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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과 자아동일성, 물질 환원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정신적 실재

by gospel79 202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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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격과 자아동일성, 물질 환원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정신적 실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매 순간 신체의 세포들은 새롭게 교체되고, 기억과 생각, 감정은 쉴 새 없이 바뀌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제의 나이고, 10년 전의 그 아이라고 믿습니다. 즉 우리는 시간과 변화를 관통하여 지속되는 자아의 동일성을 지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아동일성의 문제는 철학의 오랜 주제였습니다.

근대 철학에서 자아동일성에 천착한 대표적 인물로는 데카르트가 있습니다. 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자아의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명석판명한 진리라고 보았습니다. 이른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1]는 논증이 그것입니다. 데카르트에게 자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속하는 실체적 영혼을 의미했습니다. 반면 흄은 자아를 순간순간의 지각 다발로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아의 동일성은 연상에 의한 허구에 불과했습니다[2].

그런데 이와 같은 전통 철학의 자아 문제는 현대에 들어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바로 물리주의의 부상입니다. 물리주의는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물질뿐이며, 정신과 의식은 그저 뇌 상태의 부수현상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3]. 즉 자아동일성 같은 정신적 속성을 별도의 실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 과연 인격의 동일성이 단순한 착각에 불과할까요?

이에 대해 반물리주의 진영의 철학자들은 정신의 비환원성을 오랫동안 옹호해 왔습니다. 특히 토마스 나겔, 리처드 스윈번, 찰스 탈리아페로, J. P. 모어랜드 같은 학자들은 자아동일성의 현상이 물리주의의 틀로는 포착되기 어려운 특유한 속성이라고 지적합니다[4]. 나아가 그들은 동일한 자아의 시간적 지속이 영혼의 실재성을 방증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먼저 철학자 리처드 스윈번은 기억과 자아의 연속성이 비물질적 영혼의 존재를 함축한다고 봅니다. 나의 과거 경험들이 현재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과거의 그 기억의 주체라는 사실은 시간을 관통하는 자아의 동일성을 전제할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5]. 다시 말해 기억의 통일성은 비물질적 자아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죠. 나의 영혼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자아동일성의 토대라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학자 찰스 탈리아페로도 자아와 윤리적 책임의 문제는 정신의 비물질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논거라고 지적합니다[6]. 죽음을 초월한 내세에서 동일한 자아가 심판 받는다는 종교적 직관, 그리고 동일한 도덕적 주체에게 과거 행위의 책임을 지우는 윤리 규범은, 모두 자아의 지속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리적 신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반면, 도덕적 자아는 동일한 책임 주체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정신이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영역임을 방증한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철학자 J. P. 모어랜드는, 자아의 비물질성을 가리키는 여러 현상들을 제시합니다[7]. 가령 경험의 '내재적 성격'은 순전히 물리적으로는 포착되기 어려운 주관성의 영역에 속합니다. 색깔의 '붉음'이라는 감각 그 자체는 뇌의 물리적 상태로 온전히 번역될 수 없죠. 또한 '자유의지'와 같은 속성도 결정론적 물질 법칙으로는 쉽사리 설명되지 않습니다. 자연적 인과에 지배되는 물리계에선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할 테니까요. 이는 정신과 인격이 물질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실재임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자아동일성, 경험의 주관성, 의지의 자유와 같은 현상들은 모두 정신이 단순히 뇌의 부산물이 아님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뇌의 물리적 작용과 정신 활동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부인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물리주의는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비환원적 물리주의'나 '속성 이원론' 같은 입장들이 주목받고 있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8].

그렇다면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자아와 인격의 동일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저는 기독교 세계관이 이 문제에 대한 매력적인 해법을 제공해준다고 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9]고 증언합니다. 즉 인간의 영혼은 물질계의 진화적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행위로 비롯되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인격의 동일성과 지속성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영혼불멸에 대해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7절은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10]고 명령합니다. 이는 육체의 소멸 이후에도 영혼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죠.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영혼불멸을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11].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합니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각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히9:27)[12]. 그리고 부활의 날에는 영이 다시금 육체와 결합함으로써, 각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영생과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20:12-13)[13]. 이처럼 성경은 자아의 동일성과 지속성이 사후 세계에까지 이어질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아의 동일성 문제에 관해 성경이 제시하는 통찰은 철학적 논의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차원의 것입니다. 물론 영혼불멸이 이성적 논증을 통해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관은 인격의 지속성과 통일성이 전제되어야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삶의 양상들에 관해 일관된 해명을 제공해줍니다. 가령 전 생애에 걸친 도덕적 노력과 영적 성숙의 과정, 내세에서의 상급과 징벌과 같은 주제들 말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인격의 동일성에 관한 기독교 세계관에 결정적 토대를 제공해줍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눅24:46)[14].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정체성은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과 동일했습니다. 부활체로서 예수님은 여전히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십자가 처형 당시의 상처를 간직하고 계셨습니다(요20:27)[15]. 이는 곧 예수님의 인격적 정체성이 죽음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았음을 함축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근거로 성도들의 미래 부활을 역설했습니다(고전15:20-23)[16]. 그는 부활한 자들에게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몸이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고전15:42-44)[17]. 물론 그 약속의 이행은 그리스도 재림의 때까지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토록 당당히 부활을 소망할 수 있었던 근거는, 그것이 단순히 자신의 바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건 안에서 성취된 객관적 실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혼불멸에 대한 기독교 교리는 그 자체로 객관적 진리 주장의 성격을 지닙니다. 자아동일성의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해 그것은 철학적 사변으로는 주어질 수 없는 확고한 존재론적 답변을 내려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영혼 구원의 확신은 바로 이 부활 신앙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토록 보존될 것이라는 소망은, 그 자체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자아의 동일성 문제는 단순한 심리학의 주제가 아니라 형이상학과 신학의 영역에 속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리주의는 인간 정신의 고유한 속성들과 인격의 통일성을 온전히 설명해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이며, 이는 정신의 비물질성을 시사하는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반면 기독교의 영혼불멸 교리는 자아의 동일성 문제에 형이상학적 토대와 존재론적 깊이를 부여해줍니다. 또한 그것은 삶의 의미와 내세소망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자아동일성에대한 성찰은 단순한 이론적 호기심을 넘어서서, 우리 삶의 존재론적 토대에 관한 중차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존재와 운명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과연 나는 누구이며,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죽음 너머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인격의 동일성에 관한 이런 물음들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실존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물리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지 모릅니다. 정신의 비물질성을 논증하는 것 자체가 우리 존재의 의미를 담보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인격의 동일성을 추상적으로 입증하는 것 이상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실존적 hope로 경험되어야만 합니다. 과연 영원을 바라볼 수 있는 확고한 토대는 무엇일까요? 변화와 죽음을 넘어선 참된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인간의 궁극적 정체성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18]라고 증언했습니다. 즉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우리는 온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존재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옛 사람은 죄로 인해 파멸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죠.

이 새 생명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보장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의 첫 열매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15:20)[19]. 그분의 부활은 장차 우리에게 임할 영생의 확실한 보증이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겐 죽음조차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영원한 안식처로의 입성을 의미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20].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새 정체성은 윤리적 변화를 동반합니다. 우리의 옛 자아는 죄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이제는 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롬6:18)[21]. 그러나 이 변화 역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걷게 됩니다(갈5:16)[22].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의 존재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됨을 뜻합니다.  

존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서두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의 상관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23].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자아동일성에 관한 철학적 탐구는 종국에는 신학적 성찰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곧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의 존재와 정체성의 토대를 진지하게 물으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철학적 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영적 물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물음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주님 안에서만 우리의 참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변함없는 정체성과, 흔들리지 않는 존재 근거를 선사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허무의 굴레에서 건져내시고, 영원한 생명의 샘으로 인도하시는 길이 되십니다. 그분 안에서만 우리는 변화와 죽음을 뛰어넘는 불멸의 소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사랑의 음성으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초청에 응답하십시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우리의 정체성은 이제 영원 속에 견고히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그 어떤 환난과 역경, 심지어 죽음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24].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유한한 물질계의 한계 안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존재들입니다.

자아동일성의 문제는 단순한 이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존재의 토대와 삶의 의미, 내세에 대한 소망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물리주의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충분한 해명을 주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영혼 불멸의 진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아의 동일성과 불멸성에 관한 확고한 존재론적 토대를 제공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붙드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분은 결코 변치 않으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실 유일한 반석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된 생명이요, 존재의 의미이심을 고백하며 글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References:
[1] René Descartes, Discourse on Method and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4th Ed., trans. Donald A. Cress (Hackett Publishing Company, 1998), p. 18.
[2]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p. 190.
[3] Daniel Stoljar, "Physicalism," in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Winter 2017 Edition), ed. Edward N. Zalta
[4] E.g. Thomas Nagel, Mind and Cosmos: Why the Materialist Neo-Darwinian Conception of Nature Is Almost Certainly False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Richard Swinburne, The Evolution of the Soul (Clarendon Press, 1997); Charles Taliaferro, Consciousness and the Mind of Go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J. P. Moreland, The Recalcitrant Imago Dei: Human Persons and the Failure of Naturalism (SCM Press, 2009).
[5] Richard Swinburne, "Personal Identity: The Dualist Theory," in Personal Identity, eds. Sydney Shoemaker and Richard Swinburne (Basil Blackwell, 1984), p. 27.  
[6] Charles Taliaferro, "Human Nature, Personal Identity, and Eschatology," in The Blackwell Companion to Christian Ethics, eds. Stanley Hauerwas and Samuel Wells (Blackwell, 2004), pp. 523-524.
[7] J. P. Moreland, "Restoring the Substance to the Soul of Psychology," in Psychology & Christianity Integration: Seminal Works That Shaped the Movement, ed. Daryl H. Stevenson et al. (Christian Association for Psychological Studies, 2007), pp. 17-18.
[8] E.g. William Hasker, The Emergent Self (Cornell University Press, 1999); Nancey Murphy, Bodies and Souls, or Spirited Bodi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9] 신성남 역주, 『셩경전서』 (서울: 대한성서공회, 2014).
[10] Ibid.
[11] Ibid. 
[12] Ibid.
[13] Ibid.
[14] Ibid.
[15] Ibid.
[16] Ibid.
[17] Ibid.
[18] Ibid.
[19] Ibid.
[20] Ibid.
[21] Ibid.
[22] Ibid.
[23]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Hendrickson Publishers, 2008), p. 9.
[24]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Zondervan, 2011).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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