 두려워하라"[21]. 이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얼마나확고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3세기 후반에 이르면 기독교는 로마 제국 내에서 상당한 세력으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서양 교회사의 대가 케네스 래츠는 "서기 300년 무렵 로마 제국 인구의 약 10%가 기독교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습니다[22]. 로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제국 내 기독교 인구 비율이 두 자릿수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교회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에 자유와 법적 지위를 부여했고, 이듬해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정통 교리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23].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이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기독교 공인이 교회사의 한 획을 그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기독교는 더 이상 숨어서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종교가 아니라,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권위와 지원을 받는 공인된 종교로 발돋움하게 된 것입니다.
불변의 진리로서의 기독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시작되었지만 예루살렘 멸망 이후 이방인 선교를 통해 독자적 종교로 발전했습니다. 로마의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들의 피는 복음 전파의 토대가 되었고, 교부들의 저술 활동을 통해 교회의 정체성과 정통 교리가 확립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교회는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아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기독교가 낭설이나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종교임을 입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공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과 사도들, 순교자들과 교부들은 이 사실을 목격하고 증언했으며, 그 증언은 역사 속에서 교회를 통해 계승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객관적 진리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고전 15:14-15)고 단언했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진리성은 역사적 사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것이기에 확고부동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초대교회 순교자들처럼 이 복음을 위해 고난받고 순교할 각오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철학자 저스투스 립시우스는 "진리를 위해서는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24]고 말했습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한 자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기독교는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역사의 궁극적 의미와 종말을 밝혀 주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이 밝힌 대로 인류 역사의 종말에는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실 것"입니다(계 21:4). 바로 이 소망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결코 맹목적 믿음이나 헛된 기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개인과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궁극적 진리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이 진리를 담대히 선포하고, 고난 속에서도 그 진리를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이처럼 확실하고 믿을 만한 진리입니다. 고난과 죽음, 심지어 순교까지 불사했던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이 진리를 증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결코 맹목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의 재림과 심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굳게 붙드십시오. 그것만이 우리 인생의 참된 의미요 목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참고문헌
- Josephus. Jewish War, 6.9.3.
- Tacitus. Histories, 5.13.
- Melito of Sardis. On Pascha.
- Tacitus. Annals, 15.44.
- Pliny the Younger. Epistulae, 10.96-97.
- The Martyrdom of Polycarp. The Martyrdom of Ignatius. The Martyrdom of Carpus, Papylus, and Agathonice.
- Ignatius. Letter to the Romans, 4.
- The Martyrdom of Polycarp, 9.
- The Martyrdom of Carpus, Papylus, and Agathonice, 5.
- Tertullian. Apologeticus, 50.
- Ignatius. Letter to the Ephesians. Letter to the Magnesians. Letter to the Trallians. Letter to the Romans. Letter to the Philadelphians. Letter to the Smyrnaeans. Letter to Polycarp.
- Ignatius. Letter to the Trallians, 2. Letter to the Smyrnaeans, 8.
- Polycarp. Epistle to the Philippians.
- Justin Martyr. First Apology. Second Apology.
- Justin Martyr. Dialogue with Trypho.
- Irenaeus. Adversus Haereses.
- The Muratorian Fragment.
- Clement of Alexandria. Exhortation to the Heathen, 9.
- Tertullian. Apologeticus, 37.
- Cyprian. Epistulae, 10.
- Cyprian. De mortalitate.
- Kenneth Scott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 vol.1.
- Eusebius. Historia Ecclesiastica, 10.5-7.
- Justus Lipsius. De Constantia.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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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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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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