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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에 대한 변증학적 해답을 통해 본 신정론적 하나님 이해의 합리성

by gospel79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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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악의 문제에 대한 변증학적 해답을 통해 본 신정론적 하나님 이해의 합리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악의 문제는 기독교 변증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로, 많은 철학자, 신학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악의 문제란 이런 질문입니다. "전능하고 전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악과 고통이 있는가?" 이 문제는 수많은 회의론자와 무신론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신앙인들에게도 큰 도전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변증학자들은 악의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해 왔습니다. 악의 문제에 대한 변증학적 접근은 크게 논리적 관점과 목적론적 관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논리적 관점에서 보면, 악의 존재가 하나님의 존재와 필연적으로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자 알빈 플랜팅가의 자유의지 변증법에 따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인간은 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1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로 창조하셨고, 그것은 사랑의 관계를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사랑은 강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는 양날의 검과 같아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많은 악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시기에 모든 악을 철저히 제거하실 수 없으십니다.2 

그런데 자연재해나 질병과 같은 자연적 악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 변증가 그렉 코우켈은 자연적 악 역시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의 필연적 결과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써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자연 만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롬 8:20-22). 즉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자연의 질서마저 어긋나게 된 것입니다. 자연적 악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이 완전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함을 깨닫게 합니다.3

한편 악의 문제는 목적론적 관점에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큰 선을 이루시기 위해 악을 허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은 때로 인간의 영적 성숙을 촉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욥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욥은 극심한 고통을 당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결국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고난 받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시편 34편 18절은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고난에 동참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시고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히 4:15). 악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은 다름 아닌 십자가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4

철학자 존 힉은 영혼 형성 이론(soul-making theory)을 통해 악의 문제에 대해 변증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셨다는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일깨워주고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자극제입니다. 만일 악이 전혀 없는 세상이라면 사랑과 용서, 동정심과 같은 미덕이 발현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인간의 영적 성숙을 위해 하나님이 설계하신 '영혼 형성의 장'이라는 것이 힉의 주장입니다.5 

물론 악의 문제에 대한 변증이 모든 의문을 잠재우고 고통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 파이퍼 목사는 우리가 때로는 악의 깊은 신비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비록 답을 얻을 순 없지만 당신이 선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절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보이지 않는 당신의 목적을 신뢰하며 예배합니다."6 

이러한 겸손한 신뢰의 태도가 신앙인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악을 최종적으로 이기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과 절망을 딛고 소망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신자의 고난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제자들은 그 사람의 고난을 죄의 결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은 고침을 받은 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7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받은 위로를 다른 고난 받는 자들과 나눌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성도 어거스틴은 악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답변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악이 선의 부재 내지는 결핍이지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마치 어둠이 빛의 부재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어둠은 그분 안에 없습니다(요일 1:5).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선하지만, 피조물이 하나님을 떠날 때 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악을 직접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할 때 악이 생겨난 것입니다.8 

우리가 악의 문제로 괴로워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도소이다"(애 3:22-23)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긍휼과 자비하심을 의지할 때 우리는 고난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9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악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답변이 다른 어떤 세계관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하다는 점입니다. 무신론에는 악과 고통의 실재를 설명할 만한 자원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은 그저 무의미한 우연의 산물일 뿐,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고통의 깊이와 비극성을 인정하면서도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발견합니다. 타락과 구속, 그리고 최후 심판과 회복에 대한 성경의 메타내러티브는 역사의 비극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줍니다.10

이상으로 우리는 악의 문제에 대한 기독교 변증의 몇 가지 접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모든 의문이 다 해소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기독교 세계관은 악과 고통에 대해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설명을 제공해줍니다. 그것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온 위대한 사상가들의 영적, 지적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악의 문제는 철학적, 신학적으로 매우 깊이 있게 탐구된 주제입니다. 자유의지 변증법, 영혼 형성 이론, 더 큰 선을 위한 악의 허용, 악의 존재론적 본질에 대한 통찰 등 악에 대한 변증학적 논의는 풍성하고 견고한 사상적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의 존재가 과연 기독교 신앙을 논파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악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은 기독교 세계관이 현실을 매우 심층적이고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죠. 

물론 아무리 이론적으로 잘 변증한다 해도 악과 고통의 문제는 결국 실존적 차원의 도전으로 남습니다. 악의 수수께끼는 머리로 푸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입니다. 이는 지식의 문제라기보다 신뢰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선하심과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믿음은 합리적 근거 위에 서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선하신 목적을 가지고 역사하고 계심을 신뢰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계의 섬세한 설계, 도덕률의 절대성, 인간의 종교적 본능, 그리고 역사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사역 등은 유신론적 세계관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들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으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어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함으로써 우리의 아픔에 최종적으로 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은 모든 것, 심지어 고통마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십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마지막 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온전히 성취될 것을 믿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하여 내 하나님께 넉넉히 갚으시리라"(빌 4:19).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겪는 고난을 다 아시고 끝까지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을 다 닦아주시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낙심치 말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악과 고통이 만만치 않은 도전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때로는 신앙이 도전받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질문에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의 현실 앞에서 넘어지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은 고통이 아니라 부활과 영광입니다. 욥처럼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십시오.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경외하십시오(합 3:17-19).  

여러분의 아픔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십시오(고후 12:9-10). 광야 같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는 고난도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히 12:10-11). 고난은 우리를 성숙케 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는 훈련의 과정입니다. 

끝으로 여러분이 악의 바다에서 침몰하지 않도록 지탱해줄 영적 닻이 있어야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로우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악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가 고통 중에도 여전히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악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악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해답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고난의 깊은 바다를 홀로 항해하지 마십시오. 폭풍우를 평정하신 주님과 함께 가십시오. 그분은 결코 우리를 고난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부디 악과 고통의 파도에 휩쓸리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승리의 닻을 내리십시오. 때로 고통의 의미를 깨닫기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를 신뢰하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악에 굴복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롬 8:31-32).

그러므로 환난 중에도 낙망치 말고 담대함을 잃지 마십시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악을 이길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을 붙잡고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악은 결코 최후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은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레퍼런스 출처:
1. Alvin Plantinga, God, Freedom, and Evil, Eerdmans, 1974.
2. Norman Geisler, The Roots of Evil, Wipf and Stock, 2002.
3. Gregory Koukl, The Story of Reality, Zondervan, 2017, Ch. 15.
4. John Feinberg, The Many Faces of Evil, Crossway, 2004.
5. John Hick, Evil and the God of Love, Palgrave Macmillan, 2010.
6. John Piper, "God's Sovereignty Over Evil," at desiringGod.org. 
7. Philip Yancey, Where Is God When It Hurts?, Zondervan, 2002.  
8. Augustine, Confessions, Book 7, Ch. 12.
9. Randy Alcorn, If God Is Good, Multnomah, 2014.
10. Timothy Keller, Walking with God Through Pain and Suffering, Penguin Books, 2015.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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