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에서는 최근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있는 이재명 대표의 경제 정책, 특히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아이디어에 담긴 인간관의 문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일정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빈곤을 해결하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인간의 본성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상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인 동시에, 타락으로 인해 죄의 본성을 지닌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심으로써(창세기 2:15), 노동이 형벌이 아닌 인간의 본질적인 소명이자 축복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 수단을 넘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돌보고 발전시키는 신성한 위임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자아를 실현하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로 노동은 고통과 수고가 따르는 것으로 변질되었지만(창세기 3:17-19), 그 본질적인 가치와 신성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은 노동을 단지 소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격하시킬 위험을 내포합니다. 이는 인간을 경제적 필요가 충족되면 더 이상 일할 동기를 찾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질병이나 장애 등 불가피한 이유로 일할 수 없는 이들을 돕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자 사회의 의무입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와 과부, 고아를 돌볼 것을 거듭 명령합니다. 그러나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개인에게까지 노동과 무관한 소득을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성경적 노동 윤리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무위도식과 게으름을 경계했습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간과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고 진단합니다(예레미야 17:9). 인간은 외부 환경이나 제도가 완벽하게 갖추어져도 내면의 탐욕, 이기심, 교만으로 인해 스스로와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인간의 문제를 전적으로 물질적, 환경적 요인으로 환원하는 유물론적 사고에 기반합니다. 이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간 사회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변증가인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는 그의 저서에서 세속적 인본주의가 인간의 도덕적 차원을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고 지적하며, 인간의 악과 고통의 문제는 초월적 해답을 요구한다고 역설합니다. 결국,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는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과학과 이성의 오용: 유물론적 세계관의 논리적 파산
특정 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논리 속에는 종종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수사가 동원됩니다. 이는 사회 현상을 데이터와 통계로 분석하고,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과학만이 유일한 진리의 원천'이라는 과학주의(scientism)와 '물질 세계가 실재의 전부'라는 유물론(materialism)적 세계관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을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논리적 토대를 허무는 심각한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과학주의는 "증명될 수 있는 것만 진리다"라고 주장하지만, "증명될 수 있는 것만 진리다"라는 그 명제 자체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습니다. 이는 철학적 주장이지 과학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주의는 자기 스스로를 논파하는 자기모순적인 입장에 불과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존 레녹스(John Lennox) 교수는 그의 저서 『신과 과학의 새로운 대화』(God's Undertaker: Has Science Buried God?)에서 과학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심각한 착각이며, 과학의 성공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힙니다. 오히려 현대 과학의 발견들은 우주가 지적인 설계자에 의해 정교하게 조정되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빅뱅 이론은 우주에 시작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이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는 성경의 선언과 놀랍게 일치합니다. 또한, 생명체 DNA에 담긴 방대한 정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지성의 개입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는 '지적 설계론'의 핵심 논증입니다.
유물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이성과 논리마저도 뇌의 화학 반응이라는 물질적 과정의 산물로 환원시킵니다. 만약 우리의 생각이 단지 원자의 무작위적 움직임의 결과라면,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생각이 진리라고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A라는 생각이 B라는 생각보다 더 '참'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사라집니다. 그것들은 단지 다른 물리적 상태일 뿐입니다. 저명한 기독교 철학자 앨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는 '진화론적 자연주의에 반대하는 논증'(Evolutionary Argument Against Naturalism)에서, 만약 우리의 인지 능력이 오직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면, 그것이 진리를 파악하도록 진화했다는 보장이 없다고 논증합니다. 따라서 유물론과 진화론을 동시에 믿는 것은 우리의 이성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기독교는 이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과 논리가 가능하게 하는 유일하고 견고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이성적 존재로 창조하셨고, 그 이성을 통해 진리를 발견하고 하나님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로고스'(말씀, 이성)라고 칭하며, 그분이 바로 만물을 창조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근원이라고 선포합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이성을 사용하여 진리를 탐구하고 확신에 이르는 합리적인 과정을 포함합니다. 과학과 신앙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정의와 공평의 왜곡: 객관적 도덕의 기반을 상실한 주장
분배 중심의 경제 정책을 옹호하는 이들은 '정의', '공평', '평등'과 같은 도덕적 가치를 강력하게 내세웁니다. 부의 재분배는 사회적 불의를 바로잡고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덕적 의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지만, 과연 무신론적, 인본주의적 세계관 안에서 '정의'나 '공평'과 같은 객관적인 도덕 가치가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이 단지 우연히 발생한 물질의 조합에 불과하다면, 객관적인 도덕 법칙의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도덕은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 사회적 합의, 혹은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하게 형성된 본능에 불과하게 됩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명저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모든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도덕률)은 우리 내면에 이 도덕률을 심어주신 입법자, 즉 하나님을 가리키는 강력한 증거라고 논증했습니다. 무신론적 세계관에서는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선하다"는 주장이 "나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개인적 선호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보편적 의무라고 주장할 논리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정의'는 결국 '힘의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혹은 권력을 가진 집단이 정의라고 규정하는 것이 곧 정의가 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나 소련의 숙청과 같은 끔찍한 비극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악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특정 집단을 제거하는 것이 '역사 발전'과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기준이 없다면, 정의는 언제나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반면, 기독교의 정의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성품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며(시편 99:4),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분"이라고 선포합니다(신명기 10:18). 기독교적 정의는 단순히 결과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각 사람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책임, 기회, 공정한 절차, 그리고 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모두 포함됩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동시에 개인의 재산권을 존중하고 정직한 노동의 대가를 인정합니다. 성경적 정의는 무조건적인 평등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의 공의로운 관계 회복을 지향합니다. 이러한 객관적 도덕 기준 없이는, 그 어떤 경제 정책도 진정한 의미의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의 부정: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결정적 증거
세속적 이념과 경제 정책들은 종종 '역사의 필연적 발전'이나 '진보'를 이야기하며 유토피아적 미래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추상적인 이론과 희망에 기반할 뿐,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역사적 사건에 뿌리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반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인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 즉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 신앙은 한낱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단언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17).
예수 그리스도가 1세기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은 현대 역사학계에서 거의 이견이 없는 사실입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 c. 56-120 AD),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c. 37-100 AD), 그리고 로마 총독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 c. 61-113 AD) 등 다수의 비기독교 사료들이 예수의 존재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그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비판가들은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쳤다거나, 환각을 보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들은 역사적 사실들과 부합하지 않는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변증가인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는 '최소 사실 접근법'(Minimal Facts Approach)을 통해, 가장 회의적인 학자들조차 동의하는 몇 가지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예수의 부활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임을 논증합니다. 그 최소 사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2) 제자들은 예수가 부활 후 자신들에게 나타났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3) 이 믿음으로 인해 제자들은 순교도 마다하지 않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4) 초대교회의 박해자였던 바울이 갑자기 기독교로 개종했다. 5) 예수의 동생 야고보 역시 회의론자에서 신자로 바뀌었다. 6) 예수의 무덤은 비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제자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환각을 보았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거짓말임을 아는 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또한,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동일한 환각을 경험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고린도전서 15:6). 시체를 도둑맞았다면, 로마와 유대 당국은 기독교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어떻게든 시체를 찾아내 공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죽음에서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설명만이 이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유일하고도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가 단순한 철학이나 윤리 체계가 아니라, 역사를 바꾸고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선포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기독교 변증 서적과 예수 부활의 상징적 이미지23
우상숭배의 현대적 변형: 국가와 이념을 향한 헛된 기대
인간은 본질적으로 경배하는 존재(homo adorans)입니다. 만약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 빈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그 '다른 무언가'는 종종 국가, 정치 이념, 혹은 경제 시스템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특정 경제 정책이나 정치 지도자가 모든 사회악을 해결하고 지상낙원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은, 사실상 국가와 이념을 우상으로 삼는 현대판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는 단순히 나무나 돌로 만든 형상에 절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궁극적인 신뢰와 희망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이사야 44장은 인간이 나무를 베어 일부는 땔감으로 쓰고 일부로는 신상을 만들어 "너는 나의 신이라" 하며 경배하는 어리석음을 고발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든 제도나 이념에 절대적인 구원의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피조물을 창조주의 자리에 올려놓는 교만이자 착각입니다. 국가는 하나님이 사회 질서를 위해 세우신 기관이지만(로마서 13:1), 결코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약속하는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는 비전은, 결국 인간의 가장 깊은 필요를 물질적인 것으로 한정하는 유물론적 인간관에 기초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 즉 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4:4). 이는 인간에게 물질적 필요를 넘어서는 영적인 갈망, 즉 의미와 목적, 사랑과 용서, 그리고 영생에 대한 갈망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국가는 빵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생명과 죄의 용서를 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헛된 기대는 결국 더 큰 절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국가와 이념이 유토피아를 약속했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똑똑히 보여줍니다. 20세기 공산주의 혁명은 평등과 해방을 약속했지만, 수천만 명의 희생과 전례 없는 인권 탄압이라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성을 간과하고 유한한 피조물에게서 무한한 구원을 찾으려 했던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기독교 변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세상의 헛된 약속들과 복음의 진정한 소망을 명확히 구분할 것을 요구합니다. 진정한 희망과 구원은 오직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그 어떤 정치 이념이나 경제 정책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진리입니다.
진화론이 거짓인 7가지 과학적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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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지지하는 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지능의 문제입니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전세계 학자들의 리스트 : https://www.discovery.org/m/securepdfs/2023/05/Scientific-Dissent-List-05012023-2.pdf
Dissent from Darwin – There is a scientific dissent from Darwinism and it deserves to be heard.
dissentfromdarwin.org
최초의 생명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생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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