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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목사가 된 두산 베어스 투수 이경필

by gospel79 202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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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필 목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여 청소년 국가대표를 거쳐, IMF라는 어려운 시기에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입단 당시 3억 3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수표로 받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프로 첫 3년 동안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는 10승 투수로서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선수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상인 팔꿈치 수술을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겪게 되면서 큰 시련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그의 심정은 야구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었고, 야구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듯한 깊은 상실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결국 19년간의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은퇴하게 됩니다.

 

 


정상에서의 교만함과 이군 생활의 부재

이경필 목사는 프로 선수 시절, 단 한 번도 이군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고 회고합니다. 이군 코치들의 지시에도 "저는 이군에 갈 일이 없으니까"라며 교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24살에 3억 3천만 원을 받으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을 때, 마치 하나님과 동급으로 스스로를 생각할 정도로 자만심에 가득 차 있었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던 전성기의 감정은 그에게 강력한 우월감을 주었고, 박찬호 선수 같은 대선배 앞에서나 고개를 숙일 정도였으며, 다른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자신이 더 잘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스포츠 세계의 보이지 않는 위계, 즉 연봉이나 실력에 따른 족보가 형성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야구 은퇴 후 방황과 무속 신앙 경험

야구 은퇴 후 이경필 목사는 야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의 답답함과 어려움으로 인해 무속 신앙에 의지하게 됩니다. 특히 이승엽 선수에게 홈런을 맞을 때마다 울려 퍼지던 엄정화의 '페스티벌' 노래는 그에게 치욕적인 기억이었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알라신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신을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야구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지인의 소개로 청담동의 유명한 보살을 만나게 됩니다. 그 보살은 그의 과거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이경필 목사는 그 보살과 형동생하며 지내게 되면서 산기도와 강기도를 함께 다녔습니다.

무속 신앙의 기도는 기독교의 기도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들은 주문을 외우고, 불을 태우고, 빨간색과 파란색 천에 칼과 가위를 꽂는 등의 드라마에서 보던 행위를 실제로 행했습니다. 돼지머리를 세우는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의식들을 보면서도,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영의 세계가 존재하고 귀신들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이경필 목사는 도산공원에 점집을 차려주고 투자자이자 운영자로서 보살들과 동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두 명의 보살을 대표로 세우고 점집을 운영했는데, 두 보살은 서로 자신들의 신이 더 세다고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점집을 찾아왔고, 100억을 가진 사람부터 500만 원을 가진 사람까지 모두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세상만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약 8개월간 점집을 운영했지만, 두 보살의 계속되는 다툼으로 인해 결국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점집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는 찾아온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덧붙입니다.


공황장애를 겪는 아내와 뜻밖의 교회 방문

무속 신앙과 결이 맞지 않다고 판단한 이경필 목사는 아내의 건강 문제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일본 무역업을 하던 아내가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고, 증상이 심해져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당시 장모님이 목사님이셨던 터라, 이경필 목사는 어릴 적 교회를 다니다가 20살에 떠났던 아내가 송구영신 예배에 가자고 했던 것을 떠올리며 교회를 찾게 됩니다.

아내는 이경필 목사에게 함께 교회를 가자고 권유했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 아내는 방언 대신 아기 소리를 내는 등 이상한 증상을 보였습니다. 살이 급격히 빠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이경필 목사는 아내의 친구인 전도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전도사는 축사(逐邪)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습니다.

아내는 밤 12시에도 불을 끄고 잠을 자지 못했으며, 장롱 문이 열려 있으면 닫아달라고 할 정도로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이경필 목사는 이러한 상황을 통해 이전에 겪었던 영적인 경험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준비시키신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축사 기도 여정과 직접적인 기도의 힘

이경필 목사는 아내의 축사를 위해 용하다는 목사님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오이도에 계신 목사님을 비롯해 세 분의 목사님을 만났고, 마지막으로는 중국에서 축사 기도를 많이 하신 분이 계시다는 말에 충남 공주까지 찾아갔습니다. 당시에는 목사님일 뿐이지 유명하고 용한 분들을 찾아다닌다는 생각이었다고 회고합니다. 목사님들의 기도로 잠시 증상이 완화되는 듯했으나, 집에 돌아오면 다시 악화되고 살이 계속 빠지는 등 차도가 없었습니다.

약 4~5개월 동안 축사 기도를 받으러 다니다가, 아내는 이경필 목사에게 "여보, 우리가 왜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안 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에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인천 청라까지 돌아오는 한 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떠나갈지어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던 이경필 목사도 똑같이 따라 기도했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오던 그날, 그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와이프도 저도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살아 계신 하나님이 왜 아내를 낫게 해주시지 않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낫게 해주시면 제가 하나님 믿고 아프리카에도 가겠습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아내에게 갑자기 방언이 터지고 얼굴이 밝아지면서 모든 증상이 싹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경필 목사는 이때 비로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직접 체험하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서원 기도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신앙생활과 몽골 선교의 시작

아내의 치유 이후 이경필 목사는 신정동에 있는 한성교회에 등록하며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수요 예배, 금요 철야, 새벽 예배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하며 열정적으로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금요 철야 예배에서 담임 목사님이 어린 성도의 암 치유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변의 성도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차 자신도 그렇게 부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금요 철야 예배는 그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 공지사항을 통해 몽골 선교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1월의 가장 추운 시기에 몽골로 떠나는 선교에 대해 이경필 목사는 "제 마음이 추위보다 더 뜨거우니까"라며 아내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담당 교구 목사님은 야구 선수 출신인 그에게 몽골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달라고 제안했고, 그는 야구 장비를 준비하여 몽골 선교를 떠나게 됩니다.

몽골에서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면서 그는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비행기 표를 내면서 봉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그의 내면에 뜨거운 감동과 감사를 불러일으켰고, "이것이구나! 야구를 통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동안 "저 왜 부르셨어요? 야구 선수인데 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라고 질문했던 그의 의문은 몽골 선교를 통해 해소되었습니다.


몽골 선교 야구단의 창단과 헌신

몽골과 야구는 잘 매칭되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몽골의 야구 인구는 당시 약 250만~300만 명의 전체 인구 중 160명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소개로 올림픽 선수촌의 야구 감독을 만나게 되었고, 그 감독은 유튜브로만 야구를 배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경필 목사에게 직접 야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2015년에 막연하게 "한번 가겠습니다"라고 약속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이경필 목사는 장애인 아이들을 돕고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서 티볼을 가르치는 등 봉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야구가 단체 운동이므로 함께할 동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팀을 붙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2017년 1월, 한성교회 청년부 총무에게서 야구를 가르쳐 달라는 전화가 왔을 때, 그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팀원들이라고 직감했습니다. 그는 청년들에게 자신의 꿈인 선교 야구단 창단 비전을 이야기했고, 약 15명의 청년들이 기꺼이 동참하여 그해 6월에 바로 선교 야구단을 창단하고 20명의 단원들과 함께 몽골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10년 동안 매년 7일에서 10일간 몽골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몽골에서 야구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로데 마우스에서 식사 섬김을 하고,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MK 스쿨에서 교사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경필 목사는 선교가 쉽지 않은 여정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개인의 비행기 표 비용과 모든 경비를 직접 부담해야 했으며, 선교는 단순한 해외여행과는 달랐다고 설명합니다.


선교 훈련과 개인적인 변화

이경필 목사는 선교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훈련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백두산과 심양 등 여러 곳으로 선교를 다녀왔으며, 선교와 전지훈련을 접목시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몽골은 해발 1,600m의 고지대라 체력 소모가 심하고, 새벽 예배와 운동, 저녁 예배 등으로 이루어진 빡빡한 일정은 참가자들에게 큰 피로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권사님들은 150인분의 도시락을 싸야 하고, 젊은 선교단원들은 아침부터 경기와 연습, 예배를 소화해야 했습니다. 그는 저녁 예배 시간마다 피곤에 지친 단원들의 표정에서 "또 무슨 예배야"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야구선수 시절 단체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그는 선교지에서의 무질서한 모습에 처음에는 미치도록 화가 났다고 합니다. 6시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고 운동을 나가야 하는데 청년들은 늦잠을 자고, 9시 출발인데 세 명이 나타나지 않는 등의 상황에 자신의 쓴뿌리가 터져 나왔다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화장실에 자주 가는 사람들을 위해 "요금통 야구 PT병 큰 거 하나 갖고 다녀라"고 말할 정도로 분노했습니다. 남자 여섯 명이 에어비앤비에서 함께 지내며 씻지 않는 습관 때문에 냄새가 나고, 땀 범벅이 된 상태로 지내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이 선교 감독이자 리더로서 이러한 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선교를 통해 자신의 성격이 많이 둥글둥글하게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선교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경필 목사는 계속해서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는 갈 때마다 은혜가 넘쳐서 간 것은 아니며,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에게 목표를 주시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뭐든지 안 된다"는 그의 신념이 선교를 계속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선교 출발 4주 전부터는 기도회를 가지는데, 이는 기도한 만큼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가서 힘들 때 기도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탈 때까지는 은혜롭지만, 도착해서 이틀만 지나면 모두 예민해지고 서로 알카워진다고 표현합니다. 그때 은혜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기 때문에,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선교지에서는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예상치 못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것이 나중에 간증이 된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20명이 선교를 갔을 때, 토요일 밤에 간증 시간을 가졌습니다. 5분씩만 이야기하기로 했지만, 한 명이 울면서 20~30분씩 이야기하고 나면 새벽 3~4시가 되곤 했다고 합니다. 눈물이 터지면 말을 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경필 목사는 단체 생활에서 타인의 보기 싫은 행동이나 단점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선한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서로의 행동이 미워지고 불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기도로 준비하고 간증을 나누며 신앙으로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몽골 선교지에서 야구를 하던 중, 다친 팀원들이 아픈 몸으로도 감사하며 뛰는 모습을 보며 이경필 목사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우리 이분들은 여기 와서 이렇게 힘든데 왜 이렇게 고생할까요?"라고 물었지만, 이내 "하나님, 여기 있는 것도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감사와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와 입양의 꿈, 그리고 복싱 선수 '기준이'

이경필 목사가 아내의 병을 고쳐주면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서원 기도를 드렸을 때, 그는 몽골 선교로 아프리카를 '퉁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던지는 투수였던 것처럼, 이제는 하나님이 던지는 야구공이 되어 던지는 곳으로 날아가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일에 쓰임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든 몽골이든 같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2019년, 동두천에 아프리카인들이 드리는 예배에 봉사를 갔을 때, 한 친구가 아내에게 야구를 배우고 싶다고 물어왔습니다. 당시 그의 야구 리그가 포천에 있었는데, 의정부와 포천은 10km 거리였기에 직접 가르쳐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만나게 된 친구가 바로 '기준이'입니다. 이경필 목사는 기준이를 태우고 다니며 함께 야구를 했고, 기준이는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습니다.

기준이가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다른 아프리카 친구들은 학업을 대충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엄마에게 돈을 보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경필 목사와 아내는 "기준이는 세상의 기준이 되고, 기도하며 준비하는 해가 되자"는 마음으로 기준이를 자신들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습니다. 기준이의 원래 이름은 '마이클 보아치'였지만, '기준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기준이가 공교육을 잘 받아 세상에 나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선교사님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교육자가 되고 사업가가 되는 아이들처럼, 기준이도 한국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소망했습니다. 기준이는 흔쾌히 함께 살겠다고 했고, 인천에 있는 특수고등학교인 생활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미용을 배우게 했습니다. 이경필 목사는 미용 기술을 배우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학년 때, 기준이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가나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기준이를 6개월만 가나로 돌려보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가나에서는 장례식을 화려하게 치르는데, 일주일 이상 진행하면 한국 돈으로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장례 문화가 파티처럼 발달해 있었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음 세계로의 전환이라고 믿는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기준이 또한 가나로 가고 싶어 했지만, 이경필 목사는 기준이가 그곳에 가면 자신들이 예상했던 길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일단 일주일 동안 가나에 다녀오기로 했지만, 기준이는 이미 삼촌들과 함께 공장 일을 하며 변해 있었다고 합니다. 가나로 가기 전, 기준이는 이경필 목사에게 복싱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경필 목사는 사실 기준이를 야구 용병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가나에서는 야구를 접해본 적이 없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규칙도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복싱은 너무나 잘했고, 관장님은 기준이의 펀치력이 예사롭지 않다고 칭찬했습니다.

이경필 목사는 기준이를 복싱 시키겠다고 했지만, 기준이의 엄마는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결국 이경필 목사 부부는 기준이의 엄마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지원하겠다고 설득하며 두세 번을 찾아간 끝에, 기준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복싱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기준이는 G2 비자로 우석대학교에서 학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 프로 복싱 자격을 따서 한국에서 타이틀전을 치르면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된 기준이가 하나님과 기도하며 스스로 자신의 길을 열어갈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경필 목사는 복싱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준이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목사로서의 새로운 소명과 유통업 겸직

이경필 목사는 주중에는 유통업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주일에는 장모님이 계시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을지 말지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설교에 대한 부담감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어릴 때부터 설교 훈련을 받은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은 열심히 몽골 선교를 다니겠다며 설교는 하지 않겠다고 6개월 동안 고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모님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넘어지셔서 가슴을 다쳐 2~3개월 정도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설교를 할 사람이 없게 되자, 이경필 목사는 반 강압적으로 처음 강단에 서게 됩니다. 설교를 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감사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성도님들이 은혜를 받는지 안 받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며 계속해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수는 줄지 않았습니다. 나이 드신 성도들이 많아 가끔 조는 분들도 계셨고, 예배 중에 벨소리가 울리거나 전화를 받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예배 중에 자꾸 일어나 돌아다니는 한 집사님께 설교가 잘 안 된다며 자리에 앉아달라고 정중히 요청했던 일을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제 이런 상황에도 "그러려니" 하며 적응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구원 투수이자 감독

이경필 목사는 하나님을 세상의 구원이자 자신의 구원 투수이며 감독님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힘들 때 자신을 등판시켜 주시고, 이제는 자신이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던지면 자신이 야구공이 되어 그분께서 던지는 곳으로 날아간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표현할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적시적소에 스트라이크 볼을 가려가며 자신을 사용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야구 선수 시절에는 자신이 공을 잘 던져 사람들의 응원과 박수를 받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겠다고 선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헌신에 대해 하나님께서 정말 크게 박수쳐 주고 계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 강한 사람을 강하게 부러뜨리시며 뜻밖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과의 **'눈치 게임'**을 하며 순순히 따라가는 착한 양처럼 살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이경필 목사는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를 통해 사역, 목회,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몽골에서 스펀지 같은 공을 던지며 아이들과 함께 뛰어노는 것 자체가 선교고 목회고 사역이라는 영감을 얻었습니다. 50대 중후반이 되어 회사에서 책상을 빼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재능과 달란트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모범 답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훌륭한 목회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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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하버드, MIT, 칼텍, 스탠포드, 프린스턴을 포함한 전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공학, 생물학, 의학을 가르치는 1,000여 명이 넘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다윈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여기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의 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지능의 문제입니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전세계 학자들의 리스트 : https://www.discovery.org/m/securepdfs/2023/05/Scientific-Dissent-List-05012023-2.pdf

 

Dissent from Darwin – There is a scientific dissent from Darwinism and it deserves to be he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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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 [불편한 진실] - 한 고대 문서 이야기

2012/10/31 - [불편한 진실] - 1. 너무나도 중요한 소식 (불편한 진실)

2012/10/30 - [불편한 진실] - 2. 당신이 복음을 믿지 못하는 이유

2012/10/30 - [불편한 진실] - 2-1. 신(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2012/10/30 - [불편한 진실] - 2-2. 신의 증거(연역적 추론)

2012/10/30 - [불편한 진실] - 2-3. 신의 증거(귀납적 증거)

2012/10/30 - [불편한 진실] - 2-4. 신의 증거(현실적인 증거)

2012/10/29 - [불편한 진실] - 3. 비상식적이고 초자연적인 기적, 과연 가능한가

2012/10/28 - [불편한 진실] - 4-1.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7 - [불편한 진실] - 4-2.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6 - [불편한 진실] - 4-3.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5 - [불편한 진실] - 4-4.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4 - [불편한 진실] - 4-5.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3 - [불편한 진실] - 4-6.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2 - [불편한 진실] - 4-7. 성경의 본질과 역사성에 대한 의문 (성경의 사실성)

2012/10/21 - [불편한 진실] - 5-1.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 (빅뱅 이론과 정상 우주론)

2012/10/20 - [불편한 진실] - 5-2.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비과학성(창조론과 진화론)

2012/10/19 - [불편한 진실] - 6. 체험적인 증거들

2012/10/19 - [불편한 진실] - 7.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모순

2012/10/18 - [불편한 진실] - 8. 결정하셨습니까?

2012/10/11 - [불편한 진실] - 9. 구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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