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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양심의 명령이 말해주는 우리 안의 초월적 도덕 법칙

by gospel79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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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양심의 명령이 말해주는 우리 안의 초월적 도덕 법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선악에 대한 판단과 양심의 소리를 끊임없이 경험합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줄 알고, 때로는 우리의 잘못된 행동을 가책하는 내적 음성을 듣기도 합니다. 이런 도덕적 감수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으로서, 오랜 시간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도대체 이런 도덕 의식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걸까요? 이는 단순히 사회 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에게 본유한 초월적 기준의 발현일까요?

대표적으로 칸트는 인간에게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도덕 법칙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를 "도덕 형이상학"으로 정식화하며, 인간이 보편타당한 선험적 도덕률에 예속되어 있다고 주장했죠[1]. 칸트에 따르면 이 도덕 법칙은 자연 법칙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이고 절대적입니다. 그것은 문화적 상대성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통용되며,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무조건적으로 명령합니다. 즉 "정직해야 한다",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와 같은 도덕적 당위는 개인의 경험과 무관하게 절대적 구속력을 지닌다는 것이죠.  

칸트는 이런 도덕 법칙이 인간 안에 내재하는 이유를 '실천이성'의 소관으로 봅니다. 그에게 인간은 단순히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진 도덕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도덕 법칙은 이 자유의지를 규제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도덕 법칙에 대한 인식과 복종은 인간 실존의 본질적 계기를 이룹니다[2]. 우리가 이 법칙을 자각할 때에만 비로소 자유로운 도덕적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런 도덕 법칙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만일 도덕 법칙이 개별 인간에 앞서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심지어 자연 법칙에 필적하는 필연성을 지닌다면, 그것은 결국 세계의 질서와 조화를 보증하는 무언가를 전제해야만 할 것입니다. 칸트는 이를 "도덕의 형이상학적 토대"로 지칭하며, 신 관념과 긴밀히 연관시킵니다. 즉 도덕 법칙을 가능케 하는 세계 질서의 근거는 궁극적으로 신의 존재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죠[3].  

이와 같은 칸트의 논지는 C. S. 루이스에 의해 더욱 명시적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는 인류 보편에 걸쳐 통용되는 절대적 도덕 규범이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루이스에 따르면 일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직, 용기, 신의 등은 어디서나 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반대로 거짓, 배신, 잔혹함 등은 악한 것으로 여겨집니다[4].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이 도덕 법칙이 단순한 관습의 차원을 넘어, 반드시 따라야할 객관적 기준임을 직관합니다. 

루이스는 이것이 하나님의 실재성을 강력히 뒷받침한다고 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논증합니다. 첫째, 세계 안에는 우리가 따라야 할 '도덕 법칙'이 실재한다. 둘째, 이 법칙의 존재는 우주를 초월한 '입법자'를 필연적으로 요청한다. 셋째, 우리의 양심은 그 입법자의 명령을 전해주는 하나의 매개이다[5]. 다시 말해 우리가 양심을 통해 경험하는 도덕적 당위감은, 우주를 주관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반향인 셈입니다.

물론 칸트나 루이스의 논증이 도덕률로부터 신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연역해낸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양심과 도덕률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설명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적어도 기독교 세계관이 우리의 도덕 경험을 가장 잘 해명해준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을 도덕적 절대자로 계시하고,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는 본성적 능력을 지녔음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스스로 선하시며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의로우시며 공의를 사랑하시나니"(시 11:7)라고 고백합니다[6]. 하나님은 도덕적 완전성의 원천이시며, 세상의 모든 선은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반면에 죄악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합 1:13)이라고 탄식한 바 있습니다[7].

그런데 이처럼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8].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 도덕적 속성들을 부여받았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이 인간 안에도 반영되어 있는 것이죠[9]. 따라서 우리가 양심을 통해 경험하는 '마땅히 행해야 할 것'에 대한 촉구는 바로 우리 안에 심어진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심각히 훼손당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선악을 분별하는 양심이 남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롬 2:14-15)[10]. 비록 그 양심이 언제나 바르게 기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양심의 명령을 통해 선과 진리에 대한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도덕 의식과 양심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을 반영하고 있는 인간 본성의 신적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분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어렴풋이 직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철학자 마크 링바르겐은 이를 "도덕성의 신적 기원"이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11]. 즉 인간의 도덕성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따라서 도덕 법칙은 우주를 초월한 인격적 실재를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의 촉구를 따르는 삶은 단순히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회복해 나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양심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계시하시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모든 선은 궁극적으로 그분께로 향하며, 우리의 도덕적 결단은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성의 추구는 곧 신앙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양심의 명령에 역행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속에 새겨진 선의 기준을 알면서도 악을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인간의 딜레마를 강렬하게 토로한 바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9-24)[12]. 바울은 인간의 양심이 지닌 무력함을 절감하고 구원자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덕의 문제가 단순히 윤리학의 테두리에 머물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윤리적 삶의 실패는 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며, 이는 다시 구원의 필요성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선을 행치 못하는 근본적 무능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영적 죽음의 표지인 것입니다. 즉 도덕적 자각은 종국에는 복음에 대한 갈망을 낳습니다. 이는 도덕성이 가리키는 궁극적 지향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이 우리의 도덕적 죄책과 무능을 해결해주는 길임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칭함을 얻게 되었습니다(롬 3:24)[13].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써,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이 행할 수 있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겔 36:27)[14]. 이는 양심의 명령이 결국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잘 보여줍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양심과 도덕 의식의 문제는 단순한 심리학적 차원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신학의 영역에 속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선악 판단과 내적 촉구는, 초월적 도덕 기준이 실재함을 강력히 방증합니다. 나아가 그것은 도덕의 원천이신 인격적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는 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신적 반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에 대한 자각은 한편으로 우리로 하여금 실존적 한계를 직시하도록 이끕니다. 양심의 명령에 충실히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근원적 무능과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죄의 형벌 아래 놓인 인간의 실존 조건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에 부응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게는 도덕적 이상(理想)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율법의 요구가 아무리 지고(至高)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죄성을 극복하기에 역부족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소망은 자신의 힘으로 선을 이루려 애쓰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밖에서, 즉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원에 있는 것이죠. 실로 인간의 도덕성 문제에 대한 최종 해법은 철학이나 윤리학이 아닌, 신학의 영역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복음의 독특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옳은 삶의 규범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은 우리의 윤리적 실패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던 것이죠. 이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참된 의(義)를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성 논의는 언제나 복음 선포와 긴밀히 연관되어야 합니다. 윤리적 삶의 이상을 외치되, 동시에 그것의 한계 또한 직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형상과 율법은,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을 갈망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도덕 의식과 윤리적 열망은,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참된 의(義)를 향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덕적 삶은 결국 믿음의 열매요 표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라면 반드시 선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15].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삶은 세상을 향한 복음의 증거요 하나님께 대한 영광의 반사인 셈입니다.

결국 양심과 도덕성의 문제는, 신앙의 고백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윤리적 규범의 차원을 넘어, 절대 진리이신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양심의 문을 두드리시며 자신과의 화해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진정 자유케 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우리의 도덕적 고뇌 그 자체가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그 가책조차도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치 않으시고 되찾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시간 양심에 귀 기울이시고,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를 꾸짖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의 완전한 의로 우리를 씻으시고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더 이상 죄의 형벌과 양심의 가책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힘입어, 참된 의와 거룩함의 길을 담대히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놀라운 복음의 은총 가운데 늘 거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양심의 명령이 말해주는 우리 안의 초월적 도덕 법칙"에 대해 변증적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도덕성에 관한 철학적, 신학적 논의를 통해, 양심의 절대적 명령은 창조주 하나님의 실재성을 강력히 뒷받침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타락한 인간의 근본적 무능력 앞에서, 윤리학을 넘어선 구원의 필요성과 복음의 소식으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 글이 도덕철학의 모든 난제를 해소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양심과 도덕의 문제가 기독교 세계관 속에서 가장 깊이 있게 해명될 수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복음은 도덕적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인간에게, 죄 사함과 새 생명의 길을 활짝 열어주고 있습니다. 부디 이 귀한 진리를 붙잡고 날마다 믿음으로 전진해 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굳게 설 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거룩하신 그분의 뜻을 이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연약함을 다 벗어버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정 가운데 함께하시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 안에 선한 것을 시작하신 이요 그것을 완성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빌 1:6)[16].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주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고백하십시오.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는 그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더 이상 죄의 짐을 홀로 지고 가지 마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공로를 의지하고, 그 귀한 보혈의 능력을 힘입으십시오. 여러분은 반드시 자유케 될 것입니다. 이제 주님 주시는 담대함으로 살아가십시오. 

저는 이 시간 양심의 빛을 따라 살고자 애쓰는 모든 분들을 격려하고 싶습니다. 때로 그 길이 외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수고를 기억하시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의를 행함으로 인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되도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17]. 이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믿습니다. 

끝으로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여전히 고민하고 방황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정직과 사랑, 용서와 화해의 가치를 삶으로 실천하신 바로 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분의 십자가 앞에 머리 숙이십시오. 그리고 부활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 주님께 삶을 온전히 맡겨드리십시오. 여러분은 그 어떤 가치 체계로도 얻지 못할 놀라운 깨달음과 신앙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친히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진정한 자유와 기쁨, 평안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 놀라운 구원의 능력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ferences: 
[1] Immanuel Kant, 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 ed. Mary Gregor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2] Immanuel Kant,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ed. Mary Grego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3] Immanuel Kant, Critique of Judgment, ed. Paul Guyer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4] C. S. Lewis, Mere Christianity (New York: HarperCollins, 2001), Book I.
[5] C. S. Lewis, "The Poison of Subjectivism," in Christian Reflections (Grand Rapids: Eerdmans, 1967).
[6]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7] Ibid.
[8] Ibid.
[9] Richard Swinburne, Responsibility and Atonement (Oxford: Clarendon, 1989), chap. 1.
[10]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11] Mark D. Linville, "The Moral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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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규 아나운서의 충격적인 실화 - 즉사했던 딸이 다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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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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