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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타심의 진화론적 기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무신론의 난점

by gospel79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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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타심의 진화론적 기원을 설명하지 못하는 무신론의 난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타심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것, 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시일 것입니다. 이런 이타적 행위는 인류 사회에 널리 퍼져있을 뿐 아니라, 도덕성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런 이타심이 무신론적 세계관, 특히 진화론의 틀 안에서 과연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질문을 중심으로 진화론의 한계와 유신론의 설득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현대 진화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이타심의 출현은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닙니다. 진화론의 중심 테제는 자연선택설인데, 이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다음 세대로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전달하게 됨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입니다[1]. 다시 말해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이라는 것이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 같은 관점에서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 이론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2]. 생명체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많이 전달하기 위해 투쟁하도록 프로그램 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행동은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동료나 친족의 생존을 도우려 하는 행위는 개체의 입장에서는 분명 손해 보는 일일 테니까요. 그러니 진화의 과정에서 이타적 행동은 자연스레 도태되고,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개체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게 되는 것 아닐까요?   

진화생물학자들 역시 이런 역설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제시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해밀턴의 "혈연선택설(kin selection)"과 트라이버스의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 이론입니다[3]. 전자는 근친 간의 이타행동이 결국 자신과 유사한 유전자의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주장이고, 후자는 타인에 대한 도움이 자신에 대한 미래의 보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에 이타행동이 존속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두 이론은 자연선택설과 이타심의 존재를 어느 정도 조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이런 진화론적 설명에도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실제 사례들이 위의 이론들로 쉽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희생 행위, 먼 타국의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박애적 행동, 미래의 보상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이뤄지는 이타심의 발현 등은 진화론의 예측과는 거리가 멉니다[4]. 진화론의 관점에서는 이런 '비합리적' 행동들이 오히려 설명 불가능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는 것이죠. 

더 근본적으로, 이기적 유전자론에 입각할 경우 이타심 자체를 참된 의미의 이타심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만일 이타행동의 궁극적 동기가 자신의 유전자를 간접적으로나마 퍼뜨리려는 이기심에 있다면, 그것을 순수한 의미의 이타심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5] 오히려 이는 교묘하게 위장된 이기주의에 가까워 보입니다. 결국 진화론의 패러다임만으로는 인간의 도덕감정이 지닌 숭고함과 초월성을 진정으로 설명해내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타심의 존재와 본성을 이해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기독교 세계관은 독특하고도 심오한 통찰을 제공해 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6].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과 품성을 어느 정도 반영한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뜻합니다[7]. 그리고 우리 안에 심겨진 이타심은 바로 그 '하나님의 형상'의 구체적 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그 사랑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8].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하기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심지어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이타심과 희생정신을 보여주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7-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이타심의 원천이며, 우리의 이타적 행위는 그 사랑의 모상(模像)인 셈입니다.

더 나아가 이웃 사랑의 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부여하신 도덕 법칙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가장 중요한 두 계명으로 꼽으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10]. 그러므로 우리가 이타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사랑과 이타심의 실재와 초월성을 신학적 토대 위에서 깊이 있게 해명해 줍니다. 자신의 이익을 초월해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마음은, 결코 진화의 산물일 수 없으며 자기사랑의 변형태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반영하는 인간 본성의 신적(神的) 차원이며, 그 사랑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응답인 것입니다[11]. 따라서 무신론의 틀 안에서는 이타심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의 참된 기원과 의미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완전히 조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타심에 관한 성찰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 자체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엄밀히 말해 이 세상 그 누구도 완전한 의미의 이타심을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이타적 행위에도 언제나 이기적 동기와 욕심이 어느 정도 개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순수하고 온전한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참된 이타주의자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과 희생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구원 사역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12]. 하나님은 그 어떤 이해득실의 계산 없이 오직 우리를 향한 무조건적 사랑에 따라 독생자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기에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그 어떤 이타심으로도 비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의 실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이타심의 원천은 진화의 메커니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도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할 때, 우리는 그 사랑을 닮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이타주의는 단순한 윤리적 명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그 은혜에 감격할 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감사의 열매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진화론의 관점으로는 이타심의 기원과 본질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자연선택설과 이기적 유전자론만으로는 인간 안에 내재된 숭고한 희생정신과 박애주의를 완전히 해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신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릴 때, 비로소 이타심의 신비가 밝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도덕적 본성은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의 최종 기원과 의미는 신앙의 눈으로 조망될 때 온전히 조명될 수 있습니다.

이타심만이 아닙니다. 진리에 대한 갈망, 아름다움을 찾는 열정, 선을 사모하는 마음 등 인간의 온갖 고차원적 특질들이 단순히 물질과 유전자의 산물일 수는 없어 보입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우리의 삶 속에 심어진 신적 형상의 흔적이며,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인간 영혼의 창(窓)입니다. 우리는 이 고귀한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참된 인간다움을 구현해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회복을 통해서만 우리는 온전한 사랑과 이타심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기독교 복음의 심오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타적 사랑은 단순한 윤리적 모범을 넘어서는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대속(代贖)의 제물이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할 때, 우리는 진정 죄로부터의 자유와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옛 성품을 벗어버리고, 이제는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고후 5:17)[13].

여러분, 이타심의 진정한 원천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권합니다.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결국 주님 안에 뿌리내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그 은혜에 감격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이타심을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14]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긍휼과 자비를 깨달을 때, 이제 우리도 주님을 찬양하고 그 사랑을 이웃들과 나누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안에는 여전히 이기적인 옛 자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 순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우리는 사랑과 이타심의 향기를 점점 더 풍성히 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의 말씀 앞에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드립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삶의 축복을 날마다 누려갑시다. 그것은 결코 헛된 노력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거룩한 부르심이며,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값없이 부어주신 은혜에 대한 마땅한 보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런 우리의 수고를 기억하시고 풍성히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스도의 이타적 사랑을 본받아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됩시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 나라가 점점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과 봉사가 결국 이 땅에 하나님의 샬롬을 이루어갈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이타적 사랑으로 부르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시고 복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ferences:
[1] Richard Dawkins, The Selfish Gen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6).
[2] Ibid.
[3] W. D. Hamilton, "The Genetical Evolution of Social Behaviour,"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7 (1964): 1-16; Robert L. Trivers, "The Evolution of Reciprocal Altruism," Quarterly Review of Biology 46 (1971): 35-57. 
[4] Jeffery P. Schloss, "Evolutionary Accounts of Altruism & the Problem of Goodness by Design," in Mere Creation: Science, Faith & Intelligent Design, ed. William A. Dembski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8), 236-261.
[5] C. S. Lewis, The Abolition of Man (New York: HarperOne, 2001), 35.
[6]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7] Anthony A. Hoekema, Created in God's Image (Grand Rapids: Eerdmans, 1986).
[8]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9] Ibid.
[10] Ibid.
[11] Stephen G. Post, et al., eds., Altruism & Altruistic Love: Science, Philosophy, & Religion in Dialogu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12]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1998).
[13] Ibid.
[14] Ibid.
[15] Ibid.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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