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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

by gospel79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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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어린 시절, 외로움과 결핍의 시간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정호 교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인해 많은 상처와 외로움을 겪었습니다. 그의 첫 기억은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는 모습이었고, 아버지는 그의 어린 시절 내내 부재중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성장과정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 교수의 아버지는 그가 겨우 한 살 무렵 가정을 떠났고, 이후 그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혼이나 별거가 흔치 않았던 시대였기에, 아버지가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외동아들이었던 최 교수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는 더욱 컸습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셔야 했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성이 홀로 자녀를 키우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많은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최 교수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지만, 한편으로는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양육 방식으로 그를 대하기도 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최 교수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과 함께 등하교를 하는데, 홀로 등하교를 해야 했던 그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은 손을 잡고 걷는 부모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는 그에게 '남성성의 결여'로 이어졌고, 심리적 위축과 낮은 자존감을 낳기도 했습니다.

 

최 교수의 별명이 '미스 채'였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성스러운 이미지는 그가 또래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어머니의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명문학교에 다녀야 했던 것도 그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원거리 통학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에게 어린 시절은 가정의 불화,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강압적 교육방식, 친구들과의 단절 등으로 점철된 아픔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힘겨운 현실을 책과 공부로 견뎌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해 나갔습니다.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학업에서의 성취로 채워나간 것입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의대에 진학하다

어머니의 강한 교육열 덕분에 최 교수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그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반드시 의대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최 교수는 어머니를 실망시킬 수 없어 의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된다는 것, 남들 보기에는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정작 최 교수 자신의 마음 속에는 공허함이 가득했습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하긴 했지만, 진정으로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지기 위해 의대라는 길을 택한 것뿐이었습니다.

 

의대 생활은 그에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흥미나 열정이 없었던 그에게 공부는 고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의 기대가 버거웠고, 중도 하차라는 선택지는 그에겐 없었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의사가 된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게 두렵고 자신 없었던 것입니다. 책으로 배운 의학 지식을 실제 진료에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환자를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아닌, 단지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던 것입니다.

 

최 교수는 이런 상황을 술로 달랬습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현실을 잊고자 했습니다. 가정에도 거의 신경 쓰지 못했고, 아내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에겐 병원 일과 술자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실상 알코올 중독에 빠져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주는 두 명의 '천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아내와 친구였습니다. 아내는 그를 묵묵히 믿고 기다려주었고, 기독교 신앙으로 그를 품어주었습니다. 대학 동기인 친구는 술자리를 가며 그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로서의 전문성도 높여갔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정해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심리적 자수성가'의 시작이었습니다.

 

비록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최 교수에게 어린 시절의 경험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그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사랑과 존중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컸던 최 교수는 자신의 자녀들은 다르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경험했던 그였기에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비록 병원 일로 바쁘고 집에 자주 있지 못했지만, 그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녀들과 소통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최 교수가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 때면 아내가 늘 곁에서 도와주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의 학교 행사나 외출 계획이 있을 때면 바쁜 남편에게 일부러 허락을 받게 하고,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물어봐 주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들과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가족 전통은 매년 12월 31일,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최 교수는 바쁜 일과 중에도 시간을 내어 꼭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함께 하고, 앞으로의 1년 계획과 기도제목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아버지가 곁에 없어도, 마음만은 늘 함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랑과 헌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최 교수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깊이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도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떠나는 것을 즐거워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쌓인 추억과 끈끈한 정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최 교수 역시 이 같은 노력의 결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랑으로 양육한 자녀들이 건강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에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아이들과 함께한 그 시간들은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아버지의 부재를 자녀 세대에서 끊어내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일궈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최 교수의 가정이 이처럼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신앙이 자녀 양육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 새 힘을 얻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다

결혼 후에도 최 교수의 삶은 여전히 바쁘기만 했습니다. 밤낮없이 술자리를 가지고, 바쁜 일상을 반복하며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특히 그에게 큰 두려움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마음을 어루만지기보다는, 빨리 진료를 마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최 교수는 업무 스트레스와 환자를 대하는 어려움으로 술에 의지하게 되었고, 알코올중독에 빠져갔습니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의 곁을 지켜주던 아내마저 지쳐갔습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계기가 절실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40세가 되던 해, 그는 새로운 치료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의사였지만, 미국에 가서는 그저 보잘것없는 작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평생을 바쳐 이뤄온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것만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모국에서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 앞에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차츰 이 낯선 곳에서의 경험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을,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빨래를 하다가 아내의 티셔츠를 발견했습니다. 그 티셔츠는 너무나 작아서, 아내가 그 속에서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순간 아내가 자신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희생하고 헌신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진심으로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밀려왔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끊기로 마음먹었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성경책을 읽고 기독교 방송을 찾아 듣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고 매달렸습니다. 신앙 안에서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생활은 최 교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이라는 단단한 버팀목을 얻었습니다. 신앙은 그의 삶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제껏 잃고 살았던 것들,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최 교수에게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환자들을 대할 때 이제는 두려움이나 귀찮음이 아닌 긍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그의 삶 전반에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가정을 세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저녁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출석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의 변화된 모습에서 신앙의 능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힘은 그의 연구와 진료에도 반영되었습니다.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는 심리적 문제의 근원에 영적인 측면이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에게 신앙의 필요성을 알리고, 치유와 회복을 돕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습니다.

 

최 교수는 이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전문 지식과 경험, 그리고 신앙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그 날, 그 작은 티셔츠는 그의 변화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기도해준 아내처럼, 이제 그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천사'들'을 만나다

최 교수에게 삶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그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에는 힘들 때마다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내와 믿음의 친구가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최 교수의 아내는 그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다가왔습니다. 남편이 술에 의존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에도 한결같이 그를 품어주고 기다려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위해 기도로 중보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남편의 작은 변화조차도 귀하게 여기고 칭찬해주었습니다.

 

또 한 명의 천사는 바로 그의 친한 대학 동기였습니다. 그 역시 기독교 신앙이 깊은 사람이었는데, 술에 의존하던 시절에도 최 교수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술자리를 가면서도 늘 곁에서 그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통해 신앙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었습니다. 힘든 의사 생활 속에서도, 낯선 이민 생활 가운데서도 늘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던 친구의 모습은 최 교수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힘들고 방황하던 시기에 최 교수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힘들어하던 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과 격려, 그리고 신앙의 본보기가 되어준 것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최 교수가 신앙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 교수는 이제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천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환자들을 만나면서도, 여러 프로그램과 세미나를 통해서도 많은 이들에게 '천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사들과 목회자 가정을 섬기고 돌보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희생하는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그들이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천사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힘든 시기마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아내와 친구처럼,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일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최 교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기도와 사랑, 그리고 모범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사랑의 통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극복해 낸 아내의 병

최 교수에게 있어 아내는 단순히 배우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에게 아내는 영적인 동역자이자 천사와 같은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아내는 최 교수가 신앙 안에서 성장하도록 이끌어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아내에게 찾아온 은 최 교수 부부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습니다.

 

최 교수 부부는 그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믿음으로 잘 이겨냈습니다. 특히 선교사들과 목회자 가정을 섬기는 사역에 함께 동참하며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는 최 교수가 기획한 선교사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헌신해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에게 '안구 신경 마비'라는 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으로 인해 시력이 크게 떨어지고, 복시 증상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이 많이 불편해졌고, 무엇보다 사역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최 교수 부부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교수 부부는 각자의 은사와 재능을 사역에 쏟아부었고, 주님의 일에 쓰임 받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찾아온 아내의 병은 이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내는 이전에도 교수의 곁을 지키며 그를 신앙의 길로 인도했던 터라 이번 일이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부부는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회복을 위해 기도에 매달렸고, 치료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오히려 부부의 신앙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비록 아내가 예전처럼 활발히 사역하기는 어려워졌지만, 기도와 후원으로 동역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고통 중에도 남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고, 남편은 아내를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들은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아내의 병을 통해 최 교수 부부는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족의 사랑,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며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아내의 병이 아직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이 시련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최 교수 부부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서로 사랑하며, 끝까지 소망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아내의 병을 통해 부부는 오히려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완벽하게 낫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고, 많은 이들의 기도 덕분에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 주님과 더 깊이 동행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아내의 병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 교수 부부에게는 신앙의 성장통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아픔을 통해 더욱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법을 배웠고, 고난 속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전보다 더욱 견고한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시련과 아픔의 순간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최 교수 부부의 고백처럼 그 순간조차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음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성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이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함임을 믿는 것, 그것이 신앙인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입니다.

삶에서 진정한 빛을 찾는 방법

마음의 병, 그 근원을 찾아서

최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그리고 한 크리스천으로서 마음의 병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습니다. 그는 환자들을 만나며 정신질환의 근원이 단순히 '병'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영적인 문제, 그리고 삶의 근원적인 아픔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의 병을 '약'으로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이 있으면 항우울제를, 불안장애가 있으면 항불안제를 처방하는 식입니다. 물론 약물치료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증요법에 불과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의 병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입니다.

 

최 교수가 만난 많은 환자들의 아픔은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학대나 방임 등으로 인해 받은 마음의 상처들이 평생 짐이 되어 그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자존감의 결여로 이어지고,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사랑하는 이의 상실이나, 실패와 좌절의 경험으로 인한 상처였습니다. 진학이나 취업의 실패, 사업의 좌절, 역할 상실 등이 깊은 우울과 무력감을 낳고,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자신이 가치 없고 무능한 존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점점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이런 마음의 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혹자는 신앙인들조차 우울증을 겪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픔과 상처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유무나 연약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한 존재이며, 그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입니다. 아픔을 겪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 아픔에 공감하고 품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그 아픔을 덮어주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위로로도, 전문적 치료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 영혼의 병을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 그분의 은혜만이 우리의 상한 심령을 위로하고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어려움을 만날 때, 그로 인한 마음의 문제를 겪을 때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위로를 구하는 것일 수도, 전문 상담을 받는 것일 수도, 또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픔을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치유가 또 다른 누군가를 치유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과 아픔으로 신음하는 영혼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조롱이 아니라 사랑과 격려, 그리고 기도의 손길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보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치유와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극심한 우울과 무기력, 자살로 얼룩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 소식을 접하는 것이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정도로, 너무나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오랫동안 우리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최 교수 역시 환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자주 마주했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으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목회자나 수도자들조차도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죽음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자살은 그저 순간의 선택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오랜 시간 방치된 절망과 외로움, 그리고 무력감이 쌓인 끝에 찾아오는 비극입니다. 그만큼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그리고 특별히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신앙인들조차 쉽게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들의 아픔이 외면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고통받는 이들의 곁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절망과 아픔에 귀 기울이고, 함께 슬퍼하며, 위로하는 것. 무엇보다 그들이 다시 삶의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심리적인 처방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 그리고 때로는 약물치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처방입니다. 왜냐하면 자살의 문제는 단순히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병이기 때문입니다.

 

절망과 고통의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이, 지금 이 고통의 시간조차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는 것. 설령 지금은 깊은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할지라도, 그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희망의 빛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중에 있는 영혼들에게 다가가 그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고, 그 아픔을 끌어안아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이들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 그분을 부르짖을 때 그분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우리의 좁은 시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만 그 계획이 우리의 기대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고난의 순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결코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 아픔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며, 때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키시고 성장시키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지금 절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해도, 그 터널은 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에도 믿음을 놓지 않는 것, 주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고난들, 그것은 결국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눈에는 악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임을 믿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 길에는 기쁨도, 좌절도, 행복도, 아픔도 공존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저 그 계획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

최 교수의 이야기는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소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외로움과 아픔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었기에, 그 고통의 깊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도 외면하지 않는 '치유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상한 심령을 위로하고,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걸음은 무엇일까요? 최 교수는 그 해답을 '인정'에서 찾습니다. 인정이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 그리고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아픈 상처는 감추고 싶고, 연약한 모습은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픔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의 시작점입니다. 아파도 괜찮고, 약해도 괜찮다는 것.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실수투성이어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용서'입니다. 용서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용서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상처 준 이에 대한 용서입니다. 우리는 대개 남을 용서하는 것보다,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책과 후회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실수와 연약함조차 하나님의 용서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 앞에는 모든 허물과 결점이 다 드러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 사랑을 배워 자신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실수를 자책하기보다, 그것 역시 나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인정하는 것. 나의 연약함을 끌어안고, 그럼에도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을 용서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이들을 용서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받은 상처를 반복해서 떠올리며, 그들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미움과 원망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옭아맵니다.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기고,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들을 용서하는 것, 그것은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들에 대한 원망의 짐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그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면 반드시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같은 마음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과 타인을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치유와 회복의 첫걸음을 떼게 될 것입니다. 그 길은 순탄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과정을 의지적으로 선택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연약한 걸음을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반드시 회복되고 새롭게 될 것입니다.

빛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라

빛이 없는 삶, 그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모릅니다. 인생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것만 같고, 걸음마다 넘어질까 두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한 줄기 빛이 우리 안에, 우리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 교수는 이 하나님의 빛을 '하나님의 와이파이'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와이파이에 접속해야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 연결될 때만이 참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자주 그 와이파이를 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작 가장 소중한 그 연결고리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 빛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비록 지금은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있을지라도, 터널 저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빛이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빛 되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곧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 여정에는 기쁨도 슬픔도, 환희도 절망도 함께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넘어질 때도, 일어설 때도. 그분은 우리를 한시도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가십니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그 빛을 채움으로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그 빛을 전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고, 다시 일어설 힘을 북돋워 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최 교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사랑과 빛을 이제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섬김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의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영혼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빛이 있으라" 그것이 창조 때 하나님이 하신 첫 말씀이었습니다. 그 빛을 받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빛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에, 행동에, 그리고 삶 전체에 그 빛이 스며들어야 합니다. 한 영혼을 살리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소망을 주는 빛. 우리는 바로 그 빛의 사명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그 빛 되신 하나님과 끊임없이 동행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분과 깊이 교제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우리의 모든 걸음을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날마다 새롭게 될 것이고, 어둠을 이기는 강력한 빛이 될 것입니다.

 

혼돈과 어둠이 깊어가는 이 시대,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그 빛 안에 거함으로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혼들이 빛을 갈망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복음 5:14)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자 특권입니다. 우리가 받은 빛을 이제는 세상을 향해 비추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그 빛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첫 번째 빛입니다. 그 사랑이 가정을 넘어 이웃으로, 지역 사회로, 그리고 세상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고, 병들고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사회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어둠을 이기는 빛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빛의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직하고 진실한 삶, 사랑과 용서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서 있는 삶의 자리가 바로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그 자리에서 받은 빛을 비추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이 우리의 빛을 꺼뜨리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한, 그 어떤 어둠도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우리의 빛은 세상을 비추는 밝은 등불이 될 것입니다.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함께 이 빛의 여정을 걸어가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 감사함으로 되새기며, 우리의 연약함을 그분께 내어맡기는 겸손함으로 나아갑시다. 좌절과 낙심으로 가득한 시대에, 빛의 사람들로 우뚝 서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함께 걸어가는 아름다운 동행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작은 빛들이 모여 이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 거대한 빛이 되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1)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풍성해지고 견고해지기를 간구합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계시다면, 지금 바로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이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영접 기도문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라 읽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고, 제 맘대로 제 뜻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었던 분노, 시기, 질투, 음란, 혈기, 용서 못함, 분쟁, 시기, 미움, 다툼, 욕심 나의 모든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용서하여 주세요.

이제 하나님 떠나 방황하며 고통하던 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저의 그리스도로 저의 삶의 주인으로, 제 맘 속에 진심으로 영접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사, 영원히 다스려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회개하며, 세상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계명을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절 구원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 바로 가까운 교회에 꼭 등록하시고, 매일 회개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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