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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적 사고의 추상성, 물리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특질

by gospel79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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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개념적 사고의 추상성, 물리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특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추상적인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정의', '수', '아름다움'과 같은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개념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추상개념들은 물질적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5'라는 숫자를 어디에서도 물리적으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5'는 분명 실재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념적 사고의 추상성은 오래전부터 철학자들을 매료시켜 온 주제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개별 사물들과 구별되는 보편자(universal)들이 따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가령 아름다운 개별자들(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여인 등)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보편자가 초월적 세계, 즉 이데아계에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이죠[1]. 비록 플라톤의 이원론을 그대로 수용하긴 어렵겠지만, 개념의 추상성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지배적인 유물론 패러다임, 특히 물리주의로는 이런 추상개념의 실재성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리주의는 물질(또는 물리적 실재)만이 근본적으로 존재하며, 정신을 비롯한 비물질적인 것들은 물질에서 비롯된 2차적 산물에 불과하다고 봅니다[2]. 가령 생각이나 관념은 뇌세포의 물리화학적 작용일 뿐이라는 거죠. 그러나 과연 '아름다움' 같은 추상개념이 뇌세포의 작용으로 온전히 환원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뇌구조가 다른 외계인도 지구인과 동일한 아름다움의 개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물음은 단순히 철학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 정신의 본질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신과 물질,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형이상학의 근본 주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죠. 인간이 단지 물질의 산물이라면 우리의 이성과 합리성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윤리적 추론은 또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늘날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물리주의적 환원주의를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심리철학 분야에서는 물리주의로는 인간 정신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먼저 토마스 나겔은 그의 고전적 논문 "어떤 것이 박쥐이 되는 느낌일까?"에서, 주관적 경험의 본질(qualia)은 물리적 관점에서 포착될 수 없다고 논증했습니다[3]. 박쥐의 초음파 경험을 아무리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해도, 박쥐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죠. 나겔의 논증은 주관성이 물리적 실재로 온전히 환원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이에 더하여 최근 심리철학자 J. P. 모어랜드는 인간 정신이 지닌 여러 특질들이 물리주의와 충돌한다고 주장했습니다[4]. 예컨대 인간은 가치나 도덕 규범에 대해 따져볼 수 있지만, 물리학 법칙으로는 그런 규범의 존재와 정당성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연역적 사고를 통해 필연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지만, 물리적 인과만으로는 그런 진리의 필연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죠. 

정신의 비물질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또 다른 현상은 '자유의지'의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의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물리법칙에 종속된 존재라면,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자유의지 논쟁의 권위자인 로버트 케인은, 자유로운 행위자 인과(Agent causation)의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자유의지를 일관되게 옹호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5]. 

더 근본적으로, 물리주의는 인간 인격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설명하는 데 난점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 세포는 끊임없이 교체되고 변화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로서 존속합니다. 이는 정신이 단순히 물질의 부산물이 아니라 비물질적 실체로서 존재함을 강력히 시사하는 현상입니다. 영혼의 존재를 옹호하는 현대 철학자 리처드 스윈번은, 기억과 성격의 연속성이 영혼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강변했습니다[6].  

인간 인격의 통일성 문제도 물리주의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합니다. 우리의 정신 작용은 단편적 인지 과정들로 분열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주체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뇌의 영역들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통일된 의식 주체의 존재는 비물리적 영혼 혹은 정신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경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맥스웰 베넷과 피터 해커는 통일된 인격 주체의 개념이 신경과학의 발견들과 양립 불가능함을 논증한 바 있습니다[7].

지금까지 개념적 사유의 추상성, 정신의 질적 속성, 연역적 사고, 자유의지, 인격 동일성 등을 근거로 물리주의의 한계를 짚어보았습니다. 이런 인간 정신의 주요 특질들은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를 강력히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결정적으로 '증명'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물리주의만으로는 인간 정신을 충분히 해명하기 힘들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난제들에 대해 기독교 세계관은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창세기 2:7)고 증언합니다[8]. 여기서 '생령'은 히브리어 '네페쉬'(nefesh)인데, 이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통일체로서 창조되었음을 뜻합니다[9]. 따라서 영혼은 결코 물질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루아흐)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27)[10].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속성들, 이를테면 이성과 언어, 도덕의식, 자유의지, 영원에 대한 갈망 등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C. S. 루이스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 능력은 창조주의 이성을 반영한다고 보았습니다[11]. 즉, 초월적 진리와 가치에 대한 인간의 직관은 우리가 초월자의 형상임을 나타내는 표지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기독교는 인격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위한 형이상학적 기반도 제공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요4:24)[12], 그분의 형상인 인간 또한 영적 존재로서 창조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며 영혼의 실재성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13]. 따라서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속하는 비물질적 실체로서, 인격의 동일성과 연속성의 담지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실로 인간 정신을 낳고 떠받치고 있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시며, 우리의 이성과 양심, 인격의 연속성을 가능케 하는 것은 불멸의 영혼입니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혼은 신체의 형상(forma)으로서, 신체에 존재와 생명의 원리를 부여하되, 그 자체로 비물질적 실체"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14]. 이처럼 기독교 세계관은 정신과 물질의 조화로운 이해를 가능케 해 줍니다. 

물론 영혼과 자유의지에 관한 철학적, 신학적 질문들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기독교는, 초월적 인격신 하나님을 전제함으로써, 인간 고유의 정신적 속성들을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반면에 물리주의적 환원주의는 궁극적으로 이성과 윤리, 인격의 연속성, 자유의지의 토대를 허물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존엄성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물리주의의 한계를 직시하고, 영혼의 실재성을 진지하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날 뇌과학의 발달로 인해, 정신이 뇌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주장이 큰 호소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의 주요 속성들을 고려할 때, 그런 환원주의는 지나친 비약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노벨상 수상 신경과학자 존 에클스는, 뇌와 정신은 상호작용하되 정신을 물질로 환원할 수는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15].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도 비환원적 물리주의또는 이원론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물질적 정신이 물질적 육체와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우주 만물 안에 내재하시며, 모든 자연현상을 주권적으로 통제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은 물질계와 상호작용하되, 육체와 별개의 실체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비데카르트적 이원론도 활발히 제안되고 있습니다[16]. 따라서 영육 이원론이 반드시 극복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개념적 사고를 비롯한 인간 정신의 주요 특질들은 유물론적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심각한 난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특질들이 곧바로 하나님의 존재나 영혼 불멸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이 단순한 물질의 산물일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이 같은 인간 정신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가 초월적 인격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관념에 대한 통찰, 가치 판단과 이성적 추론, 자유 선택의 능력, 영원을 갈망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인간 영혼의 표지입니다. 고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 안에 "영원한 진리에 대한 사랑"이 내재해 있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17]. 이는 영원불변의 진리이신 하나님을 향한 인간 영혼의 본질적 지향성을 함축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와 가치,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품은 영적 존재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 땅을 초월한 세계, 곧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 내재해 있습니다. 이를 간과한 채 오로지 물질의 충족을 좇는다면, 우리는 결코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심령을 감동케 하시어 참 진리, 하나님을 찾도록 이끄십니다. 복음서에 나오듯이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씀하셨습니다[18]. 하나님은 진리의 근원이시며, 오직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의 음성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물질세계를 초월한 영혼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영원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충만한 가운데, 여러분의 삶을 온전히 창조주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크신 자비로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물리주의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정신의 특질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개념적 사고의 추상성, 인간에게 고유한 정신적 속성들은 유물론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반면 기독교 세계관은 인간의 본질과 운명, 삶의 의미와 가치를 명쾌하게 해명해 줍니다. 

이런 객관적 증거들에 비추어 볼 때,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정당화되는 세계관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 절대자로 상정함으로써 기독교는 우주의 합목적성과 질서, 생명의 기원, 도덕적 당위, 인간 존엄성의 근거 등을 일관성 있게 설명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이야말로 하나님께 돌아올 때입니다.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심으로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고자 하셨습니다(요3:16). 우리 각자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요1:12).  

그러니 망설이지 마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과 긍휼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내주하사, 진리의 영으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물질에 얽매이지 마시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참된 기쁨과 만족을 추구하십시오.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온전히 성취될 수 있습니다[19]. 이는 결코 헛된 약속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친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20].

이 놀라운 생명의 복음이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리며, 이만 글을 마칠까 합니다. 이제껏 고작 물질의 충족으로 행복을 좇던 지난날을 뉘우치시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한 사랑의 주님께로 향하십시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 하기를 빕니다. 

말씀으로 비추어볼 때, 인간 정신의 초월성은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명백한 징표입니다. 우리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정신적, 영적 존재로서 신적 형상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 진리가 수많은 객관적 증거와 논리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References 
[1] Plato, "Phaedo", in The Collected Dialogues of Plato, ed. Edith Hamilton and Huntington Cairn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9), 78c-d, 100b-e. 
[2] David Papineau, "Naturalism",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07).
[3] Thomas Nagel, "What Is It Like to Be a Bat?", The Philosophical Review 83, no. 4 (1974): 435-450. 
[4] J. P. Moreland, The Recalcitrant Imago Dei: Human Persons and the Failure of Naturalism (SCM Press, 2009).
[5] Robert Kane, The Significance of Free Will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6] Richard Swinburne, The Evolution of the Soul (Clarendon Press, 1997).
[7] P. M. S. Hacker and M. R. Bennett,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Neuroscience (Wiley-Blackwell, 2003). 
[8]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Zondervan, 2011).
[9]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3rd ed. (Baker Academic, 2013), 457.
[10]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Zondervan, 2011).
[11] C. S. Lewis, Miracles (HarperOne, 2015), chap. 3.
[12]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Zondervan, 2011).
[13] Ibid.
[14] Sain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trans.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Encyclopaedia Britannica, 1952), I, Q.75-76.
[15] John C. Eccles, How the Self Controls Its Brain (Springer, 1994).
[16] Charles Taliaferro, "The Virtues of Embodiment", Philosophy 76, no. 295 (2001): 111-125.
[17] Saint Augustine, Confessions, trans. Henry Chadwick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III.4.8.
[18]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Zondervan, 2011).
[19] Thomas V. Morris, Making Sense of It All: Pascal and the Meaning of Life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2), chap. 4. 
[20]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Zondervan, 2011).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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